逍遙堂集 편양당집(太能 언기)
山中偶吟 산중에서 우연히 읊다
平生愛梵鍾 평생토록 범종을 사랑하여
垂老臥雲松 늙도록 구름과 소나무 아래 누웠네.
論經多法侶 경전을 강론하는데 도반들이 많으니
人語月中峯 달 뜬 봉우리에 사람 소리 들려 오네.
偶吟一絶贈戒明山人
우연히 읊어 계명산인(戒明山人)에게 드림
古寺空山中 고요한 산 속의 오래된 절
高樓人獨宿 높은 누각에 홀로 자는 사람.
夜來秋雨寒 밤이 되니 가을비 스산한데
落葉滿庭濕 뜰 가득 낙엽 젖어 있네.
贈別天隱師 천은(天隱) 스님과 이별하면서 드림
幻身無着處 허깨비같은 몸 붙일 곳 없으니
放浪若秋雲 가을 구름과 같이 방랑하네.
暫宿蓬萊頂 봉래산 꼭대기에 잠시 자고
隨風向石門 바람따라 석문(石門)으로 향하네.
示允師 윤(允) 스님에게
百城遊方畢 백 개의 성을 다니고 나니
香岳伴雲閑 향기로운 산에 걸친 한가로운 구름.
獨坐向深夜 홀로 앉아 밤이 깊어가는데
前峰月色寒 앞 봉우리에 차가운 달빛
次東林韻 동림(東林)1)에게 답하는 시
1) 동림(東林) : 벽암각성(碧巖覺性)의 제자인 동림혜원(東林慧遠). 부휴선수(浮休
善修)의 2세손에 해당한다.
雲走天無動 구름이 달려도 하늘은 움직이지 않고
舟行岸不移 배가 나아가도 언덕은 그 자리에 있네.
本是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起歡悲 어디에 기쁨이나 슬픔을 일으키리오.
偶吟一絶 우연히 한 수 읊다
雲邊千疊嶂 구름 가 천 겹 산
檻外一聲川 난간 너머로 소리나는 한 줄기 냇물.
若不連旬雨 만약 수십 일 연이은 비가 아니었다면
那知霽後天 비 갠 후의 하늘을 어찌 알리오?
香爐咏懷 향로봉에서
地勝靑丘野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이 곳
天高太白秋 태백산의 가을에 하늘 높아라.
曺溪全德業 수행의 덕업을 잘 갖추니
小室盛風流 작은 방에 풍류가 가득하구나.
木落千林瘦 낙엽 진 수천 그루 숲은 비쩍 말랐고
雲生一片浮 한 조각 구름 생겨나 하늘에 떠 다니네.
錫飛能解虎 호랑이 싸움 말리는 지팡이2) 짚고 다니며
回首謾悠悠 머리 돌려 보니 마음 그저 여유롭네.
2) 중국 제(齊)나라 승려 승조(僧稠)는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지팡이
를 휘둘러 화해시켰다 한다.
遊逍遙山 소요산(逍遙山)에서 노닐다
晩陟逍遙洞 저녁 무렵 소요산 골짜기를 찾아 올라갔더니
奇觀自異同 기이한 경관이 형형색색 다양하구나.
地偏天若少 땅이 궁벽하니 하늘이 작은 것같고
川遠曲迷重 시냇물 멀리서 흘러오니 겹겹이 구비졌구나.
亂竹岩前徑 바위 앞 오솔길엔 어지러운 대나무요
輕霞霽後峰 비 갠 후 봉우리엔 가벼운 노을.
高吟徒遣興 흥에 겨워 시를 높이 읊으며
揮筆句難工 붓을 휘둘러 적어 보지만 멋진 구절 어렵구나.
山㞐 산에 살며
自栖通性後 통성암(通性庵)3)에 살면서부터
幽事日相干 좋은 일만 매일 계속된다네.
造圃移芳茗 채마밭을 일구어 차나무를 옮겨 심고
開亭望遠山 정자의 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보네.
晴窓看貝葉 밝은 창 아래서 불경을 읽고
夜榻究禪關 밤 깊도록 자리에 앉아 참선을 하네.
世上繁華子 세상에 번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安知物外閑 어찌 알리오, 세상 바깥의 한가로움을.
3) 통성암(通性庵) : 묘향산 보현사에 있는 암자 이름.
次處能韻 처능(處能) 스님에게 드리는 답시
何人記賤子 나같이 천한 사람을 기억해 주니
令我憶曺溪 조계(曹溪)를 생각나게 하는구나.
歲暮燈將滅 한 해가 저물어가니 등불도 꺼져 가고
更殘月欲低 밤이 다해 가니 달도 지려 하네.
鳳雛巢覺樹 깨달음의 나무엔 봉황의 새끼가 보금자리 틀고
驥子食禪階 선(禪)의 계단엔 천리마의 새끼가 먹이를 먹고 있네.
自恨供多病 스스로 한스러워라, 병이 많다 보니
徒勞回首西 부질없이 서쪽으로 고개 돌려보네.
贈別法蓮師 법련(法蓮) 스님과 이별하며 드리는 시
力疾吟踈句 병든 몸 힘들게 이끌고 엉성한 시구 읊조리나니
蓮師故寺歸 법련스님은 계시던 절로 돌아가시누나.
歲兼人有別 세월과 사람은 이별이 있건만
愁與病無辭 근심과 병은 떠나질 않네.
雪逕連天遠 눈 덮인 오솔길은 멀리 하늘까지 이어지고
孤峯度棧危 외로운 봉우리엔 잔도(棧道)가 위태롭구나.
此行非萬里 이 길이 만 리 길은 아니지만
應見落花時 응당 꽃이 떨어지는 때를 보리라.
秋意 가을의 생각
霜落千峯草木愁 서리 내린 천 봉우리 초목엔 근심 어렸으니
世間何處不悠悠 세간 어디인들 스산하지 않으리오?
君知身老非心老 그대는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음을 알겠으니
萬古乾坤月一秋 만고의 하늘과 땅 사이에 달 걸린 가을이로다.
舍衆遁世 대중을 떠나 은둔하면서
靑山何處有毘耶 청산 어느 곳인들 비야리성4) 아닌 곳이 있으랴
近日禪流問道多 요즘 선수행자들은 도 묻는 이 많구나.
不辭雷震三千界 우레가 삼천대천세계에 진동하더라도 괜찮지만
恐被維摩點檢過 유마거사에게 점검 당할까 두렵네.
4) 비야리성 : 중인도 지역에 있던 나라 이름. 유마경의 유마거사가 살던 곳이다.
庭花 뜰에 핀 꽃
雨後庭花連夜發 비온 뒤 뜰에 꽃이 밤새도록 피어나
淸香散入曉窓新 맑은 향기 흩어져 들어오니 새벽 창이 상큼하네.
花應有意向人笑 꽃은 응당 뜻이 있어 사람 향해 웃을텐데
滿院禪僧空度春 집 안 가득 선승들은 그냥 봄을 보내는도다.
贈尙均 상균(尙均) 스님에게
機用詞章老欲衰 늙으니 글 쓰는 솜씨도 쇠퇴해 가고
近年無力接方來 근년에는 찾아오는 이 맞이하기도 힘겹네.
淸香散入曉風冷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맑은 향기 흩어져 들어오니
窓外山花數朶開 창 밖에 야생화 몇 송이 피어 있구나.
衲僧活計示說淸 내 살아갈 계책을 설청(說淸) 스님께 보임
追風忌鞭影 기풍을 좇으면서 채찍 그림자를 꺼린다면
誰是眞龍骨 누가 진정한 용의 뼈가 되리오?
手把碧玉槌 푸른 옥으로 만든 망치를 손으로 잡고
打破精靈窟 정령(精靈)의 굴을 때려 부수리라.
錦鱗須透網 비단 비늘 물고기는 그물을 뚫어 버리고
丹鳳鐵鎻裂 붉은 봉황새는 쇠사슬을 찢어 버리어
深深海底行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마음껏 다니고
高高峰頂立 높고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 설 것이라.
風前嘯兩嘯 바람 앞에 두어 번 울부짖다가
天外喝一喝 하늘 저 멀리 한번 외칠 것이라.
烏石嶺頭雲 오석령(烏石嶺)의 구름
望洲亭前月 망주정(望洲亭) 앞의 달
朝歸白鷺洲 아침에는 백로주(白鷺洲)로 돌아오고
暮宿黃牛峽 저녁에는 황우협(黃牛峽)에서 잠자네.5)
已靈猶不重 이미 신령하나 오히려 귀중하지 않으니
佛祖是何物 부처와 조사란 이 무슨 물건인가!
暮天雲未合 저녁 하늘에 구름이 끼지 않으니
遠山無限碧 먼 산이 무한히도 파랗구나.
踈雨過前山 가랑비가 앞 산으로 지나가고
野塘秋水綠 들판의 연못엔 가을 물이 푸르네.
釰樹喝使摧 칼나무6)를 고함쳐서 꺾어버리고
鑊湯吹敎滅 끓는 솥7)을 불어서 불을 꺼버리니
火宅淸凉雨 불타는 집에 청량한 비가 내리고
昏衢光明燭 어두운 거리에 광명의 촛불이 밝혀지네.
爲報淸禪人 참선 하는 맑은 이에게 알리노니
還知此消息 이러한 소식을 알기나 하는지?
仲春風色寒 봄이 한창인데도 바람 기운이 차가우니
尙對千岩雪 오히려 천 바위에 쌓인 눈을 마주하네.
5) 오석령(烏石嶺)·망주정(望洲亭)·백로주(白鷺洲)·황우협(黃牛峽) 등은 모두 중
국에 있는 고개·정자·삼각주·협곡 이름.
6) 칼나무 : 칼이 나무처럼 솟아 숲을 이루고 있는 지옥의 한 종류.
7) 끓는 솥 : 끓는 솥에 삼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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