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시선집

翠微大師詩集 취미대사시집(守初 수초)

실론섬 2016. 10. 12. 19:47

翠微大師詩集 취미대사시집(守初 수초)


山中偶吟 산에서 우연히


山靄夕將收   저녁이 되니 산 안개는 걷혀 가고

溪風颯欲起   계곡의 바람이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네.

怡然自點頭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 끄덕이나니

玅在難形裡   형용하기 어려운 속에 묘함이 있도다.


山居 산에 살며


山非招我住   산이 나를 부르지 않아도 나 여기 와 살지만

我亦不知山   나 또한 산을 알지는 못한다네.

山我相忘處   산과 내가 서로 잊은 곳에

方爲別有閑   비로소 별도의 한가로움이 있도다.


警相諍 서로 다툼을 경계함


彼此將幻身   저 사람이나 이 사람이나 환상의 몸을 갖고

俱生於幻世   함께 이 환상의 세상에 태어났네.

如何幻幻中   어찌하여 환상과 환상 속에서

復與爭幻事   다시 환상의 일을 가지고 다투는가?


金剛山白雲庵有感 금강산(金剛山) 백운암(白雲庵)에서


九井峰前玉作巖   구정봉 앞에 옥으로 된 바위 있는데

道人曾搆數間庵   도인이 암자 몇 칸 지어 놓았네.

功成一夕歸何處   공이 이루어지면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

掛樹袈裟自濕嵐   나무에 걸어 둔 가사가 푸른 산기운에 절로 젖네.


面壁 면벽


叅玄不用問西東   깊은 진리 찾는데 동서로 다니면서 물을 필요 없으니

面壁觀心是祖風   면벽하여 마음을 보면 이것이 조사의 기풍이라.

自笑一聲人不會   소리 내어 한번 웃어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何須更覓主人公   다시 주인공을 찾아서 무엇 하리오?


送竺空師 축공(竺空) 스님을 보내며


常掩巖扉究祖關   사립문 늘 잠궈 놓고 조사의 관문 궁구하다가

禪心忽變別離間   이별의 순간에 문득 선정의 마음이 흐트러지네.

明朝林下無相伴   내일 아침 숲 아래 함께할 이 없으리니

秋雨蕭蕭葉滿山   가을비 쓸쓸히 내리고 낙엽은 온 산에 가득하구나.


澗花 산골짜기에 핀 꽃


長短人情自不同   길고 짧은 사람의 정은 같지 않은데

澗花依舊綴芳叢   산골짜기에 핀 꽃은 언제나처럼 예쁘게 모여 있네.

乾坤已着無私力   천지 자연이란 사사로운 힘을 쓰지 않으니

春意寧敎取次紅   봄의 뜻이 어찌 붉게 함에 차별하리오?


贈擇行上人 택행(擇行) 상인께 드림


祖意明明百草頭   조사의 뜻이 온갖 초목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거늘

何須更向口皮求   무엇하러 반드시 입에서 찾을 것인가?

最憐征鴈江天夕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기러기 날아가는 강과 저녁 하늘

一片蟾光表裡秋   한 조각 달빛 아래 온 세상이 가을로 물든 모습이라.


睡起 자고 일어나


日斜簷影轉溪濱   해 기울어 처마 그림자 시냇가로 옮겨가고

簾捲微風自掃塵   발 걷으니 산들 바람 먼지를 쓸어가네.

窓外落花人寂寂   창 밖에 떨어지는 꽃 인적은 적적한데

夢回林鳥一聲春   꿈 깨고 보니 숲 속 새의 한 마디 지저귐이 봄이로구나.


秋夜 가을 밤


寂無鐘梵夜三更   종도 울리지 않는 깊고 고요한 밤

落葉隨風作雨聲   바람따라 날리는 낙엽 소리 마치 비가 오는 듯.

驚起拓牎淸不寐   놀라 일어나 창문 열치니 맑아서 잠잘 수가 없는데

滿空秋月正分明 하늘 가득 가을 달은 참으로 또렷하도다.


回鄕 고향으로 돌아감


老來鄕國忽關神   늙어가니 문득 고향에 대한 생각 많아

日暖浮杯漢水春   따뜻한 봄날 한강에 술잔 띄우네.

到處物華渾是夢   가는 곳마다 자연의 경물은 모두가 꿈인 듯하고

見人談笑半非眞   사람을 만나 담소를 나누어도 반은 진실이 아니라네.

門前槐柳飄花盡   문 앞에 홰나무 버드나무는 꽃이 다 떨어지고

圃後梨海結子新   텃밭 뒤 배나무엔 새로 열매 맺혔네.

回首可憐如舊識   고개 돌려 보니 늘 보던 것처럼 사랑스러운데

背城三角卓雲濱   성 뒤로 삼각산이 구름 가에 우뚝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