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谷集 백곡집(處能 처능)
感興 감흥
浮雲終日行 뜬구름이 종일토록 다니니
行行向北歸 다니고 다니다가 북쪽으로 돌아가네.
萬古英俊人 만고에 뛰어났던 사람
得失多是非 얻고 잃음에 시비가 많구나.
是非竟何有 시비를 한들 결국 무엇이 남을지?
盡逐浮雲飛 모든 것이 뜬구름을 좇아 날아다니는 것.
浮雲本無跡 뜬구름이란 본래 자취가 없으니
我與雲相依 나는 구름과 더불어 서로 의지하네.
手中桃竹枝 손 안에 대나무 지팡이가 있고
身上薜蘿衣 몸 위에는 넝쿨로 지은 옷이 있을 뿐.
夙心多自負 평소에 가진 뜻에 자부하지만
空嗟與時違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이 한탄스럽도다.
宿田家 농가에서 하룻밤 지내며
落日下山鳥飛急 새들이 급히 나는 해 질 무렵 산을 내려갔다가
望鄕客子歸不及 미처 돌아오지 못한 나그네가 되었네.
前林漸黑草蟲喧 저 앞의 숲은 점차 어두워지고 벌레 소리 드높아지는데
問路無人時獨立 길 물어볼 사람조차 없어 멍청히 서 있기도 하였네.
隨岸忽到兩家村 언덕을 따라 가다 문득 두 집 있는 마을에 다다르니
豆花深處初掩門 콩 꽃이 무성한 곳에 대문은 굳게 잠기었네.
主翁堅臥呼不應 주인 늙은이는 누운 채 불러도 대답 없고
怒聲呦呦還見憎 성난 목소리로 도리어 신경질을 내네.
老嫗出叱犬噬衣 늙은 할미는 나와 꾸짖고 개는 옷을 무는데
雖欲奮去終何歸 떨치고 가고 싶지만 갈 곳이 어디 있으랴.
低顔僅得弊簷下 고개 숙이고 겨우 낡은 처마 아래에 허락을 받으니
風勁霜嚴徹寒夜 바람은 드세고 서리는 매서워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웠네.
夜深嬰兒啼不絶 밤이 깊자 갓난 아이는 울기를 그치지 않고
猛虎聞之覘蘺穴 사나운 호랑이는 그 소리에 울타리 구멍을 엿보네.
平生見困莫甚此 평생에 겪은 곤란이 이보다 심한 적이 없었으니
直待天明 날 밝기만을 기다려
扶錫促行不告別 떠난다는 말도 없이 재빨리 걸음을 재촉하였네.
短歌行 짧막한 노래
短歌一曲誰能知 짧은 노래 한 곡 누가 알리오?
不管人間歡與悲 인간의 기쁨과 슬픔 상관 않는다네.
鼓盆送死莊子休 장자는 항아리를 두드리며 장사를 지냈고1)
擊筑忘生高漸離 고점리는 거문고를 두드리며 생사를 잊었었지2).
縛束形骸天地中 천지 사이에 이 몸뚱아리 하나 묶어두었지만
終須凜凜生長風 끝내는 큰 바람 시원하게 한번 불어보리라.
由來哀樂竟非眞 슬픔과 즐거움이란 참된 것이 아니니
大抵浮雲流水同 뜬구름이나 흐르는 물이나 한가지이지.
短歌之興何無窮 짧은 노래의 흥이 정말 끝이 없도다.
1) 장자(莊子)는 중국 전국시대의 도가 사상가로,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
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2) 고점리(高漸離)는 중국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악사로, 거문고를 잘 탔다.
梨花 배꽃
滿樹初成雪 나무 가득 눈이 내린 듯하더니
辭枝便逐風 가지를 떠나면서는 바람을 좇네.
亂鋪溪上下 계곡 위 아래를 어지럽게 뒤덮더니
殘點屋西東 남은 몇 점은 동서로 흩날리네.
自惜蜂房廢 할 일이 없어진 벌도 애석하지만
誰憐蝶路窮 다닐 곳이 없어진 나비는 누가 가련히 여겨주리오?
一春花事盡 한 철 봄 꽃의 일이 끝나고 나니
山月謾䑃朧 산 위의 달이 흐릿하구나.
出山 산을 나가는 길에
步步出山門 걸음 걸음 산문에서 나가니
鳥啼花落後 새 울고 꽃은 이미 떨어졌네.
烟沙去路迷 모래사장에 안개 끼니 가는 길이 헷갈려서
獨立千峯雨 우두커니 서 있으니 천 봉우리에 비가 내린다.
岸柳條條綠 언덕에 버드나무 가지마다 푸르고
溪桃樹樹紅 시냇가의 복숭아는 나무마다 붉도다.
鳴筇獨歸路 지팡이 소리 울리며 홀로 돌아가는 길
山鳥語春風 산 새가 봄바람에게 말을 건다.
臨水臺 임수대(臨水臺)
臨水臺前臨水坐 임수대에서 물을 가까이 마주하고 앉아
棲雲山上望雲歸 서운산 위에 돌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네.
水自澄淸雲自白 물은 절로 맑고 구름은 절로 희니
與吾無是亦無非 나에겐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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