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칙 거사세채 居士洗菜
[본칙]
방거사가 언젠가 집에 없을 때 단하가 찾아왔다가 영조가 나물 씻는
것을 보고 “거사는 계신가?”라고 물었다. 영조가 나물 바구니를 내려놓
은 뒤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일어섰다. 단하가 다시 “거사는 계신가?”라고
묻자, 영조가 바구니를 들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고 단하도 돌아갔다.
방거사가 밖에서 돌아오자 영조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사가 물었
다. “단하는 여기 계신가?” “가셨습니다.” “붉은 진흙을 덜 익은 홍시1)에
바르는구나.”2) 〈어떤 본에는 “이 원수의 자식이 우리 집안의 가풍을 망쳐
놓았구나”라고 되어 있다.〉
龐居土, 一日不在, 丹霞來訪, 見靈照洗菜次問, “居士在
否?” 照放下菜籃, 歛手而立. 又問, “居士在否?” 照提籃便
行, 霞便廻. 士從外歸, 照擧似前話. 士云, “丹霞在麽?” 照
云,“ 去也.” 士云,“ 赤土塗牛妳.”〈 一本云,“ 這寃家子, 喪我門風.”〉
1) 우내(牛妳). 우내시(牛嬭柹)라고도 한다.
2) 덜 익은 홍시에 붉은 진흙을 발라 익은 것처럼 속인다는 말. 방거사가 영조의 은
밀한 뜻을 감파해 내고서 한 말이다. “모든 중생은 본래 성불한 것인데, 지옥의
중생은 어떤 까닭으로 고통을 받는가? 대신하여 답한다. ‘제대로 도리를 아는
자가 거의 없구나.’ 잘 완성된 글자에는 점 하나도 덧붙일 필요가 없는데, 이것
은 어떤 사람의 경계일까? 대신하여 답한다. ‘붉은 진흙을 덜 익은 홍시에 바르
는 격이다.’”(『汾陽語錄』권중 大47 p.614a15. 一切衆生, 本來成佛, 地獄衆生,
因何受苦? 代云, ‘知恩者少.’ 文不加點. 是什麽人境界? 代云, ‘赤土塗牛嬭.’)
[설화]
바구니를 내려놓은 뒤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일어섰다:방거사의 면목을 영조가
보여준 것이다.
단하가 다시“ 거사는 계시는가?”라고 물었다: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보인 경
계가 방거사의 온전한 면목은 아니라는 뜻이다.
바구니를 들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다:놓아준 것도 아주 빨랐고, 거두어들
인 것도 대단히 신속했다.3)
3) 놓아준 것[放]은 상대의 입장을 모조리 허용해 주는 방식이며, 거두어들인 것
[收]은 상대의 입장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면모로 뛰어난 선기(禪機)를 감정한다.
붉은 진흙을 덜 익은 홍시에 바르는구나:『대관본초(大觀本草)』에 “덜 익은 홍
시에 초나라 사람들이 붉은 진흙을 발라서 판다”라고 하였으니, ‘그대의
아버지를 속여 먹는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어떤 본에는 “이 원수가 우
리 집안의 가풍을 망쳐 놓았구나”라고 했다.『산해경주(山海經注)』에 “서
산의 응달에서 관수가 나오는데 그 물속에 흐르는 붉은 흙〈자(赭)는 적토(赤
土)를 말함〉을 소의 젖꼭지에 바르면 병이 낫는다”라고 하였다. 곧 그것으로
소와 말의 질병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천석(泉石)이 말했다.4) “식견이 높
고 넓은 사람5)은 문을 통하지 않고도 나가는 법이며,6) 온몸이 눈이라면 볼
때 어찌 빈틈을 통하여 살피겠는가! 바구니를 들고 바구니를 놓음이여!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자기 본래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구나. 산을 나오
고 산으로 들어감이여! 자신과 타자 사이에 조금도 간격이 없구나.7) 무차
별[正位]과 차별[偏位]이 눈앞에서 한 번씩 돌아가며 바뀌었지만 영조와
단하는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해 보라! 단하와 방거사가
마주친 부분은 어디인가? 만일 바구니를 놓고 손을 공손히 모은 경계에서
이해하려 든다면 종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격이며,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또한 어머니를 업고 어머니를 찾는 격이 된다.8) 하룻밤에 비가 내려 꽃잎
지니, 흐르는 물에 성 가득히 꽃향기 퍼지네.9)”
4) 전거 미상.
5) 대방지가(大方之家).『莊子』「秋水」에 나오는 말. 대도를 깨달은 사람.
6)『論語』「雍也」의 말을 활용한 것. “누구든 문을 통하지 않고서 방을 나설 수 있
겠는가? 그런데 어찌 바른 도(道)를 통해 가지 않느냐?”(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
道也?) 『論語』의 본래 의미는 바른 통로나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출입할 수 없
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굳이 정해진 문으로 나가지 않고도 어디로나 문으로
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7) 본서 1則 주석16) 참조.
8) 바구니를 놓고 손을 공손히 모은 경계 그 자체도 옳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도 안
되는 배촉관(背觸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9) 떨어진 꽃잎과 성 가득 퍼지는 향기는 서로 다른 현상이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
계로 잘 어울려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조와 단하 그리고 방거사가 각각 서로
다르게 드러낸 언행은 본분에 딱 들어맞게 서로 부합하며 조화를 이루었다는
상징이다.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제기하고 곳곳에서 진
실을 설하니, 꺼리는 장애도 전혀 없고 잠시 쉬는 틈도 없구나.’ 주장자를 가로
로 들고 ‘알겠는가? 하룻밤에 비가 내려 꽃잎 지니, 흐르는 물에 성 가득히 꽃향
기가 퍼진다’라고 말한 다음 주장자를 올렸다 한 번 내리치고 법좌에서 내려왔
다.”(『保寧仁勇語錄』卍120 p.361a2. 上堂, 時時擧, 處處說, 絶忌諱, 無閒歇.’
橫按杖云, ‘會麽? 一夜落華雨, 滿城流水香.’ 卓一下, 下座.);“세존에게 은밀한
말이 있었으나 가섭은 그것을 덮어서 가리지 않았다. 하룻밤에 비가 내려 꽃잎
지니, 흐르는 물에 성 가득히 꽃향기가 퍼진다.”(『五燈會元』권14「雪竇智鑒
章」卍138 p.551b4. 世尊有密語, 迦葉不 覆藏, 一夜落花雨, 滿城流水香.)
放下至立者, 居士面目呈似也. 又問至否者, 呈似地, 不是居士
也. 提籃便行者, 放去大危, 收來大速也. 赤土云云者, 大觀本
草云, “牛嬭小柿, 楚人以赤土塗之, 賣也.” 則謔你老爺. 一本
云,“ 這寃家子, 喪我門風.” 則山海經注云,“ 西山之陰, 灌水
出焉, 水中有流赭〈赤土〉, 以塗牛焉, 則無疾.” 則赤土塗牛嬭,
以攘牛馬之灾疾. 泉石云,“ 大方之家, 出不由戶. 通身之眼,
見豈竅觀! 提籃放籃兮, 動靜不離於本位;出山入山兮, 自他
不隔於毫端. 正偏覿面回互處, 靈照丹霞不露顔. 且道! 那裏
是丹霞龐公相見處? 若向放籃歛手處會, 正是認奴作郞;不伊
麽, 還是背孃尋娘. 只因一夜落花雨, 贏得滿城流水香.”
지해지청(智海智淸)의 송 1
고불10) 천연이여,
선타11) 영조여!
문득 마주치고서도,
용이 트림하고 호랑이가 포효하듯 하네.12)
은거하는 자는 손 모은 것만 칭송하고,
일 없는 자는 바구니 놓은 것만 찬양하네.
게다가 방거사의 잠꼬대가 있었는데,
결국 어느 누가 그 뜻 알아챌 것인가?
智海淸頌,“ 古佛天然, 仙陁靈照! 驀路相逢, 龍吟虎嘯. 雲居
只稱歛手, 無爲唯讚放籃. 更有龐公寐語, 畢竟誰人相諳.”
10) 古佛. 본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이전의 부처님을 가리키지만, 조사들도 부
처님에 맞먹는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찬사로 쓰인다. 조주(趙州)를 고불이라 부
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11) 仙陁. 단하천연이 ‘거사는 계신가?’라고 동일한 질문을 하였지만, 영조는 그에
대하여 한 번은 펼쳤고[放] 또 한 번은 거두었다[收]. 이것은 영조가 단하의 마
음을 제대로 읽고서 적절하게 반응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선타’라 칭송한 것이
다. 선타에 대해서는 본서 411則 주석8) 참조.
12) 걸림 없이 각자의 기개를 보여준 것을 말한다.
[설화]
은거하는 자[雲居]와 일 없는 자[無爲]의 뜻은 자세히 알 수 없다.
게다가 방거사의 잠꼬대가 있었는데:붉은 흙을 홍시에 바른다는 말을 가리
킨다. 대의는 이들의 모든 언행을 그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3)
智海:雲居無爲, 未詳. 更有龐公寐語者, 赤土塗牛妳也. 大意,
皆不放過也.
13) 이들이 뛰어난 기량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는
취지의 게송이라는 해설이다.
지해지청의 송 2
두 손 모으거니 바구니 들거니 하며 만났던 순간과,
돌아가거니 돌아오거니 했던 것에서 무엇을 의심하랴?14)
가풍은 망가져 온통 쓸모없는 일들뿐이라 하니,
모든 것 넘어서는 단하의 기틀15)을 잃어버린 것이라네.
又頌, “歛手携籃相見時, 迴來歸去又何疑? 家風喪却渾閑事,
輸了丹霞向上機.”
14) 세 사람이 드러내 보인 그대로 옳아서 분별할 의혹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는 뜻.
15) 향상기(向上機). 부처가 되었건 조사가 되었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본분
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기틀을 말한다. “이 삼구를 벗어나서 향상의 기틀을 마음
껏 부릴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의 다리 아래에 있는 이 하나의 본분사가 고금의
탁월한 지견을 찬란히 비출 것이다. 달마대사가 비록 인도에서 선법을 전하러
왔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했지만, 실오라기 하나 여기에 덧붙인 적이 없다.”
(『圜悟語錄』권10 大47 p.756c24. 若能離此三句外, 撥轉向上機, 卽知諸人脚
跟下, 有此一段大事, 輝騰今古逈絕知見. 祖師雖西來, 諸佛雖出世, 不曾加一絲毫.)
[설화]
이 게송의 대의는, 처음에 단하가 ‘거사는 계신가?’라고 질문하였는데
그 의중이 모든 분별과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又頌:大意, 初問居士在否, 是其意直得無限也.
삽계일익(霅溪日益)의 송
머리 드러내고 얼굴 드러내어 서로 주고받으니,
남 앞에 나타남에 익숙하여 부끄러움 모른다네.
피부와 골격이 고운 여인네여,16)
화장하지 않아도 멋이 있구나.
귀한 집 자제여, 귀한 집 자제여!17)
내력 있는 가문에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가엾게도 붉은 흙을 덜 익은 홍시에 발랐다 하니,
이리저리 점을 쳐보지만18) 그 뜻 헤아리지 못하네.
霅溪益頌, “露頭露面便相酬, 慣出人前不怕羞. 自是奴奴肌骨
好, 不施紅粉也風流. 白面郞, 白面郞! 從來門戶恰相當. 可憐
赤土塗牛嬭, 打瓦鑽龜亂度量.”
16) 노노(奴奴). 노가(奴家)라고도 하며, 부녀자가 자신을 이르는 칭호이다.
17) 백면랑(白面郞). 환고자제(紈袴子弟)와 같은 말. 부귀한 가정 출신으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자제를 가리킨다.
18) 타와찬구(打瓦鑽龜). ‘타와’와 ‘찬구’는 모두 고대에 점을 치던 방법이다. 타와란
기와를 쳐서 갈라진 모양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점이고, 찬구는 거북의 등껍
질을 찌르고 불로 태워 갈라진 무늬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점이다. 점을 치듯
이 불확실한 대상에 대하여 근거 없이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설화]
1구와 2구:바구니를 들거니 놓거니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다는 뜻
이다.
3구와 4구:방거사가 어찌 ‘원수의 자식’이라 말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뜻이다.
霅溪:上二句, 提籃放籃, 不識羞恥也. 下二句, 龐公何用道箇
寃家子.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댕기머리 소녀에게 두 번 물었으나 아무 대꾸 없더니,
기특하구나,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고 가네.
사내의 기개는 이전부터 이보다 보잘것없었거늘,
덜 익은 홍시에 흙을 발라 언제나 평탄해지리오?
崇勝珙頌, “兩問丫娘不作聲, 奇哉放下復提行. 男兒慷慨從來
少, 牛嬭土塗何日平?”
대위모철(大潙慕喆)의 염
“대단한 단하여! 방거사의 딸에게 감파당하고 말았구려. 내가 당시에
단하였다면 다만 껄껄대고 크게 웃어 주고, 영조가 ‘장로는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원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19)라고 말해 주었으리라.”
大潙喆拈,“ 大小丹霞! 被居土女子勘破. 山僧當時, 若作丹霞,
但與呵呵大笑, 待他問,‘ 長老, 笑个什麽?’ 却向道,‘ 不是寃
家不聚頭.’”
19) ‘원수’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견해를 갖춘 상대를 가리킨다. 그런 사
람이 아니라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릴 가치가 없다는 뜻을 내포한다.
[설화]
껄껄대고 크게 웃은 것:처음에 바구니를 내려놓았을 때가 바로 이 본분의
소식을 보인 것임을 뜻한다.
단하가 다시 한 번 ‘거사는 계신가?’라고 물은 대목이 영조에게 감파당
한 부분이다.
원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보인
경계 그 이상의 다른 소식은 없다는 뜻이다.
거사여자(居士女子)라는 말은 거사의 딸이라는 뜻이다.
大潙:呵呵大笑者, 放下籃子時, 只是這箇消息也. 丹霞又問,
居士在否, 是被勘破處也. 不是寃家不聚頭者, 放籃處, 更無第
二也. 居士女子者, 居士之女子也.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염
“영조라는 처녀가 처음에 대응한 방식은 괜찮았으니, 그렇게 대단한 아
버지가 아니었다면 그만큼 영특한 자식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20) 그 뒤
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으니, 용 머리에 뱀 꼬리를 단 형상과 아주 흡사했
다. 거사가 ‘단하는 계신가?’라고 물었을 때 다만 손을 모으고 앞으로 다
가가 다소곳이 몸을 굽혔다면 이 어찌 이전에도 없었고 후세에도 없을 걸
출한 대응이 아니었겠는가! 영조가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거사 또한 사
나운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잡아먹지 않듯이 넘어갔다.21) 점검해 보면 영
조는 조리 자루22)로 한 대 맞았어야 했던 것이다.”
法眞一拈,“ 靈照女子, 前來却得, 蓋非是父, 不生其子. 後底
打不着, 大似龍頭蛇尾. 居士云,‘ 丹霞在麽?’ 但歛手近前相
挹, 豈不是絶後光前! 彼旣不然, 居士亦猛虎不食其子. 若點
檢將來, 靈照也好與一頓笊籬柄, 始得.”
20) 보통 ‘비부불생기자(非父不生其子)’로 쓰인다.『大慧語錄』권14 大47 p.871c27,
『從容錄』6則「評唱」大48 p.230c27 등에 용례가 보인다.
21) 설두중현(雪竇重顯)의 말이다. “다음의 공안을 제기했다. 탐원이 국사를 떠나 고
향으로 돌아와 마조를 친견하고 땅에다 둥근 원 하나를 그려 놓고 그 안에 좌복
을 펼치고 절을 올리자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가?’ ‘저는 눈
을 조작하여 볼 줄 모릅니다.’ ‘나는 그대와 같지 않느니라.’ 설두가 이 문답을 평
가했다. ‘사나운 호랑이도 그 새끼를 잡아먹지는 않는 법이지만, 상대의 말이 충
분하지 못했던 것을 어찌하랴!(그래서 마조는 새끼를 잡아먹는 엄한 수단을 썼다.)
여러분, 탐원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가? 그는 바로 몸은 감추었으나 그림자를 드
러낸 자였던 것이다.’”(『雪竇語錄』권4 大47 p.690b18. 擧. 耽源辭國師, 歸省覲
馬祖, 於地上作一圓相, 展坐具禮拜. 祖云, ‘子欲作佛去?’ 源云, ‘某甲不解捏目.’
祖云, ‘吾不如汝.’ 師云, ‘然, 猛虎不食其子, 爭奈來言不豐! 諸人, 要識耽源麽? 只是
箇藏身露影漢.’)
22) 영조는 조리를 팔아 아버지 방거사를 봉양하는 효녀였는데, 이들 부녀 사이에
특별한 뜻을 가진 물건이므로 조리 자루를 등장시킨 것이다.
[설화]
처음에 대응한 방식은 괜찮았다:바구니를 내려놓은 경계에서 있는 힘을 다
하여 자신의 속뜻을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영조가 그렇게 하지 못했음에도 거사가 조리 자루로 한 대 때려주지 않
은 것이 바로 사나운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 것과 같은 장
면이었다.
法眞:前來却得者, 放下籃子處, 盡力呈似也. 彼旣不然, 居士
不與一頓笊籬柄, 是猛虎不食其子也.
'한국전통사상 > 공안집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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