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294칙 부배잉어 浮盃剩語

실론섬 2016. 12. 5. 12:34

294칙 부배잉어 浮盃剩語1)
1) 이 공안의 문답에서 노파가 ‘창천(蒼天)’이라 한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
   는 ‘푸른 하늘’이라는 뜻이며, 또 하나는 ‘아이고!’ 하는 통곡소리이다.

 

[본칙]

부배(浮盃)화상에게 능(凌)이라는 노파2)가 찾아와서 절을 하고 물었

다. “있는 힘을 다해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은 누구에게 전해줍니까?” “부

배에게는 쓸데없이 남아도는 말이 없습니다.” “스님께 찾아오지 않았더

라면 틀림없이 의혹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별도로 더 좋은 말이 있

다면, 집어내 보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노파가 두 손을 모으고 곡소

리를 내며 “아이고! 그 사이에 원통한 일이 또 있었군요”라고 하였으나

부배는 아무 말도 없었다. 노파가 말했다. “말로는 편위와 정위3)의 차별

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치로는 전도(顚倒)와 사견(邪見)을 알지 못하니,

말과 이치로 전하려 하면 곧바로 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뒤에 어떤 학인

이 남전에게 이 문답을 들려주자 남전이 말했다. “안타깝다! 부배가 그

노파에게 한번 제대로 꺾여버렸구나.” 노파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으며

“왕노사(王老師:남전)도 기관4)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그때 유주의

징일선객이 노파에게 물었다. “남전이 어째서 기관이 부족합니까?” 노파

가 곡소리를 내며 “슬프고 애통하구나!”라고 하자, 징일은 어찌할 줄 몰

랐다. 노파가 “알겠습니까?”라고 물음에 징일은 합장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노파가 말했다.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5)들이 삼씨나 좁

쌀처럼 많구나.” 그 뒤에 징일이 이 문답을 조주에게 들려주자 조주가 말

했다. “내가 만약 그 냄새나는 노파를 보았더라면 질문을 던져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징일이 “스님께서는 그 노파에게 어떤 질문을

하시렵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바로 때렸다. “어째서 저를 때리십니까?”

“이렇게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를 지금 때려주지 않는다면 다시

또 어느 때를 기다리란 말이냐!” 노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조주는 내 손

의 몽둥이맛을 보아야겠구나”라 했고, 조주는 노파의 그 말을 듣고는 곡

소리를 내며 “슬프고 애통하구나!”라고 했다. 노파가 다시 그 소리를 전

해 듣고 “조주의 눈빛이 온 세상을 밝히는구나!”라고 감탄조로 말했다.

조주가 노파의 이 말을 전해 듣고 학인을 보내어 “조주의 눈이라고 한 말

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노파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조주가 그 소

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서 보냈다. “당면한 기틀을 눈앞에서

들어보이자, 눈앞에서 당면한 기틀로 재빨리 응답하네. 능노파 당신에게

알리노니, 곡소리에 어찌 득과 실의 차별이 있겠는가!” 노파가 이에 답

했다. “곡소리의 뜻은 스님께서 이미 간파하였으나, 이미 간파한 그 뜻을

누가 또 알 것인가? 성도하셨을 당시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보이셨

던 법령6)에서, 눈앞에 드러난 기틀을 거의 잃어버릴 뻔했도다.”

浮盃和尙, 因凌行婆來, 作禮問, “盡力道不得底句, 分付阿
誰?” 師云,“ 浮盃無剩語.” 婆云,“ 未到浮盃, 不妨疑着.”
師云,“ 別有長處, 不妨拈出.” 婆歛手哭云,“ 蒼天! 中間更
有寃苦.” 師無語. 婆云, “語不知偏正, 理不知倒邪, 爲人卽
禍生.” 後僧擧似南泉, 泉云,“ 苦哉! 浮盃被這老婆嶊折一
上.” 婆聞笑云, “王老師, 猶少機關在.” 時有幽州澄一禪客,
乃問婆,“ 南泉爲甚少機關?” 婆哭云,“ 可悲可痛!” 澄一罔
措, 婆乃問, “會麽?” 澄一合掌而立. 婆云, “倚7) 死禪和, 如
麻似粟.” 後澄一擧似趙州, 州云,“ 我若見這臭婆, 問敎口
啞.” 澄一云,“ 未審和尙作麽生問他?” 州便打澄一云,“ 爲
甚却打某甲?” 州云,“ 似這倚死禪和不打, 更待何時!” 婆聞
却云,“ 趙州合喫婆手中棒.” 州聞哭云,“ 可悲可痛!” 婆聞
乃嘆云, “趙州眼光, 爍破四天下.” 州聞令人去問云, “如何
是趙州眼?” 婆乃竪起拳. 州聞乃作頌送云,“ 當機覿面提,
覿面當機疾. 報你凌行婆, 哭聲何得失!” 婆答云,“ 哭聲師
已曉, 已曉復誰知? 當時摩竭令, 幾喪目前機.”
2) 행파(行婆)는 집에서 불도를 수행하는 노파, 능(凌)은 성씨.
3) 편위(偏位)와 정위(正位). 조동종(曹洞宗)의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 무차별의 정위와 차별의 편위가 때로는 각각의 자리를 고수하
   고, 때로는 서로 의지하며 자유자재로 그 자리를 바꾸는 방식으로 종지를 나타
   내는 틀이다.
4) 機關. 여기서는 상대를 유도하여 시험하거나 자신의 선기(禪機)를 전개할 목적
   으로 설정하는 전략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5) 의사선화(倚死禪和). 활발한 기틀이 없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선수행자를 말
   한다. 기사선화(技死禪和)와 같은 말이며, 이 경우는 약간의 기량은 있지만 활발
   한 선기(禪機)를 발휘하지 못하는 선사를 말한다. 곧바로 선기를 드러내지 못하
   고 머뭇거리며 분별하는 자를 말한다.
6) 본서 2則 주석33) 참조.
7)『景德傳燈錄』권8「浮盃傳」大51 p.262c28,『大慧語錄』권10 大47 p.855c3 
   등에는 ‘倚’가 ‘徛’·‘伎’·‘猗’ 등으로 되어 있다.

 

[설화]

부배에게는 쓸데없이 남아도는 말이 없습니다:있는 힘을 다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구절에 대하여 말하더라도 전해주는 순간 곧 쓸데없이 남아도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스님께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 있었을 것입니다:상대의 의중을 꺾어버린 것이

며, 그 아래의 말도 꺾어버린 것이다. 부배가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장자를 맞을 잘못도 있었다.

 

남전이‘ 안타깝다! ~ 꺾여버렸구나’라고 한 말:남전의 말은 (부배가) 말로 표

현할 수 없는 것을 전하려 했다는 뜻이다.

 

노파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으며 한 말:남전의 의중도 꺾어버린 것이다.

징일이 합장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말도 침묵도 그 어느 편도 아닌 중간

을 나타낸다.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들이 삼씨나 좁쌀처럼 많구나:이 또한 징일을 꺾어

버린 말이다.

 

조주가 (징일을) 바로 때렸다:말과 침묵이라는 양편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주는 내 손의 몽둥이맛을 보아야겠구나:조주 또한 노파의 뜻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조주의 눈빛이 온 세상을 밝히는구나” 이하의 글:삼구8)를 뚫고 벗어난 경지를

조주와 노파가 게송으로 지어 각각 자신의 의중을 표현한 것이다.

8) 三句. 종지를 드러내는 구절. 세 구절로 종지를 간략하게 나타내는 관습에 따라
   종지를 표현하는 언어의 형식을 일반적으로 삼구라 한다. 운문삼구(雲門三句)·
   동산삼구(洞山三句)·덕산삼구(德山三句)·임제삼구(臨濟三句)·분양삼구(汾陽
   三句)·사비삼구(師備三句)·수산삼구(首山三句)·대양삼구(大陽三句) 등 각 선
   사들의 서로 다른 삼구가 있다.

浮盃無剩語者, 若道盡力道不得底句, 分付便爲剩語也. 未到
浮盃云云者, 折挫也, 下亦折挫也. 浮盃非懵懂, 也有主丈處.
南泉云苦哉云云者, 南泉意, 有分付處. 婆聞笑云至關在者, 亦
折挫也. 澄一合掌而立者, 是中間也. 倚死禪和云云者, 亦折挫
也. 州便打者, 兩頭不落也. 趙州合至棒者, 亦不是婆子意故.
趙州眼光云云者, 透脫三句下, 趙州婆子頌之, 各言其意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송 1

 

손바닥 안의 마니주9)도 돌아본 적 없거늘,

날 때부터 입던 바지10) 누가 지킬 수 있을까!

부배는 노파의 선11)을 이해하지 못하여,

지금껏 그 순수한 뜻에 오점을 남겼네.

〈‘부배화상에게 ~ 화가 발생할 것입니다’라는 부분의 내용을 소재로 읊은 게송〉
雲門杲頌,“ 掌內摩尼曾不顧, 誰能護惜孃生袴! 浮盃不會老婆
禪, 直至如今遭點汚.”〈 浮盃下至卽禍生.〉
9) 摩尼珠. 마니( mani)와 그 한역어인 ‘주’를 합한 말. 보주(寶珠)라고도 한역하
   며, 주옥(珠玉)을 총칭하는 말이다. 재난과 질병을 제거하거나 탁한 물을 맑게
   하고 물빛을 바꾸는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뜻하는 모든 것을 내어주
   는 보배와 같은 구슬이라 하여 여의보주(如意寶珠)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
   의주(如意珠 cintā-man3 i)라 한다.
10) 양생고(孃生袴). 어머니로부터 받아서 입고 있던 고쟁이. 순수하고 물들지 않은
   본바탕을 말한다.
11) 노파선(老婆禪). 이중적 뜻을 가진다. 하나는 능행파가 말한 선, 다른 하나는 자
   세한 방편을 늘어놓아 쓸데없이 말이 많은 선을 가리킨다.

 

[설화]

손바닥 안의 마니주:검은 사람이 오면 검게 비치고 흰 사람이 오면 희게

비친다12)는 뜻으로 말도 침묵도 그 어느 편도 아닌 중간을 나타낸다.

날 때부터 입던 바지:부배의 말을 가리킨다. 노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손바

닥 안의 마니주도 돌아보지 않거늘, 날 때부터 입던 바지야 말해서 무엇

할 것인가!

雲門:掌內摩尼, 則胡現漢現, 語黙中間也. 孃生袴, 則浮盃語
也. 若據婆子, 則掌內摩尼, 尙猶未顧, 何況孃生袴乎!
12) 정해진 색 없이, 비추어지는 대상에 따라 다른 색을 나타내는 마니주의 특징을
    가리킨다.『摩訶般若鈔經』권2 大8 p.517c23,『大寶積經』권109 大11 p.611b21,
   『楞伽經註解』권1 大39 p.353a29 등에 두루 나타나는 비유이다.『景德傳燈錄』
   권18「悟眞傳」大51 p.350c23에 ‘색에 따라 변화하는 마니주’(隨色摩尼)라 한 말
   도 이러한 뜻에 기초한다.

 

대혜종고의 송 2

 

전광석화와 같은 기세라도 우둔할 뿐인데,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가 어찌 알겠는가?

두리번거리고 고개를 돌리며 찾으려 하는 순간,

석양은 이미 버드나무 끝 서쪽으로 지리라.

〈‘남전이 말했다. ~ 어느 때를 기다리란 말이냐’라는 부분의 내용을 소재로 읊은 게송〉
又頌,“ 電光石火尙猶遲, 倚死禪和那得知? 轉面迴頭擬尋討,
夕陽已過綠梢西.”〈 南泉下至待何時.〉

 

[설화]

전광석화:미묘한 종지는 신속하여 말과 침묵 그 어느 편에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징일의 입각처를 나타낸다. 중간인 전광석화

도 느리거늘 하물며 활발한 기틀이 없이 분별하며 머뭇거리는 선수행자

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又頌:電光石火者, 妙旨迅速, 語黙不落也. 倚死禪和者, 澄一
立處也. 中間, 電光石火, 尙猶遲滯, 況倚死禪和乎!

 

대혜종고의 송 3

 

조주의 눈빛은 온 세상을 밝혔고,

노파의 주먹은 꿰맨 흔적이 없다.13)

당면한 기틀을 눈앞에 펼치는 비법은 무엇인가?

사나운 호랑이 등에 누가 걸터앉을 줄 알까?

〈‘노파가 (조주의) 이 말을 전해 듣고 ~ 거의 잃어버릴 뻔했다’라는 부분의 내용을 소
재로 읊은 게송〉
又頌,“ 眼光爍破四天下, 婆子拳頭沒縫罅. 當機覿面事如何?
猛虎脊梁誰解跨?”〈 婆聞下至目前機.〉
13) 몰봉하(沒縫罅). 바늘로 꿰매어 봉합한 흔적이 전혀 없는 한 덩어리라는 말. 꿰
    맨 틈이 전혀 없는 한 덩어리와 같이 분별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화두를 가리킨
    다. 곧 노파의 주먹은 어떤 분별로도 포착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다. ‘봉’
    은 바늘로 꿰매어 봉합(縫合)하는 것, ‘하’는 봉합한 부위의 실밥이 터져 벌어진
    틈을 뜻한다.

 

[설화]

제1구는 조주, 제2구는 노파에 대하여 각각 읊은 구절이다. 아래의 제3

구와 제4구, 두 구절은 호랑이 머리와 호랑이 꼬리를 한꺼번에 거두어들

인다는 뜻이다.

又頌:眼光云云者, 謂趙州也. 婆子云云者, 婆子也. 下二句,
虎頭虎尾一時收也.

 

지비자의 송

 

서쪽 이웃 찾아와 ‘아이고’ 하고 곡을 돕자,

동쪽 집 사람이 문득 죽었다는 소문 들리네.

슬프다, 부배에게 남아도는 말은 없어도,

당면한 기틀이 노파의 선14)보다 못하구나.

〈‘부배 ~ 아이고’라는 부분의 내용을 소재로 읊은 게송〉
知非子頌, “西隣來助哭蒼天, 聞道東家人溘然. 堪嘆浮盃無剩
語, 當機不似老婆禪.”〈 浮盃下至蒼天.〉
14) 주석11) 참조.

 

무진거사의 송

 

구리 눈동자에 쇠 눈 가진 능노파여!

부배를 꺾는 기량으로는 충분하구나.

하지만 조주를 속이지 못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

모두 함께 활발한 기틀이 없는 선수행자를 매도했다네.

無盡居士頌, “銅睛鐵眼老凌婆! 嶊折浮盃伎倆多. 無奈趙州謾
不過, 大家埋取死禪和.”

 

열재거사의 송

 

늙은 할미가 집이 없다고 슬피 우는 소리에,

조주는 천 리 밖에서 돌아갈 마음을 일으켰네.

후인들은 분별할 수단이 없다15)고 몹시 울면서,

공연히 앵무새 울음소리로 학의 울음소리 흉내 내었다네.

悅齋居士頌, “老媼無家哭一聲, 趙州千里動歸情. 後人哭殺無
巴鼻, 空作鸎啼效鶴鳴.”
15) 무파비(無巴鼻). 어떤 대상을 포착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巴’는 ‘把’와 같은
    말로 손잡이 또는 근거를 잡는다는 뜻이며, ‘파비’란 소의 코를 묶어 붙드는 고
    삐로 파비(把鼻)라고도 쓴다. 능노파와 조주가 펼친 수단에는 분별할 여지가 없
    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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