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사상/공안집 I

429칙 조주세발 趙州洗鉢

실론섬 2016. 12. 7. 14:50

429칙 조주세발 趙州洗鉢

 

[본칙]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저는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발우나 씻어라!” 

그 학인이 확 트인 듯이 크게 깨달았다.

趙州因僧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師云,“ 喫粥了也
未?” 僧云,“ 喫粥了.” 師云,“ 洗鉢盂去!” 僧豁然大悟.

 

[설화]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스님께서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초심자인 학

인이 총림에 처음 들어와 진실로 확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깨달음으

로 들어가는 방법을 바르게 찾을 수 없다1)는 뜻이다.

1) ‘진실로 확고한 마음을 ~ 찾을 수 없다’라는 구절은『圜悟心要』「示慧禪人」
   卍120 p.721b6에 나온다.

 

죽은 먹었느냐:만송행수(萬松行秀)는 이렇게 말한다. “끼니때가 되면 입을

벌려 먹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고 잔다. 신발을 신을 때는 발꿈치를 더듬고

얼굴을 씻을 때는 코를 매만진다. 바로 그때 화두2) 놓쳐 버리고 불을 들

고 깊은 밤에 다른 곳에서 찾아다닌다면 언제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겠는

가!”3) 송이 이렇게 한 말은 조주까지 끌어들여 진흙과 물을 뒤섞어 몸을

더럽히고 만 꼴이 되었다. 4) 또 옛사람이 말했다. “초연거사5)가아침 죽을

베풀어 일당(一堂)의 용상6)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다 먹은 뒤 발우를 제

자리에 걸어 놓고 보니, 달마대사의 훌륭한 모범적 법도로군요!”7) 옛사람

이 이렇게 한 말은 학인들을 몰입시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無事]는 오해

를 일으킨다.8) 그렇다면 조주의 본의는 무엇일까? 지시한 내용이 있는가,

지시한 내용이 없는가?

2) 여기서 화두는 간화선의 특정한 화두가 아니라 진실을 가리키는 말 또는 상황
   을 나타낸다.
3)『從容錄』39則 大48 p.253a21. 이것은 조주세발(趙州洗鉢)의 화두에 대한 만송행
   수의「示衆」이다.
4) 조주가 보여준 촌철살인의 화두를 엄격히 지키지 않고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을
   펼쳐 ‘평상심이 도’라는 방식으로 잘못 이끌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의 인용도 동일한 의도에서 거론된 것이다.
5) 超然居士. 군왕(郡王) 조령금(趙令衿)의 호. 자는 표지(表之)이며, 원오극근(圜悟
   克勤)의 제자이다.
6) 龍象. 대중을 높여 부르는 말. 용상중(龍象衆)이라고도 한다. “용상:『대지도론』
   에 ‘힘이 센 존재를 말한다. 용이란 물에서 사는 것 중 힘이 가장 센 존재이며,
   상(코끼리)이란 땅에서 사는 것 중 힘이 가장 센 존재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는 위대한 선사와 스승을 용과 코끼리에 비유한 말이다.”(『祖庭事苑』권1 卍113
   p.20a16. 龍象:智度論云, ‘言其力大. 龍, 水行中力大;象, 陸行中力大.’ 今以鉅禪
   碩師比之龍象.)
7)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말.『大慧語錄』권2 大47 p.817c3의 상당(上堂)이다.
8) 공양을 하고 발우를 제자리에 올려놓는 것과 같이 매일 반복되는 평상의 일 이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고 오해하도록 한다는 말. 조주가 죽을 먹었냐고 물어보
   고 발우를 씻으라 한 말에 대하여 대혜의 말을 인용하여 평상무사(平常無事)라
   는 식으로 이해하면 잘못이라는 뜻이다. 조주와 대혜는 모두 본분의 화두로써
   제시했다는 이해에 기초한 평가이다.

 

그 학인이 확 트인 듯이 크게 깨달았다:깨달은 것이 있다는 것일까, 없다는 것

일까? 깨달았다면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9)
9) 학인의 깨달음 자체를 의문으로 만들어 화두로 만드는 수법이다.

 

乍入叢林乞師指示者, 初心學人, 創入叢林, 存誠堅確, 正覓入
頭處不得也. 喫粥云云者, 萬松云,“ 飯來張口, 睡來合眼.
鞋時摸着脚跟, 洗面處拾得鼻孔. 那時蹉却話頭, 把火深夜別
覓, 何時得相應去哉!” 萬松伊麽道, 帶累趙州, 和泥合水. 又
古人云,“ 超然居士設粥, 供養一堂龍象. 喫了掛起鉢盂云,10)
好箇西來榜樣!” 古人伊麽道, 沒他學者, 作無事會. 然則趙州
意作麽生? 有指示耶, 無指示耶? 僧豁然大悟者, 有悟無悟?
悟箇什麽?
10) ‘云’은 불필요한 글자.

 

남명법천(南明法泉)의 송

 

죽을 다 먹었으면 발우나 씻으라 하니,

버들잎 잘 쏘아 맞히고11) 오늬도 쪼개네.12)

한 줄기 새벽바람 연못에 불어오니,

가을 연꽃은 흔들리는 물결에 붉은 옷13)  벗는다.

南明泉頌,“ 喫粥了去洗鉢, 善射穿楊復劈筈. 一陣曉風池上
來, 秋蓮浪擺紅衣脫.”13)
11) 초나라 양유기(養由基)가 백 보 거리에서 버드나무 잎을 쏘아 백발백중의 솜씨
    를 보인 고사를 가리킨다.『戰國策』「西周策」참조.
12) 괄(筈)은 화살의 꼬리 부분인 오늬로 활시위에 걸도록 갈라져 있는데, 앞서 목
    표물에 적중한 화살의 이 부분을 또 다른 화살로 맞혀 쪼갤 정도로 조주의 말은
    핵심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는 뜻.
13) 홍의(紅衣). 연꽃잎의 별명.

 

[설화]

제2구는 조주가 화살을 잘못 쏘지 않았음 나타낸다.14) 그 아래 두 구절

은 학인의 시작도 알 수 없는 무명이 그 자리에서 녹아버렸다는 뜻이다.

南明:二句, 趙州箭不虛發. 下這僧無始無明, 當下消釋.
14) 화살은 말을 상징한다. 조주는 핵심에 적중하는 말을 하였다는 뜻.

 

천복본일(薦福本逸)의 송

 

총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시 바라니,

큰 보시의 문 열어 막힘없이 드러내 주네.

대개 영산에서 수기 받은 가섭도,

이 같은 절차 밟은 적 없었으리라.

薦福逸頌, “乍入叢林乞指示, 大施門開無擁滯. 往往靈山得記
人, 未有如斯箇次第.”

 

천동정각(天童正覺)의 송 1

 

죽 먹은 뒤 발우를 씻도록 하자,

활짝 트인 마음 저절로 들어맞네.

지금 충분히 수행한 총림의 선객들이여!

말해 보라, 그 당시에 깨달음 있었던가?15)
天童覺頌, “粥罷令敎洗鉢盂, 豁然心地自相符. 而今叅飽叢林
客! 且道其間有悟無?”
15) 죽 먹고 설거지하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 전하는 도리를 굳이 그때서야 깨달았
    느냐는 반문.

 

[설화]

반드시 지금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天童初頌:須是今日悟得, 始得.

 

천동정각의 송 2

 

죽을 다 먹었으면 발우나 씻으라 하니,

본래 흠 없이 완결된 바른 법도였다네.

안타깝다, 섭씨가 진짜 용 두려워하더니,16)
어부17)가 호랑이 탄 모습도 이상타 하네.

본래 변함없는 이치요 진실한 말이거늘,

그 학인 구태여 깨닫는 방법 물었다네.

이전부터 코는 불쑥하게 드리워졌으니,

안배하지 않아도 제자리에 붙어 있으리라.

又頌,“ 喫粥了洗鉢去, 法爾圓成正䂓矩. 可憐葉氏怕眞龍, 却
怪謝郞騎猛虎. 本常理眞實語, 這僧且問如何悟. 從來鼻孔大
頭垂, 不用安排兮自着處所.”
16) 그려진 용만 대하다가 진짜 용이 출현하자 놀랐다는 말. 문자로 나타낸 관념에
    시대 초(楚)나라의 섭공자고(葉公子高)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자고는 평소에 용
    을 사랑하여 거실에 용의 조각·그림 등을 걸어 두었는데, 하늘의 진룡(眞龍)이
    이것에 감동하여 내려와서 자고의 창에 그 꼬리를 드러내자 자고가 이것을 보
    고 놀라 실신하였다고 한다. 유향(劉向)의『新序』「雜事」제5 참조. “납자들 
    중에서 예리한 말을 좋아하고 문구를 즐기는 자들은 스님의 법어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나무껍질로 끓인 죽을 먹는 것과 같아서 즐겨 먹을 맛이라곤 전혀 없자 간
    혹 이것을 가지고 스님에게 물었는데, 스님은 웃을 뿐이었다. 이러한 무리들은 
    마치 섭공이 진짜 용을 두려워했던 것과 같은 꼴이다.”(『無明慧經語錄』「序」 
    卍125 p.1b7. 衲子有好逞詞鋒嗜文句者, 每視師法語, 如啜木札羮, 無膾炙味, 
    間以此議師, 師亦嘗笑. 此輩, 如葉公怖眞龍耳.);“용이라는 존재는 비상한 것
    이던가? 볼 줄 아는 사람이 적다. 색을 칠하여 그려 놓고 사람들에게 용이라
    고 알려 주면 누구나 그것이 용이라 알고 믿지 않는 자가 없지만, 후에 진짜 
    용을 보고 용이라고 알려주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여긴다. 오늘날 누가 설
    법을 하지 않는가? 떠들썩한 그 가르침이 비슷하다고 보면 비슷하지만 진실
    한지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은 저들 그려진 용이 그러한 것과 같다.”(『書
    洞山語錄尾』大47 p.518c25. 龍之爲物, 其非常耶? 人能觀者, 寡矣. 丹靑以
    畫, 告人以龍, 人知其爲龍, 不信者未之有, 後觀眞龍, 告之以龍, 人且怪焉. 方
    今之世, 孰不說法? 囂囂其敎, 似則似, 眞則否, 如彼畫龍然.)
17) 사랑(謝郞). 사(謝)씨네 아들. 원래 어부 출신으로 사씨 가문 셋째 아들인 현사사
    비(玄沙師備)를 사삼랑(謝三郞)이라 하였는데, 선문헌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부
    또는 고기 잡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설화]

본래 변함없는 이치라면 어찌 반드시 지금에서야 깨달았겠느냐는 뜻

이다.

次頌:旣是本常理, 何必今日悟得.

 

천동정각의 송 3

 

영웅이 힘겨운 전쟁 치르고 있다는 소리 듣고,

사방의 갈림길 어디도 스스로 다니지 못했다네.

이제 장안의 길 몸소 밟아 보고서야,

비로소 나라가 오래전부터 태평했음을 아노라.

又頌,“ 聞說英雄苦戰爭, 四方歧路自難行. 而今踏着長安道,
始信邦家久太平.”

 

[설화]

1구와 2구:깨달았다거나 깨닫지 못했다거나 하며 주거니 받거니 설전

을 벌이는 것이 영웅의 전쟁으로 갈림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제 장안의 길 몸소 밟아 보고서야:오늘부터 깨달았다는 말.

비로소 ~ 아노라:본래 태평했다는 말이니, 앞의 두 게송이 지닌 뜻을 아

우르는 구절이다.

後頌:前句, 有悟無悟商量, 是英雄戰爭, 歧路難通也. 而今
踏着長安道者, 從今日悟去也. 始信云云者, 本自太平, 兼前
二義.

 

혜림덕손(慧林德遜)의 송

 

죽 먹은 다음에 발우를 씻도록 하지만,

초심자는 항상 그 마음 거칠다 여긴다.18)

설령 이 순간 되어 분명히 알았더라도,

이미 평생토록 장부답지 못하게 되리.

慧林遜頌, “粥後令敎洗鉢盂, 初心往往便心麤. 直饒到此分明
了, 已是平生不丈夫.”
18) 조주의 말을 지극히 평범하고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는 뜻.

 

법진수일(法眞守一)의 송

 

총림에 막 들어와 질문 하나를 펼치니,

조주가 지시해 준 뜻이 어떤 것이더냐?

아무 조짐도 안 남겼거늘 누가 가려내겠는가!19)

죽을 먹었다고 하니 발우나 씻으라 했을 뿐.20)
法眞一頌,“ 乍入叢林伸一問, 趙州指示意何如? 不留朕跡誰
能辨! 粥了令敎洗鉢盂.”
19) 조주의 말에는 분별하거나 말할 단서가 되는 어떤 조짐도 없다는 뜻.
20) 조주는 이 두 마디에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드러냈지만 분별한 단서가 있는 것
    은 아니다. 무문혜개(無門慧開)가 “조주는 입을 벌려 쓸개를 보이고, 심장과 간
    을 드러냈다”(趙州開口見膽, 露出心肝.)라고 한 「평창」의 뜻과 통한다.『無
    門關』7則 大48 p.294a1.

숭승원공(崇勝院珙)의 송

 

총림에 막 들어와서는,

스님의 지시를 바라네.

조주가 입을 열었으나,

죽은 먹었냐고 물을 뿐.

죽을 먹었다고 답하니,

모자람 없는 부귀로다.

발우나 씻으라고 하니,

졸기 딱 좋은 말이구나.

崇勝珙頌,“ 乍入叢林兮, 乞師指示. 趙州開口兮, 喫粥了未.
喫粥旣了兮, 千般富貴. 洗鉢盂去兮, 正好瞌睡.”

 

목암법충(牧庵法忠)의 송 21)
21) 학인이 조주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부분에 대해 읊은 송.

 

죽 먹고 나면 마땅히 발우 씻어야 하니,

평소에 잘도 하는 일 외면하지 마라.

만일 깨달아 분명한 뜻 알았다 한다면,

서쪽에서 온 벽안의 달마 비웃으리라.

牧庵忠頌, “粥罷當須洗鉢盂, 尋常受用莫相辜. 若言悟去知端
的, 笑殺西來碧眼胡.”

 

밀암함걸(密庵咸傑)의 송

 

죽 다 먹었으면 발우 씻으라 하니,

밑 빠진 철선 남에게 떠받치라 한 격이네.22)

돛 하나 높이 단 외돛배로 순풍 타고,

바닷물 가르고 가면 틀림없이 대장부이리라.

密庵傑頌, “粥了令敎洗鉢盂, 䥫舡無底要人扶. 片帆高掛乘風
便, 截海須還大丈夫.”
22) “백장의 여우 화두에 대한 송:두 부분(不落과 不昧)에 설정된 효와( 訛)가 모
    두 진실하지 못하니, 밑 빠진 철선이 하늘과 땅을 모두 실었네. 여러 마디 피리
    소리에 이별의 정자는 저물고, 한 조각 외돛배는 동정호를 지나간다.”(『五燈全
    書』권106「澹庵龍章」卍142 p.60a1. 頌百丈野狐曰, ‘兩處訛總不眞, 鐵船無底
    載乾坤. 數聲腔笛離亭晚, 一片孤帆過洞庭.’)

 

무위자의 송

 

죽 다 먹었으면 발우 씻으라 했을 뿐,

언제 조계로 가는 길 지시했던가?

대중과 함께 30년 수행했다 말하지 말라.

좌선할 방석 펼 줄 알면서 수저질은 잊었구나.

無爲子頌,“ 喫粥了洗鉢去, 何曾指示曹溪路? 謾言隨衆三十
年. 記得展單忘却筋.23)”
23) ‘근(筋)’은 ‘저(筯)’자의 오식.

 

열재거사의 송

 

죽 먹었으면 발우 씻으라 하니,

초강의 농어 맛 다시 그립구나.

버드나무24) 색이 지금 이다지 한창이니,

산음에 눈 내리던 밤25)과 비교해 어떤가?26)
悅齋居士頌, “粥了敎伊洗鉢盂, 令人還憶楚江鱸. 武昌柳色今
如許, 似得山陰雪夜無?”
24) 무창류(武昌柳). 원래는 관아의 뜰에 서 있는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
    데, 보통의 버드나무[楊柳]를 통칭하게 되었다. 하시(夏施)라는 자가 무창(武昌)
    의 서문(西門)에 있던 버드나무를 훔쳐 자신의 집 앞에 심어 놓았는데, 이를 발
    견한 도간(陶侃)이 꾸짖자 하시가 사죄했다는 고사에서 비롯한다.『晉書』「陶
    侃傳」참조.
25) 산음야설(山陰夜雪). 산음은 회계(會稽)에 있는 지역 이름. 왕자유(王子猷) 곧 왕
    휘지(王徽之)가 눈 내리는 밤의 흥취를 이기지 못해 벗인 대안도(戴安道:戴逵)
    를 찾아 배를 탔다는 고사에서 비롯한 말. “왕자유가 산음에 살 때 밤에 큰 눈이
    내렸다. …… 불현듯 대안도가 생각났다. 당시 대안도는 섬(剡) 지방에 살고 있
    어 곧바로 밤에 작은 배를 타고 가서 하룻밤이 지나서야 도달했다. 대문까지 가
    서는 더 나가지 않고 돌아섰다. 누군가 그 까닭을 묻자 왕자유는 이렇게 대답했
    다. ‘나는 본래 흥에 겨워 갔다가 흥이 수그러들어 되돌아온 것일 뿐이니, 반드
    시 대안도를 만날 필요가 있었겠는가?’”(『世說新語』「任誕」. 王子猷居山陰, 
    夜大雪. …… 忽憶戴安道. 時戴在剡, 卽便夜乘小船就之, 經宿方至. 造門不前而
    返. 人問其故, 王曰, ‘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26) 조주의 일상어에서 본분을 지시받은 것이 진실한 벗과 해우한 경우와 같다고
    보는 관점이다. 눈앞에 한창 초록빛으로 물오른 버드나무와 눈 내리는 밤의 풍
    경을 대응시켰다. 이백(李白)의 시「單父東樓秋夜送族弟沈之秦」에 “발을 말아
    올리자 나타난 달에 맑은 흥취 밀려오니, 아마도 산음의 밤에 내렸던 눈도 이러
    했으리라.”(卷簾見月淸興來, 疑是山陰夜中雪)라고 한 구절과도 비견된다. 버드
    나무를 보거나 달을 보고 산음야설의 고사를 연상한 것이 유사하다.

 

운문문언(雲門文偃)의 염

 

“말해 보라! 지시해 준 것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있다고 한다면 조주

는 그에게 무엇이라 했다는 것인가? 만약 없다고 한다면 그 학인은 무엇

을 근거로 깨달았단 말인가?”

雲門偃拈 “且道! 有指示無指示? 若言有, 趙州向伊道箇什
麽? 若言無, 者僧因甚悟去?”

 

[설화]

지시해 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조주는 원래 이 말을 한 적이 없는 결과

가 되고,27) 지시해 준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학인이 깨달았다고 했는데

어찌 지시해 준 내용이 없다는 말인가!

雲門:若言有指示, 趙州元無此語;若言無指示, 這僧悟去,
豈無指示處!
27) 다만 죽을 먹었냐고 묻고 발우나 씻으라고 한 말 이외에 지시한 내용이 달리 있
    었다는 뜻이 된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염

 

“나는 운문처럼 뱀을 그리다가 발까지 붙여 넣듯이 불필요한 말을 하

지 않고, 직언으로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학인의 질문은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는 것과 같았고, 조주의 답변은 우연히 글자가 새겨진 것과 같았

다.28)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납승의 눈을 멀게 했으니, 이 잘못을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여러분, 그 뜻을 알고 싶은가? 그대들에게 조주가 ‘죽은

먹었느냐?’라고 한 말을 되돌려주고, 그 학인이 ‘먹었습니다’라고 한 말도

집어 주리라.29) 그런 다음 나는 그대들에게 주장자를 주고 방으로 돌아가

겠다.30)”
雪竇顯拈,“ 我不似雲門爲蛇畫足, 直言向你道. 問者, 如蟲蝕
木, 答者, 偶爾成文. 然雖與麽, 瞎却衲僧眼, 作麽生免得此
過? 諸仁者, 要會麽? 還爾趙州喫粥未, 拈却者僧喫粥了. 雪
竇, 與你拄杖子歸堂.”
28) 겉보기에는 일치하는 의미가 있는 말인 듯하지만 사실은 어떤 것과도 통하지
    않는 무의미한[沒滋味] 문답이라는 뜻이다. 40권본『大般涅槃經』권2 p.378
    b27에 나오는 다음의 비유에 따르는 것으로 선가에서 상용한다. “마치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어 글자가 새겨지지만 이 벌레는 그것이 글자인지 글자가 아닌
    지 모르는 것과 같다.”(如虫食木有成字者, 此虫不知是字非字.)
29) 해설하는 여타의 ‘남아도는 말’들은 모두 빼앗고, 본래 조주와 그 학인이 한 말
    그대로 고스란히 되돌려 주리라는 말. 조주와 학인의 문답 속에 이미 공안이 온
    전히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다.〈설화〉의 취지도 이와 같다.
30) 주장자는 종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상징물이며, 이 주장자를 전해 주고
    방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전해 줄 가르침이 없다는 뜻이다.

 

[설화]

운문이 ‘지시해 준 것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물은 것과 그 학인이 깨

달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말은 모두 불필요하게 남아도는 말이라

는 뜻이다.

雪竇:雲門有指示無指示, 這僧有悟無悟, 皆是剩語也.

 

운봉문열(雲峯文悅)의 염

 

“운문이 그렇게 한 말은 황문31)에게 수염을 심어 주거나 뱀에게 발을 그

려 주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학

인이 그런 방식으로 깨달았다면 쏜살과 같이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하리라.”

雲峯悅拈,“ 雲門與麽道, 大似爲黃門栽鬚, 與蛇畫足. 雲峯則
不然. 這僧伊麽悟去, 入地獄如箭射.”
31) 黃門. 외형은 남자지만 남자의 기능을 상실한 자로 수염이 나지 않는다.

 

[설화]

황문에게 수염을 심어 주다:조주가 지시해 준 내용이 없다는 말이니 완결

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뱀에게 발을 그려 주다:조주가 지시해 준 내용이 있다는 말이니 남아도는

것이라는 뜻이다. 양자의 병통은 마찬가지이다.32)

쏜살과 같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뿌리째 뽑아버린 것이다.33)
雲峯:黃門栽鬚者, 謂趙州無指示, 是欠事也;與蛇畫足者, 謂
趙州有指示, 是剩法, 其病一也. 入地獄云云者, 和根拔去也.
32) 조주의 말은 모자라는 것도 없고 덧붙일 것도 없이, 드러낸 말 그 자체로 완결된
    화두라는 말이다.
33) 유·무에 대한 분별의 근거를 모조리 뽑아 없앤 말이라는 뜻.

 

황룡사심(黃龍死心)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과 운봉의 염을 함께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과

취암34)은 비록 강한 것을 덜어내고 약한 것을 도와주거나, 부(富)를 버리

고 가난을 따랐지만, 집안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지는 못했

다.” 이어서 어떤 학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상좌도 아침이 되면 죽을 먹

고 발우도 씻을 것인데, 지금 미혹되어 있느냐, 깨달았느냐?” 그 학인이

절을 올리고 일어나자 황룡이 “가까이 오라!”고 불렀고, 학인이 가까이 다

가서자 말했다. “나에게 불자 한 자루가 있는데, 그대에게 줄 터이니 가지

고 돌아가거라.”35)
黃龍心, 擧此話, 連擧雲門雲峯拈. 師云,“ 雲門翠嵓, 雖則善
能鋤强輔弱, 捨富從貧, 要且, 不能安家立國.” 乃問僧, “只如
上座, 朝來亦喫粥亦洗鉢, 卽今是迷是悟?” 其僧禮拜起, 師喚
“近前!” 僧近前,“ 我有一柄拂子, 與你歸去.”
34) 취암사에 주석했던 운봉의 호. 문헌에 따라서는 취암이 아니라 설두(雪竇)로 되
    어 있기도 하다.
35) 이 역시 주석30)의 취지와 같다.

 

[설화]

강한 것을 덜어내고 약한 것을 도와주다:운문의 취지36)를 나타낸다.

부를 버리고 가난을 따르다:취암의 취지37)를 가리킨다.

이 두 선사 모두 무사(無事)의 경지를 터득하지는 못했으므로38) ‘집안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지는 못했다’라고 했다.

죽을 먹고 발우도 ~ 미혹되어 있느냐 깨달았느냐:미혹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본래 태평한 경지를 가리킨다.

불자 한 자루가 ~ 가지고 돌아가거라:마음대로 써먹을 자격이 있음을 나타

낸다.

黃龍:鋤强輔弱者, 雲門意也;捨富從貧者, 翠巖意也. 皆未
得無事, 故云,‘ 不能安家立國’也. 喫粥洗鉢是迷是悟者, 無迷
無悟, 本自太平也. 一柄拂子者, 受用有分.
36) ‘지시’라는 말에 충분히 드러난 점[强]은 버리고 숨은 맥락[弱]을 보충하여 드러
    냈다는 뜻.
37) 있다거나 없다거나 모두 잘라내고 마지막에 학인이 깨달았다는 말도 부정해버
    림으로써 어떤 설명도 취하지 않는 방식을 말한다.
38) 더 이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은 무사태평의 완결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

 

삽계일익(霅溪日益)의 염

 

“조주는 그 학인의 눈을 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총림의 수행자들

이 모두 발우에서 살 길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39) 당시에 ‘차나 마시게’라

고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

霅溪益拈, “趙州不唯瞎却者僧眼, 直得南北叢林, 盡向鉢盂上
作活計. 當時幸好箇喫茶去, 不會道得.”
39) 조주가 ‘발우나 씻어라’고 한 말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며
    깨달음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는 뜻.

 

[설화]

조주는 ~ 모색하도록 만들었다:특별히 지시한 내용이 있는 듯이 착각했기

때문이다.

차나 마시게:미혹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본래 태평하다는 말.

霅溪:趙州不唯云云者, 似有指示處故也. 喫茶去者, 無迷無
悟, 本自太平也.

 

삽계일익의 상당

 

“대천세계가 모두 하나의 가람이거늘 무슨 강서와 영남을 구분지어 말

하는가? 아침과 점심 두 때를 사정에 따라 먹고 지내면 그만이지만, 그래

도 모르겠다면 특별히 그대들에게 참구할 거리를 주겠다”라 하고 이어서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조주 노인은 하나만 알았을 뿐 둘은 몰랐다.

만일 그 학인의 발우에 다 먹지 못한 밥이나 먹다만 죽이 남아 있었다면

또한 어떻게 씻으라 할 수 있었겠는가?40) 비록 이렇다 해도 여러분은 반드

시 발우를 잘 포개어서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혹시라도 조주와 마주쳐서

그가 뿌리는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하라.41) 안타깝구나!” 〈참!〉

又上堂云,“ 大千都是箇伽藍, 說甚江西與嶺南? 齋粥二時隨
分過, 未明特地爲君叅.” 乃擧此話云,“ 趙州老漢, 只知其一,
未知其二. 忽若這僧, 有喫不盡底飯, 喫不了底粥, 又作麽生
洗? 然雖如是, 諸人也須倂疊, 敎潔淨, 始得. 莫敎撞着趙州,
被伊惡水澆却也, 可惜許!”〈 叅!〉
40) 그 학인이 죽을 다 먹지도 않았음에도 ‘다 먹었다’고 하여 조주의 반응을 시험했
    을 가능성을 제기한 대목이다. 만일 그랬다면 조주가 ‘발우나 씻어라’고 한 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
41) 어떤 경우라도 조주는 시종일관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설화]

조주가 이렇게 한 말(발우나 씻으라고 한 말)은 다 먹지 못하고 남은 밥

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씻어서 깨끗하게 해야 하

니,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조주가 뿌리는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又上堂:趙州伊麽道, 似有喫不盡底粥飯故也. 須洗得淨潔,
若不如是, 未免被趙州惡水澆却.

 

불안청원(佛眼淸遠)의 상당1 42)
42) 학인이 ‘깨달았다’는 점에 대하여 궁구한 법문.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대중들이여, 산승은 오늘 아침에 죽을 먹

고 발우도 씻었지만 여전히 깨닫지는 못했다. 선지식이라는 소리를 들으

면서 어째서 깨닫지 못한 것일까? 알겠는가? 종소리를 듣고 옹기 두드리

는 소리라 착각해서야 되겠는가!43) 결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지 않으

리라.44) 선한 사람의 마음은 더럽히기 어렵고, 수은은 가짜가 없다.45) 냉정

하게 간파한다면 틀림없이 한꺼번에 내려놓을 것이다.”

佛眼遠, 上堂, 擧此話云, “大衆, 山僧今朝, 喫粥也洗鉢盂, 只
是不悟. 旣是爲善知識, 爲什麽却不悟? 還會麽? 豈可喚鍾作
甕! 終不指鹿爲馬. 善人難犯, 水銀無假. 冷地忽然覰破, 管取
一時放下.”
43) 깨달음이라는 말에 숨은 선어(禪語)로서의 함정을 간파한 평가이다. “원통사에
    이르자 어떤 학인이 물었다. ‘두 종사가 만나면 마땅히 어떤 일에 대하여 말해야
    할까요?’ ‘여섯 개의 귀(세 사람)로는 함께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스님의 답변
    에 감사를 드립니다.’ ‘듣는 것이 진실하지 못하면 종소리를 듣고도 옹기 두드리
    는 소리라 착각하는 법이니라.’”(『白雲守端和尙語』續古尊宿語要3 卍118 p.943
    a16. 到圓通, 僧問, ‘二師相見, 合談何事?’ 師云, ‘六耳不同謀.’ 僧云, ‘謝師答話.’ 
    師云, ‘聽事不眞, 喚鐘作甕.’)
44) 본래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속이는 방법은 선어(禪語)에 들어 있는 일반적인 수
    단이다. 그 학인이 ‘발우나 씻어라’고 한 조주의 말에서 ‘깨달았다’고 하지만 이
    는 시험하기 위한 임시 설정의 기틀과 다르지 않으며 이를 간파하는 것은 공부
    하는 자들의 몫이다. 불안이 자신은 결코 이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했지만, 그 역
    시 이 맥락을 간파했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조주와 학인은 문
    답만 나누었을 뿐이며, 조주가 학인의 견지를 인가해 주지도 않았고 학인 또한
    스스로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깨달았다’는 것은 제3자가 기록한 일종의
    무의미한 말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고, 흙을 쥐고서 금이라 한다. 혀끝
    에서 천둥소리를 일으키고, 눈썹 사이에 피 묻은 칼을 감춘다. 앉아서 성공과 실
    패를 관조하고, 서서 삶과 죽음을 시험한다. 말해 보라! 이는 어떤 삼매인가?”
   (『從容錄』16則「示衆」大48 p.236c11. 示衆云, ‘指鹿爲馬, 握土成金. 舌上起
    風雷, 眉間藏血刃. 坐觀成敗, 立驗死生. 且道! 是何三昧?’)『雪竇語錄』권4 大47 
    p.697c16,『碧巖錄』27則 「評唱」大48 p.167b28 등 참조.
45) 약초인 아위(阿魏)는 진짜가 없다는 뜻의 ‘아위무진(阿魏無眞)’과 대구로 쓰인
    다. 곧 ‘진짜도 없고 가짜도 없다’는 뜻으로써 진짜와 가짜의 대립에서 오는 모
    든 분별을 버리는 지표로 제시된다.

 

[설화]

산승은 오늘 아침에 ~ 내려놓을 것이다:미혹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는 말로

위에서 삽계가 제시한 뜻과 동일하다.

佛眼:山僧今朝喫粥云云者, 無迷無悟, 上霅溪意同.

 

불안청원의 상당 2

 

“조주는 발우를 씻으라 했고 학인은 확 트인 듯 그 말의 취지를 알았으

며, 조과선사는 옷에 묻은 보푸라기[布毛]를 불어 날렸고 시자는 그 자리

에서 종지를 터득했다.46) 이는 그들에게 밝혀 준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드러내었다는 말인가? 그들에게 밝혀 준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드러낸 것

도 아니다. 대중들이여, 알겠는가?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을 어째서 이해

하지 못하는가?”

又上堂云,“ 趙州道箇洗鉢去, 其僧豁爾知歸;鳥窠吹起布毛.
侍者當下得旨. 爲復是就伊明破? 爲復是吐露向伊? 亦不是
就伊明破, 亦不是吐露向伊. 大衆, 會麽? 本有之性, 爲什麽
不會?”
46) 우두종(牛頭宗)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이 옷에 붙어 있던 보푸라기를 불어
    날림으로써 시자인 회통(會通)에게 핵심을 단적으로 보인 것.『禪門拈頌說話』=
    747則 참조.

 

[설화]

그들에게 밝혀 준 것인가:다만 저들 학인에게 본래 가지고 있는 본분사를

지시해 주었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드러내었다는 말인가:바로 지금[今時] 지시해 준 것이 없지 않다

는 뜻이다.

그들에게 밝혀 준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드러낸 것도 아니다:본분도 아니고 금시

도 아니라는 말이다.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을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가:비록 본래 갖추고 있지만

반드시 새로운 훈습의 힘에 의지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밝혀 준 것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又上堂:就伊明破者, 但指出這僧本有之事也. 吐露向伊者,
今日不無指示也. 亦不是就伊明破云云者, 非本分非今時也.
本有之性云云者, 雖本有, 必借新熏而會得也. 然則亦是就伊
明破, 亦是吐露向伊.

 

장령수탁(長靈守卓)의 상당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여러분도 본래 누구나 아침에 죽을 먹고

제각각 발우를 씻는데, 조주가 그렇게 말하고 그 학인이 그렇게 깨우쳤다

는 뜻을 이해하겠는가? 만일 어떤 납승이 나와서 ‘언제나 손님을 전송하

는 장소에 있다 보면, 고향을 떠날 때의 광경이 기억난다’47)라고 말한다

면, 나는 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말을 하기는 쉽지만,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절개를 지키기는 어렵다’48)라고 말해 줄 것이다.”

長靈卓, 上堂, 擧此話云,“ 汝等諸人, 早來人人喫粥, 各各洗
鉢盂, 趙州伊麽道, 這僧伊麽省, 還會得也未? 忽有个衲僧出
來道, ‘長因送客處, 記得別家時.’ 天寧向伊道, ‘易開終始口,
難保歲寒心.’”
47) 장적(張籍)의 시에 나오는 구절. “모든 성인의 말씀은 세간의 언어 형식을 벗어
    나지 않고 세간에 순하게 따른다. 그 뜻을 이해하면 어디서나 마음껏 써먹을 수
    있으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세간의 언어 형식만 퍼뜨리게 될 것이다.〈옛사람이
    착어했다. ‘언제나 손님을 전송하는 장소에 있다 보면, 고향을 떠날 때의 광경이 
    회상된다.’〉”(『人天眼目』권2 大48 p.310a22. 諸聖語言, 不離世諦, 隨順世間. 
    會則途中受用, 不會則世諦流布.〈古德著語云, ‘長因送客處, 憶得別家時.’〉)
48) 세한심(歲寒心)은『論語』「子罕」에 나오는 말을 활용한 것이다.

 

[설화]

언제나 손님을 ~ 기억난다:조주의 말로 인하여 자신이 옛날에 겪었던 경계

를 기억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 어렵다:비록 그렇게 조주의 의중을 이해하여 깨우친 부

분이 있더라도 고난에 굴하지 않는 절개는 아니라는 뜻이다.

長靈:長因送客處云云者, 因趙州語, 記得某甲舊時行李處也.
易開終始口云云者, 雖然伊麽會趙州意, 若有省得處, 非歲寒
心也.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상당 1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과 취암의 염을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 늙은이는

마치 아수라왕이 삼계의 큰 성에 있는 모든 번뇌의 바다를 어지럽게 흔드

는 것과 같았다.”49) 뒤이어 할을 내지른 다음 말했다. “잠꼬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50) 다시 말했다. “취암은 비록 손을 뒤로 잘 돌려 등에 멘 무쇠

화살을 뽑고서 몸을 뒤집어 활을 당겨 쏘았지만, 운문을 맞히지 못한 것을

어찌하랴!”51)
雲門杲, 擧此話, 連擧雲門翠嵓拈, 師云,“ 雲門老漢, 大似阿
脩羅王, 耗52)動三有大城諸煩惱海.” 隨後喝云, “寐語, 作什
麽!” 復云, “翠嵓, 雖善背手抽金鏃, 飜身控角弓, 爭奈蹉過雲
門何!”
49) 80권본『華嚴經』권66 大10 p.359c13의 구절.
50) 잠꼬대와 같이 무의미한 듯이 표현한 말을 포착했다는 뜻. 임제가 덕산의 속뜻
    을 알아차리고 ‘잠꼬대’라 한 말이 유명하다. “임제가 어느 날 덕산을 시봉하고
    있었는데, 덕산이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구나.’ ‘이 노장님께서 잠꼬대는 해서
    무엇 하려는 것일까?’ 이에 덕산이 한 대 때리자 임제가 곧바로 선상을 뒤집어
    엎었고, 덕산은 문답을 그만 그쳤다.”(『臨濟語錄』권3 大47 p.822b28. 師侍
    立德山次, 山云, ‘今日困.’ 師云, ‘這老漢, 寐語作甚麽?’ 山便打, 師掀倒繩床.
    山便休)
51) 운문을 부정한 취암의 말도 타당하기는 하지만, 운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
    했다는 말.
52) ‘耗’는 ‘撓’자의 오식.

 

[설화]

아수라왕이 ~ 흔드는 것과 같았다:시작도 알 수 없는 무명을 깨끗하게 없애

버렸다는 뜻이다.

잠꼬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여전히 흔적과 조짐이 남아 있으니, 마치 귀

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행위53)와 같다는 뜻이다.

비록 손을 뒤로 잘 돌려 ~ 어찌하랴:취암 또한 텅 비고 고원한 경지에 힘을

썼지만 기력이 없었다는 말이다.

雲門:阿脩羅王云云者, 無始無明, 無不淨盡也. 寐語作什麽
云云者, 猶有痕朕, 如掩耳偸香54)也. 雖善背手云云者, 翠巖,
亦騖於虛遠, 而無氣力也.
53) 엄이투령(掩耳偸鈴). 자신의 귀를 막으면 자신에게는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남들도 듣지 못할 것으로 착각한다는 말. 운문이 지시가 있는 길과 없는 길을 모
    두 차단한 부정으로 어떤 분별도 통하지 않게 되었지만 도리어 그것에 운문의
    의도가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는 뜻이다.
54) ‘香’은 ‘鈴’자의 오식.

 

대혜종고의 상당 2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단적인가? 운문은 ‘말해 보라! 지시해 준

것이 있는가 ~ 무엇을 근거로 깨달았단 말인가’라고 했다.” 대혜가 다시

말했다. “조주와 그 학인은 운문이 아니었다면 한평생 굴욕을 당했을 것

이다.55) 오늘날 제방에는 한 무리의 눈먼 사람들이 때때로 모두들 ‘발우나

씻어라’고 한 화두를 이해했다고 여긴다.”

又上堂, 擧此話云, “還端的也無? 雲門云, ‘且道! 有指示, 至
爲甚悟去.’” 師復云,“ 趙州與這僧, 若不得雲門, 一生受屈. 而
今諸方, 有一種瞎漢, 往往盡作洗鉢盂話會了.”
55) 대혜는 운문이 가장 단적으로 이 공안의 핵심을 집어냈다고 보고 있다. 운문의
    평가가 아니었다면 조주와 학인은 하찮은 문답을 한 것으로 오인 받았을 것이
    라는 뜻이다.

 

[설화]

운문은 자유자재로 견해를 지어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又上堂:雲門, 解弄見故也.

 

대혜종고의 상당 3

 

다시 이 공안을 제기하고 말했다. “제방에서 핵심을 집어내어 평가한 말

도 매우 많고 주석을 붙인 것도 적지 않지만, 분명하게 설명한 사람은 아

직 하나도 없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주겠다. 죽을 먹

었으면 발우나 씻으라고 했는데, 말해 보라! 지시한 내용이 있는가? 검은

콩은 본래부터 장 담그기에 알맞고, 비구니는 틀림없이 사고56)인 것이다.

又擧此話云,“ 諸方拈掇甚多, 下注脚亦不小, 未曾有一人, 分
明說破. 妙喜今日爲諸人, 分明說破. 喫粥了, 便洗鉢盂, 且
道! 還曾指示無? 黑豆從來好合醬, 比丘尼定是師姑.”
56) 師姑. 비구니를 부르는 또 다른 말 중 하나. 특히 나이 많고 덕이 높은 비구니를
    가리킨다.

 

[설화]

오늘의 지시는 별도로 특별한 것은 없고 다만 그 학인 본분상의 일일

뿐이다. 이것은 지시도 없지 않고 깨달은 경계도 없지 않다는 취지이다.

앞의 상당은 본래 지시도 없고 깨달은 경계도 없다는 취지이고, 그 앞의

상당은 이상의 두 가지 뜻을 아울러 지닌다.

又擧:今日指示, 別無特地, 只是這僧分上事也. 此不無指示,
亦不無悟處. 前上堂, 本無指示, 亦無悟處. 前前上堂, 兼後二
意也.

 

육왕개심(育王介諶)의 염

 

“그 학인이 죽은 먹었으나 입이 없고 발우는 씻었으나 손이 없는 격이

었다. 손이 있었다면 어째서 발우를 깨뜨리지 못했겠는가? 또 입이 있었

다면 어째서 뱉어내지 못했겠는가? 뱉어내지도 못하고 깨뜨리지도 못했

으면서 무엇으로 깨달았는가?”

育王諶拈,“ 者僧, 喫粥不曾有口, 洗鉢不曾有手. 有手何不打
破? 有口何不吐却? 旣不吐却, 又不打破, 因甚悟去?”

 

[설화]

씻은 발우도 깨뜨려야 하고 먹은 죽도 토해내야 비로소 본분과 일치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가리켜 깨달았다고 하겠느냐는 뜻이다.

이렇게 해도 또한 옳지 않은 것이다.

育王:也須打破洗地鉢, 也須吐却喫地粥, 方可卽, 不然, 何名
有悟? 伊麽又却不是.

 

백운지병(白雲知昞)의 거

 

이 공안과 더불어 운문과 설두의 염을 연이어 제기하고 말했다. “운문과

설두는 바른 법령을 남김없이 제기하여 속박을 타파하기는 했지만, 자취

를 털어 없애려다 도리어 흔적을 남기고 숨기려다가 더욱 드러낸 꼴이었

다.57)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 학인이 비록 깨달았더라도 (근본에서 멀리

떨어진) 조주의 두 번째 수단을 깨달았을 뿐이다. 꿰뚫어서 열린 눈을 갖

춘 납자라면 결코 그 표면적인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白雲昞, 擧此話, 連擧雲門雪竇拈, 師云,“ 雲門雪竇, 全提正
令, 打破羅籠, 拂迹成痕, 欲隱彌露. 南華道, 者僧雖然悟去,
只悟得趙州第二杓. 具透開眼底衲子, 必不雷同.”
57) 숨기려고 수단을 부리다가 그것이 도리어 정체를 드러내는 결과가 되고 만다는
    뜻. 굉지정각(宏智正覺)과 불감혜근(佛鑑慧懃) 등이 이 두 비유를 주로 썼다.『從
    容錄』11則「頌 著語」大48 p.234b8,『拈八方珠玉集』권상 卍119 p.212b16 참조.

 

[설화]

조주의 본의는 언어와 분별의 한계를 벗어나 드넓은 것이니,58) 그 학인

이 조주가 한 말에서 알아차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설령 조주의 이 말에서

벗어나 깨달았다 해도 또한 두 번째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조주의 본

의는 무엇일까? 반드시 (이 난관을) 꿰뚫어야 한다.59)
白雲:趙州意直得無限, 莫道這僧向趙州言句裏承當. 直饒離
此而悟得, 亦是第二杓也. 然則趙州意如何? 也須透得, 始得.
58) 직득무한(直得無限). 본서 2則 주석114) 참조.
59) 조주의 말 자체에서[卽] 알아차리려 해도 안 되고, 그것을 벗어나서[離] 깨달을
    수도 없다. 이처럼 조주의 화두를 두고 두 길이 모두 차단되고 제3의 통로도 없
    는 이 난관을 꿰뚫어야 한다.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상당

 

“죽을 먹었으면 발우나 씻으라고 하니, 이러한 문답에서 (그 학인이) 무

엇을 알았단 말인가? 죽을 먹었으면 발우나 씻으라고 하니, 또한 무엇을

알아차리란 말인가? 핵심과 상응하고자 한다면 바로 분명히 알아차린 경

계만 집어내어라. 하지만 분명히 알아차린 경계를 집어낸들 또한 무엇 하

겠는가? 알고자 하는가? 조주는 지금 서당(西堂)의 눈동자 속에서 뛰면서

놀다가 모르는 결에 다시 수좌(首座)의 귀 안에서 나오고, 지금은 또 감원

(監院)의 가슴 부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불현듯 불자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내가 그대들을 위해 그를 이 안에 붙잡아 두었다. 각자 재빨리 눈

을 뜨고 살펴보기 바라며, 이전처럼 놓치지 않도록 하라!”

心聞賁, 上堂云, “喫粥了洗鉢盂去, 還曾恁麽見得也未? 喫粥
了洗鉢盂去, 又見个什麽? 要得相應, 但拈了見底. 只如拈了
見, 又作麽生? 要會麽? 趙州卽今, 在西堂眼睛裏跳. 不覺,
又從首座耳根裏出, 而今又在監院心頭上, 遟遟疑疑地.” 驀堅
起拂子云, “長蘆爲你擒在這裏了也. 各請急着眼看, 莫敎依舊
走失!”

 

[설화]60)
60) 배촉관(背觸關)을 주안점으로 삼아 해설한 〈설화〉이다.

죽을 먹었으면 ~ 있는가:반드시 조주의 의중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을 먹었으면 ~ 말인가:본 것이 있다고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핵심과 상응하고자 한다면 ~ 무엇 하겠는가:등지거나[背] 물들거나[觸] 모두

틀리다고 보는 것이 조주의 본의라는 뜻이다.

조주는 지금 서당의 눈동자 ~ 머뭇거리고 있다:서당은 정위(正位)이고 눈동자

는 비추어 보는 작용이다. 수좌는 동쪽에 자리잡고 귀는 소리를 받아들이

는 감각기관이다. 감원은 한 절의 일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소임이고, 가

슴 부위는 중심에 속한다. 사람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이곳저곳으

로 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은 장로의

정수리에 자리잡고 앉으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불현듯 불자를 꼿꼿이 세웠다:이것이 바로 조주의 본래 자리임을 나타낸다.

각자 재빨리 ~ 놓치지 않도록 하라:등지거나[背] 물드는[觸] 두 가지를 모두

벗어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心聞:喫粥了至也未者, 也須會取趙州意, 始得. 喫粥了至什
麽者, 認着則不是也. 要得相應云云者, 背觸俱非, 趙州意也.
卽今在西堂云云者, 西堂則正位, 眼睛則照破也. 首座則位居
東, 耳根則領納音聲. 監院則摠執一院之事, 心則屬中. 隨人所
見, 彼此出入也. 遟遟疑疑, 則又向長老頂門上坐地, 焉知之
哉. 驀竪起拂子者, 此是趙州本位也. 各請云云者, 直得離却背
觸, 直下見得.

'한국전통사상 > 공안집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7칙 조주구자 趙州狗子  (0) 2016.12.06
411칙 조주끽다 趙州喫茶  (0) 2016.12.06
399칙 환중식병 寰中識病  (0) 2016.12.06
359칙 위산무심 潙山無心  (0) 2016.12.06
351칙 천황쾌활 天皇快活  (0) 20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