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21칙 - 제030칙

실론섬 2023. 2. 21. 23:37

[제021칙] 연화하엽(蓮花荷葉. 피기 전엔 연꽃, 핀 다음엔 연잎) - 지문화상과 연꽃
“연꽃과 연잎은 不二…불심과 중생심도 하나”

[수시]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내세우는 따위는 비단 위에 꽃을 피는 것과도 같다. 굴레를 
벗고 짐을 내리면 그야말로 태평시절이다. 만약 격 밖의 한다리를 터득했다면 하나를
드러내도 셋을 알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옛사람의 공안에 의거해 그 언행등을 잘 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본칙]
어떤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지문스님이 말했다.
"연꽃이니라."
스님이 지문스님에게 물었다.
"물 위에 나온 뒤에는 어떻습니까?"
지문스님이 말했다.
"연잎이다!"

[송]
연꽃이라 연잎이다 일러주었건만
물 밖에 나옴은 무엇이고 물 안은 또 무엇인가
그런 것은 강남 강북 아무에나 물어 보라
한 여우의심 덜어주니 또 다른 의심 따라오네

 

*송대의 선승 지문광조(智門光祚)화상에 대해서는 {연등회요} 제27권, {오등회원} 15권 등에 약간의 법문을 수록하고 있다. {지문광조선사어록}도 전하고 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지문화상은 운문 선사의 제자인 향림징원(香林澄遠) 선사를 멀리 사천 익주까지 찾아가 참문하여 운문종의 정법을 계승하고, 호북성 수주의 지문사에 수행자를 지도하였으며, 그의 문하에 {벽암록}의 '송고(頌古)'를 지은 설두화상을 비롯하여 30여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다.

 

[第021則]蓮花荷葉
〈垂示〉垂示云。建法幢立宗旨。錦上鋪花。脫籠頭卸角馱。太平時節或若辨得格外句。擧一明三。其或未然。依舊伏聽處分。
〈本則〉擧。僧問智門。蓮花未出水時如何。智門云。蓮花。僧云。出水後如何。門云。荷葉。
〈頌〉蓮花荷葉報君知。出水何如未出時。江北江南問王老。一狐疑了一狐疑。

 

[제022칙] 남산별비사(南山鼈鼻蛇. 내 안의 독사 한 마리) - 설봉화상과 독사 이야기
“진리는 남산에만 있지 않고 천지에 가득”

[수시]
크고 커서 바깥이 없고, 작고 작아서 없는 것에 가깝다. 잡았다 놓았다 함이 다른 데서
비롯하지 않고, 멀고 펼침이 오로지 참 나에 달려 있다. 달라붙음을 풀고 결박을 벗어
나려면, 자취를 떼내어버리고 이런 저런 말씀을 다 삼켜 버려야 하며, 모두들 참다움의
요처에 자리잡고, 각자가 천길 벼랑에 서야만 한다. 자 말해 보아라. 이 어떠한 사람의
경계인지를 ...

[본칙]
설봉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했다.
"남산에 코가 자라처럼 생기 독사가 있다. 너희들은 모두 잘 보아 두거라."
장경 혜릉스님이 말하였다.
"오늘 대중들 중에 반드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를 현사스님에게 전하였다.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혜릉 법형이므로 그처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현사스님이 말했다.
"남산까지 갈 필요가 뭐 있겠느냐?"
운문스님은 설봉스님 앞에 주장자를 던지면서 뱀이라 겁주는 시늉을 하였다.

(설봉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남산에 맹독을 가진 독사(鼈鼻蛇)가 한 마리 있다. 그대들은 조심하도록 하라" 

장경혜능이 말했다. 

"오늘 이 법당 안에 큰 사람이 있는데, 몸이 상하고 목숨을 잃었다." 

어떤 스님이 이 말을 현사스님에게 전달하자, 현사는 말했다. 

"혜능 사형이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어떤 스님이 질문했다. 

"그러면 스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현사스님이 말했다. 

"남산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가?" 

운문스님은 스승인 설봉화상 앞에 주장자를 던지면서 놀라는 시늉을 했다.)

[송]
상골암 높고 높아 오르는 이 없어라
오른 이에게 독사는 장난감
혜릉도 현사도 어쩌지 못했구나
모두들 독사에 몸 망치고 숨 끊기네

운문은 이미 알고 있었네
풀 헤쳐 보아야 동서남북 어디에도 독사 없음을
별안간 주장자 불쑥 내밀었지
설봉 앞에 던진 건 독사 아가리

독사 아가리여 번개불과 같구나
눈 치켜 떠 살펴도 보이지 않네
설두산 유봉 그 독사 있기는 있지
모든 이 하나하나 열심히 살펴보게나
(설두스님이 소리쳤다. "바로 네 발밑을 살펴보아라)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제7권 설봉화상전과 {전등록} 18권 장경화상전, {현사광록} 등에도 전하고 있다. 또 {굉지송고} 24칙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설봉 화상의 법문에 대하여 그의 문하에 뛰어난 제자 장경혜능(長慶慧稜)과 현사사비(玄沙師備), 운문문언(雲門文偃) 착어(코멘트)로 이루어진 공안이다.
*설봉(882~908) 화상에 대해서는 {벽암록} 제5칙에 이미 언급한 것처럼, 언제나 공양주의 소임으로 대중을 봉양하는 수행자였다. 세 차례나 투자산에 올라 대동 선사를 참문하고, 아홉 차례나 동산양개 화상을 찾아가 법문을 청하는 진정한 구도자였다. 뒤에 덕산 선감의 선법을 계승한 선승이다. 특히 동문인 흠산과 암두 화상과 함께 행각 수행하다 암두의 교시로 오산(鰲山)에서 불도를 이룬 이야기는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뒤에 설봉산에서 1500명의 수행자들을 지도한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다.

[第022則]南山鼈鼻蛇
〈垂示〉垂示云。大方無外細若鄰虛。擒縱非他。卷舒在我。必欲解粘去縛。直須削跡呑聲。人人坐斷要津。箇箇壁立千仞。且道是什麽人境界。試擧看。
〈本則〉擧。雪峰示衆云。南山有一條鱉鼻蛇。汝等諸人。切須好看。長慶云。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僧擧似玄沙。玄沙云。須是稜兄始得。雖然如此。我卽不恁麽。僧云。和尙作麽生。玄沙云。用南山作什麽。雲門以拄杖。攛向雪峰面前。作怕勢。
〈頌〉象骨巖高人不到。到者須是弄蛇手。稜師備師不柰何。喪身失命有多少。韶陽知。重撥草。南北東西無處討。忽然突出拄杖頭。抛對雪峰大張口。大張口兮同閃電。剔起眉毛還不見。如今藏在乳峰前。來者一一看方便。師高聲喝云。看脚下。

 

[제023칙] 촉루편야(髑髏遍野. 해골이 온 들에 가득했으리) - 보복화상과 산봉우리
“깨달음 경지 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집착”

[수시]
옥은 불로 가려내고, 금은 시금석으로 알아내며, 칼날은 터럭으로 시험해 보고, 물의 깊고
얕음은 지팡이로 재어 본다. 선승의 깊고 얕음이나 진리에 직면하고 있는지 돌아서 있는지는
그의 한 두 마디 말, 일거일동, 일진일퇴, 일문일답으로 가려낸다. 자, 말해 보아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를 ...

[본칙]
보복스님고 장경스님이 산에서 노닐 때, 보복스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것이 바로 묘봉정이다."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기는 옳지만 애석하구나."
그후 이를 경청스님에게 말하자 경청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이 아니었다면 온 들녘에 해골이 가득 널려 있었을 것이다."

[송]
묘봉산 봉우리 우거진 수풀
얻기는 했다만 누구를 주랴
손공이 가려내지 않았던들
해골만 그득, 누가 알았으랴

 

*이 공안은 {전등록}18권 장경전에 수록하고 있는 것인데, {조당집} 10권에도 보인다. 보복종전(保福從展: ?~928)의 전기는 {조당집} 11권, {전등록} 19권에 수록돼 있다.
*원오는 '평창(評唱)'에, "보복과 장경, 경청은 모두 설봉의 제자이다. 세 사람은 똑같이 불도를 체득했고, 똑같이 불법을 깨달았으며, 똑같은 안목으로 진실을 보고, 똑같이 본래면목을 드러내고 지혜작용을 펼쳤으며, 한결같이 출입을 함께 하며, 서로서로 날카롭게 질문하며 탁마(琢磨)하였다. 그들은 동시대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시하면 곧바로 근본을 알았다. 설봉의 문하에 평상시 선문답을 한 사람은 이 세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설봉의 문하에는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을 비롯하여 운문문언, 현사사비, 남악유경(南岳惟勁) 등 뛰어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第023則]髑髏遍野
〈垂示〉垂示云。玉將火試。金將石試。劍將毛試。水將杖試。至於衲僧門下。一言一句。一機一境。一出一入。一挨一拶。要見深淺。要見向背。且道將什麽。試請擧看。
〈本則〉擧。保福長慶遊山次。福以手指云。只這裏便是妙峰頂。慶云。是則是。可惜許。後擧似鏡淸。淸云。若不是孫公。便見髑髏遍野。
〈頌〉妙峰孤頂草離離。拈得分明付與誰。不是孫公辨端的。髑髏著地幾人知。

 

[제024칙] 방산와(放身臥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우니) - 유철마가 위산을 참문하다
“절대 깨달음의 세계는 무사(無事)무심(無心)의 경지”

[수시]
높고 높은 봉우리에 서 있으면 악마나 외도도 능히 알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가면 부처의
눈으로도 엿볼 수 없다. 하지만 비록 눈은 유성 같고 솜씨는 번갯불 같더라도 아직 꼬리를
질질 끌고 가는 거북이를 면치 못한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본칙]
어느 날 위산 영우스님에게 산 아래 있던 비구니 유철마가 찾아왔다.
위산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늙은 암소야, 네가 왔느냐?"
그녀는 스님의 농담을 슬쩍 비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일 오대산에서 큰 법회가 있다는데 스님께서도 가십니까?"
그러자 화상은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유철마는 곧바로 돌아갔다.

("유철마가 위산에 이르자, 위산 화상이 그 비구니에게 말했다. 

'이 늙은 암소, 그대 왔는가?' 

유철마가 말했다. 

'내일 오대산에서 큰 대중공양(齋)이 있답니다. 스님! 가시겠습니까?' 

위산 화상이 자리에 옆으로 누웠다. 

철마는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송]
철마를 타고 겹겹이 쌓인 성으로 들어갔으나
여섯 나라가 이미 평정되었다는 칙명만 들었네
그래도 쇠채찍 들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묻건만
밤은 깊고 고요하니 누구와 함께 대궐을 거닐까


*이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연등회요} 제7권 위산영우전에 설두의 게송을 함께 수록하고 있으며, {선문염송집} 제10권에도 전하고 있다. 위산 화상은 {벽암록} 제4칙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장의 법을 계승하여 호남성 장사(長沙)에 있는 위산 동경사에서 선법 펼친 당대의 명승 영우(靈祐: 771~853) 선사이며 선종 오가(五家) 가운데 최초로 개성있는 선법을 펼친 위앙종의 조사이다. 원오는 '평창(評唱)'에 위산과 유철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위산스님은 노승이 죽은 뒤에 산 아래 신도집의 암소로 태어날 것이다. 왼쪽 옆구리에 다섯 글자, '산승모갑(山僧某甲, 산승 아무개)'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그 때 위산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암소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물어도 확실히 대답하지 못한다. 유철마는 오랫동안 참구하여 기봉이 높고 준엄하였음으로 사람들은 그를 유철마라고 불렀다. 그는 위산에서 10 리 떨어진 곳에 암자를 세웠다."
*유철마는 위산과 앙산을 참문하여 대오(大悟)한 비구니로서 성이 유씨, 철마(鐵磨)는 별명으로 쇠로 만든 절구통이라는 의미이다. 즉 유철마의 선기가 뛰어나 닥치는 대로 모두 절구통에 집어넣고 부수는 선풍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걸출한 비구니이다. 유철마에 대해서는 {벽암록} 17칙, 설두의 게송에 언급되었고, {전등록} 17권에는 자호(子湖) 선사와의 선문답도 전하고 있다. 유철마가 어느 날 위산영우 화상을 찾아뵙고 인사 올리자, 위산이 '늙은 암소(老牛), 그대 왔는가'라고 친밀감이 넘치는 말로 맞이하고 있다. 자우(牛)는 새끼를 기르는 어미 소(암컷)라는 의미이다. 위산이 철마를 '늙은 암소'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산은 평생 자기 자신을 '수고우(水牛)'라고 부르고, 죽은 뒤에 천당에나 극락에도 가지 않고 산 아래 신도집의 소로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유철마도 자기와 똑같은 무리(同類)로서 친밀감을 가지고 '늙은 암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第024則]放身臥
〈垂示〉垂示云。高高峰頂立。魔外莫能知。深深海底行。佛眼覰不見。直饒眼似流星。機如掣電。未免靈龜曳尾。到這裏合作麽生。試擧看。
〈本則〉擧。劉鐵磨到潙山。山云。老牸牛汝來也。磨云。來日臺山大會齋。和尙還去麽。潙山放身臥。磨便出去。
〈頌〉曾騎鐵馬入重城。敕下傳聞六國淸。猶握金鞭問歸客。夜深誰共御街行。

 

[제025칙] 천봉만봉거(千峰萬峰去. 천봉만봉 속으로) - 연화봉 암주의 주장자
“금가루가 귀중하다지만 눈에는 병이 돼”

[수시]
아무리 훌륭한 마음의 작용을 지녔다 해도 깨달음에 달라붙은 채 떠나지 않는다면 독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이다. 뛰어난 한 마디를 내뱉아 천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한다면 범속에
떨어지고 말것이다. 부싯돌이 반짝하는 순간에 검고 흰 것을 알아보고 번갯불이 번쩍할 때
생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시방을 좌단하고 천 길 벼랑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자, 이런 
활작용이 있음을 아느냐?.

[본칙]
연화봉의 암주가 주장자를 들고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옛사람들은 여기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머물려 하지 않았는가?"
대중들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그들이 수행의 도상에서 별 도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이어 말하였다.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또 스스로 대신해 말하였다.
"주장자를 비껴든 채 옆 눈 팔지 않고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노라."

(연화봉 암자 주지가 입적하던 날 주장자를 제기하고 대중에게 설법했다. 

'옛 사람은 여기에 이르러 왜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대중이 아무 말도 없자 자신이 대신 말했다.

 '그것은 수행의 길에서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이어서 말했다. 

'필경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스스로 대중을 대신해서 말했다. 

'주장자를 비껴들고 옆눈 팔지 않고 첩첩히 쌓인 산봉우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노라.')

[송]
눈에는 티끌 모래, 귀에는 흙투성이
천봉만봉 속에서도 살지 않으리
꽃은 지고 물은 흘러 그저 아득하다
눈 꼬리 치켜들고 찾아보건만
그림자도 이미 볼 수 없어라

 

*화봉은 원오의 '평창'과 {오등회원} 15권에 '천태산 연화봉'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조정사원} 7권에 의하면 연화봉은 천태의 별산(別山)으로 천태덕소가 입적한 곳이라 하고 있다. 연화봉 암주는 운문의 법을 이은 봉선사 도침(道琛)의 제자라는 사실 이외에는 잘 알 수가 없으며, 보통 상(祥)암주로 불렸는데, {연등회요} 27권과 {오등회원} 15권에 그의 법문을 전하고 있다. {벽암록} 25칙의 공안도 {연등회요} 27권에 수록된 상암주의 법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원오는 '평창(評唱)'에 연화봉 암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송(宋)나라가 건국되었을 무렵 천태산 연화봉에 암자를 세웠다. 옛사람들은 도를 얻은 뒤에는 초옥이나 석실에서 발 부러진 가마솥에 나물 뿌리를 삶아 먹으면서 세월을 보냈다.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인연따라 한마디 법문(一轉語)을 하면서 불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고저 하였다. 그는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바로 주장자를 들고서, '옛사람이 여기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했다. 이렇게 전후 20년간을 설법했지만 끝내 한 사람도 올바른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第025則]千峰萬峰去
〈垂示〉垂示云。機不離位。墮在毒海。語不驚群。陷於流俗。忽若擊石火裏別緇素。閃電光中辨殺活。可以坐斷十方。壁立千仞。還知有恁麽時節麽。試擧看。
〈本則〉擧。蓮花峰庵主。拈拄杖示衆云。古人到這裏。爲什麽不肯住。衆無語。自代云。爲他途路不得力。復云。畢竟如何。又自代云。楖[木+栗]橫擔不顧人。直入千峰萬峰去。
〈頌〉眼裏塵沙耳裏土。千峰萬峰不肯住。落花流水太茫茫。剔起眉毛何處去。

 

[제026칙] 하시기특사(何是奇特事. 무엇이 기특한 일인가) - 백장화상과 기특(奇特)한 일
“평상심의 일상생활이 진실로 비범한 일”

[본칙]
어떤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기특한 일입니까?"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홀로 대웅봉에 앉아 있구나."
스님이 절을 올리자, 백장스님이 대뜸 후려쳤다.

(어떤 스님이 백장 화상에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 아주 특별(奇特)한 일입니까?' 

백장 화상이 대답했다.

'홀로 대웅봉에 앉아 좌선하는 일이지.'

그 스님이 예배를 올리자, 백장 화상은 주장자로 후려쳤다.)

[송]
백장은 천마 타고 달마의 선 세계 치달리니
그 교화의 수단은 보통 선승과 같지 않네
번갯불 번쩍, 부싯돌 반짝 임기웅변의 솜씨
우습구나 공연히 호랑이 수염만 비틀었네

 

*백장회해 선사는 중국 선불교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인물이다. 스승 마조도일의 비문에는 십대제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만 백장과 남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조의 생전에는 훌륭한 선승들의 틈에서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원청규}를 제정하고, 수행중심교단을 창립했다. 또한 선원의 전 대중이 공동노동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규정인 보청법(普請法)을 제정하여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 생산노동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수행자 교단의 위대한 노동정신을 직접 실천한 선승이었다. 특히 그의 문하에는 위산영우와 황벽희운 이라는 걸승이 배출되어 조사선불교의 교단을 확고히 정착시켰고 선사상을 한층 발전 시켰으며, 위산과 앙산의 위앙종, 황벽과 임제의 임제종이 형성되었다. 

[第026則]何是奇特事
〈本則〉擧。僧問百丈。如何是奇特事。丈云。獨坐大雄峰。僧禮拜。丈便打。
〈頌〉祖域交馳天馬駒。化門舒卷不同途。電光石火存機變。堪笑人來捋虎鬚。

 

[제027칙] 체로금풍(體露金風. 가을바람에 완전히 드러나다) - 운문화상과 가을바람에 진실 드러나다
“진실은 앙상한 고목처럼 무일물의 경지”

[수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해 주고, 하나를 들면 셋 까지 밝혀 주며, 토끼를 보면 곧 매를 
놓아주고, 불을 피우면 바람 방향을 보아 잘 타도록 피워 주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 그건 그렇다 치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나무가 매마르고 잎이 질 때면 어떠합니까?"
"가을 바람에 완전히 드러났느니라."

(어떤 스님이 운문 화상에게 질문했다. 

'나무가 시들어 메마르고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운문 화상이 대답했다.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완전히 드러나지(體露金風).')

[송]
물음에도 대답에도 깊은 뜻 서렸구나
삼 구 헤아려라 화살은 먼 구름 밖
넓은 들에 찬바람 온 하늘에 가랑비
그대는 아는가 소림사의 나그네
웅이산 깊은 숲에 잠든 듯 깨어 있음

 

*원오스님는 '평창'에 이 공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나무가 시들어 메마르고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떤 사람의 경계인가? 이것은 분양 화상의 18가지 질문 가운데 선지식의 역량을 시험하는 질문(辨主問), 또는 사건을 빌린 질문(借事問)이라고 한다. 운문 화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에게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완전히 드러나지'라는 대답은 아주 훌륭하고, 또한 그 질문에 위배되지 않았다. 즉 질문한 스님도 안목이 있었고, 대답 또한 분명했다."

[第027則]體露金風
〈垂示〉垂示云。問一答十。擧一明三見免放鷹。因風吹火。不惜眉毛則且置。只如入虎穴時如何。試擧看。
〈本則〉擧。僧問雲門。樹凋葉落時如何。雲門云。體露金風。
〈頌〉問旣有宗。答亦攸仝。三句可辨。一鏃遼空。大野兮涼飇[颱-台+焱]颯颯。長天兮疏雨濛濛。君不見少林久坐未歸客。靜依熊耳一叢叢。

 

[제028칙] 유설불설(有說不說. 할 말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찌 알리) - 남전화상 설하지 않은 불법
“언어문자로 표현하면 불법 그 자체가 아니다”

[본칙]
남전스님이 백장산의 열반스님을 참방하자, 백장 열반스님이 물었다.
"예로부터 많은 성인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법이 있었느냐?"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법이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외물도 아닙니다."
"말해버렸구나."
"저는 이렇습니다만 스님은 어떠합니까?"
"나는 큰 선지식이 아니다. 할 말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찌 알겠느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너무 말했구나."

(남전 화상이 백장산의 열반 화상을 참문하자, 열반 화상이 질문했다. 

"예로부터 성인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불법이 있습니까?" 

남전 화상이 말했다. 

"있지요" 

백장 화상이 말했다. 

"어떤 것이 남에게 설하지 않은 불법입니까?" 

남전 화상이 말했다. 

"마음(心)도 아니요, 부처(佛)도 아니요, 중생(物)도 아니요." 

백장 화상이 말했다. 

"설해 버렸군!" 

남전 화상이 말했다. 

"나는 이렇습니다만, 스님은 어떻습니까?" 

백장 화상이 말했다. 

"나는 큰 선지식이 아닌데, 어찌 설할 수 있는 불법과 설할 수 없는 불법이 있는지 알 수 있겠소" 

남전 화상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소(不會)." 

백장 화상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너무 많이 말했군!")


[송]
부처도 달마도 말하지 못한 것
중들은 지금도 찾아 헤매네
맑고 밝은 거울은 만물을 비치고
남쪽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보네
칠성의 자루 별 간 데 없어라
자루 별 어디 갔나 찾아 헤매는
코 쥐고 입 벌린 그 못난 꼴들

 

*공안은 {전등록} 제9권 '백장유정(百丈惟政)장'에 전하고 있으며, {무문관} 제27칙에도 수록하고 있다. 대개 백장열반 화상은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법을 이은 법정(法正)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항상 {열반경}을 강의하였기 때문에 열반 화상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남전화상이 조카상좌가 되는 열반 화상을 참문한 것이 된다. 여기에 등장한 백장 화상은 마조의 제자 백장 유정(惟政) 화상으로 남전 화상과 법형제가 되는 선승인데, 그의 전기는 잘 알 수가 없다. {전등록}에도 백장유정과 백장열반을 동일인으로 취급하는 혼란이 보인다.
*남전(普願 : 748~834) 화상의 전기는 {조당집} 16권, {송고승전} 11권 등의 자료에 전하고 있다. 출가하여 여러 곳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경율론 삼장을 연마했고, {중론(中論)}, {백론(百論)} 등을 연구하여 불교학에 통달했다. 당시 마조의 선풍이 유명하여 참문하고 그의 선법을 체득하였다. 특히 마조는 그의 대표적인 제자 서당(西堂)과 백장(百丈)과 남전 화상 세 사람이 밤에 달을 보고, 마조가 "정말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질문하자, 백장은 좋은 수행을, 서당은 좋은 공양을 말하자, 남전은 소매를 떨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러한 제자들의 견해에 대하여, 마조는 "경은 서당, 선은 백장에게 돌아갔네. 오직 홀로 남전은 일체의 경계를 초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第028則]有說不說
〈本則〉擧。南泉參百丈涅槃和尙。丈問。從上諸聖。還有不爲人說底法麽。泉云。有。丈云。作麽生是不爲人說底法。泉云。不是心。不是佛。不是物。丈云。說了也。泉云。某甲只恁麽。和尙作麽生。丈云。我又不是大善知識。爭知有說不說。泉云。某甲不會。丈云。我太殺爲爾說了也。
〈頌〉祖佛從來不爲人。衲僧今古競頭走。明鏡當臺列像殊。一一面南看北斗。斗柄垂。無處討。拈得鼻孔失卻口。


[제029칙] 수타거(隨他去. 그를 따라 가거라) - 대수화상의 시방세계를 멸망시키는 불길(劫火洞然)
“본래면목은 일체의 차별심 초월한 경지”

[수시]
물고기가 헤엄치면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진다. 주인과 손님은 확실하게 
분별하고 흑과 백을 환히 나누어 본다면 바로 밝은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손바닥 안에
야광주가 있듯이 되어 한인도 호인도 다 비치고 소리나 빛깔로 야광주의 진짜를 알아낸다.
자, 말해 보아라.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대수스님에게 물었다.
"겁화가 훨훨 타서 대천세계가 모두 무너지는데 '이것'도 따라서 무너집니까?"
"무너진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가겠습니다."
"그를 따라가거라!"

(어떤 스님이 대수법진 화상에게 질문했다. 

"시방세계가 종말하게 될 때 일어나는 맹화(猛火)는 일체의 모든 것을 불태워 삼천 대천의 시방세계가 멸망하게 되는데, 이것(본래면목)도 파괴됩니까?" 

대수 화상이 말했다. 

"파괴된다."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도 따라 갑니까?" 

대수 화상이 말했다. 

"그도 따라 간다")

[송]
활활 타는 겁화 속에서 질문을 던진 셈
이 중 아직도 이중 관문에 걸려 있네
그의 말에 끌려 다니다니 가련하구나
대수는 드넓은 세상 홀로 노닐고 있는데

 

*대수화상은 위산영우의 법을 이은 대안(大安: 793~883)선사의 제자 법진(法眞 834~919)을 말한다. 대수법진 화상에 대한 자료는 {조당집} 19권, {전등록} 11권 등에 전하고 있으며, {고존숙어록} 35권에는 그의 법문을 기록한 어록도 1권 전한다. 이 공안은 {전등록}에 의거하고 있으며, {종용록} 제30칙에도 인용하고 있다.
*'평창(評唱)'에는 대수 화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수법진 화상은 대안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60여명의 선지식을 참문하였다. 일찍이 위산영우선사의 문하에 있으면서 불(火)을 관리하는 소임(火頭)을 보고 있었다. 위산 화상이 '그대는 여기 여러 해 있었는데, 불법에 대해서 전혀 질문도 하지 않는구나'하자,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할까요?' 라고 하니, '그러면 무엇이 부처인가를 묻도록 하라'고 말했다. 대수 화상은 곧장 손으로 위산 화상의 입을 막아버리자 위산이 말했다. '이후로도 그대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린 사람을 과연 내가 만날 수 있을까?' '그 뒤로 고향인 사천 동천(東川)으로 돌아가 붕구산 가는 길목에 차를 달여서 오가는 길손을 3년간이나 대접하고, 뒤에 세간에 나아가 대수산에서 법당을 열고 수행자를 지도하였다'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벌써 부처를 대상으로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객(主客)이 나누어지며, 진불(眞佛)이 아니다. 그래서 대수 화상은 부처나 불법을 대상으로 제시한 상대적인 차별심을 모두 쓸어버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第029則]隨他去
〈垂示〉垂示云。魚行水濁。鳥飛毛落。明辨主賓。洞分緇素。直似當臺明鏡。掌內明珠。漢現胡來。聲彰色顯。且道爲什麽如此。試擧看。
〈本則〉擧。僧問大隋。劫火洞然大千俱壞。未審這箇壞不壞。隋云。壞。僧云。恁麽則隨他去也。隋云。隨他去。
〈頌〉劫火光中立問端。衲僧猶滯兩重關。可憐一句隨他語。萬里區區獨往還。

 

[제030칙] 진주나복(鎭州蘿蔔. 진주에는 큰 무가 나느니라) - 조주화상과 큰 무(大蘿蔔頭)
“선은 '무' 맛을 보듯 직접 먹어봐야 알아”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들으니 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했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진주에 큰 무우가 나느니라."

[송]
진주의 큰 무우라 천하 중들 흉내내지만
고니 희고 까마귀 검음 뉘라서 알랴
조주는 도둑일세 중의 코를 비틀었으니

 

*이선문답은 {조주록}에 전하고 있다. 조주 화상은 2칙과 9칙 등에 등장하고 있는 조주종심(趙州從 778~897)이다. 그는 학인들에게 임제나 덕산처럼 고함(喝)을 치거나 주장자를 휘두르는 거친 교화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한 두 마디의 말로써 불법을 자유롭게 설하여 지도하고 있다. 그래서 송대 법연선사는 조주의 입술에는 빛이 발한다는 의미로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고 평하고 있다.

[第030則]鎭州蘿蔔
〈本則〉擧。僧問趙州。承聞和尙親見南泉。是否。州云。鎭州出大蘿蔔頭。
〈頌〉鎭州出大蘿蔔。天下衲僧取則。只知自古自今。爭辨鵠白烏黑。賊賊。衲僧鼻孔曾拈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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