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41칙 - 제050칙

실론섬 2023. 2. 22. 17:11

[제041칙] 투명수도(投明須到. 날 밝으면 가거라) - 조주화상의 크게 죽은 사람
“잘못된 약으로 대선사 시험하는 건 무모”

 

[수시]
시비가 서로 얽힌 곳은 성인도 알 수 없고, 역순이 교차할 때는 부처 또한 분별하지 못한다.
뛰어난 절세의 인물이어야만, 무리 가운데 빼어난 보살의 능력을 발현하여, 얼음 위에서
걷기도 하며 칼날 위를 달린다. 이는 마치 기린의 뿔과 같으며 불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다.
시방을 벗어났다는 것을 뚜렷이 봐야만 비로소 같은 길을 걷는 자임을 알 것이다. 누가 이처럼
솜씨 좋은 사람이겠느냐?

[본칙]
조주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떠합니까?"
투자스님은 말하였다.
"밤에 다니지 말고 날이 밝으면 가거라."

[송]
살아서 안목은 갖췄으나 죽은 것과 같고
함께 먹어 안 될 약으로 작가 어찌 감별하리
옛 부처도 오히려 이르지 못했다 하는데
어느 누가 티끌 모래 뿌려대는가

 

*투자선사는 서주(舒洲) 투자산(投子山)에서 활약한 대동(大同:819~914)선사로서 취미무학(翠微無學)화상의 문하에서 나아가 선종의 종지를 완전히 깨닫고, 두루 유행하다가 투자산에 초암을 짓고 살았다.

 

[第041則]投明須到
〈垂示〉垂示云。是非交結處。聖亦不能知。逆順縱橫時。佛亦不能辨。爲絶世超倫之士。顯逸群大士之能。向冰凌上行。劍刃上走。直下如麒麟頭角。似火裏蓮花。宛見超方。始知同道。誰是好手者。試擧看。
〈本則〉擧。趙州問投子。大死底人卻活時如何。投子云。不許夜行。投明須到。
〈頌〉活中有眼還同死。藥忌何須鑒作家。古佛尙言會未到。不知誰解撒塵沙。

 

[제042칙] 악설단타(握雪團打. 눈덩이로 쳤어야) - 방거사와 눈 이야기
“눈내리는 풍광 보려면 눈부터 떠라”

[수시]
혼자서 제창하고 홀로 희롱하여도 흙탕물을 끼얹는 것이요, 북치고 노래하기를 혼자서 모두
하더라도 은산철벽이다. 이리저리 궁리했다가는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며, 찾으며 
생각하면 캄캄한 산 아래 떨어지리라. 밝고 빛나는 태양은 하늘에 솟아 있고, 소슬한 맑은
바람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말해 보아라. 옛사람에게도 잘못된 곳이 있었는가를 ...

[본칙]
방거사 약산스님을 하직하자, 약산이 열 명의 선객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거사는 허공에 날리는 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잘도 내린다.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그러자 곁에 있던 선객이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선객들이 말하였다.
"거사께서는 어찌 거친 행동을 하십니까?"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사가 또다시 따귀를 친 후에 말하였다.
"눈은 떳어도 장님 같으면 입을 벌려도 벙어리 같다.
설두스님은 다르게 논평하였다.
"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서 바로 쳤어야지."

(방거사가 약산선사를 방문하고 하직할 때, 약산은 열명의 선승들에게 방거사를 산문 앞에 까지 전송하도록 지시했다.

방거사는 마침 허공에 날리고 있는 눈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멋진 눈이야! 눈송이 하나하나가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군!'

그때 선승들이 모두 방거사 곁에서 말했다.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방거사는 손바닥을 한번 쳤다. 선승들이 모두 말했다.

'거사는 지나친 행동을 하지 마시오.'

거사는 말했다.

'그대들이 이 정도의 안목으로 선객이라고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주지 않으리라.'

선객들은 말했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사는 또다시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장님 같고, 입은 벌려도 벙어리 같다.'

설두도 달리 착어했다. '처음 물었을 때 눈을 뭉쳐서 곧바로 쳤어야지.')

[송]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방노인의 기관은 잡을 수 없어라
천상, 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해라
씻은 듯 끊김이여
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채기 어려우리

 

*본칙의 이야기는 {방거사어록}에 전하고 있다. 선어록에 선승들을 바보로 취급하는 많은 노파와 거사가 등장하고 있지만, 방거사는 중국선종의 역사에 거사로서 유일하게 어록을 남기고 있는 안목이 뛰어난 인물이다.
*{조정사원}제3권에 '거사는 네 가지 덕을 갖춘 인물이다. 첫째는 관직을 탐착하지 않고, 둘째는 적은 욕심으로 덕을 쌓고, 셋째는 재산이 있는 큰 부자로, 넷째는 불도를 잘 수호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체득한 인물이다. {보살행경}에 재물이 있는 사람, 세속에 거주하는 사람, 산중에 거주하는 사람, 불법을 체득한 사람을 통칭하여 거사라고 한다.'고 전한다.
*방거사의 이름은 방온(龐蘊: ? ~808)이며, 자를 도현(道玄)이라고 하였고 형주(호남) 형양현 출신인데, 부친은 이 고을의 태수였다. 단하천연선사와 과거시험을 가다가 마조의 선원인 선불장(選佛場)으로 가서 참문하여 불법을 깨닫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방거사는 석두희천선사의 선법을 이은 거사로서 제방의 훌륭한 선승들과 많은 문답을 나누었고, 처와 딸 영조(靈照)와 함께 대나무로 조리를 만들어 팔면서 청빈하게 살면서 가족이 모두 불법을 깨달아 독자적인 안목을 갖춘 재가불교인이었다.
*원오도 '평창'에 방거사가 처음 석두화상을 참문하여 "만법과 짝을 삼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니,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석두화상이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깨친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날마다 하는 일 별다른 것이 없네, 나 스스로 마주칠 뿐이다. 사물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려는 망심이 없고, 곳곳마다 펴고 오무릴 차별심도 없으니, 붉은 빛 자주 빛을 그 누가 분별하랴! 청산은 한 점 티끌마저 끊겼네. 신통과 묘용이란 물긷고 나무하는 일이다.'
그 뒤에 마조를 방문하고 또 똑같이 "만법과 짝을 삼지 않는 자는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마조는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실 때 대답해 주마."라는 말에 크게 깨달았다.

[第042則]握雪團打
〈垂示〉垂示云。單提獨弄帶。水拖泥敲唱俱行。銀山鐵壁。擬議則髑髏前見鬼。尋思則黑山下打坐。明明杲日麗天。颯颯淸風匝地。且道古人還有[言+肴]訛處麽。試擧看。
〈本則〉擧。龐居士辭藥山。山命十人禪客。相送至門首。居士指空中雪云。好雪片片不落別處。時有全禪客云。落在什麽處。士打一掌。全云。居士也不得草草。士云。汝恁麽稱禪客。閻老子未放汝在。全云。居士作麽生。士又打一掌。云眼見如盲。口說如啞。雪竇別云。初問處但握雪團便打。
〈頌〉雪團打雪團打。龐老機關沒可把。天上人間不自知。眼裏耳裏絶瀟灑。瀟灑絶。碧眼胡僧難辨別。

 

[제043칙] 무한서처(無寒暑處.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 - 동산화상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
“피할 수 없는 것이면 직접 부딪쳐라”

[수시]
하늘과 땅과 구별하는 듯한 말들은 만세토록 모두 받들겠지만, 범과 외뿔소를 사로잡는
기틀은 많은 성인들도 알아차릴 수 없다. 당장에 실오라기만큼의 가리움이 없으며 완전한
기틀이 도처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향상의 겸추를 밝히려 한다면 작가의 용광로이어야
한다. 말해 보아라. 예로부터 이러한 가풍이 있었는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피하시렵니까?"
"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추울 때는 스님을 춥게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

(어떤 스님이 동산화상에게 질문했다. 

'추위와 더위가 닥치면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화상이 말했다. 

'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스님이 질문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동산화상이 말했다. 

'추울 때는 그대가 추위와 혼연 일체가 되고, 더울 때는 그대가 더위와 하나가 되도록하라!')

[송]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 같으니
굳이 정위 편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
우습구나 영리한 사냥개 일없이 섬돌을 오르네

 

*본칙 공안은 {조당집}과 {전등록}에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출처가 분명치 않다. {사가어록(四家語錄)}의 {동산록}과 {설두송고} 43칙에 수록하고 있는 것처럼, 송대에 주장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동산양개(807~869)화상은 조동종(曹洞宗)의 개창자로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6권, {전등록} 15권, {송고승전} 12권에 전하고 있으며, 그의 법문집인 어록도 전하고 있다.


[第043則]無寒暑處
〈垂示〉垂示云。定乾坤句。萬世共遵。擒虎兕機。千聖莫辨。直下更無纖翳。全機隨處齊彰。要明向上鉗鎚。須是作家爐[糒-米+韋]。且道從上來還有恁麽家風也無。試擧看。
〈本則〉擧。僧問洞山。寒暑到來如何迴避。山云。何不向無寒暑處去。僧云。如何是無寒暑處。山云。寒時寒殺闍黎。熱時熱殺闍黎。
〈頌〉垂手還同萬仞崖。正偏何必在安排。琉璃古殿照明月。忍俊韓獹[犭+盧]空上階


[제044칙] 해타고(解打鼓. 북을 칠 줄 알지) - 화산화상의 북솜씨
“깨달음은 북을 치는 것처럼 무심의 경지”

[본칙]
화산스님이 법어를 하였다.
"익히고 배우는 것을 들음이라 하고, 더 배울 것이 없는 것을 가까움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초월해야 만이 참된 초월이라고 한다."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참된 초월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무엇이 참다운 이치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북을 칠 줄 알지."
"향상인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북을 칠 줄 알지."

(화산화상이 수시했다. 

"글을 배워 얻은 지식을 문(聞)이라 하고 다 배워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인()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초월한 것, 

그것을 진과(眞過)라 한다." 

한 스님이 "그 진과란 어떤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화산화상은 "내게 북 솜씨가 있지 - 쿵쿵 쿵더쿵!"이라고 답했다.

"그럼 진과도 초월한 성제(聖諦)의 제일의(第一義)란 무엇입니까"하고 스님이 또 질문했다.

화산화상은 이번에도 "쿵쿵 쿵더쿵!"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이 마음이 곧 불심(佛心)임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건 그대로 두고, 비심비불은 어떤 겁니까"하고 또 다시 파고들었다.

화산화상은 그래도 "쿵쿵 쿵더쿵!"이라고 답했다.

단념하지 않고 스님이 "부처님이나 달마 같은 한층 훌륭한 분이 오신다면 어떻게 맞겠습니까"하고 물었다.

화산화상은 끝까지 "쿵쿵 쿵더쿵!"이라고 말했다.)

[송]
한 사람은 연자방아를 끌고
또 한 사람은 흙을 나르네
대기를 드러내려면 천균의 활이어야지
일찍이 상골한 노승 공을 굴렸다지만
화산스님 북을 칠 줄 안다는 것 만하랴
그대에게 알리노니
제멋대로 해석하지 말아라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거니

 

*화산화상은 무은(無殷 884~960)선사로 설봉의존(雪峰義存)에게 출가하여 11년간 시봉하고, 설봉이 입적한 뒤에 구봉도건(九峰道虔)선사의 법을 계승하고 길주 화산의 대지원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이다. 그의 전기는 서현(徐鉉)이 지은 비문이 있고, {조당집} 12권, {전등록} 17권, {오등회원} 6권, {선림승보전} 5권 등에 전하고 있다. {조당집}에는 화산화상의 법문과 선문답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 공안은 보이지 않는다. 화산화상의 법문을 잠간 들어보자. '대개 불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옛날부터 노숙들이 제자들에게 사문이란 하루 24시간을 잠깐이라도 주인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고, 한 시각도 등져서는 안 된다. 상근기는 한번 퉁기면 곧 지혜가 작용하지만, 중하(中下)근기는 공훈에 떨어진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애써서 망심과 의식을 텅 비워서 인연의 연결이 끊어진 길과 같이 되도록 하라.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역시 남의 말을 빌린 것임을 면하지 못하리라.' 불도수행은 일체의 시간을 깨달음의 지혜로운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법문이며 남의 말에 의거하지 말고 자신이 체득한 경지의 법문을 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第044則]解打鼓
〈本則〉擧。禾山垂語云。習學謂之聞。絶學謂之鄰。過此二者。是爲眞過。僧出問。如何是眞過。山云。解打鼓。又問。如何是眞諦。山云。解打鼓。又問。卽心卽佛卽不問。如何是非心非佛。山云。解打鼓。又問。向上人來時如何接。山云。解打鼓。
〈頌〉一拽石。二般土。發機須是千鈞弩。象骨老師曾輥毬。爭似禾山解打鼓。報君知。莫莽鹵。甛者甛兮苦者苦。


[제045칙] 포삼중칠근(布衫重七斤. 삼베적삼 무게가 일곱 근) - 조주스님의 만법귀일
“일곱근 승복도 하나로 돌아간 만법의 모습”

[수시]
말하고자 하면 바로 말을 하나니 온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요, 행하려면 곧 행하나니
전기를 휘두름에 남에게 사양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기엽도다도 빠르고
바라보다 빨라 세찬 물에서도 칼을 가로지른다. 향상의 겸추를 들더라도 칼이 소용없고
혀가 묶이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닥 길은 터놓았다.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다."

[송]
치밀한 물음으로 늙은 저울 내질렀으나
일곱 근 장삼 무게 몇이나 알았을까
이제 서호에 던져버렸으니
맑은 바람 내려불어 누구에게 부촉할까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 제10권, {전등록} 제10권, {조주록} 중(中)권에 전하고 있다. 조주는 조주종심선사로 {벽암록} 제2칙과 5칙 등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약전은 생략한다.

[第045則]布衫重七斤
〈垂示〉垂示云。要道便道。擧世無雙。當行卽行。全機不讓。如擊石火。似閃電光。疾焰過風。奔流度刃。拈起向上鉗鎚。未免亡鋒結舌。放一線道。試擧看。
〈本則〉擧。僧問趙州。萬法歸一。一歸何處。州云。我在靑州。作一領布衫。重七斤。
〈頌〉編辟曾挨老古錐。七斤衫重幾人知。如今抛擲西湖裏。下載淸風付與誰。

 

[제046칙] 출신유가이(出身猶可易. 몸을 빠져 나오기는 쉽지만) - 경청스님의 빗방울 소리
“자신은 잃어버리고 빗소리에만 집착하는구나”

[수시]
한 번의 망치질로 범부, 성인을 초월하고, 반 마디의 말로서 속박을 풀어버렸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 듯하며, 현사의 세계 속에서 현상에 따라 행한다. 종횡무진한 오묘한
작용은 그만두고라도 찰나에 대뜸 떠나버렸을 때는 어떠하냐?

[본칙]
경청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쫓는구나."
"스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렵니까?"
"하마터면 자신을 미혹할 뻔했느니라."
"자신을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니까?"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런대로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경청스님이 한 스님에게 "문 밖에서 들리는 게 무슨 소리냐"하고 물었다. 

스님은 "빗방울 소리"라고 답했다. 

경청스님이 말했다. 

"너는 빗방울 소리에 사로잡혀 있구나." 

그러자 그 스님이 "스님께서는 저 소리를 뭘로 듣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경청스님은 "자칫했으면 나도 사로잡힐 뻔했지"라고 응대했다. 

"자칫하면 사로잡힐 뻔하시다니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하고 그 스님이 또 물었다. 

경청스님이 잘라 말했다.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는 그래도 쉽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송]
빈 집의 빗방울 소리
작가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려워라
만일 성인의 무리에 들어갔다 한다면
여전히 모르리라
알건 모르건
남산, 북산에 세찬 비가 쏟아진다.

 

*본칙의 공안은 {조당집}제10권, {전등록}제18권 경청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다. 경청화상(868~937)에 대해서는 {벽암록}제16칙 본칙에도 등장한 선승으로 설봉의존의 법을 이은 도부(道)선사다. {현사어록}에는 경청화상이 젊은 시절 현사사비선사의 처소에서 수행한 인연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도부상좌가 밤중에 현사화상에게 나아가 예배를 올리고 법문을 청했다. '저는 여기에 와서 열심히 수행하였지만 아직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화상은 자비를 베풀어 깨달음을 체득하는 길(入路)을 제시해 주십시오.' 현사는 말했다. '그대는 저기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가?' 도부는 '예. 들립니다.'라고 말하자, 현사는 '그러면 그곳으로 들어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경청화상은 현사의 지시를 받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체득하였다.

[第046則]出身猶可易
〈垂示〉垂示云。一槌便成超凡越聖。片言可折。去縛解粘。如冰凌上行。劍刃上走。聲色堆裏坐。聲色頭上行。縱橫妙用則且置。刹那便去時如何。試擧看。
〈本則〉擧。鏡淸問僧。門外是什麽聲。僧云。雨滴聲。淸云。衆生顚倒迷己逐物。僧云。和尙作麽生。淸云。洎不迷己。僧云。洎不迷己意旨如何。淸云。出身猶可易。脫體道應難。
〈頌〉虛堂雨滴聲。作者難酬對。若謂曾入流。依前還不會。曾不會。南山北山轉[雨/汸]霈。

 

[제047칙] 육불수(六不收.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 - 운문의 법신
“육근육식 인식을 초월한 깨달음의 지혜작용”

[수시]
하늘이 어찌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사계절은 운행하고, 땅이 어찌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만물을 자라게 한다. 사계절이 운행하는 곳에서 본체를 볼 수 있고 만물이 생장하는 곳에서
오묘한 용을 볼 수 있다. 말해보라. 어느 곳에서 납승을 볼 수 있을까? 어언동용 또는
행주좌와에 의존하지 말고, 말로도 설며하지 말고, 분별할 수 있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

(어떤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질문했다.

"법신은 어떤 것입니까?"

운문화상은 말했다.

"여섯으로 거두어들일 수 없다(六不收).")

[송]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푸른 눈 달마도 다 셈하지 못하리
소림에서 신광에게 부촉했다 말들 하나
옷을 걷어붙이고는 천축으로 돌아갔네
천축은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는데
간밤에 유봉 건너다보며 잠을 잤다네

 

*운문화상은 문언(文偃: 864~949)선사로 {벽암록} 제5칙과 14, 15칙 등 여러 차례 등장했다. 본칙의 공안은 {운문어록} 중권(中卷)에 전하고 있다. 

[第047則]六不收
〈垂示〉垂示云。天何言哉。四時行焉。地何言哉。萬物生焉。向四時行處。可以見體。於萬物生處。可以見用。且道向什麽處見得衲僧。離卻言語動用行住坐臥。倂卻咽喉唇吻。還辨得麽。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法身。門云。六不收。
〈頌〉一二三四五六。碧眼胡僧數不足。少林謾道付神光。卷衣又說歸天竺。天竺茫茫無處尋。夜來卻對乳峰宿。

 

[제048칙] 답도다로(踏倒茶爐. 차 화로를 엎어버렸어야지) - 왕태부와 혜랑상좌의 차 이야기
“진여법성이 어째서 생사 망념을 일으키는가!”

[본칙]
왕태부가 초경사에 들어가니, 차를 달이고 있었다. 그때 낭상좌가 명초와 함께 차 끓이는
냄비를 붙잡고 있다가, 낭상좌가 차 냄비를 뒤집어버리자, 태부가 이를 보고서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습니까?"
낭상좌가 말하였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화로를 받드는 신이 왜 차 냄비를 엎어버렸습니까?"
"오랜 동안의 벼슬살이 하루아침에 쫓겨났지요."
태부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명초가 말하였다.
"낭상좌는 초경사의 밥을 얻어 먹고는 도리어 강 건너편에서 떼지어 시끌벅적거리는구나."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귀신에게 당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명초가 그 말을 하자마자,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

(왕태부가 초경원을 방문하니 마침 스님들이 차를 대접하였다. 그 때 혜랑상좌가 명초(明招)와 함께 

차를 달이는 주전자를 붙잡고 있다가, 혜랑상좌가 차 주전자를 뒤집어 버렸다. 

왕태부가 이러한 모습을 보고서 상좌에게 물었다. 

'차를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소?' 

혜랑상좌가 말했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왕태부가 말했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왜 차 주전자를 엎어 버렸소?' 

혜랑상좌가 말했다. 

'오랫동안 벼슬살이 하루아침에 쫓겨났지요.' 

왕태부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 버렸다. 명초가 말했다. 

'혜랑상좌는 초경사의 밥을 얻어먹고 도리어 강 건너편에 가서 사람들과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군' 

혜랑이 말했다. 

'화상은 어떠십니까?' 

명초가 말했다. 

'귀신(非人)에게 당했군.' 

설두가 말했다. '당시 그 말을 할 때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

[송]
찬바람이 일 듯 다그쳐 물었으나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 못되었네
가련하다. 애꾸눈의 용이여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니
어금니와 발톱을 펼치게 되면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물을 뒤엎는 파도 몇 번이나 겪었던가 

 

*본칙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오등회원} 제8권 왕태부전에 보이고 있다. 왕태부는 천주칙사(泉州刺史) 왕연빈(王延彬)으로 설봉문하의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보복종전(保福從展. 867~928)선사를 참문한 당대의 안목있는 거사다. 왕태부는 혜릉선사가 설봉산에서 수행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로 천우(天佑) 3년(906) 자신이 칙사(刺史)로 근무하는 천주에 초경원이라는 절을 지어 혜릉선사가 거주하도록 하고, 자주 찾아가 참선하며 선문답을 나누곤 하였다. 뒤에 조정으로부터 태부(太傅)라는 직위를 수여받았기 때문에 왕태부라고 경칭(敬稱)하여 불렀다.
*혜랑상좌는 혜릉의 제자로 뒤에 복주(福州) 보자원(報慈院)의 주지로 활약한 혜랑선사로 {전등록} 제21권에 전기를 수록하고 있다. 명초는 무주 명초산의 덕겸(德謙)선사로 {전등록} 23권의 전기에 의하면 지혜의 기봉이 민첩하고, 왼쪽 눈이 없어 독안룡(獨眼龍)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第048則]踏倒茶爐
〈本則〉擧。王太傅入招慶煎茶。時朗上座與明招把銚。朗翻卻茶銚。太傅見問上座。茶爐下是什麽。朗云。捧爐神。太傅云。旣是捧爐神。爲什麽翻卻茶銚。朗云。仕官千日失在一朝。太傅拂袖便去。明招云。朗上座喫卻招慶飯了。卻去江外。打野[木+埋]。朗云。和尙作麽生。招云。非人得其便。雪竇云。當時但踏倒茶爐。
〈頌〉來問若成風。應機非善巧。堪悲獨眼龍。曾未呈牙爪。牙爪開。生雲雷。逆水之波經幾回。

 

[제049칙] 투망금린(透網金鱗.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 - 삼성(三聖)과 황금빛 물고기
“그물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대자유인”

[수시]
조횡으로 뚫고 다니며 적장의 북과 깃발을 빼앗으며, 백 겹 천 겹 포위망도 앞뒤를 잘 살펴
적절하게 빠져나오며, 범의 머리에 걸터앉고 범의 꼬리를 잡는 솜씨가 있어도 아직 작가 선지식은
못된다. 우두귀신이 사라지자 마두귀신이 다시 오는 듯한 신출귀몰이라도 기특할 게 없다.
말해보아라. 뛰어난 사람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본칙]
삼성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아야 합니까?"
"네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 주겠다."
삼성스님이 말했다.
"천오백 명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구나."
설봉스님이 말했다.
"노승은 주지의 일이 바쁘다."

[송]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물 속에 있다고 말하지 마라
하늘을 흔들고 땅을 휘저으며
지느러미를 떨치고 고리를 흔드네
고래가 뿜는 파도 천 길을 날고
진동하는 우레 소리 맑은 회오리 바람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 몇인가

 

*이 공안은 {분양송고(汾陽頌古)} 46칙과 {종용록} 33칙에도 수록돼있다. 설봉화상은 {벽암록} 제5칙에서 언급했다. 삼성(三聖)화상은 임제의현의 법을 이은 혜연(慧然)선사로 {임제록}을 편집한 사람이다. 그의 전기는 {전등록} 제12권, {회요} 제10권에 앙산(仰山)과 덕산(德山), 설봉(雪峰) 등 당대의 선지식을 두루 참문한 대화를 전하고 있다. 삼성은 임제선사를 17년 모셨다고 하며, 임제의 임종에 즈음하여 정법안장의 부촉하는 선문답으로 임제의 정법을 계승한 사실을 {임제록}에는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임제선사가 입적하려고 할 때에 벽에 기대어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멸각해 버리면 안 된다!' 그 때 삼성이 나와서 말했다.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각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임제선사가 말했다. '뒷날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불법의 대의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삼성이 곧바로 고함(喝)을 쳤다. 임제선사가 말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당나귀한테서 멸각돼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말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이 일단은 원오가 '평창'에도 인용하고 있는데, 정법안장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해 정법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을 구족한 선승을 말한다. 임제가 체득한 정법안장은 누구라도 멸각 시킬 수가 없는 것처럼, 각자가 정법안장을 구족해야 정법을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의 일갈은 임제의 선풍과 정법을 계승한 지혜작용인 것이다.

[第049則]透網金鱗
〈垂示〉垂示云。七穿八穴。攙鼓奪旗。百匝千重。瞻前顧後。踞虎頭收虎尾。未是作家。牛頭沒馬頭回。亦未爲奇特。且道過量底人來時如何。試擧看。
〈本則〉擧。三聖問雪峰。透網金鱗。未審以何爲食。峰云。待汝出網來。向汝道。聖云。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峰云。老僧住持事繁。
〈頌〉透網金鱗。休云滯水。搖乾蕩坤。振鬣擺尾。千尺鯨噴洪浪飛。一聲雷震淸[颱-台+焱]起。天上人間知幾幾。

 

[제050칙] 발리반통리수(缽裏飯桶裏水. 밥통의 밥, 물통의 물) - 운문의 진진삼매(塵塵三昧)
“티끌 하나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있다”

[수시]
단계를 건너뛰고 방편을 초월하여 기틀마다 서로 호응하고 구절마다 서로 투합된다 하더라도,
큰 해탈문에 들어가 큰 해탈의 작용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불조를 저울질하고 종문의
귀감이 될 수 있겠는가? 말해 보아라. 문제의 핵심에 직면해서는 단도직입적이고, 역순의
경계에 종횡하니, 그것을 초월하는 구절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진진삼매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니라."

[송]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
말 많은 스님도 입을 떼기 어려우리
북두성, 남극성은 제 자리에 있는데
하늘 닿는 흰 물결 평지에서 일어나네
헤아릴까, 말까?
그만둘까, 할까?
속옷도 없는 장자의 아들이로다

 

*운문문언화상은 {벽암록} 제6칙의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법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많이 등장하고 있다.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상권에 수록하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운문화상에게 "진진(塵塵) 삼매란 어떤 경지입니까?"하고 질문하고 있다.
*진진삼매(塵塵三昧)란 {화엄경} 14권 현수품 게송에 "일체가 모두 자유 자재한 것은 부처의 화엄삼매 힘이다. 한 티끌(微塵) 가운데 삼매에 들어가 일체의 티끌(微塵)의 선정을 성취한다. 그러나 그 티끌(微塵)은 또한 늘어나지도 않고 하나로서 널리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나툰다"라고 읊고 있는 말에 의거한 질문이다. {화엄경} 45권에 '한 티끌 가운데 일체가 있다'라는 말이나 '한 티끌(一塵) 법계를 다한다', '한 티끌 가운데 무량의 국토를 나툰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화엄사상에서 주장하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사상을 토대로 질문하고 있다.

[第050則]缽裏飯桶裏水
〈垂示〉垂示云。度越階級超絶方便。機機相應。句句相投。儻非入大解脫門。得大解脫用。何以權衡佛祖。龜鑑宗乘。且道當機直截。逆順縱橫。如何道得出身句。試請擧看。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塵塵三昧。門云。缽裏飯桶裏水。
〈頌〉缽裏飯桶裏水。多口阿師難下嘴。北斗南星位不殊。白浪滔天平地起。擬不擬。止不止。箇箇無褌長者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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