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31칙 - 제040칙

실론섬 2023. 2. 22. 00:22

 

 

[제031칙] 불시불시(不是不是. 아니야, 아니야) - 마곡화상이 주장자를 흔들다
“옳고 그름의 차별에 들면 본래심 상실”


[수시]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 얼음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면 여우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투철하게 사무치고, 꽉 믿어서 실오라기 만한 가리움마저
없다면, 용이 물을 얻은 듯, 범이 산을 의지한 듯하여, 놓아버려도, 기와부스러기에서 광명이
나오고, 잡아들여도 황금이 빛을 잃게 되어, 옛사람의 공안도 빙 돌아가는 것일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말해 보아라.

[본칙]
마곡스님이 석장을 지니고 장경스님에게 가, 선상 주위를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지, 옳지!"
마곡스님이 또 다시 남전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마곡스님이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는데, 스님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고 틀린 것은 너다. 그런 것은 바람의 힘에서 굴러나온 것이니 결국 사라지고 만다."

(마곡스님이 석장(錫杖. 주장자)을 가지고 장경 화상의 처소에 도착하여 선상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서 석장으로 한번 내려치고 우뚝 서자, 장경 화상이 말했다.

"옳지(是) 옳지(是)"

마곡스님이 다시 남전 화상의 처소에 도착해서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 화상이 말했다.

"아니야(不是), 아니야(不是)"

마곡스님이 남전 화상에게 말했다.

"장경화상은 옳다고 했는데, 화상은 어째서 옳지 않다고 하시오"

남전 화상이 말했다.

"장경은 옳았지만, 그대는 잘못된 것이야! 이것은 바람의 힘(風力)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결국 부서지고 만다."}

[송]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절대 말하지 마라
사해에 물결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
고책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은데
문마다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
쓸쓸하지 않음이여
선지식은 병 없는 약을 잘 사용하느니라

 

*석장은 수행자가 행각할 때 지니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로서 맨 위에 철제로 탑 모양을 만들고, 둥글게 만든 큰 고리에 작은 고리를 12개를 끼워 넣기 때문에 석장(錫杖)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행각할 때 짐승이나 곤충들을 경각시키기 위해 석장을 땅에 치고 둥근 쇠고리가 부딪치어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인데, 짐승이나 곤충이 수행자의 발에 밟혀서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공안은 {전등록} 7권 '장경회휘전'에 전하고 있으며, {벽암록} 제20칙의 '평창'과 {종용록} 16칙에도 인용하고 있다. 본칙에 등장하고 있는 마곡보철(麻谷寶徹)과 장경회휘(長慶懷暉, 754~815), 남전보원(南泉普願)은 모두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로서 조사선의 선풍을 확립한 대표적인 선승들이다. 마조문하에 뛰어난 선승 139명 가운데 88명이 모두 훌륭한 선지식으로 활약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처럼, 실로 인도에서 전래한 불교를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의 종교로 완전히 정착시킨 선승들이다.

 

[第031則]不是不是
〈垂示〉垂示云。動則影現。覺則冰生。其或不動不覺。不免入野狐窟裏。透得徹信得及。無絲毫障翳。如龍得水似虎靠山。放行也瓦礫生光。把定也眞金失色。古人公案。未免周遮。且道評論什麽邊事。試擧看。
〈本則〉擧。麻谷持錫到章敬。遶禪床三匝。振錫一下。卓然而立。敬云。是是。麻谷又到南泉遶禪床三匝。振錫一下。卓然而立。泉云。不是不是。麻谷富時云。章敬道是。和尙爲什麽道不是。泉云。章敬卽是是。汝不是。此是風力所轉。終成敗壞。
〈頌〉此錯彼錯。切忌拈卻。四海浪平。百川潮落。古策風高十二門。門門有路空蕭索。非蕭索。作者好求無病藥。

 

[제032칙] 불법대의(佛法大意.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 임제와 불법의 대의
“시절인연 도래한 지금 여기에 깨달음"


[수시]
시방을 딱 끊어버리고, 일천 개의 눈이 단박에 열리고, 단 한마디로 수많은 말을 꼼짝 못하게
하니, 일만 기틀이 싹 사라진다. 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느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공안을
처리하지 못하겠거든 옛사람들의 말을 살펴보아라.

[본칙]
정상좌가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임제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는 뺨을 후려치고 대뜸 밀쳐버렸다.
정상좌가 우두커니 서 있자,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야, 왜 절을 올리지 않느냐?"
정상좌가 절을 하려다가 홀연 크게 깨우쳤다.

[송]
단제스님이 사용했던 전기를 이어받았으니
받은 것이 어찌 점잖을 리 있으랴
거령신의 쳐든 손 일격에
천만 겹의 화산이 부서져버렸네

 

*임제 선사의 문하에서 참선수행하고 있는 정 상좌라는 스님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는데, '평창'에는 {종문통요집} 제6권 '정상좌'전에 수록된 자료에 의거하여, 덕산 문하의 수제자인 암두와 설봉, 흠산 이 세 사람이 임제 선사를 참문 하러 가는 길에서 정 상좌를 만나 임제 선사가 입적한 사실과 그의 무위진인(無位眞人)에 대한 설법을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무위진인에 대한 문제로 흠산과 선문답을 나눈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정 상좌의 인물됨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정 상좌가 이처럼 곧바로 깨달음의 경지를 출입하고 왕래한 것을 보라. 임제의 정법을 계승한 인물이었기에 이렇게 선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 불법의 대의를 깨칠 수 있다면 하늘을 훌쩍 뒤집어 대지를 만들고 스스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좌는 이러한 인물이었다. 임제 선사에게 한 차례 따귀를 얻어맞고 절을 하다가 곧바로 불법의 귀착점(대의)을 깨달았다. 그는 북방 사람으로 기질이 아주 순박하고 강직했다. 임제 선사의 불법을 이은 후에는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후 임제 선사의 큰 지혜(大機)를 활용했다. 그는 참으로 빼어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第032則]佛法大意
〈垂示〉垂示云。十方坐斷千眼頓開。一句截流萬機寢削。還有同死同生底麽。見成公案打疊不下。古人葛藤試請擧看。
〈本則〉擧。定上座。問臨濟。如何是佛法大意。濟下禪床擒住。與一掌。便托開。定佇立。傍僧云。定上座何不禮拜。定方禮拜。忽然大悟。
〈頌〉斷際全機繼後蹤。持來何必在從容。巨靈抬手無多子。分破華山千萬重。

 

[제033칙] 구일척안(具一隻眼. 한 쪽 눈만 갖추었다) - 자복화상의 일원상(一圓相)
“일원상은 만법일여의 불법의 세계 상징”


[수시]
동서를 분별하지 않고 남북을 구분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무심하니, 이러면 그가 졸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어느 때는 눈빛이 유성처럼 빛나기도
하니, 이러면 그가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어느 때는 남쪽을 북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말해 보아라. 이는 마음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도인이냐, 범인이냐? 여기에서 뛰어 너어야만
비로소 귀착점을 알아, 옛사람은 이러하기도 저러하기도 했음을 알 것이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떤 상황이냐?

[본칙]
상서 진조가 자복스님을 떠보러 갔는데, 자복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을 그렸다.
진조는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어 어쩌자는 것입니까?"
자복스님이 곧 방장실의 문을 닫아 버렸다.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진조는 겨우 한쪽 눈만 갖추었다."

("진조 상서가 자복 화상의 견해를 시험하기 위해 찾아갔다. 자복화상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하나의 원상을 그렸다. 

진조가 말했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하나의 원상을 그려서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자복화상은 곧장 방장실의 문을 닫아 버렸다. 

설두화상이 착어했다. 

'진조는 단지 한쪽 눈만을 갖춘 인물이다.'")

[송]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을 타고는
온 세상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네
큰 자라를 낚을 때에는 올가미를 던져라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천하의 납승이 벗어나지 못하리라."

 

*자복 여보(如寶)선사는 당말 위앙종의 선승으로 앙산혜적의 법손으로 길주(吉州, 江西省) 자복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펼쳤기 때문에 자복 화상이라고 부른다. {전등록} 제12권과 {회요} 11권에 약간의 선문답을 수록하고 있지만 이 공안은 보이지 않는다. {종문통요집} 제6권 자복전에는 설두의 착어를 첨가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벽암록}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조상서는 {벽암록} 제6칙 평창에 언급된 것처럼, 황벽의 제자 목주화상(진존숙)을 참문하여 선법을 이은 거사이며, 상서는 대신(大臣)으로 장차관급의 고급관리이다. 원오는 평창에 진조 상서가 당대의 유명한 거사 배휴(裵休)와 이고(李)와 같은 유명한 거사로 그는 스님을 만나면 먼저 공양을 청하고 삼백량을 보시한 후에 반드시 그 스님의 안목을 시험하였다. 많은 선승들의 안목을 간파했지만 운문 선사는 간파하지 못했는데, 그가 목주 화상 밑에서 참선하여 정법의 안목을 갖춘 거사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第033則]具一隻眼
〈垂示〉垂示云。東西不辨南北不分。從朝至暮從暮至朝。還道伊瞌睡麽。有時眼似流星。還道伊惺惺麽有時呼南作北。且道是有心是無心。是道人是常人。若向箇裏透得。始知落處。方知古人恁麽不恁麽。且道是什麽時節。試擧看。
〈本則〉擧。陳操尙書看資福。福見來便畫一圓相。操云。弟子恁麽來。早是不著便。何況更畫一圓相。福便掩卻方丈門。雪竇云。陳操只具一隻眼。
〈頌〉團團珠遶玉珊珊。馬載驢駝上鐵船。分付海山無事客。釣鼇時下一圈攣。雪竇復云。天下衲僧跳不出。

 

[제034칙] 불증유산(不曾遊山. 아직도 산놀이를 못하였구나) - 앙산화상이 산놀이를 묻다
“산놀이는 본래심 체득한 유희삼매의 삶”


[본칙]
양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사이 어디에 있다 왔느냐?"
"여산에서 왔습니다."
"오로봉을 가보았느냐?"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했구나."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앙산 화상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최근 어디서 왔는가?'

스님은 대답했다.

'여산에서 왔습니다.'

앙산 화상이 물었다.

'오노봉(五老峯)에도 가 보았는가?'

스님은 대답했다.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앙산 화상이 말했다.

'그대는 아직 산놀이를 하지 못했군!'

운문 선사가 말했다.

'이 말은 모두 자비심 때문에 중생을 위한 방편의 말(落草之談)이다.'")

[송]
한 단계 낮췄는지 아닌지
누가 식별할 수 있으랴
흰 구름은 겹겹이 쌓이고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
왼쪽으로 돌아볼 틈도 없이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벌써 늙었네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한산자를 
너무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는 안되지

 

*이 공안은 {운문광록} 중권(中卷)에 수록하고 있다. 앙산혜적(仰山慧寂, 807~883) 선사는 위산영우 선사의 제자로 위산과 앙산의 선풍을 종합하여 일원상(一圓相)을 제시하는 독창적인 위앙종의 종지를 천양한 훌륭한 선승으로 {벽암록} 18칙 평창에도 언급하고 있다. {임제록}에도 임제의 행록과 선문답에 위산과 더불어 촌평을 붙이고 있는 것처럼, 독자적인 안목으로 임제의 지혜작용(禪機)을 비평하면서 인정하고, 예언하는 말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것은 {임제록}의 편집자가 당시 최고의 선승으로 안목을 구족한 위산과 앙산의 권위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第034則]不曾遊山
〈本則〉擧。仰山問僧。近離甚處。僧云。廬山。山云曾遊五老峰麽。僧云。不曾到。山云。闍黎不曾遊山。雲門云。此語皆爲慈悲之故。有落草之談。
〈頌〉出草入草。誰解尋討。白雲重重。紅日杲杲。左顧無瑕。右盻已老。君不見。寒山子。行太早。十年歸不得。忘卻來時道。

 

[제035칙]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 앞도 삼삼 뒤도 삼삼) - 무착과 오대산의 문수보살
“오대산 대중은 분별심으로 계산할 수 없어”


[수시]
용과 뱀을 구별하고 옥과 돌을 가리며,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고 의심을 결단하는 데에,
만일 이마 뒤에 일척안이 없거나 팔꿈치 아래 호신부가 없으면 언제나 첫머리부터 빗나가
버린다. 그저 지금 보고 듣는 것에 어둡지 않고, 성색에 순수하며 참다우니, 말해 보아라. 
이는 검은 검인지 흰 것인지, 굽은 것인지 곧은 것인지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결판을
내야 하겠느냐?

[본칙]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느는 정도입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느냐?"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다."

[송]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문수와 이야기했다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
우습구나, 청량산에 대중이 얼마냐고
앞도 삼삼, 뒤도 삼삼

 

*본칙에 대한 단편은 {조당집} 11권 보복전 등에 전하고 있지만, 이렇게 정리된 것은 {설두송고} 35칙이 처음인데, {풍혈록(風穴錄)}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무착(無着) 선사는 두 사람이 전한다. 한 사람은 {송고승전} 20권에 '오대산 화엄사 무착'. 우두종 혜충(慧忠) 선사의 법을 이은 사람으로 {광청량전(廣淸凉傳)}에도 전한다. 문수보살이 일만(一萬)의 권속과 함께 오대산에 상주한다는 신앙은 {화엄경}이 전래되면서 일어났으며, 중국 화엄종의 형성과 더불어 성행하게 되었고 밀교가 전래되면서 정점에 이른다. 그래서 많은 수행자들이 오대산의 문수보살의 화신(化身)을 친견하려고 순례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감통과 영험을 전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자장법사도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를 전한다.
또 한 사람은 {송고승전} 12권, {전등록} 12권의 앙산혜적의 법을 이은 항주용천원 문희(文喜. 821~900) 선사이다. {오등회원} 9권에는 화엄사 무착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 연대적으로는 무리가 있다. '평창'에서는 남방에서 활약한 문희 선사로 보고 있다.

[第035則]前三三後三三
〈垂示〉垂示云。定龍蛇分玉石。別緇素決猶豫。若不是頂門上有眼。肘臂下有符。往往當頭蹉過。只如今見聞不昧。聲色純眞。且道是皂是白。是曲是直。到這裏作麽生辨。
〈本則〉擧。文殊問無著。近離什麽處。無著云。南方。殊云。南方佛法。如何住持。著云。末法比丘。少奉戒律。殊云。多少衆。著云。或三百或五百。無著問文殊。此間如何住持。殊云。凡聖同居龍蛇混雜。著云。多少衆。殊云。前三三後三三。
〈頌〉千峰盤屈色如藍。誰謂文殊是對談。堪笑淸涼多少衆。前三三與後三三。

 

[제036칙] 방초거낙화회(芳草去落花回. 꽃 따라 가고 오고) - 장사 화상의 봄날 산놀이
"삼매에 빠진 산놀이…일체 차별경계 초월"


[본칙]
어느 날 장사스님이 산을 유람한 후 문 앞에 이르자, 수좌가 물었다.
"싐, 어딜 다녀오십니까?"
"산을 유람하고 오는 길이다."
"어디까지 갔다 오셨습니까?"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느니라."
"아주 봄날 같군요."
"아무렴, 가을날 이슬 방울이 연꽃에 맺힌 때보다야 낫지."

[송]
대지엔 티끌 한 점 없는데
어느 사람인들 보려 하지 않으랴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다시 지는 꽃을 따라 돌아왔네
파리한 학은 차가운 나무 위에 발돋움하고
미친 원숭이는 옛 누대에서 휘파람 부네
장사의 한없는 뜻이여!"

 

*이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 없지만, 장사 화상의 전기는 {조당집} 17권, {전등록} 10권 등에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장사(長沙)의 녹원사(鹿苑寺) 초현(招賢) 화상은 남전(南泉)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조주(趙州)와 자호(紫胡)스님과 동시대 인물이다. 선지의 작용이 민첩하여 상대방이 교학(敎學)으로 질문하면 교학으로 대답하고 게송을 요구하면 게송으로 대답해 주었다. 만일 작가로서 만나고자 하면 작가로서 맞이해 주었다. 앙산혜적 선사는 평소 선지의 작용(機鋒)으로는 제일인자이다. 하루는 장사 화상과 함께 달구경을 하다가 앙산스님이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마다 이것(불성)이 있지만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장사 화상이 말했다. "옳치 그것 좀 빌려 써 봤으면 좋겠다." 앙산이 말했다. "화상이 한번 사용해 보세요." 그러자 장사 화상은 앙산을 한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앙산은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숙께서는 마치 호랑이(大蟲) 같군요." 이후로 사람들이 장사 화상을 잠대충(岑大蟲: 높은 산의 호랑이)이라고 불렀다. 장사는 호남성에 있는 지명으로 가까이 동정호(洞庭湖)가 있는 산수(山水)의 경치로 유명한 명승지이며, 전설로 전하는 무릉(武陵) 도원(桃園) 등이 있는 지방이다.
*{전등록} 10권에는 장사화상의 독특한 법문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내가 만일 매양 종교(宗敎)만을 선전한다면 법당 앞에 풀이 한길이나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시방세계가 온통 사문의 눈이요, 시방세계가 온통 사문의 온몸이요, 시방세계가 온통 자기의 광명이요, 시방세계가 온통 자기 광명속의 것이며, 시방세계가 온통 자기 아닌 것이 없다. 내가 항상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삼세의 부처님들과 법계의 대중들이 모두가 마하반야의 광명이라 하였는데, 광명이 나기 전에 그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광명이 나기 전에는 부처와 중생이라는 징조도 없거늘 산하(山河)와 국토(國土)는 어디서 생겼는가."

[第036則]芳草去落花回
〈本則〉擧。長沙。一日遊山。歸至門首。首座問。和尙什麽處去來。沙云。遊山來。首座云。到什麽處來。沙云。始隨芳草去。又逐落花回。座云。大似春意。沙云。也勝秋露滴芙蕖。
〈頌〉大地絶纖埃。何人眼不開。始隨芳草去。又逐落花回。羸鶴翹寒木。狂猿嘯古臺。長沙無限意。咄。

 

[제037칙] 하처구심(何處求心.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하나) - 반산화상의 삼계 무법
“마음이 그대로 부처, 부처가 그대로 사람”


[수시]
번개치는 듯한 기봉을 생각으로 헤아리려 한다면 헛수고이며, 허공에 내려치는 천둥소리는
귀를 막아도 되지 않는다. 머리 위로는 붉은 깃발을 펄럭이고 귓전 뒤로는 쌍검을 돌린다.
만일 눈빛이 예리하지 못하고 손이 날쌔지 못하면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오랫동안 생각하며 의근으로 헤아리지만, 해골 앞에서 무수한
귀신을 본다는 것을 참으로 모를 것이다. 말해보라, 의근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득실에 얽매이지
않고, 문득 이렇게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본칙]
반산스님이 말했다.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까?"

[송]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을까
흰 구름은 일산이요
흐르는 물소리는 비파소리라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나니
비 개인 밤 못에 가을 물이 깊다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제7권, 반산 화상의 유명한 상당법문의 일절인데, {조당집} 제15권에도 똑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반산 화상은 마조 문하의 뛰어난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인 보적(寶積) 선사로 독창적인 법문을 설하고 있다. {전등록}과 {조당집}에는 그의 상당법문을 수록하고 있을 뿐, 그의 생애나 전기를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는데, 그의 문하에 미치광이 같은 풍광승(風狂僧)으로 유명한 보화(普化)선사가 배출되었다. 보화는 {임제록}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선승으로 임제가 북쪽에서 행화(行化)를 펼치도록 도와준 선승이며, 임제를 어린애로 취급하는 등 뛰어난 역량을 갖춘 선승이었다.
*여기서 먼저 {조당집}에 전하는 반산 화상의 법문을 들어보자. "선덕 여러분! 비유하면 칼을 휘둘러 허공에 던지면 칼이 (허공에) 미치거나 미치지 못함을 따지지 못한다. 이것은 허공에는 자취(흔적)가 없고 칼날은 손상하지 않는 경지이다. 만일 능히 이와 같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우면)마음과 마음이 서로 분별이 없어져 마음이 그대로 부처요, 부처가 그대로 사람이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道)를 이룬다(全心卽佛, 全佛卽人, 人佛無異 始爲道矣) … 선덕들이여! 스스로가 잘 살펴보도록 하라! 아무도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삼계(三界)는 무법(無法)이거늘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며, 사대(四大: 地水火風)가 본래 텅 비어 공(空)한데 부처가 어디에 의지하리요. 마음(旋機)이 움직이지 않으니, 고요하여 근원이 없어졌고 마주보면서 곧바로 드러낼 뿐 다시 다른 일은 없다."


[第037則]何處求心
〈垂示〉垂示云。掣電之機徒勞佇思。當空霹靂。掩耳難諧。腦門上播紅旗。耳背後輪雙劍。若不是眼辨手親。爭能搆得。有般底。低頭佇思。意根下卜度。殊不知髑髏前見鬼無數。且道不落意根。不抱得失。忽有箇恁麽擧覺。作麽生祗對。試擧看。
〈本則〉擧。盤山垂語云。三界無法。何處求心。
〈頌〉三界無法。何處求心。白雲爲蓋。流泉作琴。一曲兩曲無人會。雨過夜塘秋水深。

 

[제038칙] 조사심인(祖師心印. 조사이 마음 도장) - 풍혈화상과 조사의 마음
“불법 체득해야 무쇠소의 무심경지 터득”


[수시]
만일 점오(漸梧)를 논한다면 참된 이치에 등지고 세속의 도리에 부합되어, 법석대는 저자에서도
횡설수설할 것이다. 돈오(頓梧)를 논한다면 조짐과 자취를 남기지 않으므로 일천 성인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 점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민첩한 사람은 말 한 마디에 깨치고
날쌘 말은 한 채찍이면 된다. 바로 이러한 시절에 어느 누가 작가이겠느냐?

[본칙]
풍혈스님이 영주의 관아에서 법문을 하였다.
"조사의 마음 도장은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찍으면 망가진다.
떼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니, 찍어야 옳겠느냐 찍지 않아야 옳겠느냐?"
그때 노파장로가 대중 속에서 나와 물었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
풍혈스님이 말했다.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게 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짓은 안한다.
노파장로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자, 풍혈스님이 소리를 지른 다음 말하였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느냐?"
여전히 노파장로가 머뭇거리니, 풍혈스님은 불자로 한 번 치고 말하였다.
"말 할 거리를 생각하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노파장로가 말을 하려고 하자, 풍혈스님이 또다시 한 차례 치니 목사가 말하였다.
"불법과 왕법이 한 가지군요."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풍혈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 버렸다.

[송]
노파스님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삼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
초와의 성으로 모여든 물이여
'할'하는 소리에 거꾸로 흐르는구나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13권과 {광등록}15권에 전하고 있다.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는 송초(宋初) 임제종을 중흥한 선승으로 남원혜옹(慧)의 법을 이었으며, 그의 어록 1권이 {고존숙어록}에 전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풍혈화상은 임제종의 법통을 이은 고승이다. 임제선사가 처음 황벽의 문하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자, 황벽선사가 말했다. "깊은 산중에서 소나무를 심어서 무엇 하려고?" 임제선사는 "첫째는 산문의 경지를 만들고, 둘째는 후대 사람들의 표시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풍혈화상이 임제종을 중흥한 선승으로 주목된 것은 {임제록}에 임제가 소나무를 심는 이야기에 위산과 앙산의 대화에서 풍혈화상의 출현을 예언하는 말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第038則]祖師心印
〈垂示〉垂示云。若論漸也。返常合道。鬧市裏七縱八橫。若論頓也。不留朕跡。千聖亦摸索不著。儻或不立頓漸。又作麽生。快人一言快馬一鞭。正恁麽時。誰是作者。試擧看。
〈本則〉擧。風穴在郢州衙內。上堂云。祖師心印。狀似鐵牛之機。去卽印住。住卽印破。只如不去不住。印卽是。不印卽是。時有盧陂長老出問。某甲有鐵牛之機。請師不搭印。穴云。慣釣鯨鯢澄巨浸。卻嗟蛙步輾泥沙。陂佇思。穴喝云。長老何不進語。陂擬議。穴打一拂子。穴云。還記得話頭麽。試擧看。陂擬開口。穴又打一拂子。牧主云。佛法與王法一般。穴云。見箇什麽道理。牧主云。當斷不斷返招其亂。穴便下座。
〈頌〉擒得盧陂跨鐵牛。三玄戈甲未輕酬。楚王城畔朝宗水。喝下曾令卻倒流。

 

[제039칙] 금모사자(金毛獅子. 황금털 사자) - 운문화상의 황금빛 털의 사자
“작약꽃밭 등 삼라만상이 법신의 나툼”


[수시]
깨달음의 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법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고, 세속적인 지식만을 유포하는
사람은 원숭이가 우리에 갖힌 것과 같다. 불성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
보아야 하며, 백 번 달구어 순금으로 제련하려 한다면 모름지기 작가의 풀무가 있어야 한다.
말해보라, 대용이 눈 앞에 나타나는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해야 하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입니까?"
"꽃나무로 장엄한 울타리니라."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황금빛 털 사자니라."

[송]
꽃울타리여!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이러함이여!
전혀 잡다함이 없나니
황금빛 털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보라.

[第039則]金毛獅子
〈垂示〉垂示云。途中受用底。似虎靠山。世諦流布底。如猿在檻。欲知佛性義。當觀時節因緣。欲[火+段]百鍊精金。須是作家爐[糒-米+韋]。且道大用現前底。將什麽試驗。
〈本則〉擧。僧問雲門。如何是淸淨法身。門云。花藥欄。僧云。便恁麽去時如何。門云。金毛獅子。
〈頌〉花藥欄。莫顢頇。星在秤兮不在盤。便恁麽太無端。金毛獅子大家看。

 

[제040칙] 여몽상사(如夢相似. 꿈결에 보는 것 같이) - 남전화상과 육긍대부
“분별심 갖고 '만물일체' 논하는 건 무의미”


[수시]
쉬고 또 쉬니 무쇠나무에 꽃이 핀다. 있느냐, 없느냐? 총명한 녀석이라도 벌써 손해를 본다.
설사 종횡무진 자재하여도 그는 콧구멍 뚫릴 것이다. 말해보라. 까다로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

[본칙]
육긍대부가 남전스님과 대화를 하던 중 육긍대부가 말하였다.
"조법사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였는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전스님이 뜨락에 핀 꽃을 가리키며 대부를 부르더니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마치 꿈결에 보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송]
듣고 보고 느끼고 앎이 따로따로 아니고
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네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 깊은데
누구와 함께 하랴. 맑은 연못 차가운 그림자

*이공안은 {전등록} 제8권 남전화상전에 수록하고 있는데, 남전화상에 대해서는 이미 {벽암록} 제28칙에서 언급하였다. 육긍대부(陸亘:764~834)는 당나라 헌종을 모셨고,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 관리들의 잘못을 바로 잡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일찍이 남전화상을 참문하고 뛰어난 지혜를 체득한 거사로서 {전등록} 제8권에는 남전화상(南泉和尙: 738~834)과 많은 선문답을 남기고 있다.

[第040則]如夢相似
〈垂示〉垂示云。休去歇去。鐵樹開花。有麽有麽。黠兒落節。直饒七縱八橫。不免穿他鼻孔。且道[言+肴]訛在什麽處。試擧看。
〈本則〉擧。陸亙[一/旦]大夫。與南泉語話次。陸云。肇法師道。天地與我同根。萬物與我一體。也甚奇怪。南泉指庭前花。召大夫云。時人見此一株花。如夢相似。
〈頌〉聞見覺知非一一。山河不在鏡中觀。霜天月落夜將半。誰共澄潭照影寒。

'벽암록(碧巖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암록 제051칙 - 제060칙  (1) 2023.02.22
벽암록 제041칙 - 제050칙  (0) 2023.02.22
벽암록 제021칙 - 제030칙  (0) 2023.02.21
벽암록 제011칙 - 020칙  (1) 2023.02.21
벽암록 제001칙 - 010칙  (1) 202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