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벽암록 제051칙 - 제060칙

실론섬 2023. 2. 22. 21:44

 

[제051칙] 요식말구후(要識末句後. 마지막 한마디를 알고 싶은가) - 설봉화상과 두 스님
“깨달음은 같아도 교화하는 방법은 다르다”

[수시]
시비가 생기자마자 혼라스러워 마음을 잃게 되고, 단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또한 알 수
없다. 말해 보아라. 늘어 놓아야 하겠느냐,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겠느냐? 여기에 이르러서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있어, 말에 막히고 기연이나 경계에 얽매인다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것처럼 허망한 짓이 될 뿐이다. 설령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 이르렀다
하여도 만 리나 떨어진 곳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를 알겠느냐? 아직 알지
못했다면 그대로 있는 공안을 깨치도록 하거라.

[본칙]
설봉스님이 암자에 주석할 때에 두 스님이 찾아와 예배를 하자, 설봉스님이 그들을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서 말하였다.
"뭐냐?"
찾아온 스님 또한 같은 말을 하였다.
"뭐냐?"
그러자 설봉스님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가버렸다. 그 스님이 그 뒤 암두스님 처소에
이르자,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영남지방에서 왔습니다."
"설봉스님한테는 갔다 왔느냐?"
"갔다 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냐?"
스님이 지난날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설봉스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일러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그에게 알려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스님을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 스님이 여름 안거 끝에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추어내어 법문을 청하였다.
"왜 진작 묻지 않았느냐?"
"감히 쉽게 여쭙지 못했습니다."
"설봉스님이 나와 한 가지에서 나기는 했으나, 나와 똑같지는 않다.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냐?
이것뿐이다."

(설봉화상이 암자에 있을 때 두 스님이 찾아와서 예배를 하자, 설봉화상은 그들을 보고 손으로 암자의 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서 말했다. "뭐야!?" 스님도 역시 "뭐야!" 라고 말했다. 설봉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갔다.
스님은 뒤에 암두화상의 처소에 이르자, 암두화상이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었다. 스님은 말했다. "영남에서 왔습니다." 암두화상은 "설봉화상을 찾아갔었는가"라고 물었다. 스님은 "예. 갔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암두화상은 물었다. "설봉이 무슨 말을 했는가" 스님은 지난날에 있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암두화상이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스님은 말했다. "설봉화상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갔습니다." 암두화상이 말했다. "아아!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 불법의 궁극적인 한 말(末後句)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만약 그에게 말후구(末後句)를 일러 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스님은 하안거 끝에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내어 (암두화상께)법문을 청했다. 암두화상은 말했다.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 스님은 "감히 쉽게 여쭙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암두화상은 말했다. "설봉이 나와 똑같이 한줄기에서 태어났지만(生) 나와 똑같이 죽지(死)는 않는다. 불법의 궁극적인 한 말(末後句)을 알고자 하는가. 단지 이것뿐이다.")

[송]
마지막 한 마디 그대에게 말하리니
밝음과 어둠이 쌍쌍인 때로구나
한가지에서 나온 것은 모두 알지만
죽음을 달리한다는 건 모르는구나
까맣게 모르는구나
석가와 달마도 분별해 보아야 알 일
남북동서로 돌아가련다
한밤중에 함께 보네 일천 바위 뒤덮은 눈

 

*이 공안은 {조당집}제7권 암두장과 {오등회원}제7권 설봉장에 전하고 있다. 설봉과 암두는 덕산의 문하에서 수학한 동문으로 {벽암록} 22칙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암두의 교시에 의해 설봉이 오산(鼇山)에서 깨닫고 성도를 하게 되었다. 설봉화상이 영남의 암자에 은거하고 있을 때는 당나라 무종(武宗)의 회창(會昌)5년 폐불사건으로 천하의 사찰을 훼손하고 26만500명의 승려를 환속시킨 일대 법난의 시기였다. 당시 동문인 암두전활(巖頭全豁)선사는 악저호(鄂渚湖)라는 호수에서 뱃사공으로 은거하며 살고 있었다.

 

[第051則]要識末句後
〈垂示〉垂示云。纔有是非。紛然失心。不落階級。又無摸索。且道放行卽是。把住卽是。到這裏。若有一絲毫解路。猶滯言詮。尙拘機境。盡是依草附木。直饒便到獨脫處。未免萬里望鄕關。還搆得麽。若未搆得。且只理會箇理成公案。試擧看。
〈本則〉擧。雪峰住庵時。有兩僧來禮拜。峰見來。以手托庵門。放身出云。是什麽。僧亦云。是什麽。峰低頭歸庵。僧後到巖頭。頭問。什麽處來。僧云。嶺南來。頭云。曾到雪峰麽。僧云。曾到。頭云。有何言句。僧擧前話。頭云。他道什麽。僧云。他無語低頭歸庵。頭云。噫我當初悔不向他道末後句。若向伊道。天下人不奈雪老何。僧至夏末。再擧前話請益。頭云。何不早問。僧云。未敢容易。頭云。雪峰雖與我同條生。不與我同條死。要識末句後。只這是。
〈頌〉末後句爲君說。明暗雙雙底時節。同條生也共相知。不同條死還殊絶。還殊絶。黃頭碧眼須甄別。南北東西歸去來。夜深同看千巖雪。

 

[제052칙] 도려도마(渡驢渡馬.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고) - 조주의 돌다리
“조주의 돌다리는 깨달음 인도하는 가르침”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주 돌다리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막상 와 보니 외나무다리뿐이군요."
"너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을 찾아와서 말했다. 

"조주의 돌다리(石橋)에 대하여 우러러 사모한지 오래 되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통나무 다리뿐이군요" 

조주화상이 말했다. 

"그대는 통나무 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石橋)는 보지 못했군!" 

스님이 질문했다.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石橋) 입니까?" 

조주화상이 대답했다.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송]
고고한 위세 안 부려도 도는 드높나니
바다에 들어가면 큰 자리를 낚아야지
우습다. 같은 시대의 관계스님이여
쏜살같은 급류라 하랴 부질없는 헛수고

 

*본칙의 공안은 {조주록} 중권과 {전등록} 제10권 조주전에 전하고 있다. 조주종심(778 ~897)은 {벽암록} 9칙에 조주 동서남북의 문에도 등장한 유명한 선승이다. {전등록}에는 위의 선문답에 이어서 다음의 질문이 첨가되어 있다. "스님이 어떤 것이 통나무 다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조주화상은 "사람마다 각각 따로 건넌다(度)"라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건넌다(度)'라는 말은 다리가 사람과 나귀, 말 등이 건너간다(渡)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곳(사바세계)에서 저곳(열반)의 경지로 구제(渡)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또 {조주록}에는 본칙의 공안과 똑같이 스님이 "어떤 것이 조주의 돌다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조주화상은 "건너오게, 건너와!"라고 대답하고 있다.

 

[第052則]渡驢渡馬
〈本則〉擧。僧問趙州。久響趙州石橋。到來只見略彴。州云。汝只見略彴。且不見石橋。僧云。如何是石橋。州云。渡驢渡馬。
〈頌〉孤危不立道方高。入海還須釣巨鼇。堪笑同時灌溪老。解云劈箭亦徒勞。


[제053칙] 하증비거(何曾飛去. 뭐 날아가버렸다고) -  마조화상과 들오리
"지극한 '도(道)'는 온 세계에 두루 퍼져있어"

[수시]
온 세상 어디에도 감추지 못하고 완벽한 기봉을 드높이 드러내며, 어디에도 막힘이 없어
한 수 한 수마다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으며, 말마다 사심이 없어 사물마다에 살인의 뜻이
있다. 말해 보아라. 옛사람이 결국에 어느 곳에서 쉬었는가를 ...

[본칙]
마조스님이 백장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들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저것이 무엇이냐?"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느냐?"
"날아가버렸습니다."
스님이 마침내 백장스님의 코끝을 비틀자, 백장스님이 고통을 참느라 신음하였다.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뭐, 날아가버렸다고?"

[송]
들오리여,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네
마조스님은 만나자 말을 걸었네
산, 구름, 바다, 달 등 온갖 것들 말했으나
여전히 모르고 도리어 날아가려 하네
날아가려 하는 순간 잡아들였네

 

*본칙은 {광등록} 제8권 백장전에 처음으로 전하고 있으며, {연등회요} 제4권과 {설두송고} 53칙에 최초로 수록한 공안이다. {조당집} 제15권 오설영묵(五洩靈默)전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어느 날 마조대사가 대중을 거느리고 서쪽 담장 밑을 거닐다가 갑자기 오리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조대사가 주위를 돌아보고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정(政)상좌가 말했다. ' 오리떼 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날아갔습니다' 마조대사는 정상좌의 코를 잡아끄니 정상좌가 아파서 소리 지르자, 대사가 말했다. '아직 여기에 있는데 언제 날아갔다고 하는가' 정상좌가 활짝 깨달았다” 정상좌는 마조의 제자 백장유정(百丈惟政)으로, 이것이 본칙공안의 원형인데, 뒤에 {광등록}과 {설두송고}에서는 마조와 백장회해와의 인연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第053則]何曾飛去
〈垂示〉垂示云。遍界不藏。全機獨露。觸途無滯。著著有出身之機。句下無私。頭頭有殺人之意。且道古人。畢竟向什麽處休歇。試擧看。
〈本則〉擧。馬大師與百丈行次。見野鴨子飛過。大師云。是什麽。丈云。野鴨子。大師云。什麽處去也。丈云。飛過去也。大師遂扭百丈鼻頭。丈作忍痛聲。大師云。何曾飛去。
〈頌〉野鴨子。知何許。馬祖見來相共語。話盡山雲海月情。依前不會還飛去。欲飛去。卻把住。道道。


[제054칙] 모갑화재(某甲話在.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 운문화상의 ‘어디서 왔는가’
"구도자는 독자적인 지혜와 안목 갖춰야”

[수시]
생사를 뚫고 나오며, 기관도 헤치고 나와 무심히 무쇠를 끊고 못을 자르며 어느 곳에서나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떠한 사람의 경지인가를 ...

[본칙]
운문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서선사에서 왔습니다."
"서선사에서 요즈음 무슨 얘기들을 하더냐?"
스님이 양 손을 벌리자, 운문스님이 한 차례 뺨을 후려쳤다. 스님은 말하였다.
"제게도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운문스님이 문득 두 손을 펴 보였다. 스님이 말이 없자, 운문스님이 다시금 후려쳤다.

[송]
일시에 호랑이 머리와 꼬리를 잡으니
늠름한 위엄이 4백 고을에 떨치네
묻노니 어쩌면 그처럼 준엄한가

 

*본칙의 공안은 {운문광록}하권, '감변(勘弁)'에 수록되어 있는데, 본문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화 내용은 같다. 하안거를 마치고 운수납자인 어떤 수행자가 운문 화상을 친견하러 왔다. 운문 화상은 그 스님에게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물었다. 이것은 선지식이 처음 참문하는 수행자에게 던지는 상투적인 수단이다.


[第054則]某甲話在
〈垂示〉垂示云。透出生死。撥轉機關。等閑截鐵斬釘。隨處蓋天蓋地。且道是什麽人行履處。試擧看。
〈本則〉擧。雲門問僧近離甚處。僧云。西禪。門云。西禪近日有何言句。僧展兩手。門打一掌。僧云。某甲話在。門卻展兩手。僧無語。門便打。
〈頌〉虎頭虎尾一時收。凜凜威風四百州。卻問不知何太嶮。

 

[제055칙] 부도부도(不道不道. 말할 수 없다) - 도오화상의 조문
“생사가 여일한데 生과 死는 왜 구별하나”

[수시]
은밀하고도 완전한 참인 이 소식을 대뜸 깨치고, 갖가지의 반연 속에서도 그것을 다룰 수 있어
단박에 당처를 알아챈다. 전광석화 속에서도 잘못을 순간에 귾고, 호랑이 머리를 타고 꼬리를 
잡는 경지에 천 길 벼랑처럼 우뚝 서 있구나.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만두더라도 가느다란 길을
놓아 수행자를 지도하는 부분이 있느냐?

[본칙]
도오스님이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을 하게 되었는데 점원스님이 관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왜 말을 못합니까?"
"말로는 안 되지! 안되고 말고!"
돌아오는 길에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말하지 않으시면 치겠습니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
점원스님이 후려쳤다.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니,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한다."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고 말고."
점원스님은 그 말에 깨우침이 있었다. 하루는 점원스님이 삽을 들고 법당 위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자, 석상스님이 말하였다.
"무얼하고 있느냐?"
"선사의 영골을 찾고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는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쓸데없는 애를 쓰네."
태원의 부상좌는 말하였다.
"선사의 영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도오화상이 제자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서 조문을 하게 되었다. 점원이 관을 두드리며 말했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도오화상이 말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점원이 말했다. “어째서 말할 수 없습니까?” 도오화상이 말했다.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 절로 돌아오는 길에 점원이 말했다. “화상은 저를 위해서 어서 말하세요. 말하지 않으면 화상을 때리겠습니다.” 도오화상이 말했다. “때릴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할 수 없다.” 점원은 곧장 후려 쳤다. 그 뒤에 도오화상이 입적하자 점원은 석상화상께 가서 이 이야기를 했다. 석상화상은 말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점원이 말했다. “어째서 말할 수 없습니까?” 석상화상이 말했다.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어.” 점원은 그 말을 듣고 곧장 깨달았다.
점원은 어느 날 삽을 들고 법당 안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고가자, 석상화상이 말했다. “무엇하는가?” 점원은 말했다. “스승(先師)의 영골(靈骨)을 찾습니다.” 석상화상이 말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파도가 까마득히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스승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인가?” 설두가 착어했다. “아이고! 아이고!”점원이 말했다. “온 힘을 다해서 부딪쳐 봅니다.” 태원의 부상좌가 말했다. “스승의 영골이 아직 남아 있네.”)

[송]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네
가는 털도 끊겨서
산고 같구나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하늘 닿는 흰 물결에 어디서 찾으랴
찾을 곳이 없어라
서천으로 돌아가다 잃어버린 신박 한 짝

 

*이 일단의 선문답은 {조당집} 제6권, {전등록} 제15권 점원장에 전하고 있는데, 이야기는 약간 다르다.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화상은 약산유엄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로서 그의 전기는 {조당집} 제5권, {전등록} 제14권, {송고승전} 제11권 등에 전하고 있다. 점원중흥(漸源仲興)선사에 대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지만, 도오화상의 법을 이은 선승이다.

[第055則]不道不道
〈垂示〉垂示云。穩密全眞。當頭取證。涉流轉物。直下承當。向擊石火閃電光中。坐斷[言+肴]訛。於據虎頭收虎尾處。壁立千仞。則且置。放一線道。還有爲人處也無。試擧看。
〈本則〉擧。道吾與漸源至一家弔慰。源拍棺云。生邪死邪。吾云。生也不道。死也不道。源云。爲什麽不道。吾云。不道不道。回至中路。源云。和尙快與某甲道。若不道。打和尙去也。吾云。打卽任打。道卽不道。源便打。後道吾遷化。源到石霜擧似前話。霜云。生也不道。死也不道。源云。爲什麽不道。霜云。不道不道。源於言下有省。源一日將鍬子。於法堂上。從東過西。從西過東。霜云。作什麽。源云。覓先師靈骨。霜云。洪波浩渺白浪滔天。覓什麽先師靈骨。源云。正好著力。太原孚云。先師靈骨猶在。
〈頌〉免馬有角。牛羊無角。絶毫絶氂。如山如嶽。黃金靈骨今猶在。白浪滔天何處著。無處著。隻履西歸曾失卻。

 

[제056칙] 일족파삼관(一鏃破三關. 화살 한대로 세 관문을 깨면) - 흠산화상의 화살 일촉(一鏃)
“선승 흉내낸다고 깨달음의 세 관문 통과 못해”

[수시]
모든 부처님이 일찍이 세상에 출현하였으나 사람에게 한 법도 전해 준 적이 없으며, 조사도
일찍이 서쪽에서 왔으나 마음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리며,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하나의 대사인연도 일천 성인이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느냐? 만일 통달하지 못했다면
갈등의 소굴 속에서 알아차리도록 하여라.

[본칙]
거양선객이 흠산스님에게 물었다.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을 때는 어떠합니까?"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내놓아 보아라."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지요."
"당장에 고쳐봐라."
"화살은 잘 쏘셨는데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거양선객이 바로 나가버리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잠깐!"
거양선객이 머리를 돌리자, 흠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하는 것은 그만두고 저 흠산에다 화살을 쏘아보아라."
거양선객이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자, 흠산스님이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송]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니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마라
눈을 보호하려 하면 반드시 귀를 먹고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멀게 될 터
화살 한 대가 세 관문을 깨부수니
화살이 지난 뒷길 또렷또렷 분명하네
그대는 듣지 못하였나
현사스님 하신 말
"대장부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이미 마음으로 조종을 삼는다."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17권 흠산화상전에 보인다. 흠산문수(文邃)화상은 동산양개화상의 법을 이었으며, 풍주 흠산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인데,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설봉의존과 암두전활, 세 사람이 도반이 되어 제방의 선지식을 참문하다 오산에서 설봉이 깨닫고 성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흠산화상에게 질문을 한 거양선객에 대해서도 전연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행각수행하는 무명의 선승이리라.

[第056則]一鏃破三關
〈垂示〉垂示云。諸佛不曾出世。亦無一法與人。祖師不曾西來。未嘗以心傳授。自是時人不了。向外馳求。殊不知自己脚跟下。一段大事因緣。千聖亦摸索不著。只如今見不見聞不聞。說不說知不知。從什麽處得來。若未能洞達。且向葛藤窟裏會取。試擧看。
〈本則〉擧。良禪客問欽山。一鏃破三關時如何。山云。放出關中主看。良云。恁麽則知過必改。山云。更待何時。良云。好箭放不著所在便出。山云。且來闍黎。良回首。山把住云。一鏃破三關卽且止。試與欽山發箭看。良擬議。山打七棒云。且聽這漢疑三十年。
〈頌〉與君放出關中主。放箭之徒莫莽鹵。取箇眼兮耳必聾。捨箇耳兮目雙瞽。可鄰一鏃破三關。的的分明箭後路。君不見。玄沙有言兮。大丈夫先天爲心祖。

 

[제057칙] 처시간택(處是揀擇. 어느 것이 간택이냐) - 조주화상과 간택하지 않음
“차별심만 없어지면 지극한 道의 경지 체득”

[수시]
깨닫기 이전에도 은산철벽 같지만 깨달은 뒤에도 본래의 자기는 그대로 원래 은산철벽이다.
어떤 사람이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말할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기틀을
내보일 수 있고, 한 경계를 살필 줄 알며, 핵심되는 길목을 꽉 틀어막고 범부도 성인도 어쩌지
못하는 경지라 하더라도 특별할 것은 없다.' 그렇지 못하다면 옛사람의 행동을 보도록 하라.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간택을 그만두면 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니라."
"이것도 오히려 간택입니다."
"야, 이놈아!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냐?"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송]
바다처럼 깊고
산 같이 견고하네
등에와 모기 사나운 바람 부리고
땅강아지와 개미가 무쇠기둥 흔드네
간택함이여!
난간에 매단 헝겊북이로구나

*본칙의 선문답은 {신심명}의 첫 구절을 인용하여 선문답의 주제로 삼고 조주화상에게 질문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벽암록} 제2칙에도 {신심명}의 '지도무난(至道無難)'을 화제로 선문답을 한 공안을 제시하였고, 또한 58칙, 59칙에도 똑같이 {신심명}의 '지도무난(至道無難)'을 주제로 한 선문답을 {조주록}에서 인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第057則]處是揀擇
〈垂示〉垂示云。未透得已前。一似銀山鐵壁。及乎透得了。自己元來是鐵壁銀山。或有人問且作麽生。但向他道。若尙箇裏。露得一機。看得一境。坐斷要津不通凡聖。未爲分外。苟或未然。看取古人樣子。
〈本則〉擧。僧問趙州。至道無難唯嫌揀擇。如何是不揀擇。州云。天上天下唯我獨尊。僧云。此猶是揀擇。州云。田厙奴。什麽處是揀擇。僧無語。
〈頌〉似海之深。如山之固。蚊虻弄空裏猛風。螻蟻撼於鐵柱。揀兮擇兮。當軒布鼓。

 

[제058칙] 오비토주(烏飛免走.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린다) - 조주화상과 지도무난(至道無難)의 함정
“깨달음 경지는 시방세계에 두루 있어”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국한 도는 어려움이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에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전에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으나 5년이 지났어도 잘 모르겠다."

[송]
코끼리 기재개 켜고 사자는 포효하네
알아낼 수 없는 맛의 말이여
사람의 입을 꽉 막아버렸네
남북동서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네

 

*본칙의 주제도 {신심명}의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인데, {벽암록}에 세 번째 등장한다. 조주화상은 {신심명}의 이 말을 많이 인용하여 학인들에게 법문을 하였다. 그래서 당시 문하의 제자들과 선승들이 조주화상을 찾아와서 {신심명}의 대표적인 말을 인용하여 조주화상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찾아와서 "화상은 {신심명}에서 주장하는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오직 간택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여 법문을 하고 있는데, 요즘 사람이 이 말에 너무 빠져 집착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였다. 

[第058則]烏飛免走
〈本則〉擧。僧問趙州。至道無難唯嫌揀擇。是時人窠窟否。州云。曾有人問我。直得五年分疏不下。
〈頌〉象王嚬呻。獅子哮吼。無味之談。塞斷人口。南北東西。烏飛免走。

 

[제059칙] 유혐간택(唯嫌揀擇.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 - 조주화상과 지도무난(至道無難) 법문
“앎이 아닌 실천적 삶으로 분별심 버려라”

[수시]
하늘을 두루고 땅을 감싸며 성인을 뛰어넘고 범부를 뛰어넘으니 백 가지 풀 끝에서 열반의
오묘한 마음을 보이고 창칼이 오가는 와중에서 납승의 목숨을 심사한다. 말해 보아라. 이는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에 이처럼 할 수 있었는가를 ...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말을 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간택인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시겠습니까?"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제가 여기까지 밖에 못 외웁니다."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니라."

[송]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바람으로 날릴 수도 없네
호랑이가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귀신이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짖네
머리가 세 척인 줄 그 누가 알리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로 서 있네

 

*본칙의 공안도 {조주록} 상권에 의거하고 있는데, 역시 조주화상이 {신심명}의 주제를 인용하여 자주 설법한 것을 문제로 하여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단지 간택하는 마음이 없으면 된다"라고 하였지만,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곧바로 지도의 경지와는 반대인 취사선택하고 분별하는 간택에 떨어지게 되는데, 화상께서는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을 지도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조주화상은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하게 되면 취사 분별심에 떨어지게 된다"라고 설한 것처럼, 깨달음의 경지는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경지(言語道斷)이며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이다. 개념화된 언어로 표현하면 벌써 깨달음의 경지를 대상화하여 설명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심과 분별심인 간택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第059則]唯嫌揀擇
〈垂示〉垂示云。該天括地。越聖超凡。百草頭上指出涅槃妙心。干戈叢裏點定衲僧命脈。且道承箇什麽人恩力。便得恁麽。試擧看。
〈本則〉擧。僧問趙州。至道無難。唯嫌揀擇。纔有語言是揀擇。和尙如何爲人。州云。何不引盡這語。僧云。某甲只念到這裏。州云。只這至道無難唯嫌揀擇。
〈頌〉水灑不著。風吹不入。虎步龍行。鬼號神泣。頭長三尺知是誰。相對無言獨足立。

 

[제060칙] 주장탄건곤(拄杖呑乾坤. 주장이 천지를 삼키니) - 운문화상의 주장자
“산하대지는 곧 '나'…다른 데서 찾지 말라”

[수시]
부처와 중생은 본디 차이가 없는데 산하와 자기가 어찌 차등이 있겠느냐"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냐? 만일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며 요새가 되는 
길목을 꽉 틀어막는다면 조금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수하지 않는다면 온 세상
어디에서라도 조금도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는
것이냐?

[본칙]
운문스님이 주장자를 가지고 대중에게 설하였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천지를 삼켜버렸으니,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느냐?"

[송]
주장자가 건곤을 삼키나니
복사꽃 지는 물결 말해 무엇하리
꼬리를 태운 놈도 구름 안개 못 잡으니
부레 말리는 놈 되었다 어찌 정신 잃을쏘냐
이로써 법문은 다하였거니
들었느냐, 못들었느냐
깨끗하여 말쑥해야 하니
다시는 어지럽게 하지 말아라
일흔두 방망이도 가벼운 용서이니
백오십 방망이 쳐 용서해주기 어렵다.
갑자기 설두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법좌에서 내려오니, 대중들이 모두 흩어졌다.

 

*운문화상의 법문은 {운문광록} 중권에 수록하고 있다. 운문종의 조사인 운문화상은 설봉의존의 법을 이은 당말의 선승으로 {벽암록} 제6칙의 '날마다 좋은 날'을 비롯해 18회나 등장하고 있다. 운문화상이 어느 날 법당에서 주장자를 들고 대중에게 법문한 것이다. 주장자는 선승이 항상 몸에 지니는 7가지 생활도구의 하나로서 길이가 7척 정도의 나무지팡이다. 원오는 운문화상이 주장자를 잘 사용하는 선승으로 평가하며, 임기응변에 능숙하고 자유자재한 작가로 학인들을 움켜쥐고(把住) 놓아주는(放行) 교화수단과 중생들의 번뇌 망념을 차단하는 방편의 지혜(殺人刀)와 지혜작용을 발휘하게 하는 수단(活人劍)도 뛰어나다고 착어하고 있다. {벽암록} 22칙에 설봉화상이 남산의 맹독을 가진 독사를 대중에게 제시하였을 때 운문은 주장자를 들고서 응답하고 있다.

[第060則]拄杖呑乾坤
〈垂示〉垂示云。諸佛衆生本來無異。山河自己寧有等差。爲什麽卻渾成兩邊去也。若能撥轉話頭。坐斷要津。放過卽不可。若不放過。盡大地不消一掜。且作麽生是撥轉話頭處。試擧看。
〈本則〉擧。雲門以拄杖示衆云。拄杖子化爲龍。呑卻乾坤了也。山河大地甚處得來。
〈頌〉拄杖子呑乾坤。徒說桃花浪奔。燒尾者不在拏雲攫霧。曝腮者何必喪膽亡魂。拈了也。聞不聞。直須灑灑落落。休更紛紛紜紜。七十二棒且輕恕。一百五十難放君。師驀拈拄杖下座。大衆一時走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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