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재가불자의 조건

실론섬 2014. 3. 22. 15:35

불교에서 말하는 재가신자(우바이. 우바새)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참다운 재가 신자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있다. 빠알리어 니까야에는 [앙굿따라니까야 A.25, 마하나마경]이며 같은 내용으로 [잡하함경 929. 일체사경(一切事經)]이 있다.

 

간단하게 내용을 알아보자. 하마나마라는 재가신자가 붓다를 찾아와 재가불자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신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을 가리켜 재가신자라 합니까?"

"집에서 청정하게 살면서 '목숨을 마칠 때 까지 삼보에 귀의하는 우바새(우바이)가 되겠습니다. 이를 증명하여 주십시오' 라고 다짐한 사람들을 말한다."

"세존이여, 어떤 것을 모든 우바이(우바새)가 원만하게 조건을 갖춘 것이라고 합니까?"

"마하나마여, 다음과 같은 열여섯 가지 조건을 원만하게 갖추어야 참다운 우바이(우바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고  (2) 그것을 다른 사람도 가지도록 한다.
(3) 스스로도 깨끗한 계를 가지고(도덕적 삶의 확립) (4) 다른 사람에게도 깨끗한 계를 가지도록 한다.
(5) 스스로도 보시를 행하고 (6)다른 사람도 보시를 행하게 한다.

(7) 스스로도 절에 자주 나아가 불교를 배우고 모든 사문을 뵙고 (8) 다른 사람도 절에 자주 가서 법을 배우고 사문을 뵙게 한다.
(9) 스스로도 열심히 법을 듣고 (10) 다른 사람도 열심히 법을 듣게 한다.
(11)스스로도 항상 바른 법만을 받아 지니고 (12) 다른 사람도 항상 바른 법만을 받아 지니게 한다.
(13) 스스로도 이치를 관찰하고 (14) 다른 사람도 관찰하게 한다. (자신이 받아 지닌 법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그 뜻을 깊이 관찰해야 한다)
(15) 스스로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실천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고 (16) 다른 사람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실천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한다.

 

(믿음갖춤(具足正信), 계율갖춤(自持淨戒), 보시갖춤(自行布施), 절에 나가 사문을 뵙는다(自詣塔寺見諸沙門), 열심히 바른 법을 듣는다(自專聽法), 법을 듣고 잘 간직한다(聞法自持)
, 법의 의미를 관찰한다(自能觀察甚深妙義), 법을 알고 법에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행하다(自知深法能隨順行法次法向 , atthamaññāya dhammamaññāya dhammānudhammappaṭipanno)

 

마하나마여, 만일 우바새(우바이)가 이와 같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저 대중들, 즉 바라문 대중·
찰리(刹利) 대중·장자(長者) 대중·사문 대중들이 다 그에게 모일 것이요, 그 대중 가운데서 위엄과
덕망이 환하게 빛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태양은 처음 떠오를 때나 중간이나 마지막에 질 때도 그 광명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우바새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 사람도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까지 위엄과 덕망이 밝게 빛날 것이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우바새가 열 여섯 가지 법을 다 성취한 사람은 세간에 그리 흔하지 않느니라."

 

붓다의 말씀처럼 세간을 살면서 위의 열여섯가지를 원만하게 성취한 불제자들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붓다께서는 16가지 덕목을 갖추도록 노력하라고 격려하고 계시다. 우리가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는 이유도 위의 16가지에 그 이유가 모두 나와있다. 불자라면 불법을 올바르게 알리고 타인에게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홀로 고고한척 성인군자인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삼보에 귀의하지 않아 믿음이 없는 사람, 수계를 받지 않아 법명이 없는 사람, 절에 가지 않는 사람, 보시를 하지 않고, 불법을 전하지 않는 사람, 삿된 법을 믿으며 실천행에 게으른 사람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귀담아 들을려고도 안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애초부터 불자가 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카페나 블로그등에서 한가롭게 노닐거나 분탕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은 수계는 했을까, 법명은 있을까, 일년에 한번이라도  절에 갈까, 삼보에 귀의는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마도 내 생각이 틀림없다면 일부 사람들은 법명은 고사하고 일년에 한번도 절에 가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면서 불교 카페나 블로그에 와서 불자 노릇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갈곳이 없으면 불자도 아니면서 불교 카페나 블로그에서 놀까? 전생의 업이란 참 무서운 것이긴 한가 보다. 인연이 닿아 불교 카페나 블로그에 왔으면 지금이라도 수계를 받고 제대로 된 우바이(우바새)가 되도록 하면 좋을텐데... 자업자득이니 남이 뭐라고 할게 없는 것 같다.

 

또한 경전은 자신은 이롭게 하지만 남을 이롭게 하지 않는 것도 진정한 불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1) 어떤 우바새(優婆塞)는 스스로의 도덕적인 삶(戒)은 확립되었지만, 남을 위해 바른 도덕적 삶(正戒)이 되도록 하지 않는다.

(2) 스스로는 깨끗한 도덕적인 삶(淨戒)이 확립되었지만, 남도 구족(具足)하게 하지는 않는다. 
(3) 스스로는 보시(布施)를 행하지만, 남이 보시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4) 스스로는 (절에 나가) 불교를 접하고 나아가 여러 스님들을 뵈옵지만, 남을 권하여 불교에 접하게 하거나 스님들을 뵈옵게 하지는 않는다.

(5) 스스로는 열심히 법을 듣지만, 남을 권해 바른 법을 즐겨 듣게 하지는 않는다.

(6) 스스로는 법을 들어 가지면서도, 남이 바른 법을 받아 가지도록 하지는 않는다.
(7) 스스로는 매우 깊고 묘한 이치를 관찰하지만, 남이 깊은 뜻을 관찰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8) 스스로는 깊은 법을 알아 법에 따르고 향하지만, 남을 권하여 법을 따르고 향하게 하지는 않는다.

 

경전이기에 좋은 말로 표현을 하여 놓았지만 쉽게 말해서 카페나 블로그 오픈을 해 놓고 외도들이나 비불교들이 와서 분탕질을 하고 불법을 왜곡해도 그들이 내뱉는 쓰레기 같은 말이 자신을 공경하고 높여주는 줄 착각하여 감싸고 골목대장 노릇하면서 똘만이로 데리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카페나 블로그의 주인이 외도를 정법의 길로 인도하는게 아니라 그 자신 스스로가 외도들과 함께 삿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16가지를 구족한 원만한 불제자가 아니다 하더라도 적어도 외도들을 이롭게하는 삿된 길을 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외도와 다를바가 없다. 불교를 진정으로 파괴하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들은 바로 불교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