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불교의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실론섬 2014. 3. 20. 20:52

합장 하옵고...()...

 

세상사는 곳이라면 그리고 범부 중생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 모습 그 모양은 모두다 같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깨달음의 법문을 듣고 불교 공부를 하기 위해서 모인 모임이 파벌과 시기 질투 이기심 그리고 소유욕등을 스스로 버리지 못함으로서 일어나는 모습에 저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승가의 모임(재가자의 모임)에 대해서 "세상에서 잘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모임이며, 올바르게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모임이며, 지혜롭게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모임이며,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모임이며, ...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불교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대답이라 생각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매모호하고 딱 부러지지는 못할 망정 도대체 불교에서 믿음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의 확실한 신념과 확고한 이해가 없다면 이는 첫단추를 잘못 끼우는 우를 범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들은 주변에서 믿음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실천함으로서 보여지는 추한 모습들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일단 믿음이란 것을 설명 드리기 전에 佛道 (불도) 란 무엇인가를 설명 드리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불교의 道(도. 길) 이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걸어 가는 길, 걸어가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길,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 이란 의미 입니다. 그럼으로 불도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길이 아니며 또한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그런 길이 절대로 아닙니다.

 

즉 반드시 우리가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부처님이 앞서 걸어 가시면서 미혹한 중생들을 위해서 대자비심의 마음으로 남겨 놓은신 발자욱인 것 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시며 이세상 어느 분 보다 훌륭하시며 그분의 가르침은온 우주를 채우고도 남는 것 입니다.

 

용수의 대지도론에 보면 "불교라는 큰바다는(가르침이 무한무량하기 때문에 강물이나 호수에 비유치 않고 大海에 비유를 했음) 믿음으로써 능히 들어간다" 라는 유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불교라는 대해에 들어갈 수도 그리고 건너갈 수도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조건적이고 맹신적인 믿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佛道 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전도되지 않을려면 마음이 淸淨(맑을 청. 깨끗할 정) 해야 합니다. 또한 청정한 마음이란 절대자에 대한 절대의존의 마음(타종교 처럼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청정한 마음과 믿음이란 佛道 에 대해서 진실, 진심, 성실, 순수, 신뢰 등등의 뜻을 말하는 것 입니다.이러한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접하면 반드시 불도를 철저하게 믿게 되고어떠한 외부나 내부의 소리에도 미혹되지 않게 되며 전도된 마음을 가지게 되지도 않게 됩니다.

 

우리는 불도를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게 어떤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가지고 믿거나 아니면 내 스스로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믿는다면 불법이라는 대해에는 절대로 들어설 수 없다는 가르침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이러한 청정한 마음으로 불도를 믿지 않기에 생기는 온갖 불미스러운 현상들을 볼 때 옛 스승님들의 가르침이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 현실 입니다.

 

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남방불교에서는 이러한 불도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알려 드리는것도 도움이 될 듯해서 글이 길어 지는 것을 무릅쓰고 올려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 시피 불교는 자각의 종교이며 스스로 깨다는 종교이며 절대로 강제적으로 폭력을 동원하여 믿음을 강요치도 않으며 절대신을 내세워 무조건적인 맹신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의미를 더더욱 중요하게 가슴에 새기고 제대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 입니다.

 

남방불교의 유명한 라훌라 스님께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을 완전히, 그리고 확고하게 납득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대한 의문은 보지 못 하였을 때 일어 납니다. 여기서 본다(see)는 말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의미 그 자체 입니다. 즉 우리는 보는 순간 믿음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손에 보석을 쥐어 감추고 나서 님에게 내 손안에 보석이 있다고 말하면 님은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반시반의 하거나 또는 의구심이  일어날 것 이니다. 그러나 제가 손을 펴서 보석을 보여 준다면 님은 스스로 그것을 보게 되어 더이상 의문이나 의구심을 일으키지 않을것 입니다.

 

다시말씀드리자면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눈으로)보다, 이해하고 인식하다, 알아내다, 깨닫다, 경험하다, 만나다 등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는  "나는  더러움과 오염의 파괴는 아는 이와 보는 이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며, 알지 못하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것이라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 진리란 언제나 알고 보는 것이 관건이고 중요한 것이지 믿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와서  보라'(ehi-passika)고 당신에게  권하는데 한정될 뿐이고 와서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불경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언급할 때  언제나 사용하는 표현은 " 때와 더러움이 없는  "진리의 눈"(Dhamma-cakkhu;法眼)이 뜨였다", 그는 진리를 보았다, 진리를 얻었다, 진리를 알았다, 진리를 꿰뚫었다, 의심을 극복하였다,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바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yathabhutam;如實)  본다" 라고 표현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은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알아채고 또는 지혜(nana-dassana;智見)로써 보는 것이지 신앙으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초발심이 곧 성불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말의 의미는 우리가 처음으로 불교의 가르침(佛道)에 흥미를 가지고 또 배우기 위해서 마음을 내어(발심 하는 것) 경전을 보거나 사찰을 찾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숨어 있던 부처님의 음성이 들려 왔고 또한 나를 깨웠기 때문 입니다.


이는 중생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佛性(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이 과거 몇십억겁의 시간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현생에 와서 비로소 부처님의 마음의 씨앗이  싹이 트고 나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심을 하게 되고 내 마음이 움직이고 부처님을 찾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된다고 보는 것 입니다. 부디 내마음속에 싹을 틔운 불성의 씨앗을 올바른 불도에 대한 믿음으로 잘 키우시길 합장 합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다 불성의 씨앗을 현생에서 발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불법을 만나지 못한 인연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고통의 육도윤회를 방황 할지 모릅니다. 또한 청정한 믿음으로 불도를 닦아 나간다면 신도회 내부의 갈등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고 또한 나약해 지는 스스로의 마음을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