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당하는 죽음보다 준비된 죽음을

실론섬 2014. 3. 22. 18:24

맛지마 니까야에 나와 있는 Devaduta sutta. 천신 심부름경)은 아함경 증지부경전의 64 천사경(天使經)과 내용이 일치한다. 또한 아함경 증지부 경전 34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는 노(老) 병(病) 사(死)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 경전의 가르침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어떤  중생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신구의 삼업) 악행을 저지르고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소견을 버리지 않거나 , 또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사문을 존경하지 않으며 복업을 짓지 않으며 후세의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것으로 인하여 몸이 무너져 묵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그리고 중생이 악처에 떨어지기 전에 염라왕은 다섯천사를 보내어 그를 훈계하고 꾸짖는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보고 악행을 짓지 않고 선행을 쌓음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에 올라 천상에 태어난다."

 

경전은 악행을 하여 지옥에 떨어진 중생에게 미리 다섯명의 천사를 보내어 선행을 하게끔 훈계하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다섯천사를 보질 못하였는가? 라고 꾸짖는다. 중생은 그 다섯천사를 보질 못하였다고 하자 아래와 같이 다섯명의 천사를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리석어서 천사들을 보질 못한 것이다.

 

다섯 천사란 무엇인가?

 

첫번째 : 부모 (生) 이다.

"너는 일찍이  어떤 마을에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직 어리고 약해서 자신의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버둥거린다. 아는 것도 없고 말도 제대로 못한다. 그때 부모는 아이가 싸놓은 똥오줌 가운데서 안아 일으켜 목욕시키고 깨끗하게 해주는 것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너는 그뒤에 그것을 보고 알았을 때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즉 [나는 스스로 태어나는 법이 있어 태어남(生)을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일을 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짓자]라고. 그렇게하지 않고 방일하고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갚음을 받을 것이다."

 

두 번째 천사는 노인(老)이다. 

"너는 어떤 마을에서 남자와 여자가 매우 늙어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고 허리는 굽고 지팡이를 의지해 걸어가면서 몸을 벌벌 떠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는가?" " 보았습니다." "너는 그뒤에 그것을 보고 알았을 때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즉 [나는 스스로 늙어야 하는 법이 있어 , 결코 늙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일을 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짓자]라고. 그렇게하지 않고 방일하고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갚음을 받을 것이다." 

 

세 번째 천사는 병자(病)이다. 

"너는 어떤  마을에서 남자나 혹은 여자로서 병이들어 몸은 지극히 괴롭고 위독하여 침대나 땅바닥에 누우며 사랑하는 사람도 기억하지 못할만큼 목숨을 재촉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 보았습니다." "너는 그뒤에 그것을 보고 알았을 때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즉 [나는 스스로 병드는 법에 있어 결코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일을 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짓자.]라고. 그렇게하지 않고 방일하고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갚음을 받을 것이다." 

 

네 번째 천사는 시체(死)이다. 

"너는 일찍이 어떤 마을에서 남자나 여자가 죽었을 때에 하루 이틀, 또는 6, 7일이 지나 육신이 썩기 시작하거나 까마귀와 솔개에게 쪼이고 승냥이에게 먹히며 혹은 불에 태워지거나 땅에 묻히거나 허물어져 썩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 보았습니다." "너는 그뒤에 그것을 보고 알았을 때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즉 [나는 스스로 죽는 법이 있어 결코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착한 일을 하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짓자.]라고. 그렇게하지 않고 방일하고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갚음을 받을 것이다." 

 

다석 번째 천사는 감옥의 죄수다 (악한 업을 짓고 그 댓가를 받는 자). 

"너는 일찍 왕의 신하가 죄를 지은 사람을 잡아다가 죄를 다스릴 때, 손발이 절단되기도 하며 귀와 코를 베고 살을 저미며 수염과 머리를 뽑히기도 한다. 불에 지지며 날카로운 쇠 평상에 눕히거나 거꾸로 매달거나 혹은 목을 베기도 하며 나무에 매달기도 하는등 온갖 형벌을 가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 보았습니다." "너는 그뒤에 그것을 보고 알았을 때 어찌하여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느냐. 즉 [나는 현재에 악하고 불선한 법을 본다]라고. 너의 이 악행은 부모가 한 일도 아니고 왕이 한 일도 아니며 사문이나 바라문이 한 일도 아니다. 스스로가 본래 악하고 불선한 업을 지었으니 마땅히 갚음을 받을 것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은 늘 우리곁에서 지금도 훈계와 꾸지람과 가르침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생들은 이러한 천사들을 못 보는 어리석음도 문제이지만 설사 그런 천사들을 목격하면서도 삶에서 절실히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 범부들의 비극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어찌 할바를 몰라서 울부짖고 몸부림친다.

 

중생들이 지옥과 천상을 믿느냐 안믿느냐에 대해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만약에 어떤 중생이 지옥과 천상이 없다고 믿고 현생에서 악행을 짓고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그는 현생과 내생 두 세상을 모두 잃어 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몸이 부서져 죽은 후 막상 지옥과 천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현생에서 현자들에게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현생을 잃어 버린 것이 된다. 막상 죽어서 지옥과 천상이 있어 그가 지옥에 태어난다면 그는 현생에서 비난을 받았고 죽어서 지옥에 태어났으니 두 세상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된다.

 

만약에 어떤 중생이 지옥과 천상이 있다고 믿고 현생에서 선행을 하고 공덕을 쌓았다면 그는 현생과 내생을  두 가지를 모두 얻는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몸이 부서져 죽은 후 막상 지옥과 천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현생에서 현자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니 현생을 얻은 것이 된다.  막상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다면 그는 현생에서 칭송을 받았고 죽어서 천상에 태어났으니 두 세상을 모두 얻은 것이 된다."

 

위의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현생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현생을 올바르게 살고 공덕을 쌓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 죽음은 내생에 보다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는 또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니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는 두 세상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생에서 악행을 거듭한 삶이라면 막상 죽음이 닥쳐 왔을 때 그는 두려움에 떨며 몸부림 칠 것이다. 그는 이미 두 세상을 모두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불교의 윤회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이란 또다른 태어남에 불과하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문을 양쪽으로 닫고 열 수 있는 벽을 한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두개의 방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왼쪽 방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간다고 하겠지만 오른쪽 방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오른쪽 사람이 문을 열고 왼쪽 방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죽음과 삶은 별도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