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2상윳따 - 신의 아들 상윳따(Devaputta samyutta. SN2:1-SN2:30)

실론섬 2014. 4. 23. 14:20

                
제2주제(S2) 신의 아들 상윳따 
Devaputta-saṁyutta   


제1장 첫 번째 품
Pathama-vagga

 

pathamakassapasuttam (SN 2.1-깟사빠 경1)
8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신의 아들 깟사빠가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깟사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비구란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여주셨지만, 비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르침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깟사빠여, 그렇다면 그대가 지금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보라.”   

“비구는 잘 설해진 가르침대로   
 사문의 본분 그대로 
 한적한 곳에서 홀로 머물며
 그리고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정진하여야 합니다.”   

신의 아들 깟사빠는 이렇게 말하였고 스승께서는 그의 말에 동의하셨다. 그러자 신의 아들 깟사빠는 ‘스승께서는 나의 말에 동의하셨다.’
라면서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사라졌다.

 

dutiyakassapasuttam (SN 2.2-깟사빠 경2) 

83.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깟사빠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비구가 만약에 마음의 증득(성취)을 바라여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정진한다면
그는 명상에 드는 사람
마음이 해탈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서
고결한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māghasuttam (SN 2.3-마가 경)  

84.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마가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마가]

무엇을 끊은 뒤에 편히 잠들고, 무엇을 끊고 나면 슬퍼하지 않습니까?
어떤 하나의 법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고따마시여?   

[세존]
성냄을 끊은 뒤에 편히 잠들고, 성냄을 끊고 나면 슬퍼지 않다.
천신이여, 성자는 뿌리에 독이 있고, 꼭대기에 꿀이 있는
이런 성냄을 죽이는 것을 칭송한다. 참으로 그것을 끊고 나면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māgadhasuttam (SN 2.4.-마가다 경) 

85.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마가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마가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광채가 있어
그것으로 세상이 빛이 납니까?
세존께 여쭙기 위해 왔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세존]
세상에는 네 가지 광채가 있다. 
다섯 번째 광채란 존재하지 않는다.
낮에는 저 태양이 빛나고 있고
밤에는 저 달 역시 비추고 있다.   

불이 있어 밤낮없이 빛을 발하고
완전하게 깨달은 그 분이야말로(정등각자)
빛나는 것 가운데 으뜸이니
이 광명은 위없는 밝은 것이다.


다말리 경(S2:5)
dāmalisuttam (SN 2.5-다말리 경)

86.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다말리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다말리]
쉼 없이 노력하고 욕망(감각적 쾌락) 모두 다 버려서
존재의 생성을 기대하지 않아야 하오니
바라문은 이처럼 행해야만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말리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은 더 이상 해야 할 일 없으니
바라문은 해야 할 바 모두 했기 때문이다.
거센 물결에 흘러 가면서 발판 얻기 전에는
물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발판 얻어 땅 위에 이미 올라선 자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게 되니
그는 이미 저 언덕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다말리여, 내가 설한 이런 비유는
번뇌 모두 다하고 사려(분별력 있는)도 깊은
선정수행하는 바라문 위한 것이다.
태어남∙죽음의 끝에 이미 도달한
그는 이미 저 언덕에 도달하여서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는다.

 

kāmadasuttam (SN 2.6-까마다 경) 

87.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까마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존께서는 “까마다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그들 계율을 갖추고 선정이 확고한 비구들은 
  행하기 어려운 것 능히 행하니
  출가를 감행한 사람에게
  크나 큰 행복을 실어 나른다.”

“세존이시여, 만족이라는 것은 얻기가 어렵습니다.”


 세존께서는 “까마다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에서 기뻐하는(즐거워) 사람
  스스로의 마음이 정진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은 
  얻기가 어려운 것 능히 얻게 되니
  그들 마음 밤낮으로 정진을 기뻐한다.”   

“세존이시여, 마음이라는 것은 고요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존께서는 “까마다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감각기능(根)을 고요히 하는 것에서 기뻐하는 성자들은
  집중하기 어려운 마음 잘 집중하며
  거룩한 이들은 죽음의 그물을 잘라버리고 자신의 길을 간다.”   

“세존이시여, 길은 가기 어렵고 평탄하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까마다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성자들은 가기가 정말 어렵고 평탄치 못한 길도 걸어가지만
  비천한 이들은 평탄치 못한 길에서 머리부터 꺾이어 넘어진다.
  성자들에게 이 길은 평탄하나니(거룩한 이들이 가는 길은 평탄하니)
  성자들은 평탄치 못한 [중생들] 가운데서 평탄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pañcālacaṇḍasuttam (SN 2.7-빤짤라짠다 경) 

88.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빤짤라짠다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널리 지혜를 갖추신 분은 구속(속박.번뇌) 가운데서도
 출구를 찾으셨으며
 그분은 선정을 찾으신 분
 세속을 떠난 영웅이요 성자입니다.”   

세존께서는 “빤짤라짠다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구속 가운데서도 그들은 분명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법을 얻는다.
  그들은 마음 챙김을 구족하여
  바르게 삼매에 잘 들었다.”


tāyanasuttam (SN 2.8-따야나 경)

89.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따야나는 세존께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바라문이시여, 정진하여 갈애의 흐름을 끊고
 감각적 쾌락을 떠나야 합니다.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지 못하면
 성자도 선정을 증득하지 못합니다. 

 해야 할 것을 하고자 한다면
 마음을 굳게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집을 나온 출가자가 부주의하고 게으르면
 다시 먼지를 뒤집어 쓰기 때문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잘못 행한 것보다 나으니
 잘못 행한 것은 나중에 자신을 태웁니다.
 행한다면 잘 행하는 그것이 나으니(행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면 태울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꾸사 풀을 잘못 잡아
 손이 베어 낭패를 당하듯이
 사문 생활 자칫 잘못 거머쥐어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게 됩니다.   

 게으른 행위
 삿된 바램 
 의심 가는 청정범행은 (의심을 가져오는 청정한 삶은)
 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신의 아들 따야나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와 같이 말한 뒤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사라졌다.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난밤에 옛적에 다른 교단의 창시자였던 따야나라는 신의 아들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따야나는 나의 곁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바라문이시여, 정진하여 갈애의 흐름을 끊고
 감각적 쾌락을 떠나야 합니다.
 감각적 쾌락을 제거하지 못하면
 성자도 선정을 증득하지 못하옵니다. 

 해야 할 것을 하고자 한다면
 마음을 굳게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집을 나온 출가자가 부주의하고 게으르면
 다시 먼지를 뒤집어 쓰기 때문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잘못 행한 것보다 나으니
 잘못 행한 것은 나중에 자신을 태웁니다.
 행한다면 잘 행하는 그것이 나으니(행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면 태울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꾸사 풀을 잘못 잡아
 손이 베어 낭패를 당하듯이
 사문 생활 자칫 잘못 거머쥐어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게 됩니다.  

 게으른 행위
 삿된 바램 
 의심 가는 청정범행은 (의심을 가져오는 청정한 삶은)
 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비구들이여, 신의 아들 따야나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와 같이 말하고 나에게 경의를 표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에서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따야나의 게송을 수지하라. 
비구들이여, 따야나의 게송을 외우라. 
비구들이여, 따야나의 게송은 그대들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비구들이여, 따야나의 게송은 청정범행의 시작이니라(거룩한 사람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다).”

 

candimasuttam (SN 2.9-짠디마 경) 

90. 그 무렵 신의 아들 짠디마는 아수라의 왕 라후(rahu)에게 붙잡혔다. 그러자 신의 아들 짠디마는 세존을 계속해서 떠올리면서[隨念] 바로 그 시간에 이 게송을 읊었다.


“세존이시여, 당신께 귀의하옵니다.
 영웅이시여, 당신은 모든 것에서 해탈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구속되어 있사오니(궁지에 빠져 있아오니)
 그런 제게 의지처(피난처)가 되어주소서.”

 

*인도 신화에 의하면 짠디마는 달에 거주하는 신이다. 그리고 짠디마 자체가 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도 신화에서 라후는 월식이나 일식을 의인화한 것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본경에서처럼 불교 신화에도 그대로 채용되었다.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짠디마에 관해 아수라 왕 라후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짠디마는 여래∙아라한에게 귀의했나니
 깨달은 이들(붓다)은 세상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가지니
 라후여, 짠디마를 풀어주라."    

그러자 아수라의 왕인 라후는 신의 아들 짠디마를 풀어준 뒤 황급히 아수라의 또 다른 왕 웨빠찟띠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털이 곤두선 채로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라후에게 아수라 왕 웨빠찟띠는 게송으로 물었다.

[웨빠찟띠]
“라후여, 왜 그대는 황급히 왔는가?
 어찌하여 짠디마를 풀어주었는가?
 그대는 놀란 모습으로 내게 와서는
 어찌 그렇게 두려워 하면서 서 있는가?”

[라후]
“세존의 게송을 듣고서도
 만일 제가 짠디마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저의 머리 일곱 조각났을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에도 편안한 곳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suriyasuttam (SN 2.10-수리야 경) 

91. 그 무렵 신의 아들 수리야가 아수라 왕 라후에게 붙잡혔다. 그러자 신의 아들 수리야는 세존을 계속해서 떠올리면서 바로 그 시간에 이 게송을 읊었다.


“세존이시여, 당신께 귀의하옵니다.
 영웅이시여, 당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구속되어(궁지에 빠졌아오니) 있사옵니다.
 그런 제게 의지처가 되어주소서”

 

*신의 아들 짠디마가 달을 의인화한 것이라면, 여기 신의 아들 수리야는 태양을 의인화한 것이다. 실제로 범어 수리야는 태양을 뜻한다. 본경은 일식을 신의 아들 수리야가 아수라 왕 라후에게 붙잡힌 것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수리야에 관해 아수라 왕 라후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수리야는 여래∙아라한에게 귀의했나니
 라후여, 수리야를 풀어주어라.
 여래.아라한들은 세상을 연민하노라.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저 밝은 태양
 강렬한 불꽃 내는 원반 모양을 하고 있네
 라후여, 허공을 다니면서 그를 삼키지 말라.
 라후여, 나의 후예(아들) 수리야를 풀어 주어라.”   

그러자 아수라의 왕인 라후는 신의 아들 짠디마를 풀어준 뒤 황급히 아수라의 또 다른 왕 웨빠찟띠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털이 곤두선 채로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라후에게 아수라 왕 웨빠찟띠는 게송으로 물었다.   

[웨빠찟띠]
“라후여, 왜 그대는 황급히 왔는가?
 어찌하여 수리야를 풀어주었는가?
 그대는 놀란 모습으로 내게 와서는
 어찌 그렇게 두려워 하면서 서 있는가?”   

[라후]
“세존의 게송을 듣고서도
 만일 제가 짠디마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저의 머리 일곱 조각났을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에도 편안한 곳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2장 아나타삔디카 품
Anāthapiṇḍka-vagga

candimasasuttam (SN 2.11-짠디마사 경)
 

92.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짠디마사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짠다마사]
선정(jhana)을 성취하고서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고
사려 깊고(분별력을 갖추고) 마음챙기는 그러한 분들은
사슴들이 모기 없는 초원에 이르듯
안전한 장소에 도달할 것입니다.

[세존]
선정을 성취하고서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고
방일하지 않고 다툼을 버린 자들은
물고기가 그물에서 저 멀리 벗어나듯
저 언덕에 안전하게 도달할 것이다.

 

veṇhusuttam (SN 2.12-웬후 경) 

93.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짠디마사는 세존의 면전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선서를 섬기는 사람들은
 고따마의 교법(가르침)을 따르려 온 정성을 다 하며
 부지런히 그 가르침을 닦는 
 저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세존께서 “웬후여.”라고 [불러서] 말씀하셨다.

여기 내가 올바른 가르침(정법)을 천명할 때
올바른 시기에 따라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그 가르침에 머물며 정진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다.

 

dīghalaṭṭhisuttam (SN 2.13-디가랏티 경)
94.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디가랏티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비구가 만약에 마음의 증득(성취)을 바라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정진한다면
그는 삼매에 드는 사람
마음이 해탈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서
고결한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nandanasuttam (SN 2.14-난다나 경)
 

95.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난다나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난다나]
고따마시여, 걸림 없는 지와 견을 가지셨고
광대한 지혜를 가지신 세존께 여쭙니다.
어떠한 분을 계를 잘 지닌 자라 부르고
어떠한 분을 지혜를 지닌 자라 부릅니까?
어떠한 분이 괴로움을 초월하여 다니고
어떠한 분에게 신들이 예배합니까?

 

[세존]
계를 지니고 지혜를 갖추고 자신을 닦고(수행으로 갈고 닦은 마음을 지녔으며)
삼매에 들고 마음 챙김을 갖추어
모든 슬픔 여의고 버렸으며 번뇌 다했고
최후의 몸 받은 자 있으니

   
이러한 분을 계를 잘 지닌 자라 부르고
이러한 분을 지혜를 지닌 자라 부른다.
이러한 분은 괴로움을 초월하여 다니고
이러한 분에게 신들은 예배한다.

 

candanasuttam (SN 2.15-짠다나 경)

96.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디가랏티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디가랏티]
여기 누가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서
거센 물살을 모두 다 건널 수 있습니까?
여기 누가 발판 없고 매달릴 곳도 없는
심연에 가라앉지 않겠습니까?

[세존]
항상 계를 갖추고
지혜가 있으며 삼매에 깊이 들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자
건너기 어려운 물살을 건넌다.

감각적 쾌락의 인식을 여의고
물질의 족쇄를 저 멀리 넘어서고
존재[有]에(존재하는 데에서) 대한 즐거움을 멸진해버린(부숴버린) 사람
그는 심연에 가라앉지 않는다.

 

vāsudattasuttaṃ (SN 2.16-와수닷따 경)

97.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와수닷따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와수닷따]
칼이 몸에 닿아진 것처럼
머리에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 위해서
마음챙기는 비구는 유행해야(닦아야) 합니다.

[세존]
칼이 몸에 닿아진 것처럼
머리에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불멸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有身見] 버리기 위해서
마음챙기는 비구는 유행해야 한다.

 

subrahmasuttaṃ (SN 2.17-수브라흐마 경)

98.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수브라흐마가 세존께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수브라흐마]

이 마음은 항상 두려움에 떨고, 이 마음은 항상 동요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이미 일어난 두려움들에 대해
만일 두려움에서 벗어남이 있다면

나의 질문을 받은 분께서는 말씀해주십시오.

[세존]
깨달아야 하는 것 그리고 금욕적인 삶과 다른 곳, 
 감각기능[根]의 단속과 다른 곳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과 다른 곳에서
 나는 살아있는 존재(중생)들의 생명들의 안전을 보지 못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 그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kakudhasuttaṃ (SN 2.18-까꾸다 경)

9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께다에서 안자나 숲의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무렵 신의 아들 까꾸다가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안자나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까꾸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사문이여, 당신은 기뻐합니까(기쁩니까)?”
“도반이여, 무엇을 얻었기에 기뻐하겠습니까(내가 무엇을 얻어서 기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사문이여, 그대는 슬퍼합니까(슬픕니까?)”
“무엇을 잃었기에 슬퍼하겠습니까(내가 무엇을 잃어서 슬프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사문이여, 그대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까꾸다]
비구여 그대는 실망 없는 자이고, 소망이 없습니까?
그대가 홀로 앉아 있을 때에도 불쾌(따분함)에 사로잡히지(뒤덮이지) 않습니까?

[세존]
약카여, 참으로 나는 실망 없는 자이고,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홀로 앉아 있을 때에 불쾌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까꾸다]
비구여, 어떻게 그대는 실망없는 자이고, 소망이 없습니까?
어떻게 홀로 앉아 있는 그대는 불쾌에 사로잡히지 않습니까?   

[세존]
실망이 생긴 자에게 소망이 있고, 소망이 생긴 자에게 실망이 있습니다.
소망 없고 실망 없는 비구는, 도반이여,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까꾸다]
참으로 오랜만에 소망 없고 실망 없는 비구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넌, 완전히 열반한 바라문을 저는 봅니다.

 

uttarasuttaṃ (SN 2.19-웃따라 경)

100. 라자가하에서 설해짐.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웃따라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웃따라]
수명은 짧고, 삶은 휩쓸려 갑니다.

늙음에 휩쓸린 자에게 피난처는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보는 자는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세존]
수명은 짧고, 삶은 휩쓸려 간다. 생명은 덧없고
늙음에 휩쓸린 자에게 피난처는 없다.
죽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보는 자, 평화를 바라는 자는  
세상의 미끼(유혹)를 버려야 한다.

 

anāthapiṇḍikasuttam (SN 2.20-아나타삔디카 경)

10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나타삔디까 천신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아나타삔디까는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여기가 바로 선인의 모임이 의지하는(머무는) 제따 숲
법왕께서 거주하시는 곳, 내게 기쁨(희열)이 생기는 곳

지혜와 법의 업, 계를 갖춘 최상의 삶
이것으로 사람들은 청정해집니다. 가문이나 재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을 보는 현명한 사람
지혜롭게 법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거기에서 청정해 집니다.

지혜와 계와 고요함을 갖춘 사리뿟따가 있으니
저 언덕에 도달한 비구라고 할지라도 오직 그가 최상입니다.


아나타삔디카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와 같이 말한 뒤 그는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서 사라졌다.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난밤에 어떤 천신이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그 천신은 나의 곁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여기가 바로 선인의 모임이 의지하는(머무는) 제따 숲
법왕께서 거주하시는 곳, 내게 기쁨(희열)이 생기는 곳

지혜와 법의 업, 계를 갖춘 최상의 삶
이것으로 사람들은 청정해집니다. 가문이나 재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을 보는 현명한 사람
지혜롭게 법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거기에서 청정해 집니다.

지혜와 계와 고요함을 갖춘 사리뿟따가 있으니
저 언덕에 도달한 비구라고 할지라도 오직 그가 최상입니다.

“비구들이여, 그 천신은 이와 같이 말했다. 이와 같이 말한 뒤 그는 공경의 의미로 나의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서 사라졌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는 분명히 아나타삔디카 일것입니다. 아나타삔디카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에 대한 청정한 믿음이 아주 컸습니다.”
“아난다여,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아난다여, 그대가 생각한 것이 옳다. 그가 바로 천신 아나타삔띠카였다.”
 

제3장 여러 외도 품
Nāntātitthiya-vagga

sivasuttam (SN 2.21-시와 경)  
102.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시와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말했다(읊었다).


"참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올바른 가르침)을 원만하게 알면
 향상할뿐 나빠지지 않게 됩니다.   

 참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지혜를 얻게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서는 얻지 못합니다.

 참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슬퍼하는 자들 가운데서 슬퍼하지 않습니다.(슬픔 가운데서도 슬프지 않습니다)

 참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친척들 가운데서 빛이 납니다.   

 참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중생들은 선처에 태어납니다.   

 참된 사람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참된 사람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중생들은 안락하게 지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시와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참된 자들과 교제해야 하고
 참된 자들과 어울려야 한다.
 참된 자들의 정법을 원만하게 알면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한다(벗어날 수 있다).”

 

khemasuttaṃ (SN 2.22-케마 경)

103.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케마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말했다.

 

[케마]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에게 마치 원수를 대하듯 행동합니다.
 악업을 짓는 그에게 쓰디쓴 결실이 있습니다.

 행한 뒤에 후회하는 업을 짓는 것은 잘 지은 바른 행위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슬피 울면서
 그것의 과보를 경험할 것입니다.

 행한 뒤에 후회하지 않는 업을 짓는 것은 잘 지은(행한) 바른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의 만족과 기쁨은 결실을 가져 옵니다." 

 

[세존]
“지혜롭고 현명한 자는 노력할 때 자신에게 이익된다고 알려진 것을 
 행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선) 마부처럼 (그 길로) 나아가면 안된다.

 [어리석은] 마부는 평탄한 대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서서는
 차축을 망가뜨리고 근심한다.   

 이렇게 비법을 실천함으로써 법들을 떠나 죽음의 입구에 도달한 어리석은 자는
 차축을 망가뜨린 때처럼 근심한다.”

 

serīsuttaṃ (SN 2.23-세리 경)

104.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세리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세리]
신과 인간은 모두 음식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기뻐하지 않는 그 약카는 누구입니까?

[세존]
믿음과 깨끗한 마음으로 그 음식을 보시하는 그들에게 
그 음식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따라온다(먹을 것이 절로 생긴다).
그러므로 인색을 제어해야 한다. 인색의 더러움을 극복한 자는 보시해야 한다.
그가 짓는 공덕은 저 세상에서 존재들을 위한 의지처(버팀목)가 된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이와 같이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음과 깨끗한 마음으로 그 음식을 보시하는 그들에게 
 그 음식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따라온다(먹을 것이 절로 생긴다).
 그러므로 인색을 제어해야 한다. 인색의 더러움을 극복한 자는 보시해야 한다.
 그가 짓는 공덕은 저 세상에서 존재들을 위한 의지처(버팀목)가 된다."라고   


“예전에 저는,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의 주인, 보시의 공덕을 칭송하는 시리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궁전의 네 대문에서 사문, 바라문, 행려자, 여행자, 가난한 자, 거지들에게 보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궁전의 여인들이 저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보시를 합니다. 저희는 보시를 하지 못합니다. 저희들도 왕의 도움으로 보시를 하여 공덕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자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의 주인, 보시의 공덕을 칭송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보시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첫 번째 문을 궁전의 여인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거기서 궁전의 여인들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저의 보시는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지역의 통치자인 끄샤뜨리야들이 저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보시를 합니다. 저희는 보시를 하지 못합니다. 저희들도 왕의 도움으로 보시를 하여 공덕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자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의 주인, 보시의 공덕을 칭송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보시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두 번째 문을 지역의 통치자인 끄샤뜨리야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거기서 지역의 통치자인 끄샤뜨리야들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저의 보시는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군대를 가진 자들이 저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보시를 합니다. 저희는 보시를 하지 못합니다. 저희도 왕의 도움으로 보시를 하여 공덕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자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의 주인, 보시를 공덕을 칭송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보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세 번째 문을 군대를 가진 자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거기서 군대를 가진 자들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저의 보시는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바라문과 장자들이 저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보시를 합니다. 저희는 보시를 하지 못합니다. 저희도 왕의 도움으로 보시를 하여 공덕을 짓고 싶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자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의 주인, 보시의 공덕을 칭송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보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내가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네 번째 문을 바라문과 장자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거기서 바라문과 장자들은 보시를 하였습니다. 저의 보시는 물러섰습니다.

 

그러자 세존이시여, 저의 측근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왕께서는 아무런 보시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이런 말을 들은 저는, 세존이시여,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 선포하노니, [성]밖의 지역에서 생산되어 들어오는 것의 절반은 왕궁으로 보내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곳에서 사문·바라문· 행려자·여행자·가난한 자·거지들에게 보시를 하시오.'라고.
그런 저는,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오랜 세월 동안 공덕을 지었고, 이와 같이 오랜 세월 동안 선한 일을 행하는 동안에 '이만큼의 공덕이 있다.'라고. '이만큼의 공덕의 과보가 있다.'라고. '이만큼 하늘에 태어난다.'라고 마지막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이와 같이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끗한 마음과 믿음으로 그 음식을 보시하는 그들에게
 그 음식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따라온다.
 그러므로 인색을 제어해야 한다. [인색의] 더러움을 극복한 자는 보시해야 한다.
 그가 짓는 공덕은 저 세상에서 존재들을 위한 의지처가 된다.'라고.

 

ghaṭīkārasuttaṃ (SN 2.24-가띠까라 경)

[가따까라]
105. 무번천(無煩天)에 다시 태어난 일곱 비구가 해탈하였습니다.
탐욕과 성냄를 완전히 없애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넜습니다.

​[세존]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영역, 그런 늪을 건넌 그들은 누구인가?
누가 인간의 몸을 버린 뒤에 천상의 속박을 넘어섰는가?

​[가띠까라]
우빨라, 팔라간다, 뿍꾸사띠, 이 세 분
밧디야, 칸다데와, 바후락기, 삥기야
그들이 인간의 몸도 버리고 천상의 속박을 넘어섰습니다.

[세존]
마라의 올가미를 제거한 성자들에 대해 그대는 훌륭하게 말한다.
그들은 누구의 법을 완전하게 알아서 구경의 지혜를 얻은 뒤에
존재의 속박 모두 잘라 없애버렸는가?

[가띠까라]
그분 세존 외에는 그 누구도 아니며, 세존의 가르침 외에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존의 법 완전하게 알아서 구경의 지혜를 얻은 뒤에 존재에 대한 속박을 모두 잘랐습니다. 
이름과 형성(명색)이 완전히 멈추는 곳, 그 법에 대해 완전히 알아서
여기에서 그들은 구경의 지혜를 얻은 뒤에 존재에 대한 속박을 모두 잘랐습니다.

[세존]
알기 어렵고 참으로 깨닫기도 어려운 심오한 말을 그대는 한다.
그대는 누구의 법 완전하게 알아서 구경의 지혜를 얻은 뒤에 이렇게 말하는가?

​[가띠까라]
예전에(전생에) 저는 웨깔링가의 가띠까라라는 옹기장이였습니다.
재가에 머물면서 부모 공양하였으며, 깟사빠 세존의 재가신도였습니다.
성행위를 완전히 금하면서 지낸 저는 청정범행을 실천하던 자였습니다.
세존과 같은 고향이었고 , 이전에 세 친구였습니다.
저는 탐욕과 성냄을 모두 버리고, 세상에 대한 집차슬 건넌
일곱 명의 해탈한 비구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세존]
이렇게, 옹기장이여, 그대가 말한 그대로 참으로 그대는 그때 그러했었다.
예전에 그대는 웨깔링가의 가띠까라라는 옹기장이었고,
재가에 머물면서 부모 공양하였으며, 깟사빠 세존의 재가신도였고,
성행위를 완전히 금하면서 지낸 청정범행 실천하던 자였다.
그런 그대는 나와는 같은 고향 마을 사람이었고, 이전에 나의 친구였었다.

​[송출자]
이렇게 수행을 완성하여 마지막 몸을 가진
예전에 친구였던 두 분의 이런 만남이 있었다.

 

jantusuttam (SN 2.25-잔뚜 경)  
10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많은 비구들이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숲속의 움막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경솔하고 거만하고 교만하고 입이 거칠고 산만하게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의 근이 제어되어 있지 않았다. 그 무렵 신의 아들 짠뚜가 보름의 포살일에 그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게송들을 읊었다.

 

“예전에 고따마의 제자인 비구들은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바라는 것 전혀 없이 탁발음식 구하였고
 바라는 것 전혀 없이 침상과 좌구 사용하였으며
 그들은 세상에서 무상함을 잘 알아
 괴로움을 끝내는 일을 잘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의 촌장처럼
 스스로의 부양조차 힘들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 마음 집중을 놓아 버린채 
 먹고 또 먹고 나서는 드러눕습니다.   

 저는 이제 승가에 합장∙예배드리면서
 저는 여기 어떤 분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버려졌고 주인이 없나니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와도 같습니다.

 제 말은 방일하여 머무는 분들을 위해서고
 방일 않고 머무는 분들께 귀의하옵니다.”


rohitassasuttaṃ (SN 2.26-로히땃사 경)
107.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로히땃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
“도반이여,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도반이여,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세존께서는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 로히땃사라 불리는 선인(仙人)이었습니다. 저는 보자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신통을 가져서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빨라서 마치 능숙한 궁수가 훈련을 통해서 능숙하고 숙련되어 가벼운 활을 가지고 힘들이지 않고 쏘아 야자나무의 그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날라가는 화살과 같았으며, 저는 걸음걸이가 커서 동쪽의 바다에서 서쪽의 바다를 한 걸음으로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속력을 갖추었고 이러한 큰 걸음걸이를 가졌기에 제게는 ‘나는 걸어서 세상의 끝에 도달하리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제겐 아직 백년의 수명이 남아있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을 제외하고 대소변보는 것을 제외하고 수면과 피로를 제거하는 것을 제외하고 백년을 살면서 계속해서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는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제게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도반이여,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에 이르는 닦음을 천명합니다.”

 

[세존]
걸어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끝은 언제 어느 때나 있다.
세상의 끝에 도달한 뒤에 괴로움에서 벗어남은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끝에 도달하고 범행을 완성한 현명한 자, 세상을 잘 아는 자(세간해.世間解)는
 스스로 완전히 평화로운 자는 세상의 끝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도 저 세상도 갈망하지 않는다.

 

nandasuttaṃ (SN 2.27-난다 경)

108.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난다는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말했다.


[난다]
시간은 사라지고 밤은 흘러갑니다.
젊음은 조금씩 조금씩 떠나갑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보는 자는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세존]
시간은 사라지고 밤은 지나간다.
젊음은 조금씩 조금씩 떠나간다.
죽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보는 자, 평화를 바라는 자는

세상의 미끼(유혹)을 버려야 한다.

 

nandivisālasuttam (SN 2.28-난다위살라 경)  

109.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난디위살라는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말했다.

 

[난다위살리]
네 개의 바퀴와 아홉 개의 문을 가져
탐욕으로 채워졌고 꽁꽁 묶여 있으며
진흙에서 생겨나왔습니다. 영웅이시여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세존]
(그것을 엮고 있는) 가죽 끈을 자르고
욕망과 탐욕을 끊어 버리며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리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susimasuttaṃ (SN 2.29-수시마 경)

110. 사왓티에서 설해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그대에게 기쁨을 주는가?” 
“세존이시여, 어리석지 않고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미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가 사리뿟따 존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현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넓은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위대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풍부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민첩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예리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명쾌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바라는 것이(욕심)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만족할 줄 압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홀로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습니다(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하게 지내고).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열심히 정진합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법을 설합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말을 견딥니다(비난을 참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훈계를 합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삿된 행위를 비난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지 않고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미혹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가 사리뿟따 존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어리석지 않고 악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사리뿟따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넓은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위대한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풍부한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민첩한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예리한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명쾌한 지혜를 가졌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바라는 바가 없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만족할 줄 안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홀로 지낸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열심히 정진한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법을 설한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말을 견뎌낸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훈계를 한다.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삿된 행위를 비난한다."
 

 

그때 신의 아들 수시마가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듣고 많은 신의 아들들의 회중과 함께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의를 표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신의 아들 수시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어리석지 않고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미혹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가 사리뿟따 존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현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넓은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위대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풍부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민첩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예리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명쾌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역시 다른 신의 아들의 회중에 가면 이런 말을 아주 많이 듣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바라는 것이(욕심)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만족할 줄 압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홀로 지냅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습니다(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하게 지내고). 

사리뿟따 존자는 열심히 정진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법을 설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말을 견딥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훈계를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삿된 행위를 비난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지 않고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미혹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마음이 전도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가 사리뿟따 존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신의 아들 수시마는 인간이었을 때 사리뿟따의 제자였다.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자 신의 아들 수시마의 회중은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서 찬란한 광명을 발하였다. 마치 깨끗하고 최상품이며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된 녹주석을 빨간 우단 위에 놓았을 때 빛나고 반짝이고 광채가 나는 것과 같이,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자 신의 아들 수시마의 회중은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찬란한 광명을 발하였다.

 

마치 잠부 강에서 산출된 금을 숙련된 대장장이가 도가니에서 잘 정제하고 잘 두들겨서 장신구로 만들어 빨간 우단 위에 놓았을 때 그것은 빛나고 반짝이고 광채가 나는 것과 같이,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자 신의 아들 수시마의 회중은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찬란한 광명을 발하였다. 마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샛별이 빛나고 반짝이고 광채가 나는 것과 같이,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자 신의 아들 수시마의 회중은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찬란한 광명을 발하였다. 마치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가을 창공에 떠오르는 태양은 허공의 모든 어두움을 흩어버리면서 빛나고 반짝이고 광채가 나는 것과 같이, 사리뿟따 존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자 신의 아들 수시마의 회중은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찬란한 광명을 발하였다.

 

그때 신의 아들 수시마는 사리뿟따 존자와 관련하여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말했다.

"현자라고 알려진 사리뿟따는 화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적고, 자제하고, 길들여졌습니다.
그는 스승의 칭송을 받는 선인입니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관련하여 신의 아들 수시마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현자라고 알려진 사리뿟따는 화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적고, 자제하고, 길들여졌다.
 잘 길들여진 그는 죽음의 시간을 기다린다."라고.

 
 

nānātittthiyāsuttam (SN 2.30-여러 외도 경)  
1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여러 외도들의 신도인 많은 신의 아들들 즉 아사마, 사할리, 닝까, 아꼬따까, 웨땀바리, 마나와가미야가 밤이 깊었을 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온 대나무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신의 아들 아사마가 뿌라나 깟사빠에 대해 세존의 곁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깟사빠는 자르고 죽이고 때려도 죄악이 아니라 하고
 자신에게 공덕이 되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참으로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스승은 존경받을 만합니다."   

신의 아들 사할리가 막칼리 고살라에 대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고행 통한 금욕으로 자신을 잘 단속하고
 사람들과 다투는 그런 말을 버렸으며
 거짓말을 금하고 곧고 바른 말 하는 분
 참으로 그런 분은 악을 짓지 않습니다.”   

신의 아들 닝까가 니간타 나따뿟따에 대해서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고행을 행하고 분별력 있는 비구는
 네 가지 제어로써 단속을 실천하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바르게 설명하나니
 분명 그는 악덕을 짓는 자가 아닙니다.”

신의 아들 아꼬따까가 여러 외도들에 대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빠꾸다 까띠야나 그리고 니간타
 나아가서 막칼리와 뿌라나는 모두 다
 무리의 스승이며 사문의 경지 얻었으니
 그들은 참된 사람들과 멀지 않은 분들입니다.”   

신의 아들 웨땀바리가 신의 아들 아꼬따까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자칼은 아무리 짖어도 비천한 동물일 뿐
 결코 그가 사자와 같을 수 없다네.
 벌거벗고 거짓말하는 무리의 지도자가
 의심스런 행동을 하니
 참된 사람 닮은 점은 어디에도 없다네.”

마라 빠삐만이 신의 아들 웨땀바리에게 들어가서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고행∙금욕에 몰두하고 홀로 머무는 것을 지키는 사람
 하늘 사람들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면서
 형색에 안주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야말로 저 세상에 관해서 
 바르게 가르침을 세상에 펴십니다.”   

세존께서는 ‘이 자는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아시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을 대답하셨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형색도
 그리고 공중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들도 
 나무찌(악마이름)여, 그대는 이 모두를 칭송하지만
 실은 모두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던져주는 미끼에 불과할 뿐이다.”

 

*나무찌는 마라의 이름이다. 복주서는 “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 것을 조건으로 해서 나무찌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즉 나무찌(Namuci)를 na muci(해탈하지 못함)로 문자 그대도 해석한 것이다.

 

신의 아들 마나와가미야가 세존에 대해서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라자가하의 산들 가운데 위뿔라가 으뜸이고 
 눈 덮인 산들 가운데 세따(흰산)가 으뜸이고 
 하늘에서 돌아 다니는 것들 가운데 태양이 으뜸.     

 여러 물중에서 바다가 으뜸이며 
 밤의 불빛중 최고는 달이며 
 그러나 하늘 나라와 이 세상에서는  
 붓다(정등각자)가 최고라고 합니다.” 
  

 

 

신의 아들 상윳따(S2)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