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18상윳따 - 제2장 두 번째 품(Dutiya vagga. S18:11-S18:22)

실론섬 2014. 5. 7. 02:05

제2장 두 번째 품
Dutiya-vagga (SN 18.11-22)

 

cakkhusuttam (SN 18.11-눈(眼) 경)
198.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라훌라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훌라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라훌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코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혀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몸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마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다음에는 현재의 상태가 되지 않는다(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철저히, 꿰뚫어) 안다.”  

 

*본품의 10개 경들은 첫째 품의 10개 경들과 순서대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점은 본품의 열 개 경들에는 첫째 품의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빠져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홀로 머물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머물고자 합니다.”

 

rupadisuttanavakam (SN 18.12-20-형색 경 등)

*이 경들은 첫째 품의 경들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anusayasuttaṃ (SN 18.21-잠재성향 경)
200.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라훌라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훌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형상)들에서 나를 만들고(‘나’라는 생각) 나의 것(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 없습니까?

“라훌라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 어떠한 느낌이건 ··· 어떠한 인식이건 ··· 어떠한 형성이건 ···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의식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형상)들에서 나를 만들고(‘나’라는 생각) 나의 것(나의 것)을 만드는 자만의 잠재성향들이 없다."

 

*'의식을 가진 이 몸(imasminca savinnanake kaye)'이란 의식을 가진 자신의 몸을 말한다. '밖의 모든 표상들(bahiddha sabbanimitta)'이란 의식을 가진 남의 몸이나 의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혹은 전자는 의식을 가진 나와 남의 몸을 뜻하고, 후자는 밖에 있는 것으로 감각기능에 묶여있지 않은 물질을 뜻하는 것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SA.ii.214-215)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밖의 모든 표상들'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ii.206)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밖'이란 의식을 가진 남의 몸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표상들'이란 것은 감각기능을 가지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혹은, '의식을 가진 몸'이란 말에는 자신과 남의 몸이 포함되고, '밖의 모든 표상들'이란 말에는 감각기능을 가지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MA.iv.78)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은 ahamkara-mamankara-mana-anusaya를 옮긴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라는 견해(ahamkara-ditthi)와 '나의 것'이라는 갈애(mamamkara-tanha)와 아홉 종류의 자만이 없다는 뜻이다.(AA.iv.31)
경에서 자만은 '내가 더 뛰어나다.'는 방법, '나와 동등하다.'는 방법, '내가 더 저열하다.'는 방법 등의 셋으로 나타나는데 이 각각에 다시 뛰어나다(seyya), 동등하다(sadisa), 저열하다(hina)는 세 가지가 있어서 자만에는 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고 주석서들은 설명하고 있다.(VbhA.486;DhsA.372)

 

apagatasuttaṃ (SN 18.22-제거 경) 
201.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라훌라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훌라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자에게 마음(의.意)은 의식(식.識)을 가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됩니까?”

“라훌라여,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열등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한다.

 

어떠한 느낌이건··· 어떠한 인식이건 ··· 어떠한 형성이건 ··· 어떠한 의식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집착없이 해탈한다. 라훌라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마음(의.意)은 의식(식.識)을 가진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하게 된다."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vidha samatikkantam)'란 여러 가지 자만의 부분을 잘 뛰어 넘어라는 말이다. '평화롭게 되고(santam)'란 오염원들을 가라앉혀 평화롭게 된다는 말이다. '잘 해탈하게 된다(suvimutta)'라는 것은 오염원들로부터 잘 해탈한다는 말이다.(SA.i.215)



제2장 두 번째 품이 끝났다. 

라훌라 상윳따(S18)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