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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상윳따 - 비유 상윳따(Opamma samyutta. SN20:1-SN20:12)

실론섬 2014. 5. 7. 21:49

제20주제(S20)  비유 상윳따

Opamma-saṁyutta (SN 20.1-12)

kūṭasuttam (SN 20.1-뾰쪽지붕 경)
2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존귀하신)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뾰족지붕이 있는 집의 서까래들은 모두 뾰족지붕으로 향하고 뾰족지붕으로 모이며 뾰족지붕이 없어지면 그것들도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모든 불선법[不善法]은 모두 무명을 뿌리로 하고 무명으로 모이며 무명이 뿌리 뽑히면 그것들도 모두 뿌리 뽑힌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익히고) 닦아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불방일.不放逸) 머물 것이다.’라고.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nakhasikhasuttam (SN 20.2-손톱 경)
224.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세존께서는 손톱 위에 작은 흙을 올려놓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내가 손톱 위에 올려놓은 작은 흙과 대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가(많은가)?”라고.
“세존이시여, 오직 이 대지가 더 큽니다. 세존의 손톱 위에 올려놓은 작은 흙은 하잘것없습니다. 세존의 손톱 위에 올리놓은 작은 흙은 대지와 비교하여 헤아릴 것도 없고(못되고), 비교할 것도 없고, 작은 조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은 적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나는 중생은 많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머물 것이다'라고.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kulasuttaṃ (SN 20.3-가문 경)
225.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디든지 여자는 많고 남자가 적은 가문은 강도나 도둑들이 침입하기 쉽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자심해탈]을 닦고 많이 행하지 않은 비구에게 비인간은 침입하기 쉽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디든지 여자는 적고 남자가 많은 가문은 강도나 도둑들이 침입하기 어렵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행하지 않은 비구에게 비인간은 침입하기 쉽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질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ukkhāsuttam (SN 20.4-가마솥 경)
226.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아침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고, 점심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고, 저녁에 백 개의 가마솥으로 음식을 보시하는 것보다, 소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아침에 자애의 마음을 닦고, 소젖을 짜는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점심에 자애의 마음을 닦고, 소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저녁에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이 더 큰 결실이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익히고 닦아야 한다.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질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소젖을 짜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는 gadduhana-mattam을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것을 go-duhana-mattam(소젖을 짜는 정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gadduhana-mattam은 소젖을 짜기 위해서 한 번 젖꼭지를 잡아당기는 정도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혹은 gandha-uhana-mattam이라는 뜻도 된다. 즉 두 손가락으로 향의 조각을 잡고 한 번 그 향기를 맡는 정도의 시간이라는 뜻도 된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무량한 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이익을 가득 채우는 자애의 마음을 닦을 수 있다. 이것이 하루에 세 번 보시를 베푸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SA.ii.224)   

 

sattisuttaṃ (SN 20.5-칼 경)
227.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이 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을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고 꼬아버릴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날카로운 끝을 가진 창을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고 꼬아버릴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런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을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고 꼬아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오히려 그 사람이 지치고 고생만 할 것입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지고 있는 비구에게, 만약 비인간이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려고 한다면, 그 비인간은 오히려 지치고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익히고, 닦고, 많이 행하고, 정통하고, 철저히 실천하고, 따라 이루고, 축적하고, 노력을 잘 다질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dhanuggahasuttam (SN 20.6-궁수 경)
228.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거운 활을 가진 잘 훈련되고 숙련되고 노련한 네 명의 궁수들이 사거리에 서 있을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네 명의 잘 훈련되고 숙련되고 노련한 된 궁수들이 사방으로 쏜 화살들이 땅에 닿기 전에 모두다 잡아서 가지고 올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최고의 속력을 가진 재빠른 사람이라고 할 만 하겠는가?”
“만약,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단 한 명의 잘 훈련되고 능숙하고 숙련되고 노련한 궁수가 한 방향으로 쏜 화살이 땅에 닿기 전에 잡아서 가지고 온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속력을 가진 재빠른 사람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런데 네 명의 잘 훈련되고 숙련되고 노련한 궁수들이 사방으로 쏜 화살들이 땅에 닿기 전에 모두다 잡아서 가지고 온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그 사람보다 더 빠른 것이 해와 달의 속력이다.  
비구들이여, 그 사람보다 더 빠르고 해와 달보다 더 빠른 것이 해와 달의 앞에서 달리는 신들이다. 그러나 그 신들의 속력보다 더 빨리 중생들의 수명의 형성들은 소멸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능숙한(sikkhita)'이란 10년이나 12년 동안 스승의 집에서 기술을 배운 것을 뜻한다. '숙련된(katahattha)'이란 단지 기술만 배운 것을 가지고 숙련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정통한 것(cinna-vasibhava)을 뜻한다. '노련한(kat-upasana)'이란 왕의 궁전 등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과시하는 것이다. (SA.ii.225)  

*'수명의 형성들(ayu-sankhara)'이란 물질적인 생명의 기능(몸의 수명)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비물질적 법들(arupa-dhamma. 정신적 현상들)은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SA.ii.227) 그리고 아비담마적으로 볼 때 정신을 물질보다 16배 빨리 무너진다.  

 

āṇisuttaṃ (SN 20.7-쐐기 경)

229.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옛날에 다사라하들에게 아나까라는 이름의 북(타악기)이 있었다. 그 북이 낡으면 다사라하들은 북의 연결 부위에 다른 쐐기를 덧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그 아나까 북의 원래 표면은 사라져 버리고 연결 부위에 덧댄 쐐기들만 남게 되는 때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인(세상을 넘어선), 공(空)에 연결된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그것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궁극적인 앎을 위해 마음을 확고히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다사라하(Dasaraha)'들은 끄샤뜨리야들이었는데, 그들은 100의 몫 가운데 10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아나까라라는 타악기(북)'은 아주 큰 게의 집게발로 만든 것인데 사방 12요자나까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며 축제일에 사람들을 모으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SA.ii.227)   

 

그러나 시인이 지은 것이고 아름다운 문자와 표현을 가진 시이고 외도들의 제자들에 의해 말해진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그것을 듣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최고의 앎을 위해 마음을 확고히 할 것이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인, 공에 연결된 가르침들이 사라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인, 공에 연결된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우리는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궁극의 앎을 위해 마음을 확고히 할 것이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kaliṅgarasuttam (SN 20.8-목침 경)
230.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지금, 비구들이여, 릿차위들은 목침을 베고 자면서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그들을 침공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미래에 릿차위들은 가냘프게 되고 손과 발이 부드러워지며 솜 베게를 갖춘 부드러운 침상 위로 해가 뜰 때까지 자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그들을 침공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아자뚜삿뚜 왕은 모든 경에서 이처럼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위데히뿟따(raja Magadha Ajatasattu Vedehiputta)'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아자따삿뚜(Ajatasattu)라는 이름은 '왕의 적이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점성가들이 예언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DA.i.133) 그는 32년간 왕위에 있었다고 하며 그가 왕으로 있을 때 왓지(Vajji)를 정복하고 꼬살라를 병합했다. 그는 빠딸라뿟따(지금 인도 비할주의 주도인 빠뜨나)를 큰 도시로 만들게 하였으며 나중에 이는 마가다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주석서는 그가 위데히뿟따(Vedehiputta.위데하의 여인의 아들)이라 불린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가 위데하 출신이라고 봐서는 안되고 그의 어머니는 꼬살라 왕의 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데히는 현자와 동의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DA.i.139)    
아자뚜삿뚜는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이 되었다.(DA.i.137) 그는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의 아들 우다이밧다(Udayibhadda)에 의해서 살해당할까 항상 두려워했고 그래서 아들이 출가하기를 바랬다고 한다.(DA.i.153) 그러나 결국은 그의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시해하던 날에 태어난 그의 아들에 의해서 그도 시행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지금의 비구들은 목침을 베고 자면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며 머물고 있다. 그래서 마라는 그들을 침공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미래에 비구들은 가냘프게 되고 손과 발이 부드러워지며 솜 베개를 갖춘 부드러운 침상 위로 해가 뜰 때까지 자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라는 그들을 침공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익히고 닦아야 한다. 

‘우리는 목침을 베고 자면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며 머물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nāgasuttam (SN 20.9-큰 코끼리 경)
231.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어떤 신참 비구가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였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 “존자는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이 장로 비구들은 자신들이 신도 집들을 자주 방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저는 안 됩니까?”라고.

그러자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신참 비구가 지나치게 신도 집들을 자주 방문합니다. 그러자 비구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지나치게 신도 집들을 자주 방문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장로 비구들은 자신들이 신도 집들을 방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저는 안 됩니까?’라고."


"비구들이여, 옛날에 숲 속에 큰 호수가 있었는데 큰 코끼리들이 그곳을 의지하여 살았다. 그들은 그 호수에 들어가서 코로 연뿌리를 뽑아내서 그것을 잘 씻어서 진흙이 없게 만들어 씹어서 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답게 되고 강하고 건강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죽음을 만나지 않았고 죽음과도 같은 괴로움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그 큰 코끼리들을 따라서 배우는 어린 코끼리들은 그 호수에 들어가서 코로 연뿌리를 뽑아내서 그것을 잘 씻지 않아서 진흙이 묻은 채로 씹어서 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답게 되지도 않고 강하고 건강하게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만나게 되었고 죽음과도 같은 괴로움을 받게 되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장로 비구들은 아침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거기서 법을 설한다. 재가자들은 그들에게 청정한 믿음을 표시한다. 그들은 얻은 것에 묶이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잘못됨을 보고, 벗어남을 철저히 알면서 사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답게 되고 강하고 건강하게 된다. 그 덕분에 그들은 죽음을 만나지 않고 죽음과도 같은 괴로움도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장로 비구들을 따라서 배우는 신참 비구들은 아침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하러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거기서 법을 설한다. 재가자들은 그들에게 청정한 믿음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얻은 것에 묶이고, 마음을 빼앗기고, 집착하며, 잘못됨을 보지 않고, 벗어남을 철저히 알지 못하면서 사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답게 되지 않고 강하고 건강하게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만나고 죽음과도 같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얻은 것에 묶이지 않고, 마음 빼앗기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철저히 알면서 사용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biḷārasuttaṃ (SN 20.10-고양이 경)
232.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때 어떤 비구가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였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 “존자는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비구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 비구는 자제하지 않았다. 그러자 많은 비구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기,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비구들이 ‘존자는 지나치게 자주 재가자의 집들을 방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비구들로부터 말을 들은 그 비구는 자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옛날에 어떤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뒷골목과 하수구와 쓰레기통에서 ‘만일 생쥐가 음식을 찾아서 이곳에 나타나면 나는 그 생쥐를 잡아서 먹어버리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생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비구들이여, 그 생쥐가 그곳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그런 그 생쥐를 잡아서 잘 씹지도 않고 통째로 바로 삼켜버렸다. 그러자 그 생쥐는 그 고양이의 큰 창자도 갉아 먹고 작은 창자도 갉아 먹었다. 그 때문에 고양이는 죽거나 죽을만큼의 고통을 당하였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의 근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탁발하러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제대로 몸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도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제대로 몸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도 않은 여인을 본 뒤에 애욕이 마음을 물들게 한다. 그는 애욕이 물든 마음 때문에 죽거나 죽음을만큼의 고통을 당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율에서 범행을 그만두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죽음'이다. 비구들이여, 출죄(出罪)가 제정되어 있는 어떤 오염된 범계를 저지르는 것은 '죽음만큼의 고통'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몸을 보호하고 말을 보호하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감각의 근들을 단속한 채 탁발하러 마을이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닦아야 한다.”

 

*네 가지 빠라지까(parajika.바라이죄)를 범하면 그 범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출가자에게는 죽음과 같다. 그외 상가디세사(sanghadisesa.승잔죄)등의 계를 범하면 참회하는 방법이 율장에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출가자로서의 죽음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죽음만큼의 고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siṅgālasuttam (SN 20.11-자칼 경1)
233.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늙은 자칼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늙은 자칼은 피부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서고 싶은 대로 서고, 앉고 싶은 대로 앉고, 눕고 싶은 대로 눕는다. 더군다나 찬바람까지 그에게 세차게 불고 있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 존재가 이러한 상태로 되는 것을 겪을 각오가되어 있다면 스스로가 석가족 후예인 여래의 제자라고 주장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물 것이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닦아야 한다.”

 

dutiyasingalasuttem (SN 20.12-자칼 경2)
234.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늙은 자칼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늙은 자칼은 어느 정도는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자기는 석가족 후예인 여래의 제자라고 주장하지만 전혀 은혜를 모르고 은혜에 보답할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베풀어진 작은 호의라도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닦아야 한다.”

 

 

 

비유 상윳따(S20)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