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제21상윳따 - 비구 상윳따(Bhikkhu samyutta. SN21:1-SN21:12)

실론섬 2014. 5. 7. 23:23

제21주제 비구 상윳따
Bhikkhu-saṁyutta (SN 21.1-12)

kolitasuttaṃ (SN 21.1-꼴리따 경)
23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여.”라고.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머무는 중에 이런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성스러운 침묵, 성스러운 침묵이라고 불린다. 참으로 무엇이 성스러운 침묵인가?라고.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것을 성스러운 침묵이라고 불린다.’라고. 

도반들이여, 그런 나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를 가라앉혔기 때문에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하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이렇게 머물 때 나에게 거친 사유와 함께한 인식(상.想)과 마음의 기울임(집중)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신통으로 나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성스러운 침묵에서 방일하지 말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마음을 안주시켜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마음을 집중하고, 성스러운 침묵에서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도반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도반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스승의 도움으로 큰 신통의 지혜를 얻은 제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입니다.”

 

*꼴리따(Kolita)는 라자가하 근처에 있는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었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이름이 되었으며 목갈라나는 그의 어머니 이름 목갈리(Moggali) 혹은 목갈라니(Moggallani_에서 유래되었다. 본경은 목갈라나 존자가 아라한과를 증득하기 위해서 노력한 일주일간을 언급하고 있다.(SA.ii.233)  

*주석서는 왜 제2선이 성스러운 침묵(ariya tunhi-bhava)인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2선에서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이 소멸된다. 이 둘이 소멸하기 때문에 소리의 감각장소(sadd-ayatana. 즉 말)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제2선을 '성스러운 침묵'이라 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명상주제를 마음에 집중하는 초선 등도 성스러운 침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SA.ii.233)   
*이러한 방법으로 스승께서는 일곱 번째 날에 마하목갈라나 장로의 퇴보에 빠진 삼매를 증장시켜서 장로가 큰 신통의 지혜, 즉 육신통을 증득하게 하셨다.(SA.ii.233)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출가한지 칠 일째 되던 날에 세존께서 그를 가르친 이 유명한 일화는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졸고있음 경(A.58)에 잘 나타나고 있다.   

 

upatissasuttaṃ (SN 21.2-우빠띳사 경)
236.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빠띳사(Upatissa)는 사리뿟따 존자의 출가전 이름이었다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머무는 중에 이런 마음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변하여 다른 상태가 될 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는 어떤 것이라도 나에게 있는가?’라고.

그런 나에게, 도반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변하여 다른 상태가 될 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하는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없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다여, 스승께서 변하고 다른 상태가 될 때도 그대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도반이여, 스승께서 변하고 다른 상태가 될 때도 나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처럼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이처럼 크나큰 위력(힘)이 있고 이처럼 크나큰 위엄이 있는 스승께서 떠나셨다. 만약에 세존께서 오래 긴 세월을 머무신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번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될텐데.’라고.”
“오랜 세월동안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적 성향드른 사리뿟따 존자에게서 그렇게 잘 뿌리뽑혔습니다. 그래서 스승께서 변하고 다른 상태가 될 때도 사리뿟따 존자에게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기지 않습니다.”


ghaṭasuttam (SN 21.3-통(단지) 경)
23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서 하루 동안 머물렀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저녁 무렵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이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신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목갈라나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오늘 하루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평화롭게 머물렀습니까?”

“도반이여, 오늘 나는 거칠게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거칠게(olarikena)'란 대상이 거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천안과 천이계(천안통과 천이통)로 머묾을 통해서 머물렀기 때문인데, 이런 신통은 형색의 감각장소와 소리의 감각장소라 불리는 거친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칠다고 한 것이다.(SA.ii.234)   

 

“누구와 함께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법담을 나누었단 말입니까?”

“도반이여, 나는 세존과 함께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도반이여, 지금 세존께서는 멀리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신통으로 세존께 다가갔습니까, 아니면 세존께서 신통으로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오셨습니까?”

“도반이여, 내가 신통으로 세존께 다가가지도 않았으며 세존께서 신통으로 제게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세존께서는 나와 법담을 나누기 위해서 그분의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의 계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界)를 맑게 하셨고, 나도 세존과 법담하기 위해서 나의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의 계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 맑게 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세존과 함께 어떠한 법담을 나누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정진을 시작한 자, 정진을 시작한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정진을 시작한 자가 됩니까?’라고.

 

도반이여,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여기 비구는 ‘피부와 힘줄과 뼈만 남고 몸에 살점과 피가 마르더라도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분발로서 얻어야 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계속하리라.’라고 정진을 시작한 자가 되어 머문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해서 정진을 시작한 자가 된다.’라고.

도반이여, 저는 세존과 함께 이러한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이여, 산의 왕 히말라야에 작은 돌덩어리가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우리들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위대한 신통력과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원한다면 무한한 시간을(일겁)이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이여, 커다란 소금옹기에 작은 소금 덩어리가 의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우리는 사리뿟타 존자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존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사리뿟따 존자를 칭찬하고 칭송하고 찬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리뿟따는 지혜와 계와 고요함을 두루 구족했다. 저 언덕에 도달한 비구가 있다면 잘해야 그와 동등할 정도.’라고.”
이처럼 두 분 위대한 용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말하고 잘 표현하면서 기뻐하였다.

 

navasuttam (SN 21.4-신참 경)
238.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어떤 신참 비구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승원에 들어가 무관심한 채로 침묵하며 평온하게 머물고 있었다. 그는 가사를 만드는 시간에도 비구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신참 비구가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승원에 들어가 무관심한 채로 침묵하며 평온하게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가사를 만드는 시간에도 비구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이름으로 ‘도반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 비구를 불러 오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는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승원에 들어가 무관심한 채로 침묵하면서 평온하게 머물고 있으며, 가사를 만드는 시간에도 비구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세존이시여, 저는 비구로써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리신 뒤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비구를 귀챦게 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바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었고 원하는 대로 얻었고, 원하는만큼 얻었다.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게을러서도 아니요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열반을 증득하여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젊은 비구야말로 으뜸가는 인간이다. 
마라와 그의 탈 것을 이기고

이 생에서 그의 마지막 몸을 가지고 있다.'

 

sujātasuttam (SN 21.5-수자따 경)
239.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수자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수자따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 비구는 두 가지로 빛이 난다.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우아하며 준수한 용모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는 올바른 마음으로 빛이 난다.  

매이지 않고 묶이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아서 평화롭다.

마라와 그의 탈 것을 이기고서 이 생에서

그의 마지막 몸을 가지고 있다.'


lakundakabhaddiyasuttam ( SN 12.6-라꾼따까 밧디야 경)
240.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무렵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못생기고 보기 흉하고 기형이고 비구들이 업신여기는 저 비구가 오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다. 그리고 이 비구가 이미 얻지 못한 증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잆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위들과 백조들과 공작들과 코끼리들과 점박이 사슴들은

몸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사자를 두려워한다.
그와 같이 인간들 사이에서도 왜소하지만 지혜를 가졌다면

그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며 잘 가꾼 몸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라꾼따까 밧디야 존자(ayasma Lakuntaka Bhaddiya)의 라꾼따까는 난쟁이를 뜻한다. 그는 사왓티의 장자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키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라꾼따까(난장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가 난쟁이로 태어난 것은 전쟁의 업 때문이라고 한다. 키가 작았지만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졌으며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여인이 웃을 때 드러낸 치아를 보고 그것을 명상주제로 삼아 수행하여 불환자가 되었고 뒤에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으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195-196)   

 

visākhasuttam (SN 21.7-위사카 경) 
24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뾰족지붕 건물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빤짤리의 아들 위사카 존자가 집회소에서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며 해탈에 관계되고 갈애와 삿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는 법다운 이야기로 비구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

 

*빤짤리의 아들 위사카 존자(ayasma Visakha Pancaliputta)는 마가다의 지역 왕의 아들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빤짤라 왕의 딸이었으므로 그는 빤짤리의 아들(Pancali-putta)이라 불리었다. 아버지가 죽자 그는 지역 왕이 되었는데 세존께서 그곳에 오시어 설법하는 것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세존을 따라 사왓티로 가서 거기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gA.ii.75)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에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집회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누가 집회소에서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며 해탈에 관계되고 갈애와 삿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는 법다운 이야기로 비구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는가?”
“세존이시여, 빤짤리의 아들 위사카 존자가 집회소에서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며 해탈에 관계되고 갈애와 삿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는 법다운 이야기로 비구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빤짤리의 아들 위사카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사카여, 장하고도 장하구나. 위사카여, 그대가 집회소에서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며 해탈에 관계되고 갈애와 삿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는 법다운 이야기로 비구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자가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을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한다.

말을 하더라도 불사(不死)의 길을 설할 때 사람들은 그를 알게 된다.

법을 설하고 밝혀라. 선인(仙人)들의 깃발을 드날려라.

선인들은 잘 설하신 [법을] 깃발로 삼는다. 법이야말로 선인들의 깃발이기 때문이다.'

 

nandasuttam (SN 21.8-난다 경)
242.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세존의 이모의 아들인 난다 존자가 자라 다듬고 잘 펴진 가사를 입고 눈에 화장을 하고 멋진 발우를 들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다 존자(ayasma Nanda)는 세존의 부친인 숫도다나 왕과 세존의 이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apajapati Gotami)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러므로 세존의 배 다른 동생이다.   

“난다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와 같은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잘 다듬고 잘 펴진 가사를 입고 눈에 화장을 하고 멋진 발우를 들고 다니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난다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와 같은 비구에게는 숲에 머무는 자가 되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가 되고 분소의를 입는 자가 되어 감각적 쾌락을 기대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어울린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제 나는 난다가  숲에 머물고 분소의를 입고

모르는 사람이 남겨준 음식으로 연명하면서

감각적 쾌락에 무관심한 것을 보게 될까?"

 

*'모르는 사람이 남겨준 음식'은 annat-unch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음식(bhojana)을 구하는 자가 잘 알려지고 권력이 있는 집안들로부터 맛있고 향신료를 잘 넣어서 만든 음식을 구하면 이때 남겨준 음식을 잘 아는 사람이 남겨준 음식이라 한다. 그러나 남의 집의 대문에 서서 얻은, 이것저것 뒤섞인 음식을 '모르는 사람이 남겨준 음식'이라 한다.(SA.ii.239) 

 

그 후에 난다 존자는 숲에 머무는 자가 되고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자가 되고 분소의를 입는 자가 되어 감각적 쾌락에 무관심하며 머물렀다.'


tissasuttam (SN 21.9-띳사 경)
243.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세존의 고종사촌 동생인 띳사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는데 괴롭고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종사촌 동생'은 pituccha-putta를 옮긴 것이다. DPPN에 의하면 띳사 존자는 세존의 고모인 아미따(Amita)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띳사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띳사여, 왜 그대는 한 곁에 앉아서 괴롭고 실망스러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도반들이 저에게 사방에서 아주 심한 말로 업신여기며 비난을 하기 때문입니다.”

“띳사여, 그것은 그대는 남을 훈계하지만 그대가 다른 사람이 해주는 훈계를 듣는 것을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띳사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와 같은 비구가 남을 훈계하지만 다른 사람이 해주는 훈계를 듣는 것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띳사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와 같은 비구에게는 남을 훈계하기도 하고 다른사람의 훈계를 듣는 것을 감내하기도 하는 것이 참으로 어울린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분노하는가? 분노하지 말라. 띳사여, 분노하지 않는것이 그대에게 더 좋다.

분노와 자만과 경멸을 길들여라. 그러면 청정범행이 성취된다.'

theranāmakasuttam (SN 21.10-장로라 불리는 자 경)
244.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장로라 불리던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혼자 머무는 자가 되어 혼자 머무는 것을 칭송하면서 탁발하러 혼자 마을에 들어가고 혼자 나오고 혼자 외딴 곳에 머물고 혼자 경행을 하였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비구가 장로라 불리고 있는데 그는 혼자 머무는 자가 되어 혼자 머무는 것을 칭송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이름으로 ‘장로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 장로라는 비구를 불러오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장로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장로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장로라고 불리는  존자는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장로라고 불리는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로여, 그대는 혼자 머무는 자가 되어 혼자 머무는 것을 칭송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장로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혼자 머무는 자가 되어 혼자 머무는 것을 칭송하는가?”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탁발하러 마을에 혼자 들어가고 혼자 나오고 혼자 외딴 곳에 머물고 혼자 경행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혼자 머무는 자가 되어 혼자 머무는 것을 칭송합니다.”

“장로여 그것도 혼자 머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장로여, 그러나 혼자 머무는 것을 원만하게 완성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여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장로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하면 혼자 머무는 것이 원만하게 완성되는가? 
장로여, 여기서 과거의 것은 이미 버려졌고 미래의 것은 포기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자기 존재의 획득들에 대한 탐욕이 잘 제거되었다. 장로여 이렇게 하여 혼자 머무는 것이 원만하게 완성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람, 모든 것을 아는 사람, 현명한 사람, 모든 법들에 물들지 않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린 사람,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한 사람, 이런 사람을 나는 혼자 머무는 사람이라 부른다.'

 

mahākappinasuttaṃ (SN 21.11-마하깝삐나 경)
245.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마하깝삐나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마하깝삐나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피부가 희고 여위고 큰 코를 가진 저 비구가 오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저 비구는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다. 그리고 저 비구가 이미 얻지 못한 증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마하깝삐나 존자(ayasma Mahakappina)'는 꾹꾸따와띠(Kukkutavati)라는 변방에 있는 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마하깝삐나라는 이름의 왕이 되었다. 그는 세존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뒤에 사왓티에서 온 상인들로부터 정등각(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말을 듣고 감흥을 일으킨 그는 왕위를 버리고 그의 대신들과 함께 세존을 찾아와서 출가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 아노자(Anoja)도 왕이 대신들과 함께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대신의 아내들과 함께 역시 출가하여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마하깝삐나 존자는 홀로 禪(선)을 닦는 것에만 열중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아신 세존께서 설법을 하라고 권하셨고, 그는 단 한 번의 설법으로 천 명의 비구들을 아라한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AA.i.324)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에서 그를 '비구들을 가르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언급하고 계신다. 그의 게송은 「장로게」(547-556)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본서 제6권 「마하깝비나 경」(SN54.7)에서도 그를 삼매를 많이 닦은 자라고 칭찬하고 계신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문을 의지하는 사람들 가운데선 끄샤뜨리야가 으뜸이 되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는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자(명행족.明行足), 그가 으뜸이다.

태양은 낮에 빛나고, 달은 밤에 빛난다.

끄샤뜨리야는 갑옷을 입어야 빛나고, 선(禪)을 닦을 때 빛난다.

그러나 부처는 모든 밤낮 동안 영광으로 빛난다.'

 

sahāyakasuttam (SN 21.12-도반 경) 
246. 사왓티에 머물고 계셨다. ··· 그 무렵 마하깝삐나 존자의 제자인 두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깝삐나의 제자들인 저 두 비구가 오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저 비구들은 크나큰 신통력이 있고 크나큰 위력이 있다. 그리고 저 비구들이 이미 얻지 못한 증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인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두 비구는 진정한 도반이어서 오랜 세월 함께 지냈다.

여래가 선포한 법에서 정법이 저들을 함께 지내게 했다.

성자가 선포한 법에서 깝삐나가 저들을 잘 인도하였다.

그들은 마라와 그의 탈 것을 이기고서 이 생에서 그들의 마지막 몸을 가지고 있다.'



비구 상윳따(S21)가 끝났다. 

제2권 연기를 위주로 한 가르침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