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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상윳따 - 라다 상윳따(Radha samyutta) - 제1장 첫 번째 품(Pathama vagga. SN23:1-SN23:10)

실론섬 2014. 5. 17. 20:21

제23주제(S23) 라다 상윳따 (Rādha-saṁyutta)

제1장 첫 번째 품

Pathama-vagga (SN23.1-10)


mārasuttaṃ (SN 23.1-마라 경)

160.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라다 존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라다 존자(ayasma Radha)'는 라자가하의 바라문이었다. 나이가 들어 아들들로부터 천대를 받자 출가를 하였다. 비구들은 나이가 많다고 거절을 하였지만 세존께서 사리뿟따의 제자로 출가를 하게 하셨다. 그는 출가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179f, ThagA.ii.12-13)
세존께서는 라다 존자를 보면 설법의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나 그것을 드러내 보이는 여러 가지 비유가 잘 떠올랐다고 하는데 그것은 라다 존자의 견해가 풍부하였고 그가 세존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Ibid) 그래서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에서 그는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라다 존자는 잠시 세존의 시자로 있기도 하였다.(ThagA.ii.12-13)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다 장로는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장로(patibhaniya-tthera)로 일컬어진다. 여래께서는 장로를 보면 섬세한 주제가 떠오르셨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그에게 법을 설하셨다. 그래서 이 라다 상윳따에서도 처음의 두 품은 질문(puccha)에 대한 가르침을, 세 번째는 요청(ayacana)에 의한 것을, 네 번째는 친숙한 개인적인 말씀(upanisinnaka-katha)을 모은 것이다."(SA.ii.337) 장로게(Thag.133-134)는 그의 게송이다.   

“세존이시여, ‘마라, 마라’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왜 마라입니까?”

“라다여, 물질적 요소가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마라 또는 죽이는 자 또는 죽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라다여, 그대는 물질적 요소를 마라라고, 죽이는 자라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괴로움이라고, 괴로움이 누적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질적 요소를 이렇게 보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다. 감수작용이 있을 때 ··· 지각작용이 있을 때 ··· 형성작용들이 있을 때 ··· 식별작용이 있을 때 마라가 있고 죽이는 자가 있고 죽임을 당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라다여, 그대는 식별작용을 마라라고, 죽이는 자라고, 죽임을 당하는 자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괴로움이라고, 괴로움이 누적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식별작용을 이렇게 보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바르게 보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바르게 보는 것은 염오(싫어하여 떠남)를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염오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염오는 탐욕의 떠남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탐욕의 떠남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탐욕의 떠남은 해탈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해탈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해탈은 열반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열반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라다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그대는 질문의 한계를 잡지 못하였다. 라다여,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을 궁극으로 하고 열반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  

 

sattasuttaṃ (SN 23.2-중생 경)

161.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중생, 중생’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왜 중생이라고 불립니까?”

“라다여, 바람(욕구, 관심), 탐욕, 즐김, 갈애가 있는 사람은 물질적 요소에 대해 거기서 붙잡고(붙고), 거기서 강하게 붙잡는다(달라붙는다). 그래서 중생이라고 불린다. ··· 감수작용에 ··· 식별작용에 ··· 형성작용들에 ··· 바람, 탐욕, 즐김, 갈애가 있는 사람은 식별작용에 대해 거기서 붙잡고, 거기서 강하게 붙잡는다. 그래서 중생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면, 라다여, 사내 아이들이나 여자 아이들이 모래성을 지으면서 놀고 있다. 그 모래성에 대해 탐욕을 떠나지(여의지) 못하고, 바람을 떠나지 못하고, 애정을 떠나지 못하고, 갈증을 떠나지 못하고, 열기를 떠나지 못하고, 갈애를 떠나지 못하는 한, 그들은 그 모래성을 붙잡고, 꾸미고, 자기 것으로 여기고,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라다여, 사내 아이들이나 여자 아이들이 그 모래성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고(여의고), 바람을 떠나고, 애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열기를 떠나고, 갈애를 떠날 때, 그 모래성을 손이나 발로 흩어버리고, 부수고, 허물고, 놀이를 끝낸다. 이처럼, 라다여, 그대들도 물질적 요소를 흩어버리고, 부수고, 허물고, 놀이를 끝내야 한다.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라. 감수작용을 흩어버리고, 부수고, 허물고, 놀이를 끝내야 한다.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라. 지각작용을 ··· 형성작용들을 흩어버리고, 부수고, 허물고, 놀이를 끝내야 한다.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라. 식별작용을 흩어버리고, 부수고, 허물고, 놀이를 끝내야 한다. 갈애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라. 참으로, 라다여, 갈애의 부서짐이 열반이다.”

 

bhavanettisuttaṃ (SN 23.3-존재로 이끄는 도랑 경)
162.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재로 이끄는 도랑(도관)의 소멸, 존재로 이끄는 도랑의 소멸’이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이고, 무엇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의 소멸입니까?”
“라다여, 물질적 요소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기우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이 있다. 이것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이라고 불린다. 그들의 소멸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의 소멸이다. 감수작용에 ··· 지각작용에 ··· 형성작용들에 ··· 식별작용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기우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이 있다. 이것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이라고 불린다. 그들의 소멸이 존재로 이끄는 도랑의 소멸이다."

 

*'존재로 이끄는 도랑(도관)'은 bhava-netti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물이 흐르는] 도랑이나 혹은 물이나 수증기 따위가 통하도록 만든 관이라는 의미인데 전체 문맥으로 볼 때 도랑(도관)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pariññeyyasuttaṃ (SN 23.4-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 경)
163.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과 완전한 지혜와 완전히 안 사람을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라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무엇이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인가?

라다여, 물질적 요소는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감수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지각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형성작용들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식별작용은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이다. 라다여, 이것이 완전히 알려져야 하는 법들이라고 불린다

 

라다여, 무엇이 완전한 지혜인가?

라다여, 탐욕이 부서지고, 성냄이 부서지고, 어리석음이 부서진 지혜이다. 라다여, 이것이 완전한 지혜라고 불린다.


라다여, 누가 완전히 안 사람인가?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족성을 가진 아라한 존자라고 말해여쟈 한다. 라다여, 이것이 완전히 안 사람이라고 불린다.”

 

samaṇasuttaṃ (SN 23.5-사문 경)
164.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五取蘊.오취온]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적 요소에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들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라다여, 어떠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 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라다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 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dutiyasamaṇasuttaṃ (SN 23.6-사문 경2)
165.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적 요소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들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라다여, 어떠한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 답지 못하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도 아니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라다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차리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문 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 중에서 바라문 답다. 또한 그들은 존경할만한 이들이며, 사문됨과 바라문됨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문다.”

 

sotāpannasuttaṃ (SN 23.7-예류자(預流者) 경)

166.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적 요소를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라다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았기 때문에, 라다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이다.”

 

arahantasuttaṃ (SN 23.8-아라한(阿羅漢) 경)
167.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적 요소를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감수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지각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형성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

식별작용을 집착하여 이루어진 온이다.

라다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라다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였으며,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이다.”

 

chandarāgasuttaṃ (SN 23.9-욕탐(欲貪) 경)
168.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물질적 요소에 대한 바람(욕구)과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야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감수작용에 대한 바람(욕구)과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야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지각작용에 대한 ··· 형성작용들에 대한 바람(욕구)과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야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식별작용에 대한 바람(욕구)과 탐욕과 즐김과 갈애를 버려야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dutiyachandarāgasuttaṃ (SN 23.10-욕탐(欲貪) 경2)
169. 사왓티에서 설해짐. 한 곁에 앉은 라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다여, 물질적 요소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감수작용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지각작용에 대한 ··· 형성작용들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식별작용에 대한 바람, 탐욕, 즐김, 갈애, 집착으로 이끄는 마음의 결정. 경향. 잠재성향들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그 물질적 요소는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제1장 첫 번째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