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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상윳따 - 들어섬 상윳따(Okkanti samyutta. SN25:1-SN25:10)

실론섬 2014. 5. 19. 20:36

들어섬 상윳따
Okkanti-saṁyutta (SN 25.1-10)

cakkhusuttaṃ (SN 25.1-눈(眼) 경)

302.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눈(眼)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견고하지 않고), 다른 것(다른 상태가, 달라지는)이 되는 것이다()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意.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와 '법을 따르는 자(dhamma-anusari)'는 예류과(sotapatti-phala)를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사람 경」(A7.14)과 「밧달리 경」(M65)등에는 성자를 양면으로 해탈한 자, 지혜로 해탈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 견해를 얻은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의 일곱 부류로 나누고 있다. 인시설론 주석서에 나타는 이들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①'법을 따르는 자'라 하고, 에류과에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④'견해를 얻은 자(ditthippatta)'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⑤'지혜로 해탈한 자(pannavimutta)'라 한다.       
여덟 종류의 증득을 얻은 자가 신심을 중히 여기고 사마타로 명상하면서 어떤 특정한 무색계의 증득을 기초로 하여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⑥'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라고 하고, 예류과에서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②'몸으로 체험한 자(kayasakhi)'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③'양면으로 해탈한 자(ubhatobhagavimutti)'라 한다.  
여덟 종류의 증득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색계 4선(禪)만을 얻은 자가 오직 신심을 중히 여기고 위빳사나로 명상하면서 상카라들만을 명상하거나 혹은 네 가지 색계 선 가운데 어떤 하나를 명상하여 도와 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가 예류도에 머무는 순간에는 ⑥'믿음을 따르는 자(saddh-anusari)'라 하고, 예류과로부터 아라한도까지 여섯 단계에 머물 때에는 ⑦'믿음으로 해탈한 자(saddhavimutti)'라 하고, 마지막 아라한과에 이를 때에는 ⑤'지혜로 해탈한 자(pannavimutti)'라 한다.(Pugh.194-195)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rūpasuttaṃ (SN 25.2-형색(色) 경)
303.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형색()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소리()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냄새(香)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감촉()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法.마음현상)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viññāṇasuttaṃ (SN 25.3-의식(識) 경)
304.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눈의 의식(眼識)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귀의 의식(耳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코의 의식(鼻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혀의 의식(舌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몸의 의식(身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의식(意識)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samphassasuttaṃ (SN 25.4-감각접촉(觸) 경)
305.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접촉(眼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耳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鼻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舌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身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감각접촉(意觸)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samphassajāsuttaṃ (SN 25.5-감각접촉에서 생긴 것 경)
306.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rūpasaññāsuttaṃ (SN 25.6-형색에 의한 인식 경)
307.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형색에 의한 인식(지각)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소리에 의한 인식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냄새에 의한 인식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맛에 의한 인식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감촉에 의한 인식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법에 의한 인식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rūpasañcetanāsuttaṃ (SN 25.7-형색에 의한 의도 경)
308.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형색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소리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냄새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맛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감촉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법에 의한 의도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rūpataṇhāsuttaṃ (SN 25.8-형색에 의한 갈애 경)
309.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형색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소리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냄새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맛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감촉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법에 의한 갈애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pathavīdhātusuttaṃ (SN 25.9-땅의 요소(界) 경)
310.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땅의 요소는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물의 요소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불의 요소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바람의 요소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허공의 요소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의식의 요소는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khandhasuttaṃ (SN 25.10-온(蘊) 경)
31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물질적 요소()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감수작용()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지각작용()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형성작용()들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식별작용()은 무상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색.수.상.행.식 = 물질적요소, 감수작용, 지각작용, 형성작용, 식별작용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명료하게(확신하는) 하는 자는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지혜로써 충분히 사색하여 통찰하는(확신하는) 자는 법을 따르는 자라고 불린다. 그는 올바른 정해진 행로에 들어가고(바른 길에 들어가고), 거룩한 사람의 경지에 들어가고, 범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게 되는 그러한 업을 짓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류과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몸이 무너져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법들을 이렇게 분명히 알고, 이렇게 보는 자는, '악처에 떨어지지(태어나는)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된 예류자(預流者)'라고 불린다.”             

 

 

들어감 상윳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