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둘의 모음 - 4. 평정한 마음 품(Samacitta-vagga. AN2.33-42)

실론섬 2014. 5. 24. 18:07

4. samacittavaggo (AN 2.33-42-평정한 마음 품)

 

3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고결하지 못한 사람의 영역과(참되지 못한 사람이 되는 바탕과) 고결한 사람의 영역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결하지 못한 사람의 영역인가?

비구들이여, 고결하지 못한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른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것을 고결하지 못한 사람은 칭찬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것이 고결하지 못한 사람의 영역이다.

 

비구들이여, 고결한 사람은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것을 고결한 사람은 칭찬한다. 비구들이여,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것이 고결한 사람의 영역이다.”

 

34. “비구들이여, 두 사람에게 쉽게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두 사람에게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비구들이여, 백 년의 수명을 가지고 백 년을 사는 사람이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모시고, 향을 뿌려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사지를 주물러드리면서 모신다고 해도, 그리고 두 분의 대소변을 받아내더라도,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부모님)를 위하여 행한 바거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를 칠보가 가득한 큰 땅을 통치하는 왕보다 높은 자리에 모신다고 해도,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부모님)를 위하여 행한 바거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 세상을 가르쳐 주는 등 많은 일을 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믿음이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믿음을 갖추도록 부추기고(격려하고, 북돋우고), 서게 하고, 확고하게 한다. 계를 경시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계를 갖추도록 부추기고, 서게 하고, 확고하게 한다. 인색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보시를 갖추도록 부추기고, 서게 하고, 확고하게 한다. 지혜롭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지혜를 갖추도록 부추기고, 서게 하고, 확고하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하여 행한 바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된다.”

 
35. 어떤 바라문이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는 무엇을 말하는 분이며 무엇을 가르치는 분입니까?"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결실있음을 말하는 사람이고, 결실 없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고따마 존자는 어떻게 결실 있음을 말하고, 결실 없음을 말합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몸의 나쁜 행위와 말의 나쁜 행위와 마음의 나쁜 행위에 대해 결실 없음을 말합니다.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에 대해 결실 없음을 나는 말합니다. 그리고 바라문이여, 나는 몸의 좋은 행위와 말의 좋은 행위와 마음의 좋은 행위에 대해 결실 있음을 말합니다. 다양한 선법들에 대해 결실 있음을 나는 말합니다. 이렇게 바라문이여, 나는 결실 있음을 말하는 사람이고, 결실 없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36. 그 무렵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보시받을만한 분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리고 어디에 보시해야 합니까?”

“장자여, 세상에는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두 가지 보시받을만한 분들이 있다. 장자여, 이런 두 가지 보시받을만한 분들이 있다. 여기에 보시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있는 유학과 무학이  

보시하는 사람을 위한 공양받을만한 분들이다.  

몸과 말과 뜻이 옳고 바르기에 그 존재들이

보시하는 사람을 위한 복밭이다. 여기에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다.”


3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카의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때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의 강당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도반이여" 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안의 족쇄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서 설할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동쪽 숲(원림)(Pubbarama)은 사왓티의 동쪽 문 밖에 있는 숲이다. 바로 이곳에서 위사카(Visaka) 즉 미가라마따가 세존과 승단을 위해서 미가라마뚜(녹자모) 강당을 건립하였다. 미가라마뚜 강당은 미가라마따라고 불렸던 위사카가 동쪽 숲은 구입하고 지은 이층올 된 큰 건물이었다. 각층에는 각각 500개씩의 방이 있었다고 한다. 세존께서 후반부 20년을 사왓티에서 머무실 때 이곳과 아나타삔디카 승원을 번갈아 가면서 머무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많은 경들이 이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위사카(Visaka)'는 앙가(Anga)의 밧디야(Bhaddiya)에서 다난자야라는 아주 부유한 장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기 고장으로 오신 세존의 법문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훗날 아버지가 꼬살라의 사께따로 이사를 가게 되어 사께따에서 정착해서 살았으며 그래서 사왓티에서 미가라(Migara)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위사카는 본 경 '하나의 모음 으뜸 경'에서 보시하는 여신도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세존께서 칭찬하고 계신다.
위사카는 미가라의 아내였다. 그런데도 위사카가 미가라마따(Migaramata) 즉 미가라의 어머니(녹자모)라고 불린데는 이런 일화가 있다. 그녀의 남편 미가라는 니간타(Nigantha)의 열렬 신도였는데 나중에 위사카의 설득으로 휘장 뒤에서 세존의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 감사하여 '당신은 오늘부터 나의 어머니요.'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위사카라는 이름보다 미가라의 어머니(미가라마따)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AA.i.417)

*욕계의 존재를 안이라고 하고, 색계 존재와 무색계 존재를 밖이라 한다. 안이라 불리는 욕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안의 족쇄(ajjhatta-samyojana)이다. 밖이라 불리는 새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밖의 족쇄(bahiddha-smayojana)이다. 혹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안의 족쇄이고,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가 밖의 족쇄이다. 여기서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낮은(oram)이란 욕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낮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낮은 단계이다. 높은 것(uddham)이란 색계와 무색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높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높은 단계라 한다.(AA.ii.130)

 

“도반들이여, 무엇이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잘 지킵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어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곳에서 죽은 그는 돌아오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옵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은 돌아오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온다고 불립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그는 어떤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어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곳에서 죽은 그는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오지 않는다고 불립니다.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그는 감각적 쾌락을 싫어하여 떠나고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닦습니다. 그는 존재들을 싫어하여 떠나고 탐욕을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닦습니다. 그는 갈애를 부수기 위해 닦습니다. 그는 탐욕을 부수기 위해 닦습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어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곳에서 죽은 그는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도반들이여,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이 세상으로 오지 않는다고 불립니다.

 

그때 많은 평정한 마음을 가진 신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신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에서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연민하셔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빠른 시간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 사왓티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에 있는 사리뿟따 존자의 앞에 나타났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리뿟따 존자도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기, 사리뿟따여, 많은 평정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이 나에게 왔다. 와서는 나에게 경의를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사리뿟따여, 한 곁에 선 신들은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에서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에 대해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연민하셔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사리뿟따여, 그 신들은 열 명도, 스무 명도, 서른 명도, 마흔 명도, 쉰 명도, 예순 명도 있으면서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로 좁게 서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참으로 거기에서 그 신들은 마음을 닦았기 때문에 열 명도, 스무 명도, 서른 명도, 마흔 명도, 쉰 명도, 예순 명도 있으면서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로 좁게 서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그것을 그렇게 보지 않아야 된다. 사리뿟따여, 참으로 여기에서 그 신들은 마음을 닦았기 때문에 그 신들은 열 명도, 스무 명도, 서른 명도, 마흔 명도, 쉰 명도, 예순 명도 있으면서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로 서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채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뿟따여, 이렇게 닦아야 한다. 
'감각기능들의 고요함이 있고(평화가 있고), 마음의 고요함이 있는 그대들에게 몸으로 짓는 행위(신업.身業)도 고요할 것이고, 말로 짓는 행위(구업.口業)도 고요할 것이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의업.意業)도 고요할 것이다. 우리는 동료 비구들에 대해 고요함을 선물할 것이다.'라고, 사리뿟따여, 그대들은 이렇게 닦아야 한다. 사리뿟따여, 외도 유행승들은 이 법문을 듣지 못했다고 나는 들었다."

 

3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는 와라나에서 밧다사리 강둑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아라마단다 바라문이 마하깟짜나 존자께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라마단다 바라문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깟짜나 존자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끄샤뜨리야들도 끄샤뜨리야들과 싸우고, 바라문들도 바라문과 싸우고, 장자들도 장자들과 싸웁니까?"

“바라문이여, 욕탐(慾貪)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원인으로 끄샤뜨리야들도 끄샤뜨리야들과 싸우고, 바라문들도 바라문들과 싸우고, 장자들도 장자들과 싸웁니다.”


“깟짜나 존자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대문에 사문들도 사문들과 싸웁니까?”

“바라문이여,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원인으로 사문들도 사문들과 싸웁니다.”

 

"깟짜나 존자여, 세상에 이런 욕탐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서고, 이런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선 사람이 누구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세상에 이런 욕탐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서고, 이런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선 사람이 있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세상에 이런 욕탐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서고, 이런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라문이여, 나라의 동쪽에 사왓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지금 거기에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바라문이여, 그분이 이런 욕탐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서고, 이런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선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라마단다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꿇은 뒤), 세존을 향해 합장을 한 뒤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이런 욕탐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서고, 이런 견해의 탐욕의 성향의 속박과 이기심의 선입감의 묶임을 넘어선,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경의를 표합니다
.”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39. 한 때에 마하깟짜나 존자는 마두라에 있는 군다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깐다라야마 바라문이 마하깟짜나 존자께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깐다라야마 바라문은 마하깟짜나 존자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짜나 존자여,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사문 깟짜나는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깟짜나 존자여, 그것이 사실입니까? 참으로 깟짜나 존자가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습니까? 깟짜나 존자여, 그렇다면 그것은 바른 실천이 아닙니다.”라고.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설하신 늙음에 대한 관점과 젊음에 대한 관점이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80세거나, 90세거나, 100세의  연로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고, 감각적 쾌락의 열기로 불타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의해 휩싸이고, 열심히 감각적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그 어리석은 자는 장로라는 이름을 얻지 못합니다. 만약, 비구들이여,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젊음을 갖춘 초년기의 젊은이가 있는데, 그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감각적 쾌락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열기로 불타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의해 휩싸이지 않고, 열심히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현명한 자는 장로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깐다라야나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서 젊은 비구의 발에 머리를 대고 존경을 표했다.
“존자께서 어른이고, 어른의 관점에 서 있습니다. 저희는 어리고, 어린 사람의 관점에 서 있습니다."라고.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깟짜야나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깟짜야나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40. “비구들이여, 도둑들이 힘 있을 때 왕들은 힘이 없다. 그때, 비구들이여, 왕은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변방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때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변방의 지역들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악한 비구들이 힘 있을 때 바르게 행동하는 비구들은 힘이 없다. 그때, 비구들이여, 바르게 행동하는 비구는 승가 가운데에서 거듭 침묵하고 약해지고, 변방 지역에 머문다. 이것은,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손해와 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많은 사람들의 퇴보를 위한 것이고, 신과 인간의 손해와 괴로움을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왕들이 힘 있을 때 도둑들은 힘이 없다. 그때, 비구들이여,  왕은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변방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쉽다. 그때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도시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변방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쉽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바르게 행동하는 비구들이 힘 있을 때 악한 비구는 힘이 없다. 그때, 비구들이여, 악한 비구는 승가 가운데에서 거듭 침묵하며 약해지고, 그래서 떠나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과 많은 사람의 번영을 위한 것이고,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41. “비구들이여, 나는 재가자거나 출가자의 둘에 속한 삿된 닦음을 칭찬하지 않는다.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삿되게 닦는 자는 삿된 닦음으로 인한 사건을 원인으로 방법이 되는 선법을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재가자거나 출가자의 둘에 속한 바른 닦음을 칭찬한다. 재가자거나 출가자거나 바르게 닦는 자는 바른 닦음으로 인한 사건을 원인으로 방법이 되는 선법을 성취한다.”

 

42. “비구들이여, 문자의 유사성/표현성 때문에 경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의미(뜻)와 법을 반대로 이끄는 비구는 많은 사람의 손해와 많은 사람의 불행과 많은 사람의 퇴보를 위한 사람이고, 신과 인간의 손해와 괴로움을 위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많은 악덕을 쌓고, 이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문자의 유사성/표현성에서 경을 바르게 해석함으로써 의미와 법을 일치로 이끄는 비구는 많은 사람의 이익과 많은 사람의 행복과 많은 사람의 번영을 위한 사람이고,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먆은 공덕을 쌓고,이 정법을 지속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