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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모음 - 2. 대중공사 품(Adhikaraṇa-vagga. AN2.11-21)

실론섬 2014. 5. 24. 12:37

제2장 대중공사 품(A2.11-21)

Adhikaraṇa-vagga

 

adhikaraṇavaggo (AN 2.11~21-대중공사 품) 11~13. 두 가지 힘

11.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힘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숙고(paṭisaṅkhāna.가늠.판단)의 힘과 닦음(bhāvanā. 수행. 익힘)의 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숙고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숙고한다. 

'몸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대한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말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마음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여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그는 자신의 청정함을 지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숙고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음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이 닦음의 힘은 유학(有學)의 힘이다. 

참으로 그는 유학의 힘을 지니고서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린다.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는 선하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는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닦음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가지 닦음의 힘이다.”

 

12. “비구들이여, 두 가지 힘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숙고의 힘과 닦음의 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숙고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숙고한다. 
'몸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대한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말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마음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여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그는 자신의 청정함을 지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숙고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닦음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내놓음)으로 귀결되는 마음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염각지.念覺支). ··· 법에 대한 선별(간택)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택법각지.擇法覺支)를 닦는다. ··· 정진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정진각지.精進覺支). ··· 희열(기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희각지.喜覺支). ··· 편안함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경안(輕安.각지). ··· 삼매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정각지.定覺支). ···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사각지.捨覺支). 비구들이여, 이것이 닦음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가지 힘이다.”

 

13. “비구들이여, 두 가지 힘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숙고의 힘과 닦음의 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숙고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숙고한다. 
'몸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대한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말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 마음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과보가 있게 된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하여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는다. 그는 자신의 청정함을 지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숙고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닦음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닦음의 힘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가지 힘이다.”

 

14.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여래의 설법이 있다. 어떤 두 가지인가?

간략하게 설하는 것과 상세하게 설하는 것이다(간략함에 의한 것과 상세함에 의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여래의 설법이 있다.”

 

15. “비구들이여, 어떤 대중공사[송사.諍事]에서 계를 범한 비구와 질책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관찰하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그 대중공사는 장기간의 거친 골칫거리가 되고 비구들은 편히 머물지 못할 것이 예상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대중공사에서 계를 범한 비구와 질책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관찰하면, 비구들이여, 그 대중공사는 장기간의 골칫거리가 되지 않고 비구들은 평히 머물 것이 예상된다.

 

*'대중공사(大衆公事)'로 옮긴 원어는 adhikarana 이다. 중국에서는 쟁사(諍事)로 옮겼다. 한국 불교에서는 쟁사라는 단어 대신에 대중공사라고 사용하고 있다. 대중공사는 승가의 중요한 일을 대중이 모여서 확정하는 화합을 말한다. 
율장에 의하면 네 종류의 대중공사가 있다. 그것은 쟁론에 대한 대중공사(vivada-adhikarana), 교계를 위한 대중공사(anuvada-adhikarana), 범계에 대한 대중공사(apatti-adhikarana), 소임에 대한 대중공사(kicca-adhikarana)이다.(Vin.iii.164등)

 

어떻게,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가 자신을 잘 관찰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는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그 비구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나를 보았다. 만약에 내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비구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비구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나를 보았다.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그 비구는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그 비구는 즐겁지 않은 말을 나에게 하였다. 그 비구가 말한 즐겁지(언쨚은) 말 때문에 나는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소유물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듯이, 거기서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자신을 잘 관찰한다.

 

*'마치 세관 검사대(sunkatthana)를 피하여 숨겨서 가져온 물품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어야 하는 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과 같다. 이 경우에는 그가 잘못을 범한 것이지 왕이나 왕의 사람들이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어떤 사람이 왕이 놓아둔 세관 검사대를 피하여 숨겨서 물건을 가져간다. 그러면 왕의 사람들이 물건을 실은 마차와 함께 그를 잡아 왕에게 보인다. 그때 잘못은 세관 검사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왕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왕의 사람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숨기고 가져간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비구가 죄를 범했을 때 허물이 질책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비구에게 허물이 있다. 그 비구에게는 세 가지 허물이 있다. 즉 죄를 범한 허물, 질책하는 자에게 언쨚아한 허물, 언쨚아하면서 남에게 그를 어쨚아하는 사실을 드러낸 허물이다.(AA.ii.102)

 

어떻게, 비구들이여, 질책하는 비구는 자신을 잘 관찰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질책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이 비구는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나는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그 비구를 보았다. 만약에 그 비구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그 비구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비구가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는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그 비구를 보았다. 어떤 점에서 몸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그 비구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나는 즐겁지 않은 말을 그 비구에게 하였다. 내가 말한 즐겁지 않은 말 때문에 그 비구는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소유물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듯이, 거기서 이렇게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질책하는 비구는 자신을 잘 관찰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 계를 범한 비구와 질책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관찰하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그 대중공사는 장기간의 거친 골칫거리가 되고 비구들은 편히 머물지 못할 것이 예상된다.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 계를 범한 비구와 질책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관찰하면, 비구들이여, 그 대중공사는 장기간의 거친 골칫거리가 되지 않고 비구들은 편히 머물 것이 예상된다.”

 

16. 어떤 바라문이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참으로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까?”

“바라문이여, 법답지 못한(비법.非法) 행위와 잘못된(비뚤어진) 행위를 원인으로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고따마 존자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납니까?"

“바라문이여, 법다운 행위와 곧은 행위를 원인으로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17.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 자눗소니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참으로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까?” 

“바라문이여, 행함과 행하지 않음 때문에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납니까?"

“바라문이여, 행함과 행하지 않음 때문에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저는 고따마 존자께서 간략하게 설하고 상세하게 의미를 분석하지 않은 이 말씀의 상세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제가 고따마 존자께서 간략하게 설하고 상세하게 의미를 분석하지 않은 이 말씀의 상세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가르침을 고따마 존자께서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듣고 잘 사고 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은은 몸의 나쁜 행위를 하고 몸의 좋은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말의 나쁜 행위를 하고 말의 좋은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행함과 행하지 않음 때문에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은 몸의 좋은 행위를 하고 몸의 나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말의 좋은 행위를 하고 말의 나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의 나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행함과 행하지 않음 때문에 이렇게 여기 어떤 중생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18.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몸의 나쁜 행위와 말의 나쁜 행위와 마음의 나쁜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서는 안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세존이시여, 몸의 나쁜 행위와 말의 나쁜 행위와 마음의 나쁜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서는 안된다고 세존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어떤 위험이 예상됩니까?”

“아난다여, 몸의 나쁜 행위와 말의 나쁜 행위와 마음(意)의 나쁜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나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이런 위험이 예상된다. - 자책하게 되고, 알려지면 현자들이 질책하고, 나쁜 평판이 퍼지고, 혼미한 채로 죽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몸의 나쁜 행위와 말의 나쁜 행위와 마음의 나쁜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나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이런 위험이 예상된다.” 

 

 

"아난다여, 몸의 좋은 행위와 말의 좋은 행위와 마음의 좋은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몸의 좋은 행위와 말의 좋은 행위와 마음의 좋은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야 한다고 세존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져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어떤 이익이 예상됩니까?”

“아난다여, 몸의 좋은 행위와 말의 좋은 행위와 마음의 좋은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야 한다고 나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져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이런 이익이 예상된다. - 자책하지 않고, 알려지면 현자들이 칭찬하고, 좋은 평판이 퍼지고, 혼미하지 않은 상태로 죽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몸의 좋은 행위와 말의 좋은 행위와 마음의 좋은 행위는 한 가지만이라도 행해져야 한다고 나에 의해 선언된 그 행해져야 하는 것을 행했을 때 이런 이익이 예상된다.”

 

19.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려라.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불선법의 버림이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면 다는 나는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불선법으 버림은 이익과 행복으로 이끌기 때문에 나는 ‘비구들이여, 불선법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선법(善法)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음이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면 나는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음은 이익과 행복으로 이끌기 때문에 나는 ‘비구들이여, 선법을 닦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20.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어떤 두 가지인가?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된 것과 뜻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의미를 이해허기 어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될 때 뜻도 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이해하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21.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어떤 두 가지인가?

단어와 문장들이 바르게 구성된 것과 뜻이 바르게 전달된 것이다. 단어와 문장이 바르게 구성되면 뜻도 바르게 전달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