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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상윳따 - 제11장 유가안온 품(Yogakkhemi-vagga. SN35:104-SN35:113)

실론섬 2014. 6. 9. 21:43

 

Ⅲ.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Tattiya-paññāsaka

제11장 유가안온 품
Yogakkhemi-vagga(SN 35.104-113)

yogakkhemisuttam (SN 35.104-유가안온 경)

104.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는 방법에 대한 법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가안온을 얻는 방법에 대한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수반하며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그것들은 여래에게서 제거되(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제거를 위하여 닦음을 말했다. 그래서 여래는 '유가안온을 얻은 자'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을 수반하며 환락을 야기하기 마련인 마음으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다. 그것들은 여래에게서 제거되(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제거를 위하여 닦음을 말했다. 그래서 여래는 '유가안온을 얻은 자'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유가안온을 얻는 방법에 대한 법문이다.”

 

*유가안온(瑜伽安穩) : 번뇌와 고의 단멸이 증득된 상태 즉 열반을 말한다. 유가안온은 yogakkhema(요가케마)의 한역이다. 여기서 유가(瑜伽)는 yoga의 음역이고 안온(安隱)은 khema의 의역이다. 이 단어는『리그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데 yoga는 ‘획득’을 khema는 ‘보존(저축)’을 뜻했다. 
그러나 빠알리 주석서들에서 예외 없이 yoga를 속박으로 해석해서 속박들로부터 풀려나서 안온한 열반(yogehi khematta nibba- na) 유가안온을 설명한다.

 

upāadāyasuttam (SN 35.105-집착 경)
105.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하여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을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눈이 있을 때, 그리고 눈을 집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귀가 ··· 코가 ··· 혀가 ··· 몸이 ···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마음을 집착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

 

dukkhasamudayasuttaṃ (SN 35.89-괴로움(苦)의 일어남 경)
106.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해서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여기서 '괴로움'은 윤회의 괴로움을 말한다. '일어남(samudaya)'이란 찰나적인 일어남과 조건의 일어남이다. 조건의 일어남을 보는 비구는 찰나적인 일어남도 보고, 찰나적인 일어남을 보면 조건의 일어남도 본다. '사라짐(atthangama)'도 완전히 사라짐과 무너져서 사라짐의 두 가지이다. 이 경우에도 전자를 보는 자는 후자를 보고 후자를 보는 자는 전자를 본다.(SA.ii.7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인가?
눈과 형색을 연(緣)하여 시각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접촉을 연하여 느낌이,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귀와 소리를 연(緣)하여 청각의식이 일어난다. ··· 코와 냄새를 연하여 후각의식이 ··· 혀와 맛을 연하여 미각의식이 ··· 몸과 감촉을 연하여 촉각의식이 ··· 마음과 법(마음현상)을 연하여 마음의 의식(식별작용)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접촉을 연하여 느낌이,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사라짐)인가?
눈과 형색을 연(緣)하여 시각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접촉이다. 접촉을 연하여 느낌이,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소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다. 귀와 소리를 연하여 청각의식이 일어난다. ··· 코와 냄새를 연하여 ··· 혀와 맛을 연하여 ··· 몸과 감촉을 연하여 촉각의식이 ··· 마음과 법을 연하여 마노의 의식(식별작용)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연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소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이다.”  

 

lokasamudayasuttaṃ (SN 35.90-세상의 일어남 경)

107. “비구들이여, 세상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세상의 일어남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다.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 혀와 맛을 조건으로 ··· 몸과 감촉을 조건으로 ··· 마음과 법(마음현상)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식별작용)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일어남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세상의 소멸(사라짐)인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소멸이다.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 혀와 맛을 조건으로 ··· 몸과 감촉을 조건으로 ··· 마음과 법을 조건으로 마음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소멸이다.”       

 

seyyohamasmisuttam (SN 35.108-뛰어남 경)
108.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탐착하여 ‘나는 뛰어나다.’라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거나 ‘나는 열등하다.’라는 

것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눈이 있을 때, 그리고 눈을 집착하여 ‘나는 뛰어나다.’라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거나, ‘나는 열등하다.’라는 것이 있다. ··· 귀가 있을 때 ··· 코가 있을 때 ··· 혀가 있을 때 ··· 몸이 있을 때 ···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마음을 집착하여 ‘나는 뛰어나다.’라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거나, ‘나는 열등하다.’라는 것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나는 뛰어나다.’라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거나, ‘나는 열등하다.’라는 것이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나는 뛰어나다.’라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거나, ‘나는 열등하다.’라는 것이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코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혀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탐욕이 떠난다.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梵行)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   

 

saṃyojaniyasuttaṃ (SN 35.109-족쇄에 묶이는 것 경)
109. “비구들이여, 족쇄에 묶이는 법들과 족쇄를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족쇄에 묶이는 법들이고, 무엇이 족쇄인가? 비구들이여, 눈은 족쇄에 묶이는 법이고, 욕탐은 거기에서 족쇄이다. ··· 혀는 족쇄에 묶이는 법이고 ··· 마음은 족쇄에 묶이는 법이고,욕탐이 거기에서 족쇄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족쇄에 묶이는 법들이고, 이것이 족쇄라고 불린다.”

 

upādāniyasuttaṃ (SN 35.93-집착되는 것 경)
110. “비구들이여, 집착되는 법들과 집착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집착이 되는 법들이고, 무엇이 집착인가? 비구들이여,눈은 집착되는 법이고, 욕탐은 거기에서 집착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집착되는 법이고, 욕탐이 거기에서 집착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집착되는 법들이고, 이것이 집착이라고 불린다.”

 

ajjhattikayatanaparijananasuttam (SN 35.111-철저히 앎 경)
111. “비구들이여, 눈을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 ··· 귀를 ··· 코를 ··· 혀를 ··· 몸을 ··· 마음을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눈을 완전한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탐욕이 사라지고 버리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 ··· 귀를 ··· 코를 ··· 혀를 ··· 몸을 ··· 마음을 완전한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탐욕이 사라지고 버리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

 

bahirayatanaparijananasuttam (SN 35.112-철저하게 앎 경2)
112. “비구들이여, 형색을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 ··· 소리를
··· 냄새를 ··· 맛을 ··· 감촉을 ··· 법을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사라지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형색을 완전한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탐욕이 사라지고 버리면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다. ··· 소리를 ··· 냄새를 ··· 맛을 ··· 감촉을 ··· 법을 완전한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탐욕이 사라지고 버리면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    

 

upassutisuttaṃ (SN 35.113-들음 경)

113. 한 때에 세존께서는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한적한 곳에서 홀로 머무시던 세존께서는 이런 법문을 읊으셨다.

“눈과 형색들을 연(緣)하여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다.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갈애의 조건으로부터 집착이 있다. 집착의 조건으로부터 존재가 있다. 존재의 조건으로부터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의 조건으로부터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이 생긴다. 이렇게 미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일어남이 있다. ··· 귀와 소리를 연하여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 코와 냄새를 연하여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 혀와 맛을 연하여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 몸과 감촉을 연하여 몸의 의식이 일어난다 ··· 마음과 법을 연하여 마음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다.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갈애의 조건으로부터 집착이 있다. 집착의 조건으로부터 존재가 있다. 존재의 조건으로부터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의 조건으로부터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이 생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일어남이 있다.    

 

눈과 형색들을 연하여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다.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의 남김없는 소멸로부터 집착의 소멸이 있고, 집착의 소멸로부터 존재의 소멸이 있고, 존재의 소멸로부터 태어남의 소멸이 있고, 태어남의 소멸로 부터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들이 소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소멸이 있다. ··· 귀와 소리를 연하여 귀의 의식이 일어난다 ··· 코와 냄새를 연하여 코의 의식이 일어난다 ··· 혀와 맛을 연하여 혀의 의식이 일어난다 ··· 몸과 감촉을 연하여 눈의 의식이 일어난다 ··· 마음과 법을 연하여 마음의 의식이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의 조건으로부터 느낌이 있다. 느낌의 조건으로부터 갈애가 있다. 이러한 갈애의 남김없는 소멸로부터 집착의 소멸이 있고, 집착의 소멸로부터 존재의 소멸이 있고, 존재의 소멸로부터 태어남의 소멸이 있고, 태어남의 소멸로 부터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들이 소멸한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소멸이 있다.” 라고.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의 말씀을 새겨 들으며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새겨 들으며 서 있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받아 들여라.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배우라.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명심하라. 비구여, 이 법문은 이익을 가져다주며 청정범행의 시작이다.”

 

 

 

제11장 유가안은을 설하는 자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