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셋의 모음 - 7. 대품(Mahā-vagga. AN3.62-65)

실론섬 2014. 6. 13. 19:27

제7장 대품 Mahā-vagga(AN3.62-65)

 

titthāyatanādisuttaṃ (AN 3.62-외도의 주장 경)

62. “비구들이여, 현자들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고, 더 나아가면 결실 없음으로(업 지음 없음으로) 귀결되는 세 가지 외도이 근본 교리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사람이 즐거은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는 이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생명을 해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인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범행을 실천하지 않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거친 말(욕설)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간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될 것이고, 전생의 행위를 원인으로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전생의 행위를 중심에 두면 관심이거나 노력이거나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이라거나 이것은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되돌아옴이 없다. 이렇게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과 확고함으로부터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스스로 법다운 사문이라는 주장은 없다(주장할 이유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법에 맞는 논박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생명을 해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범행을 실천하지 않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거친 말(욕설)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간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될 것이고, 창조주의 창조를 원인으로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창조주의 창조를 중심에 두면 관심이거나 노력이거나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이라거나 이것은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되돌아옴이 없다. 이렇게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과 확고함으로부터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스스로 법다운 사문이라는 주장은 없다(주장할 이유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 법에 맞는 논박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명을 해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범행을 실천하지 않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거친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간탐하는 자가 될 것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성냄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될 것아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음을 중심에 두면 관심이거나 노력이거나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이라거나 이것은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되돌아옴이 없다. 이렇게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과 확고함으로부터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스스로 법다운 사문이라는 주장은 없다(주장할 이유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세 번째 법에 맞는 논박이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현자들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고, 더 나아가면 결실 없음으로 귀결되는 세 가지 외도들의 근본 교리가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에 의해 설해진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 내가 설한 법인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계.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과 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로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사성제]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虛空界], 의식의 요소[識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터전)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눈의 감각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접촉의 장소, 마음의 감각접촉의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로(지속적인 고찰)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눈으로 형상을 보고서 만족(즐거움)을 주는 형상으로 다가가고(지속적으로 고찰하고), 불만족(고뇌)을 주는 형상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형상으로 다가간다. ··· 귀로 소리를 듣고서 ··· 코로 냄새를 맡고서 ··· 혀로 맛을 맛보고서 ··· 몸으로 감촉을 닿고서 ··· 마음으로 법을 인식하고서 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법으로 다가간다. 비구들이여, ‘이런 열여덟 가지 마음의 행보(行步)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기자 성스러운 진리(사성제.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듦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느낌을 경험하고 있는 자에게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무더기)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리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의도적 행위.行)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리운다.

 

비구들이여, 그렇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行]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명색)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리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불리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 의해 질책받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받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bhayasuttaṃ (AN 3.63-두려움 경)
63.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서로 보호할 수 없는) 이런 세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큰 불이 타오르는 때다. 비구들이여, 큰 불이 타오를 때, 그것으로 인해 마을도 불타고, 성읍도 불타고, 도시도 불탄다. 마을이 불타고, 성읍도 불타고, 도시도 불탈 때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지 못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첫 번째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큰 비가 올 때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큰 비가 올 때 큰 물의 흐름이 생긴다(홍수가 난다). 큰 물의 흐름이 생길 때, 그것으로 인해  마을도 휩쓸리고, 성읍도 휩쓸리고, 도시도 휩쓸린다. 마을도 휩쓸리고, 성읍도 휩쓸리고, 도시도 휩쓸릴 때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지 못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 번째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사는 야만인의 습격을 받아 두려움에 수레를 타고 달아날 때가 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숲에 사는 야만인의 습격을 받아 두려움에 수레를 타고 달아날 때,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지 못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세 번째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이런 세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말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가 말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이런 세 가지 두려움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큰 불이 타오를 때다. 비구들이여, 큰 불이 타오를 때, 그것으로 인해 마을도 불타고, 성읍도 불타고, 도시도 불탄다. 마을이 불타고, 성읍도 불타고, 도시도 불탈 때, 때때로 가끔은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가 말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첫 번째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큰 비가 올 때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큰 비가 올 때 큰물의 흐름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큰물의 흐름이 생길 때, 그것으로 인해 마을도 휩쓸리고, 성읍도 휩쓸리고, 도시도 휩쓸린다. 마을도 휩쓸리고, 성읍도 휩쓸리고, 도시도 휩쓸릴 때, 때때로 가끔은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가 말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두 번째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사는 야만인의 습격을 받아 두려움에 수레를 타고 달아날 때가 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숲 속에 사는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아 두려움에 수레를 타고 달아날 때, 때때로 가끔은 어머니도 아들을 구하고, 아들도 어머니를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가 말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세 번째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가 말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이런 세 가지 두려움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늙음에 대한 두려움, 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늙어가는 아들을 대해 ‘내가 늙고, 내 아들은 늙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들은 늙어가는 어머니에 대해 ‘내가 늙고, 내 어머니는 늙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병든 아들에 대해 ‘내가 병들고, 내 아들은 병들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들은 병든 어머니에 대해 ‘내가 병들고, 내 어머니는 병들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들에 대해 ‘내가 죽고, 내 아들은 죽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들은 죽어가는 어머니에 대해 ‘내가 죽고, 내 어머니는 죽지 마라!’라고 얻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서로 보호하는) 두려움과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버리고 극복하기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두려움과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버리고 극복하기 위한 길은 무엇이고 닦음은 어떤 것인가? 오직 이것,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이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는 두려움과 이런 세 가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버리고 극복하기 위해 이것이 길이고 이것이 닦음이다.”

 

venāgapurasuttaṃ (AN 3.64-웨나가뿌라 경)
64.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많은 비구들과 함께 웨나가뿌라라는 꼬살라의 바라문들의 마을에 도착하셨다. 웨나가뿌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시는 사꺄의 자손이고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웨나가뿌라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는 법을 설합니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실로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웨나가뿌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경의를 표하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씀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웨나가뿌라의 왓차곳따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가을에 열린 붉은 대추는 청정하고 깨끗합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야자열매는 청정하고 깨끗합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잠부 강의 황금을 숙련된 금 세공사의 아들이 가마에서 아주 능숙하게 제련한 황금 주화는 삭까의 왕좌에 놓아도 빛나고 밝고 찬란합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감각기관들은 참으로 고요하고 안색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긴 의자, 소파, 긴 털이 달린 깔개, 여러 가지 무늬를 가진 모직 덮개, 흰색 모직 덮개, 꽃무늬의 모직 덮개, 솜으로 가득 채운 침대요, 사자나 호랑이 모습을 수놓은 침대보, 양쪽에 술 장식이 달린 덮개, 한쪽에만 술 장식이 달린 모직 덮개, 금지된 침대들[보석이 박힌 덮개, 비단 덮개, 춤추는 소녀들이 사용하던 모직 양탄자], 코끼리의 깔개, 말의 깔개, 마차의 깔개, 치타 가죽 깔개, 영양 가죽으로 만든 고급 침구, 차양이 있는 것, 양쪽에 빨간 베개가 있는 것 등 높고 큰 침상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러한 높고 큰 침상들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긴 의자, 소파, 긴 털이 달린 깔개, 여러 가지 무늬를 가진 모직 덮개, 흰색 모직 덮개, 꽃무늬의 모직 덮개, 솜으로 가득 채운 침대요, 사자나 호랑이 모습을 수놓은 침대보, 양쪽에 술 장식이 달린 덮개, 한쪽에만 술 장식이 달린 모직 덮개, 금지된 침대들[보석이 박힌 덮개, 비단 덮개, 춤추는 소녀들이 사용하던 모직 양탄자], 코끼리의 깔개, 말의 깔개, 마차의 깔개, 치타 가죽 깔개, 영양 가죽으로 만든 고급 침구, 차양이 있는 것, 양쪽에 빨간 베개가 있는 것 등 높고 큰 침상들은 출가자들에게는 어렵게 얻어지는 것이고, 적절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세 가지 높고 큰 침상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나는 지금 바로 그것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습니다. 어떤 것이 셋입니까? 천상의 높고 큰 침상, 범천의 높고 큰 침상, 성자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세 가지 높고 큰 침상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나는 지금 바로 그것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천상의 높고 큰 침상은 무엇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나는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뭅니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그 마을이나 성읍으로 탁발을 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오후에 탁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풀이거나 낙엽들을 한 곳에 모은 뒤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ㅡㄹ 성취하여 머뭅니다. 나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나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나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상태로) 만약 경행을 하면, 그때 나의 경행은 천상의 경행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서 있으면, 그때 나의 서 있음은 천상의 서 있음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앉아 있으면, 그때 나의 앉음은 천상의 앉음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침상을 준비하면, 그때 나의 침상은 천상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신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러한 천상의 높고 큰 침상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사람이 고따마 존자 외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범천의 높고 큰 침상은 무엇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나는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뭅니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그 마을이나 성읍으로 탁발을 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오후에 탁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풀이거나 낙엽들을 한 곳에 모은 뒤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습니다. 나는 자애[慈]를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헤치고자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 연민[悲]을 수반하는 ··· 기뻐함[喜]을 ···  평정[捨]을 수반하는 마음을 한 방향으로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그와 같이 두 방향. 그와 같이 세 방향. 그와 같이 네 방향. 위 아래와 사방 모든 곳에. 일체의. 일체의 세간에. 광대하고 크고 무량한, 악의 없고 헤치고자함이 없는, 자애를 수반하는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을 수반하는 마음을 퍼지게 하면서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상태로) 만약 경행을 하면, 그때 나의 경행은 천상의 경행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서 있으면, 그때 나의 서 있음은 천상의 서 있음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앉아 있으면, 그때 나의 앉음은 천상의 앉음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침상을 준비하면, 그때 나의 침상은 천상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범천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러한 범천의 높고 큰 침상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사람이 고따마 존자 외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성자의 높고 큰 침상은 무엇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나는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뭅니다.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그 마을이나 성읍으로 탁발을 하기 위해 들어갑니다. 오후에 탁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풀이거나 낙엽들을 한 곳에 모은 뒤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습니다. 나는 이렇게 철저히 알아 차립니다. ‘탐욕은 나에게서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성냄은 나에게서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어리석음은 나에게서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라고.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앉아 있으면, 그때 나의 앉음은 천상의 앉음입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만약 이런 존재로 침상을 준비하면, 그때 나의 침상은 천상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성자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성자의 높고 큰 침상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러한 성자의 높고 큰 침상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는 사람이 고따마 존자 외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sarabhasuttaṃ (AN 3.65-사라바 경)
6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이 법(法)과 율(律)에서 떠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라바라는 유행승이 있었다. 그는 라자가하의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다. 내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기 때문에 그 법과 율을 떠났다.'라고.
그때 많은 비구들이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라자가하에 들어갔다. 그 비구들은 사라바가 유행승이 라자가하의 대중들 앞에서 '나는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다. 내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법과 율을 떠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사라바(Sarabha)는 세존의 명성이 온 마가다에 크게 퍼지자 이를 시샘한 유행승들이 그를 일부러 비구승가로 출가하도록 하여 잠시 불교교단으로 출가한 유행승이었다고 한다. 유행승들은 세존의 삶에 대해서 허물을 잡지 못하자 세존의 위력은 보름마다 문을 닫고 비구들끼리 외우는 '개종시킨ㄴ 요술(avattani-maya)'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사라바를 보내서 그것을 배워오도록 하게하였다고 한다. 사라바는 승가에 와서 비구들에게 거만하게 대했지만 어떤 장로가 그를 연민하여 출가를 허락했으며 그는 마침내 보름다 외우는 빠띠목카 즉 그들이 말한 '개종시키는 요술'을 배우고 바로 환속하여 유행승들에게 가서 그것을 알려 주었으며 그래서 그는 사꺄의 아들의 법을 알았노라고 떠들고 다닌 것이라고 한다.(AA.ii.295-298) 

라자가하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는 돌아 온 그 비구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법과 율에서 떠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라바라는 유행승이 있습니다. 그는 라자가하의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다. 내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법과 율을 떠났다.'라고.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일으켜 삽삐니 강기슭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사라바 유행승에게 가주십시오.”라고.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삽삐니 강기슭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사라바 유행승에게 다가가셨다. 가셔서 준비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은 뒤에 세존께서는 사라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라바여, 그대가 ‘나는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다. 내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법과 율을 떠났다.;라고 말한 것이 사실인가?”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사라바 유행승은 침묵했다.
두 번째도 세존께서는 사라바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라바여, 그대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는지 아닌지 말하라. 만약 그대에게 완성되지 못함이 있다면 내가 완성시켜 줄 것이다. 만약 그대에게 완성이 있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라고.
두 번째도 사라바 유행승은 침묵했다.
세 번/재도 세존께서는 사라바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라바여, 그대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는지 아닌지 말하라. 만약 그대에게 완성되지 못함이 있다면 내가 완성시켜 줄 것이다. 만약 그대에게 완성이 있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라고.
세 번째도 사라바 유행승은 침묵했다.


그러자 그 유행승들은 사라바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라바여, 그대가 사문 고따마에게 청하는 것을 사문 고따마는 그대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도반 사라바여, 그대가 사꺄의 아들에 속하는 사문들의 법을 알았는지 아닌지 말하십시오. 만약 그대에게 완성되지 못함이 있다면 사문 고따마가 완성시켜 줄 것이고, 만약 그대에게 완성이 있다면 사문 고따마는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사라바 유행승은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라바 유행승이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하는 것을 알고서 그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행승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에게 ‘그대는 정등각(正等覺)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대는 이런 법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거기서 나는 그에게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것이다. 내가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때 그가 세 가지 경우의 어떤 경우에 처하지 않을 그런 경우는 없고, 그런 여지는 없다.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꺼내어 이전의 이야기를 회피할 것이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낼 것이다. 사라바 유행승처럼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을 것이다. 


유행승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에게 ‘그대는 번뇌 다한 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대는 이런 번뇌들을 완전히 부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거기서 나는 그에게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것이다. 내가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때 그가 세 가지 경우의 어떤 경우에 처하지 않을 그런 경우는 없고, 그런 여지는 없다.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꺼내어 이전의 이야기를 회피할 것이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낼 것이다. 사라바 유행승처럼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을 것이다. 

유행승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목적을 위해 그대가 설한 법들은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면, 거기서 나는 그에게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것이다. 내가 철저하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할 때 그가 세 가지 경우의 어떤 경우에 처하지 않을 그런 경우는 없고, 그런 여지는 없다.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꺼내어 이전의 이야기를 회피할 것이다. 성급함과 분노와 의혹을 드러낼 것이다. 사라바 유행승처럼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세존께서는 삽삐니 강기슭의 유행승들의 사원에서 세 번 사자후를 토한 뒤 허공을 날아 떠나갔다.


세존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 그 유행승들은 사라바 유행승을 둘러싸고 심한 말로 야유를 퍼부으면서 공격하였다.
“예를 들면, 도반 사라바여, 큰 숲에서 늙은 쟈칼이 ‘나는 사자후를 토할 것이다.’라며 단지 쟈칼의 소리를 냅니다. 쟈칼의 울음소리를 낼 뿐입니다. 이처럼, 도반 사라바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없는 곳에서 ‘나는 사자후를 토하리라.’라며 단지 쟈칼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쟈칼의 울음소리를 내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 사라바여, 어리석은 맛다리 새가 ‘나는 뻐꾸기 소리를 낼 것이다.’라며 단지 어리석은 맛다리 새의 소리를 냅니다. 이와 같이, 도반 사라바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없는 곳에서 ‘나는 뻐꾸기 소리를 낼 것이다.’라며 단지 어리석은 맛다리 새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 사라바여, 황소가 비어있는 외양간에서 우렁차게 포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도반 사라바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없는 곳에서 우렁차게 포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그렇게 그 유행승들은 사라바 유행승을 둘러싸고 심한 말로 야유를 퍼부으면서 공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