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고통스러운 곳(악처)에 태어난 자 품 Āpāyika-vagga(AN3.114-123)
āpāyikasuttaṃ (AN 3.114-고통스러운 곳에 태어난 자 경)
114. “비구들이여, 이것을 버리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곳(악처)에 태어나고 지옥에 태어난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범행을 닦는다고 말하는 사람,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사람을 근거 없이 범행을 닦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 '감각적 쾌락들에는 비난할만한 것이 없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졌지만 그 감각적 쾌락들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이것을 버리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곳에 태어나고 지옥에 태어난 세 부류의 사람이다.”
dullabhasuttaṃ (AN 3.115-얻기 어려움 경)
115. “비구들이여, 세 가지의 출현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의 출현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천명한 법과 율을 설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
비구들이여, 만들어진 것[무상(無常)-무아(無我)-연기(緣起)]을 알고, 만들어진 것[무상-무아-연기]를 경험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
appameyyasuttaṃ (AN 3.116-헤아릴 수 없는 사람 경)
116.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어떤 세 부류인가?
헤아리기 쉬운 사람,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헤아리기 쉬운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들뜨고, 무례하고, 많이 많고, 말이 산만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바른 앎이 없고, 삼매를 닦지 않고, 혼란한 마음을 가졌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비구들이여, 헤아리기 쉬운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들뜨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안정되고, 말이 많지 않고, 말이 일관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바른 앎이 있고, 삼매를 닦고, 집중된 마음을 가졌고, 감각기능이 제어되었다. 이 사람이, 비구들이여,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번뇌 다한 아라한이다. 이 사람이, 비구들이여,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āneñjasuttaṃ (AN 3.117-흔들리지 않는 경지 경)
117.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세 부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인식)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문다. 그는 이 선정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에 만족을 느낀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섬이 없고 죽은 뒤에는 공무변처에 도달한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공무변처에 태어난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2만 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의 모태에도 가고 아귀계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무색계의 존재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날 곳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간의 특별함이고 차이점이고 다른 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문다. 그는 이 선정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에 만족을 느낀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섬이 없고 죽은 뒤에는 식무변처에 도달한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식무변처에 태어난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4만 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의 모태에도 가고 아귀계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서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무색계의 존재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날 곳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간의 특별함이고 차이점이고 다른 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문다. 그는 이 선정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으로 만족을 느낀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는 무소유처에 도달한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무소유처에 태어난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6만 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서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의 모태에도 가고 아귀계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수명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무색계의 존재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날 곳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간의 특별함이고 차이점이고 다른 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vipattisampadāsuttaṃ (AN 3.118-실패와 성공 경)
118.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결함)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계의 실패, 마음의 실패, 견해의 실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계행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욕설)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계의 실패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간탐하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실패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보시란 없다. 제물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변화하여 태어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졌고 전도된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실패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마음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견해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구족,갖춤)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계의 성공, 마음의 성공, 견해의 성공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계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말을 멀리 떠나고, 거친 말(욕설)을 하는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계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렴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간탐하지 않고, 성냄 없는 마음을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보시란 있다. 제물이란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바른 견해를 가졌고, 전도되지 않은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마음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견해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이 있다.”
apaṇṇakasuttaṃ (AN 3.119-흠 없음 경)
119.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계의 실패(결함), 마음의 실패, 견해의 실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계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거친 말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계의 실패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간탐하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실패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보시란 없다. 제물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변화하여 태어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졌고 전도된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실패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마음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견해의 실패를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흠이 없는 보배가 위로 던져지면 그것이 어디에 떨어지든지 바르게 잘 놓이는 것과 같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실패를 원인으로 ···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구족,갖춤)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계의 성공, 마음의 성공, 견해의 성공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계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말을 멀리 떠나고, 거친 말(욕설)을 하는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계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렴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간탐하지 않고, 성냄 없는 마음을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보시란 있다. 제물이란 있다. 공양이란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바른 견해를 가졌고, 전도되지 않은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마음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견해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흠 없는 보배가 위로 던져지면 어디에 떨어지든 바르게 잘 놓이는 것과 같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계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또는, 중생들은 마음의 성공을 원인으로 ··· 견해의 성공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이 있다.”
kammantasuttaṃ (AN 3.120-업 경)
120.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가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업의 실패, 생활의 실패, 견해의 결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업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간하는 말을 하고, 욕설(거친 말)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업의 실패하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생활(생계)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삿된 생활을 한다. 삿된 생활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생활의 실패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실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보시란 없다. 제물이란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변화하여 태어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삿된 견해를 가졌고 전도된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실패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실패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업(행위)의 성공, 생활의 성공, 견해의 성공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업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생활의 성공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바른 생활을 한다. 삿된 생활을 버리고, 바른 생활로써 생계를 유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생활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견해의 성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보시란 있다. 제물이란 있다.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그것을 알려주는,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들어간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바른 견해를 가졌고 전도되지 않은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견해의 성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성공이 있다.”
paṭhamasoceyyasuttaṃ (AN 3.121-청결 경1)
121. “비구들이여, 세 가지 청결(깨끗함)이 있다. 어떤 셋인가?
몸의 청결, 말의 청결, 마음의 청결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의 청결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말의 청결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말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청결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간탐하지 않고, 성냄 없는 마음을 가지고, 바른 견해를 가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가지 청결이다.”
dutiyasoceyyasuttaṃ (AN 3.122-청결 경2)
122. “비구들이여, 세 가지 청결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몸의 청결, 말의 청결, 마음의 청결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의 청결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말의 청결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말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청결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있을 때 ‘내 안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알아 차리고, 안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없을 때 ‘내 안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알아 차린다.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면 생겨났다고 알아 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버려지면 버려졌다고 알아 차리며, 버려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고 알아 차린다.
안에 성냄이 있을 때 ‘내 안에 성냄이 있다.’라고 알아 차리고, 안에 성냄이 없을 때 ‘내 안에 성냄이 없다.’고 알아 차린다. 생겨나지 않은 성냄이 생겨나면 생겨났다고 알아 차리고, 생겨난 성냄이 버려지면 버려졌다고 알아 차리며, 버려진 성냄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고 알아 차린다.
안에 해태와 혼침(졸음과 혼침)이 있을 때 ‘내 안에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알아 차리고, 안에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 안에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알아 차린다. 생겨나지 않은 해태와 혼침이 생겨나면 생겨났다고 알아 차리고, 생겨난 해태와 혼침이 버려지면 버려졌다고 알아 차리며, 버려진 해태와 혼침이 이후에 셩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고 알아 차린다.
안에 들뜸과 후회(들뜸)가 있을 때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알아 차리고, 안에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 안에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알아 차린다. 생겨나지 않은 들뜸과 후회가 생겨나면 생겨났다고 알아 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후회가 버려지면 버려졌다고 알아 차리며, 버려진 들뜸과 후회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고 알아 차린다.
안에 의심이 있을 때 ‘내 안에 의심이 있다.’고 알아 차리고, 안에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알아 차린다. 생겨나지 않은 의심이 생겨나면 생겨났다고 알아 차리고, 생겨난 의심이 버려지면 버려졌다고 알아 차리며, 버려진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고 알아 차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청결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가지 청결이다.
몸의 깨끗함, 말의 깨끗함, 번뇌없는 마음의 깨끗함,
깨끗함이라는 청결을 갖춘 자를 그들은 악을 씻은 자라고 말한다.
moneyyasuttaṃ (AN 3.123-성자다움 경)
123. “비구들이여, 세 가지 성자다움이 있다. 어떤 셋인가?
몸의 성자다움, 말의 성자다움, 마음의 성자다움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몸의 성자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해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몸의 성자다움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말의 성자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말의 성자다움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성자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런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마음의 성자다움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가지 성자다움이다.
몸의 성자(聖者), 말의 성자, 번뇌 없는 마음의 성자,
성자다움을 갖춘 성자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린 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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