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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의 모음 - 11. 바른 깨달음 품(Sambodha-vagga. AN3.104-113)

실론섬 2014. 6. 16. 00:17

제11장 바른 깨달음 품 Sambodha-vagga(AN.3.104-113)

pubbevasambodhasuttaṃ (AN 3.104-깨달음 이전 경)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이 세상의 맛이고 무엇이 위험(잘못됨)이며 무엇이 벗어남인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을 ()하여 일어나는 즐거움과 만족(유쾌함)이 세상의 맛이다. 세상의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 세상의 위험이다. 세상에 대한 탐욕의 제어와 탐욕의 버림이 세상에서 벗어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한 때까지는,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공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paṭhamāssādasuttaṃ (AN 3.105-맛 경1)

105.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의 맛을 찾기 위해 유행하였다. 나는 세상의 맛을 알았고 세상의 맛이라고 알려진 것을 지혜로 분명하게 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의 이험을 찾기 위해 유행하였다. 나는 세상의 위험을 알았고 세상의 잘못됨이라고 알려진 것을 지혜로 분명하게 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에서 벗어남을 찾기 위해 유행하였다. 나는 세상의 벗어남을 알았고 세상에서 벗어남이라고 알려진 것을 지혜로 분명하게 보았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지혜로 알지 못한 때까지는,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공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지혜로 알았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나는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 대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dutiyāssādasuttaṃ (AN 3.106-맛 경2)

106. “비구들이여, 만일 세상에 맛이 없다면, 중생들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맛이 있으므로 중생들은 세상에 집착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세상에 위험이 없다면 중생들은 세상에 염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위험이 있으므로 중생들은 세상에 대해 염오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세상에서 벗어남이 없다면, 중생들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벗어남이 있으므로 중생들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면,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풀려나지 못하고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알았기 때문에 중생들은 하늘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의 인간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풀려나고 자유로워지고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samaṇabrāhmaṇasuttaṃ (AN 3.107-사문-바라문 경)

107. 비구들이여,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나는 사문중에서 사문이라고 동의하지 않고 바라문중에서 바라문이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 존자들은 사문됨의 목적이나 바라문됨의 목적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세상의 맛을 맛이라고, 위험을 위험이라고, 벗어남을 벗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아 차리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나는 사문중에서 사문답고 바라문중에서 바라문답다고 동의한다. 또한 그 존자들은 사문됨의 목적이나 바라문됨의 목적을 현재의 법 안에서 스스로 철저히 알았거나 겪어 알아 갖추어 머무는 것이다.”

 

ruṇṇasuttaṃ (AN 3.108-울음 경)

108. “비구들이여, 노래하는 것은 성스러운 율에서는 우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춤추는 것은 성스러운 율에서는 미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치아를 드러내놓고 소리내어 웃는 사람은 성스러운 율에서는 유치한 짓이다(어린아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노래할 조건을 부수라. 춤출 조건을 부수라. 그대들에게 법의 환희가 있을 때 미소는 단지 미소만으로 충분하다.”

 

atittisuttaṃ (AN 3.109-만족이 없음 경)

109. “비구들이여, 세 가지에 탐닉에는 만족이 없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잠의 탐닉에는 만족이 없다. 비구들이여, 술과 발효액을 마시는 탐닉에는 만족이 없다. 비구들이여, 성행위를 즐기는 탐닉에는 만족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탐닉에는 만족이 없다.”

 

arakkhitasuttaṃ (AN 3.110-보호되지 않음 경)

110.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마음이 보호되지 않을 때 몸의 업도 보호되지 않고, 말의 업도 보호되지 않고, 마음의 업도 보호되지 않는다. 몸의 업이 보호되지 않고 말의 업이 보호되지 않고 마음의 업이 보호되지 않은 자에게 (오염원들이)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 나오고, 마음의 업에서도 흘러 나온다.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 나오고 마음의 업에서 흘러 나오는 자에게 몸의 업도 악취가 나고 말의 업도 악취가 나고 마음의 업도 악취가 난다. 몸의 없이 악취가 나고 말의 업이 악취가 나고 마음의 업이 악취가 나는 자는 안락하게 죽지 못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장자여, 뾰족지붕 건물의 지붕이 잘 덮이지 않으면 뾰족지붕도 보호되지 않고, 서까래도 보호되지 않고, 벽도 보호되지 않는다. 뾰족지붕도 새고, 서까래도 새고, 벽에서도 샌다. 뾰족지붕도 악취가 나고, 서까래도 악취가 나고, 벽도 악취가 난다.

 

이처럼, 장자여, 마음이 보호되지 않을 때 몸의 업도 보호되지 않고, 말의 업도 보호되지 않고, 마음의 업도 보호되지 않는다. 몸의 업이 보호되지 않고 말의 업이 보호되지 않고 마음의 업이 보호되지 않은 자에게 (오염원들이)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 나오고, 마음의 업에서도 흘러 나온다.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 나오고 마음의 업에서 흘러 나오는 자에게 몸의 업도 악취가 나고 말의 업도 악취가 나고 마음의 업도 악취가 난다. 몸의 없이 악취가 나고 말의 업이 악취가 나고 마음의 업이 악취가 나는 자는 안락하게 죽지 못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장자여, 마음이 보호될 때 몸의 업도 보호되고, 말의 업도 보호되고, 마음의 업도 보호된다. 몸의 업이 보호되고 말의 업이 보호되고 마음의 업이 보호된 자에게 (오염원들이) 몸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고, 마음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지 않고 말의 업에서 흘러나오지 않고 마음의 업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자에게 몸의 업도 악취가 나지 않고 말의 업도 악취가 나지 않고 마음도 업도 악취가 나지 않는다. 몸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고 말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고 마음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는 자는 안락하게 죽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한다.

 

예를 들면, 장자여, 뾰족지붕 건물의 지붕이 잘 덮이면 뾰족지붕도 보호되고 서까래도 보호되고 벽도 보호된다. 뾰족지붕에서도 새지 않고, 서까래에서도 새지 않고 벽에서도 새지 않는다. 뾰족지붕도 악취가 나지 않고, 서까래도 악취가 나지 않고 벽도 악취가 나지 않는다.

 

이처럼, 장자여, 마음이 보호될 때 몸의 업도 보호되고, 말의 업도 보호되고, 마음의 업도 보호된다. 몸의 업이 보호되고 말의 업이 보호되고 마음의 업이 보호된 자에게 (오염원들이) 몸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고, 말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고, 마음의 업에서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몸의 업에서 흘러 나오지 않고 말의 업에서 흘러나오지 않고 마음의 업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자에게 몸의 업도 악취가 나지 않고 말의 업도 악취가 나지 않고 마음도 업도 악취가 나지 않는다. 몸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고 말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고 마음의 업이 악취가 나지 않는 자는 안락하게 죽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한다."

 

byāpannasuttaṃ (AN 3.111-오염 경)

111.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마음이 오염되면(악의에 참) 몸의 업도 오염되고 말의 업도 오염되고 마음의 업도 오염된다. 몸의 업이 오염되고 말의 업이 오염되고 마음의 업이 오염된 자는 안락하게 죽지 못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장자여, 뾰족지붕 건물의 지붕이 잘 덮이지 않으면 뾰족지붕도 오염되고 서까래도 오염되고 벽도 오염된다. 이처럼, 장자여, 마음이 오염되면 몸의 업도 오염되고 말의 업도 오염되고 마음의 업도 오염된다. 몸의 업이 오염되고 말의 업이 오염되고 마음의 업이 오염된 자는 안락하게 죽지 못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장자여,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몸의 업도 오염되지 않고 말의 업도 오염되지 않고 마음의 업도 오염되지 않는다. 몸의 업이 오염되지 않고 말의 업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의 업이 오염되지 않는 자는 안락하게 죽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한다. 예를 들면, 장자여, 뾰족지붕 건물의 지붕이 잘 덮이면 뾰족지붕도 오염되지 않고 서까래도 오염되지 않고 벽도 오염되지  않는다. 이처럼, 장자여,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몸의 업도 오염되지 않고 말의 업도 오염되지 않고 마음의 업도 오염되지 않는다. 몸의 업이 오염되지 않고 말의 업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의 업이 오염되지 않는 자는 안락하게 죽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한다.”

 

paṭhamanidānasuttaṃ (AN 3.112-인연(因緣) 경1)

112.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셋인가?

탐욕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성냄이 업들이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만들었고 탐욕에서 생겼고 탐욕이 인연이고, 탐욕에서 자라난 업은 불선(不善)이고, 그 업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과보가 괴로움이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고, 업의 소멸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성냄이 만들었고 성냄에서 생겼고 성냄이 인연이고, 성냄에서 자라난 업은 불선(不善)이고, 그 업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과보가 괴로움이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고, 업의 소멸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이 인연이고, 어리석음에서 자라난 업은 불선(不善)이고, 그 업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과보가 괴로움이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고, 업의 소멸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셋인가?

탐욕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성냄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 없음이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탐욕 없음이 만들었고, 탐욕 없음에서 생겼고, 탐욕 없음이 원인이고, 탐욕 없음에서 일어난 그 업은 ()이고, 그 업은 비난받을 일이 없고, 과보가 즐거움이고, 업의 소멸로 이끌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성냄 없음이 만들었고, 성냄 없음에서 생겼고, 성냄 없음이 원인이고, 성냄 없음에서 일어난 그 업은 선(善)이고, 그 업은 비난받을 일이 없고, 과보가 즐거움이고, 업의 소멸로 이끌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이 만들었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겼고, 어리석음 없음이 원인이고, 어리석음 없음에서 일어난 그 업은 ()이고, 그 업은 비난받을 일이 없고, 과보가 즐거움이고, 업의 소멸로 이끌고, 업의 자라남으로 이끌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dutiyanidānasuttaṃ (AN 3.113-인연 경2)

113. “비구들이여, 업들이 자라나기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셋인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탐욕)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한다. 그가 지나친 관심과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할 때 열망이 생긴다. 열망이 생긴 자는 그 법들에 의해 묶인다. 비구들이여,  마음의 탐욕을 나는 족쇄라고 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할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하는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한다. 그에게 지나친 관심을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할 때 열망이 생긴다. 열망이 생긴 자는 그 법들에 의해  묶인다. 비구들이여, 마음의 탐욕을 나는 족쇄라고 말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할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한다. 그에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마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지켜보게 할 때 열망이 생긴다. 열망이 생긴 자는 그 법들에 의해 묶인다. 비구들이여, 마음의 탐욕을 나는 족쇄라 부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 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업들이 자라나기 위한  세 가지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업들이 자라나기 위한 이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어떤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과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난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의 미래의 과보를 분명히 안다. 미래의 과보를 안 뒤에 그것을 멈춘다. 그것을 멈춘 뒤에,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한 뒤에, 지혜로써 통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과거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의 미래의 과보를 분명히 안다. 미래의 과보를 안 뒤에 그것을 멈춘다. 그것을 멈춘 뒤에,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한 뒤에, 지혜로써 통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미래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현재의 법들의 미래의 과보를 분명히 안다. 미래의 과보를 안 뒤에 그것을 멈춘다. 그것을 멈춘 뒤에,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한 뒤에, 지혜로써 통찰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지나친 관심이 함께하는 현재의 법들과 관련하여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업들이 자라기 위한 세 가지 인연이다.”

 

 

바른 깨달음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