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 2. 걷고 있음 품(Cara-vagga. AN4.11-20)

실론섬 2014. 6. 21. 21:55

제2장 걷고 있음 품 Cara-vagga(AN4.11-20)

 

carasuttaṃ (AN 4.11-걷고 있음 경)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걷고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 떠오르고, 비구가 그것을 품고 있고 버리지 않고 제거하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걷고 있을 때도 '근면하지 않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항상 게으르고 노력이 저열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서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 떠오르고, 비구가 그것을 품고 있고 버리지 않고 제거하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비구는 서 있을 때도 '근면하지 않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항상 게으르고 노력이 저열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앉아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 떠오르고, 비구가 그것을 품고 있고 버리지 않고 제거하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비구는 앉아 있을 때도 '근면하지 않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항상 게으르고 노력이 저열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누워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 떠오르고, 비구가 그것을 품고 있고 버리지 않고 제거하지 않고 끝내지 않고 없애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비구는 누워있을 때도 '근면하지 않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항상 게으르고 노력이 저열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걷고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나 해코지의 생각이 일어나고 비구가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비구는 걷고 있을 때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항상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서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나 해코지의 생각이 일어나고 비구가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인 비구는 서 있을 때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항상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앉아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나 해코지의 생각이 일어나고 비구가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면, 비구들이여,이런 상태인 비구는 앉아 있을 때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항상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누워있을 때 감각적 쾌락의 생각이나 성냄의 생각이나 해코지의 생각이 일어나고 비구가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면, 비구들이여,이런 상태인 비구는 누워있을 때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항상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만약 걷고 있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때

재가에 연결된 악한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는 모르기 마련인 것들로 기울어 잘못된 실천을 하는 자이다.

그런 비구는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

 

그리고 겉고 있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한 뒤에 생각의 가라앉음을 기뻐하는

그런 비구는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

 

sīlasuttaṃ (AN 4.12-계(戒) 경)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계목)를 갖추어 머물러야 한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계를 갖추고 , 빠띠목카(계목)를 갖추어 머물고,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고,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른 행실(acara)이 있고, 바르지 못한 행실이 있다. 몸으로 범하고, 입으로 범하고, 몸과 입 둘 모두로 범하는 것이 바르지 못한 행실이다. 모든 나쁜 계행이 바르지 못한 행실이다.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실인가? 몸으로 범하지 않고 ... 세존께서 나무라신 다른 삿된 생계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다.(Vis.I.44)
*'행동의 영역'으로 옮긴 gocara는 문자적으로 '소가 다니는 곳이다. 마치 소가 정해진 들판에서 풀을 뜯지 않으면 길을 잃거나 맹수들로부터 해코지를 당하듯이 비구들도 탁발 등을 할 때 정해진 행동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이런 술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위방가(분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행동의 영역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것이 행동의 영역인가? 여기, 어떤 자가 기생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고, 과부, 노처녀, 중성, 비구니, 술집을 행동의 영역으로 삼지 않으며, 왕들, 대신들, 외도들, 외도들의 제자들과 섞여 사람들과 부적절한 교제를 하면서 머물지 않고,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 대해 신뢰가 있고 기뻐하고 우물과 같은 역활을 하고, 가사를 수한 자들이 자주 오가며 성인들이 출입을 좋아하고 이로움을 바라고 유가안온을 바라는 그런 가족을 의지해 살고, 섬기고, 자주 왕래한다. 이것이 행동의 영역이다.(Vbh.246-247)
*배워야 할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sikkhapada)'이라 한다. 학습하는 항목(kotthasa)이라는 뜻이다. 혹은 학습하기 위한 조목이라 해서 학습계목이라 한다. 높은 마음의 공부와 높은 지혜의 공부를 위해서 획득해야 할 수단이라는 뜻이다.(DA.iii.1026)
이것은 세존의 제자라면 반드시 받아 지녀야 할 계의 항목들로 비구계, 비구니, 사미계, 사미니계, 오계, 8계, 10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걷고 있는 비구에게 간탐(慳貪)과 성냄이 제거되고, 해태와 혼침이 제거되고, 들뜸과 후회가 제거되고, 의심이 버려지고,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삼매를 닦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로 걷고 있는 비구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서 있는 비구에게 간탐과 성냄이 제거되고, 해태와 혼침이 제거되고, 들뜸과 후회가 제거되고, 의심이 버려지고,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삼매를 닦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로 걷고 있는 비구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앉아있는 비구에게 간탐과 성냄이 제거되고, 해태와 혼침이 제거되고, 들뜸과 후회가 제거되고, 의심이 버려지고,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삼매를 닦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로 걷고 있는 비구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잠들지 않고 누워있는 동안, 비구에게 간탐과 성냄이 제거되고, 해태와 혼침이 제거되고, 들뜸과 후회가 제거되고, 의심이 버려지고,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편안하여 동요하지 않고,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삼매를 닦는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상태로 걷고 있는 비구도 '근면하고, 남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확고한 의지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자'라고 불린다."

 

“비구는 걸을 때도 제어되고, 서 있을 때 제어되고, 앉아있을 때 제어되고,

누워있을 때 제어되고, 구부릴 때 제어되고, 펼 때 제어됨으로 위로 옆으로

아래로 세상이 미치는 곳까지 간다.

 

법들의 무더기의 생겨남과 무너짐을 숙고하고,

항상 마음챙김을 가지고 바르게 마음의 삼매를 닦는 자

그러한 비구를 언제나 확고한 의지를 가진 자라고 말한다."

 

padhānasuttaṃ (AN 4.13-노력 경)

1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힌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네 가지 바른 노력이다.”

 

“바른 노력은 마라의 영역을 정복한 자들

집착없는 그들은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을 건넜다.

만족한 그들은 마라와 그의 군대를 물리치고 갈망에서 벗어났다.

마라 나무찌의 모든 군대에서 벗어난 그는 행복한다."

 

*'마라(Mara)'는 초기경의 아주 다양한 문맥에서 아주 많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주석서는 이런 다양한 마라의 언급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오염원(kilesa)으로서의 마라(ItvA.197;ThagA.ii.70등), 무더기(蘊, khandha)으로서의 마라(S.iii.195 등), 업형성력(abhisankhara)으로서의 마라, 신(devaputta)으로서의 마라, 죽음(maccu)으로서의 마라이다.(ThagA.ii.46;46;Vism.VII.59 등)
"청정도론'에서는 세존은 이러한 다섯 가지 마라를 부수 분(bhaggava)이기에 세존(bhagaa)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VII.59) 그러므로 열반이나 출세간이 아닌 모든 경지는 마라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으로서의 마라는 자재천(Vasavatti)의 경지에 있는 다마리까 천신(Damarika-devaputta)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라는 욕계의 최고 천상인 타화자재천({aranimmitavasavatti)에 거주하면서 수행자들이 욕계를 벗어나 색계. 무색계. 출세간의 경지로 향상하는 것을 방해는 자이기 때문이다.(SnA.i.44;MA.i.28) 그리고 그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삭까)처럼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마군(Marasena)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유력한 신이다. 
*'나무찌(Namuci)'는 마라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장부 주석서'는 중생들에게 불행을 불러일으켜 죽게 한다고 해서 마라라고 한다. 빠삐만(papiman)이란 그의 별명이다. 그는 참으로 사악한 법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빠삐만(사악한 자)이라 부른다. 깐하(Kanha. 검은 자), 안따까(Antaka. 끝을 내는 자), 나무찌(Namci), 방일함의 친척(pamatta-bhandu)이라는 다른 이름들도 그는 가지고 있다.(DA.ii)라고 설명한다.
한편 복주석서들은 '중생들이 해로움을 가져오는 행동으로부터 풀려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나무찌라 한다.(SAT.ii.202등)고 설명하고 있다. 불선법이나 욕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saṃvarasuttaṃ (AN 4.14-단속 경)

14.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노력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단속의 노력, 버림의 노력, 닦음의 노력, 보호의 노력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단속의 노력은 무엇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뒤따르는 부분상[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가 눈의 근(감각기능.眼根]이 보호되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상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보면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인식(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뒤따르는 부분상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음의 근이 보호되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단속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 표상(相,nimiitta)을 취하지 않으며'라는 것은 여자라든지 남자라든지 하는 표상이나 아름답다는 표상 등 오염원의 바탕이 되는 표상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본 것에서만 그친다. '세세한 부분상(anuvyanjana)을 취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손, 발, 미소, 웃음, 이야기, 앞으로 봄, 옆으로 봄 등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형태는 오염원들을 더 상세하기 하기 때문에,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상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는 단지 있는 그대로 그것을 취한다.(청정도론 54)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버림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어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일어난 성냄의 생각을 ··· 일어난 해코지의 생각을 ···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불선법(不善法)들을 품고 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버리고 없앤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버림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닦음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른 견해를 닦으며,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마음 챙김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 법에 대한 선별(간택)으로 이루어진 ··· 정진으로 이루어진 ··· 희열(기쁨)으로 이루어진 ··· 고요함(편안함)으로 이루어진 ··· 삼매로 이루어진 ···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른 견해를 닦으며,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여, 내놓음에 이르는, 기우는 평정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닦음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보호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어난 경이로운 삼매의 표상을 잘 보호한다. 즉 시체가 해골이 된 것의 인식, 벌레가 우글거리는 것의 인식, 검푸르게 변색된 것의 인식, 고름이 가득찬 것의 인식, 부패하여 갈라진 것의 인식, 부푼 것의 인식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보호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노력이 있다.”

 

“단속과 버림, 닦음과 보호

태양의 후예가 선언한 이런 네 가지 노력

이것에 의해 노력하는 비구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성취할 것이다.

 

paññattisuttaṃ (AN 4.15-알려진 것 경)

15.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몸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아수라의 왕인 라후가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는 만다따 왕이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지배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마라 빠삐만뜨가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신이 사는 세계, 마라가 사는 세계, 범천이 사는 세계, 사문과 바라문이 사는 인간의 세계, 하늘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여래∙아라한∙정등각이 으뜸이라고 알려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다.”

 

*본래 라후(Rahu)는 일식을 의인화한 것이다. 그래서 인도신화에서는 가장 신성한 태양을 먹는 자이므로 라후를 아수라의 우두머리로 간주한다.
*만다따(Mandhata) 왕은 인류 최초의 왕이었으며, 삭까족의 최초의 왕이라는 마하삼마따(Mahasammata)왕의 6대째가 되는 왕이었다고 한다.(J.ii.311;iii,454) 그는 엄청난 보호와 재물을 소유하였고 8만 4천년을 왕자로 있었고, 8만 4천년을 왕으로 있었고, 아승지겁의 수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SnA.i.352) 그래서 본경에서는 그를 일러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부르고 있다.

 

“몸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라후가 으뜸이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는 만다따가 으뜸이다.

지배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는 신통과 명성을 가지고 빛나는 마라 빠삐만뜨가 으뜸이다.

 

위든 옆이든 아래든 세상과 갈 곳까지에서

신과 함께한 세상 가운데 깨달은 자(붓다)가 으뜸이라고 말한다."

 

sokhummasuttaṃ (AN 4.16-뛰어남 경)

16.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뛰어남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물질(색.色)에 대한 최상의 뛰어남을 갖춘다. 그리고 그 물질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물질의 뛰어남을 보지 못하고, 그 물질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물질의 뛰어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느낌(수.受)에 대한 최상의 뛰어남을 갖춘다. 그리고 그 느낌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느낌의 뛰어남을 보지 못하고, 그 느낌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느낌의 뛰어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인식(상.想)에 대한 최상의 뛰어남을 갖춘다. 그리고 그 인식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인식의 뛰어남을 보지 못하고, 그 인식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인식의 뛰어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형성들(행.行)에 대한 최상의 뛰어남을 갖춘다. 그리고 그 형성들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형성들의 뛰어남을 보지 못하고, 그 형성들의 뛰어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형성들의 뛰어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질의 성질에 대해 뛰어남과 느낌의 생겨남과

인식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디에서 사라지는지 알고,

형성들을 남으로부터, 괴로움으로부터, 자아가 아님으로부터 알아서

 

진정 바르게 보는 그 비구, 평화롭고, 평화로운 경지를 좋아하는 그 비구는

마라와 그의 군대를 물리치고 마지막 몸을 갖는다.

 

paṭhamāgatisuttaṃ (AN 4.17-방향 아닌 곳 경1)

17.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잘못된 길을) 감이 있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두려움 때문에 바향 아닌 곳으로 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방향 아닌 곳으로 감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때문에 법과 어긋나는 자

그의 명성은 줄어든다. 마치 하현의 달과도 같이.”

 

dutiyāgatisuttaṃ (AN 4.18-방향 아닌 곳 경2)

18.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음이 있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음이 있다.”

 

“열의, 성냄, 두려움, 어리석음 때문에

법과 어긋나지 않는 자

그의 명성은 가득 찬다. 마치 상현의 달과도 같이.”

 

tatiyāgatisuttaṃ (AN 4.19-방향 아닌 곳 경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감이 있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감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음이 있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음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때문에 법과 어긋나는 자

그의 명성은 줄어든다. 마치 하현의 달과도 같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때문에 법과 어긋나지 않는 자

그의 명성은 가득 찬다. 마치 상현의 달과도 같이.”

 

bhattuddesakasuttaṃ (AN 4.20-음식 분배 담당자 경)

2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음식 분배 담당자(음식 분배 소임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간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음식 분배 담당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음식 분배 담당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어떤 넷인가?

탐욕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성냄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어리석음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방향 아닌 곳으로 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음식 분배 담당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여진다.”

 

“누구든지 감각적 쾌락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법답지 못하고 법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

이것이 하챦은 대중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아시는 분, 사문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법 위에 서서 악을 행하지 않는

그 고결한 사람들은 칭찬받아야 한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최고의 대중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아시는 분, 사문은 말씀하셨다.”

 

 

 

제2장 걷고 있음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