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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의 모음 - 6. 공덕을 쌓음 품(Puññābhisanda-vagga. AN4.51-60)

실론섬 2014. 6. 22. 13:29

Ⅱ.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Dutiya-paṇṇāsaka

 

제6장 공덕을 쌓음 품 Puññābhisanda-vagga (AN4.51-60)

 

paṭhamapuññābhisandasuttaṃ (AN 4.51-공덕을 쌓음 경1)

51.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공덕을 쌓고, 공덕(功德)을 쌓고, 유익(有益)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보시한 의복을 수용하는 비구가 무량한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것은 보시자에게 무량한 공덕을 쌓고,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보시한 탁발음식을 수용하는 비구가 무량한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것은 그 보시자에게 무량한 공덕을 쌓고,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보시한 거처를 수용하는 비구가 무량한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것은 그 보시자에게 무량한 공덕을 쌓고,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보시한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수용하는 비구가  무량한 마음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것은 그 보시자에게 무량한 공덕을 쌓고,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이런 네 가지가, 비구들이여,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이런 네 가지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는 것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만큼의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그 공덕의 크기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공덕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이만한 용량의 물이 있다거나, 이만한 용량의 백 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만한 용량의 천 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만한 용량의 십만 배의 물이 있다.’라고 큰 바다에서 물의 양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만,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공덕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는 것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만큼의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그 공덕의 크기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공덕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사람의 여러 무리에게 도움주는 것인 강들
여러 갈래의 강들은
한량없이 큰 호수 같은 대양(大洋),
커다란 두려움과 함께 보석 무더기가 잠겨있는 바다에 닿는다.

이렇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옷을 보시하고
거처와 누울 자리를 보시하는 현명한 사람에게
공덕의 흐름은 닿는다.
강들이 물을 싣고 바다에 닿듯이."

 

dutiyapuññābhisandasuttaṃ (AN 4.52-공덕을 쌓음 경2)

52. “비구들이여,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라고 세존께 아주 바르고 정확함(분명하고 완전한 흔들림없는 믿음)을 가진다. 이것이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다. 이것이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이요, 여덟 단계에 계신 분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의 복전이시다.’라고 승가에 아주 바르고 정확함을 가진다. 이것이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구족한다. 이것이 이것이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이런 네 가지가, 비구들이여,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바탕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으로 이끌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이런 네 가지는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여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잘 확립된 사람에게

성자들이 동의하고 칭찬하는 유일한 계를 지닌 사람에게

 

성자들에 대한 분명함이 있고, 올곧은 존재를 보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를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삶은 쓸모 없지 않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믿음과 계와 분명하게 법을 보는 일

그리고 깨달은 님의 가르침에 대한 기억을 실천하게 해야(가르쳐야) 한다."

 

paṭhamasaṃvāsasuttaṃ (AN 4.53-함께하는 삶 경1)
53.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마두라와 웨란자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 걷고 계셨다. 많은 장자와 장자의 아내들도 마두라와 웨란자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길을 걷는 도중에 길을 벗어나서 어떤 나무 아래 앉으셨다. 장자와 장자의 아내들이 어떤 나무 아래 앉아 계신 세존을 보았다. 보고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장자와 장자의 아내들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네 가지 함께하는 삶이 있다. 어떤 넷인가?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저열한 자가 여신(女神)과 함께 산다. 신이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신이 여신과 함께 산다.

 

장자들이여, 어덯게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사는가?

여기, 장자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술과 발효액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해 방일하게 머무는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는 자로서 인색의 때가 스며든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의 아내도 역시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해 방일하게 머무는 자이자.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는 자로서 인색의 때가 스며든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장자들이여,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장자들이여, 어떻게 저열한 자가 여신(女神)과 함께 사는가?

여기, 장자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방일하게 머무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는 자로서 인색의 때가 스며든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러나 아내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계행을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장자들이여, 저열한 자가 여신과 함께 산다.

 

장자들이여, 어떻게 신이 저열한 여자와 함께 사는가?

여기, 장자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계행을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러나 아내는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방일하게 머무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는 자로서 인색의 때가 스며든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장자들이여, 신이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장자들이여, 어떻게 신이 여신과 함께 사는가?

여기, 장자들이여, 여기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계행을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리고 아내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계행을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장자들이여, 신이 여신과 함께 산다.

이것이, 장자들이여, 네 가지 함께하는 삶이다.” 

 

“둘 모두다 계를 경시하고 인색하고 비방을 일삼는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사는 저열한 부부이다.

남편은 계를 경시하고 인색하고 비방을 하지만 아내는 계를 중시하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인색함을 건넜다.

이것은 여신이 저열한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다.

남편은 계를 중시하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인색함 건넜지만 아내가 계를 경시하고 인색하고 비방을 하면

저열한 여인이 신인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다.

 

둘 모두다 믿음 있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제어하고 법다운 삶을 사는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서로서로 사랑스런 말들을 나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이익이 있고 편안함이 생겨난다.

마라는 실망하게 된다. 둘 모두다 계를 중시함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기 이 세상에서 둘 모두다 법을 행하고 계를 중시하고 동등한 실천을 가지면

다음 생에는 신의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기쁨 누리게 된다.”

 

dutiyasaṃvāsasuttaṃ (AN 4.54-함께하는 삶 경2)

54. “비구들이여, 네 가지 함께 사는 삶이 있다. 어떤 넷인가?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저열한 자가 여신과 함께 산다. 신이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신이 여신과 함께 산다.

 

비구들이여, 어덯게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욕설(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고, 간탐하는 자이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진 자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나쁘고, 악한 성품을 가졌고,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며,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아내도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욕설(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고, 간탐하는 자이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진 자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나쁘고, 악한 성품을 가졌고,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며,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저열한 자가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저열한 자가 여신과 함께 사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욕설(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고, 간탐하는 자이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진 자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나쁘고, 악한 성품을 가졌고,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며,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러나 아내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간탐하지 않는 자이고, 성냄없는 마음을 가진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저열한 자가 여신과 함께 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신이 저열한 자와 함께 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간탐하지 않는 자이고, 성냄없는 마음을 가진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러나 아내는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자이고, 욕설(거친 말)을 하는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자이고, 간탐하는 자이고, 성냄에 찬 마음을 가진 자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경시하는 자, 악한 법을 가진 자, 나쁘고, 악한 성품을 가졌고,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고 비방을 하며, 인색함의 때에 얽매인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신이 저열한 자와 함께 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신이 여신과 함께 사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남편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간탐하지 않는 자이고, 성냄없는 마음을 가진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그리고 아내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이다. 간탐하지 않는 자이고, 성냄없는 마음을 가진 자이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계를 중시하는 자, 선한 법을 가진 자, 사문∙바라문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고 비방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인생의 때로부터 벗어난 마음으로 재가에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신이 여신과 함께 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함께 하는 삶이다.” 

 

“둘 모두다 계행이 나쁘고 인색하고 비방을 일삼는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사는 저열한 부부이다.

남편은 계행이 나쁘고 인색하고 비방을 하지만 아내는 계행 구족하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인색함 건넜다.

이것은 여신이 저열한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다.

남편은 계행 구족하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인색함 건넜지만 아내가 계행이 나쁘고 인색하고 비방을 하면

저열한 여인이 신인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다.

 

둘 모두다 믿음 있고 구하는 자의 말뜻을 알고 제어하고 법다운 삶을 사는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서로서로 사랑스런 말을 나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이익이 있고 편안함이 생겨난다.

마라는 실망하게 된다. 둘 모두다 동등한 계행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기 이 세상에서 둘 모두다 법을 행하고 동등한 계행과 동등한 실천을 가지면

다음 생에는 신의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기쁨 누리게 된다.”

 

paṭhamasamajīvīsuttaṃ (AN 4.55-동등한 삶 경1)

5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사슴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나꿀라삐따 장자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나꿀라삐따 

장자와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나꿀라삐따(nakulapita, 나꿀라의 아버지)와 나꾸라마따(nakulamata, 나꿀라의 어머니)는 박가(Bhagga)의 숨수마라기리(Sumsumaragiri)에 살고 있었으며 세존께서 베사깔라 숲(Bhesakalavana)에 오셔서 머무실 때 처음으로 세존을 찾아가 뵙고 발에 엎드려 '아들이여,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라고 하면서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500생을 세존의 부모였고 500생은 세존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였고 500생은 세존의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였다고 주석서는 적고 있다.(AA.iii.95)
세존께서는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따를 두고 친근한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셨고 그들은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따에게 설하신 경들이 몇 개 있는게 그만큼 세존과 인연이 많았던 부부였고 본서에서 보드시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세존이시여, 저의 아내 나꿀라마따가 어린 나이에 어린 저에게 온 이래로 저는 저의 아내 나꿀라마따를 마음으로라도 거역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몸으로 나쁜 행실을 하였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희는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합니다(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도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린 나이에 어린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시집을) 온 이래로 저는 나꿀라삐따를 마음으로라도 거역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몸으로 나쁜 행실을 하였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희는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들이여, 만약 부부가 양쪽 모두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양쪽 모두가 동등한 믿음, 동등한 계, 동등한 베풂(보시), 동등한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은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고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다.”  

 

“양쪽 모두 믿음 있고, 아낌없이 베풀고, 제어되고, 법다운 삶을 사는

그 부부는 서로서로 사랑스럽게 말한다 말한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이익이 있고 편안함이 생겨난다.

양쪽 모두 계를 가진 그들에게 마라는 실망하게 된다.

 

동등하게 계를 지키는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법을 행한 뒤에

신들의 세상에서 기뻐하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그들은 기뻐한다."

 

dutiyasamajīvīsuttaṃ (AN 4.56-동등한 삶 경2)

56. “비구들이여, 양쪽 부부가 양쪽 모두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양쪽 모두가 동등한 믿음, 동등한 계, 동등한 보시, 동등한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금생에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고 내세에서도 서로서로 보게 될 것이다.”

 

“양쪽 모두 믿음 있고, 아낌없이 베풀고, 제어되고, 법다운 삶을 사는
그 부부는 서로서로 사랑스럽게 말한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이익이 있고 편안함이 생겨난다.
둘 다 동등한 계를 가진 그들에게 마라는 실망하게 된다.

 

동등하게 계를 지키는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법을 행한 뒤에 
신들의 세상에서 기뻐하고,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그들은 기뻐한다."

 

suppavāsāsuttaṃ (AN 4.57-숩빠와사 경)

57.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꼴리야에서 빳자니까라는 꼴리야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는 세존께 맛있고 먹기 좋은 음식을 직접 손으로 만족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꼴리야(Koliya)는 로히니(Rohini) 강을 사이에 두고 삭까와 인접한 공화국 체제를 유지한 나라였다. 꼴리야의 선조가 삭까의 여인과 결혼해서 꼴리야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삭까와는 형제국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고 한다.(DPPN) 라마가마(Ramagama)와 데와다가(Devadaha)가 주요 도시였으며 그 이외에도 여러 곳이 초기경에 언급될 정도로 세존과 제자들과도 인연이 많은 나라였다.
*숩빠와사(Suppavasa)는 초기경에 자주 언급되는 릿차위 마할리(Licchava Mahali)의 아내였다고 하며(Ap.494.vs.28) 삭까 청년의 아내였다고도 한다.(AA.i.453) 꼴리야 사람인 그녀는 세존의 가르침을 처음 듣고 바로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Ibid) 세존께서 본 경을 숩빠와사에게 설하실 정도로 그녀는 훌륭한 보시자였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뛰어난 보시를 하는 여자 신도들 가운데서 그녀가 으뜸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녀는 사왈리 조자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청신녀(여제자)는 보시 받는 자에게 네 가지를 보시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수명을 보시하고, 용모를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그리고 수명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고, 용모를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지고, 행복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고, 힘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청신녀는 보시 받는 자에게 이러한 네 가지 상태를 보시한다.”라고.

 

올바름에 도달한 분들, 실천을 이루신 분들, 위대함에 도달한 분들에 대해 주어지는
깨끗하고 뛰어나고 맛있는 잘 요리한 음식을 드리는 그 보시는
공덕에 의해 공덕이 함께하고, 큰 결실이 있다고 세상을 아는 자(世間解.세간해)는 설명한다.

이러한 제사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기쁨 가득히 살아간다.
인색의 때를 뿌리로부터 제거할 것이고,
비난할 점이 없는 그들은 천상의 토대를 얻는다."

 

sudattasuttaṃ (AN 4.58-수닷따 경)

58.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가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아나타삔디카 장자(Anathapindika gahapati. 급고득 장자)는 세존 당시 제일의 재가 신도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왓티의 상인이었으며 무의탁자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나타삔디카(무의탁자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AA.i.208;MA.i.50) 장자가 세존을 처음 뵌 것은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다음 해에 그가 사업상 라자가하를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Vin.ii.154;SA.i.240 등)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세존의 신도가 되었다. 장자가 제따 왕자와 함께 승단에 기증한 사원의 이름이 바로 사왓티에 있는 제따의 아나타삔디카 승원(급고독원)이다. 이것은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후 21년째 되는 해의 일이다.

 

“장자여, 수명을 보시하고, 용모를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그리고 수명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고, 용모를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지고, 행복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고, 힘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청신녀는 보시 받는 자에게 이러한 네 가지 상태를 보시한다. 장자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받는 자에게 이런 네 가지 상태를 보시한다.”라고. 

 

“남에 의해 주어진 음식에 대해 제어된 자에게

적절히 공경한 뒤에 음식을 드리는 사람은

수명과 용모와 행복과 힘의 네 가지 상태를 준다.

 

수명을 주고, 용모를 주고, 행복과 힘을 주는 그 사람은

태어나는 곳마다 긴 수명과 명성을 가진 자가 된다."

 

bhojanasuttaṃ (AN 4.59-음식 경)
59. “비구들이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보시 받는 자에게 네 가지를 상태를 보시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수명을 보시하고, 용모를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그리고 수명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고, 용모를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용모를 나누어 가지고, 행복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고, 힘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보시받는 자에게 이런 네 가지 상태를 보시한다."라고.

 

“남에 의해 주어진 음식에 대해 제어된 자에게

적절히 공경한 뒤에 음식을 드리는 사람은

수명과 용모와 행복과 힘의 네 가지 상태를 준다.

 

수명을 주고, 용모를 주고, 행복과 힘을 주는 그 사람은
태어나는 곳마다 긴 수명과 명성을 가진 자가 된다.”

 

gihisāmīcisuttaṃ (AN 4.60-재가자의 여법함 경)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성스러운 재가의 제자는 재가자의 여법한 실천을 하는 자여서 명성을 얻고 천상으로 이끌린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비구 승가에 가사를 공양하고, 비구 승가에 탁발음식을 공양하고, 비구 승가에 거처를 공양하고, 비구 승가에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공양한다. 장자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재가자의 여법한 실천을 하는 자여서 명성을 얻고 천상으로 이끌린다.”  

 

“현명한 사람은 재가자의 여법한 실천을 실천한다.

바르게 도달한 분들, 계를 중시하는 분들에게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공양한다.

그들은 낮에도 밤에도 항상 공덕이 늘어난다.

상서로운 업을 지은 뒤 천상의 거처로 간다.”

 

 

제6장 공덕을 쌓음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