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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의 모음 - 7. 배운 사람의 행위 품(Pattakamma-vagga. AN61-70)

실론섬 2014. 6. 22. 16:45

제7장 배운 사람의 행위 품 Pattakamma-vagga(AN4.61-70)

 

pattakammasuttaṃ (AN 4.61-배운 사람의 행위 경)

61. 그 무렵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가지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나에게 법다운 재물이 생기기를!’ 이것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첫 번째 법이다.

‘법다운 재물을 얻은 뒤, 친척들 그리고 스승들과 함께한 명성이 나에게 오기를!’ 이것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두 번째 법이다.

‘법다운 재물을 얻고, 친척들 그리고 스승들과 함께한 명성을 얻은 뒤,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지게 되기를!’ 이것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세 번째 법이다.

‘법다운 재물을 얻고, 친척들과 그리고 스승들과 함께한 명성을 얻고,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진 뒤, 몸이 무너져 즉은 뒤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나기를!’ 이것이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번째 법이다.

이것이, 장자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가지 법이다.”

 

장자여, 네 가지 법은 이런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가지 법의 이끔으로 이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믿음을 갖춤, 계를 갖춤, 보시를 갖춤, 지혜를 갖춤이다.

 

그러면 장자여, 무엇이 믿음을 갖추는 것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믿음을 가졌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장자여, 이것이 믿음의 갖춤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장자여, 무엇이 계를 갖추는 것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난다장자여, 이것이 계를 갖춤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장자여, 무엇이 보시를 갖추는 것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인색의 때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베풂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 장자여, 이것이 보시를 갖춤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지혜를 갖추는 것인가? 

장자여, 탐욕스러움이라는 간탐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무는 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그의 명성과 행복이 흩어진다. 

장자여, 성냄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무는 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이 흩어진다. 

장자여, 해태와 혼침(혼침과 졸음)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무는 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이 흩어진다. 

장자여 들뜸과 후회(들뜸)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무는 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이 흩어진다. 

장자여, 의심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무는 자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이 흩어진다.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탐욕스러움이라는 간탐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탐욕스러움이라는 간탐에 지배된 마음을 제거한다.

‘성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성냄을 제거한다. 

‘해태와 혼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해태와 혼침을 제거한다.

‘들뜸과 후회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들뜸과 후회를 제거한다.

‘의심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의심을 제거한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가 ‘탐욕스러움이라는 간탐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탐욕스러움이라는 간탐에 지배된 마음을 제거하고, ‘성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성냄을 제거하고, ‘해태와 혼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고, ‘들뜸과 후회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고, ‘의심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서 마음의 오염원인 의심을 제거했기 때문에,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큰 지혜를 가졌다. 광활한 지혜를 가졌다. 철저한 앎을 가졌다. 지혜를 갖추었다고 불린다. 장자여, 이것이 지혜를 갖춤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이런 네 가지 법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가지 법의 얻음으로 이끈다.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법답게)으로 얻은 재물로 네 가지 배운 사람의 행위를 한다. 무엇이 넷인가?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킨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킨다.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일꾼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킨다. 친구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킨다. 장자여, 이것이 그가 경우에 맞게, 배운 사람으로, 영역에 맞게(합리적이고 알맞게) 사용한 첫 번째 행위이다.

 

다시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이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 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로 재난들, 불과 물과 왕과 도둑과 사랑스럽지 않은 상속인, 이런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킨다. 장자여, 이것이 그가 경우에 맞게, 배운 사람으로, 영역에 맞게 사용한 두 번째 행위이다.

 

다시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을 재물로 다섯 가지 헌공을 한다. 친척을 위한 헌공, 손님을 위한 헌공, 죽은 자(조상을)를 위한 헌공, 왕을 위한 헌공, 신을 위한 헌공. 이것이 그가 경우에 맞게, 배운 사람으로, 영역에 맞게 사용한 세 번째 행위이다. 

 

다시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로 교만과 방일을 제어하고 인욕과 온화함에 안정되어 스스로 자신을 길들이고 스스로 자신을 제어하고 스스로 자신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 보시한다. 이러한 사문∙바라문들 하늘로 이끌고 행복의 과보가 있게 하고 천상으로 이끈다. 장자여, 이것이 그가 경우에 맞게, 배운 사람으로, 영역에 맞게 사용한 네 번째 행위이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로 이러한 네 가지 배운 사람의 행위를 한다. 장자여,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배운 사람의 행위와 다른 곳에서 재물을 낭비하는 자에게 장자여, 이 재물은 경우에 맞지 않게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서 영역에 맞지 않게 되었다고 불린다.(합리적이지 않고 알맞지 않게 재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장자여,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배운 사람의 행위로 재물을 쓰는 자에게, 장자여, 이 재물은 경우에 맞게, 배운 사람으로, 영역에 맞게 사용되었다고 불린다.

 

“'나는 재물로써 하인과 일꾼들을 고용하였고 나의 재난을 건넜다.

높은 존재로 이끄는 보시를 하였고, 다섯 가지 헌공을 하였다.

준비되고 계를 중시하는, 범행을 닦는 자들을 섬겼다.

현명한 재가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재물을 원하나니

나에게 그 목적은 달성되었고,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 성스러운 법 위에 서 있는 사람

그는 이 세상에서는 칭송을 받고, 죽은 뒤에는 천상에서 기쁨을 누린다.”

 

ānaṇyasuttaṃ (AN 4.62-빚 없음 경)

62. 그 무렵 아나타삔디카 장자가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카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장자여,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재가자가 적절한 때, 적절한 경우에 붙잡아 얻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행복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있음의 행복, 재물의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은 일이 없는 행복(결점없는 행복)이다.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있음의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좋은 가문의 아들에게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이 있다. 그는 ‘내게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이 있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것이 있음의 행복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재물의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좋은 가문의 아들은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로 재물을 사용하고 공덕을 짓는다. 그는 ‘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을 사용하고 공덕을 짓는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것이 재물의 행복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빚 없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좋은 가문의 아들은 적건 많건 누구에게도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나는 적건 많건 누구에게도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것이 빚 없는 행복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의 업을 갖추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말의 업을 갖추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마음의 업을 갖추었다. 그는 ‘나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의 업을 갖추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말의 업을 갖추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마음의 업을 갖추었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것이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라고 불린다. 

장자여, 이것이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재가자가 적절한 때, 적절한 경우에 붙잡아 얻어야 하는 네 가지 행복이다.”

 

“빚 없는 행복을 알고 난 뒤에 있음의  행복이 나중에 있다.

재물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지혜는 그때로부터 관찰한다.

관찰하는 현명한 자는 재물들 모두를 안다.

'이것은 비난 받을 일이 없는 행복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brahmasuttaṃ (AN 4.63-범천 경)

“비구들이여, 자식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범천과 함께 하는 가문이다. 

자식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이전의 스승과 함께 하는 가문이다. 

자식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이전의 신들과 함께 하는 가문이다. 

자식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은 공양 받아 마땅한 자와 함께 사는 가문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범천이라는 것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전의 스승들이라는 것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전의 신들이라는 것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공양 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부모는 자식들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 세상을 가르쳐주는 등 많은 일을 한다.”

 

“부모는 범천이라고, 이전의 스승이라고 불린다.
자식들에게 공양받을만한 사람이고, 사람들을 연민한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음식과 마실 것과 옷과 침상을 갖추고
몸을 문질러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발 씻겨드리며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해서
여기서는 현자들이 그를 칭찬하고, 죽은 뒤에는 하늘에서 기뻐한다.”

 

niraya-suttam (AN 4.64-지옥 경)

64.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을 

현자들은 칭송하지 않는다.”

 

rūpa-suttam (AN 4.65-외모 경)

65.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외모를 재어보고 외모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소리를 재어보고 소리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난행고행을 재어보고 난행고행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법을 재어보고 법에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외모로 재고 어떤 이는 명성에 따라간다.

욕심과 탐욕에 가려 상대를 알지 못하며 안도 알지 못하고 밖도 알지 못한다.

온통 덮개에 싸인 어리석은 자 명성에 따라 좌우된다.

안은 알지 못하고 밖만 보는 것이다. 밖의 결실만을 보는 자도 또한 명성을 따른다.

덮개(장애)를 걷고 보는 자만이 안도 알고 밖도 보아서

명성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sarāgasuttaṃ (AN 4.66-탐(貪)과 함께하는 자 경)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탐욕과 함께 하는 자, 성냄과 함께 하는 자, 어리석음과 함께 하는 자, 자만심과 함께 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탐욕적인 것들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자들은 매혹적인 것들에 빠지는 자들이다.

무명에 덮이고  속박된 중생들은 묶임을 증가시킨다.

 

탐욕에서 생기고 성냄에서 생긴 것과 어리석음에서 생긴 것의 상관관계에서

어리석은 자들은 근심과 괴로움을 초래하는 불선(不善)의 업(業)을 짓는다.

 

무명에 덮인 사람들은 어리석은 존재이고 눈이 없는 자이다.

그것에게 성품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ahinda-suttam (AN 4.67-뱀 왕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사왓티에서 어떤 비구가 뱀에 물려 죽었다. 그러자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사왓티에서 어떤 비구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가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폈다면 그 비구는 뱀에 물려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인가?

위루빡카 뱀 왕의 가문과 에라빠타 뱀 왕의 가문과 차뱌뿟따 뱀 왕의 가문과 깐하고따마까 뱀 왕의 가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폈다면 그 비구는 뱀에 물려 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는 것을 허락한다.”

 

“위루빡카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에라빠타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차뱌뿟따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깐하고따마까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발 없는 자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두 발 가진 자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네 발 가진 자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많은 발을 가진 자들에게 나의 자애가 있기를!

 

발 없는 자들이 나를 해코지 하지 않기를!

두 발 가진 자들이 나를 해코지 않기를!

네 발 가진 자들이 나를 해코지 않기를!

많은 발을 가진 자들이 나를 해코지 않기를!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

모두 오직 경사스러움만 보기를!

결코 악함을 만나지 않기를!”

 

세존과 법과 승가는 무한하고

기어 다니는 뱀과 전갈과 지네와

거미와 도마뱀과 생쥐는 유한하다.

나에게는 보호주가 있고 나에게는 호주가 있으니

모든 해로운 존재들은 이제 나로부터 떠나기를!

이제 나는 세존께 귀의합니다.

일곱 분의 정등각들께 귀의합니다.”

 

devadtta-sutta (AN 4.68-데와닷따 경)

68.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것은 데와닷따가 승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데와닷따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파초는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파멸로 이끌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데와닷따에게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대나무는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파멸로 이끌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데와닷따에게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갈대는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파멸로 이끌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데와닷따에게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노새는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수태(受胎)한다. 파멸로 이끌기 위해 수태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데와닷따에게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데와닷따에게 파멸로 이끌기 위해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다.

 

“참으로 열매가 파초를 해치고, 열매가 대나무를 해치고, 열매가 갈대를 해치고

수태가 노새를 해치는 것처럼 존경은 가엾은 사람을 해친다."

 

padhānasuttaṃ (AN 4.69-노력 경)

69. “비구들이여, 네 가지 노력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단속의 노력, 버림의 노력, 정진의 노력, 보호의 노력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속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단속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버림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버림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정진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진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보호의 노력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보호의 노력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노력이다.”

 

“단속과 버림과 정진과 보호

태양의 후예에 의해 설해진 이런 네 가지 노력이 있다. 

여기서 노력하는 비구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성취한다.”

 

adhammika-sutta (AN 4.70-법답지 못함 경)

“비구들이여, 왕들이 법답지 못할 때에 왕자들도 법답지 못하다. 왕자들이 법답지 못하면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법답지 못하다.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법답지 못하면 성읍과 지방민들도 법답지 못하다. 성읍과 지방민들이 법답지 못하면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별자리들도 바르게 돌지 않는다. 별자리들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밤과 낮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밤과 낮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지 않는다.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지 않으면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불고 다른 방향으로 분다.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불고 다른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화를 낸다. 신들이 화를 내면 비가 순조롭게 내리지 않는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지 않으면 곡식들이 고르게 익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인간들은 고르게 익지 않은 곡식들을 먹게 되어 수명이 짧고 용모가 나쁘고 힘이 쇠락하고 병약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왕들이 법다울 때에 왕자들도 법답다. 왕자들이 법다우면 바라문과 장자들도 법답다.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법다우면 성읍과 지방민들도 법답다. 성읍과 지방민들이 법다우면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돈다.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면 별자리들도 바르게 돈다. 별자리들이 바르게 

돌면 밤과 낮이 바르게 돈다. 밤과 낮이 바르게 돌면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돈다.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면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돈다.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면 바람이 정상적으로 불고 바른 방향으로 분다. 바람이 정상적으로 불고 바른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 

신들이 화를 내지 않으면 비가 순조롭게 내린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면 곡식들이 고르게 익는다. 

비구들이여, 인간들은 고르게 익은 곡식들을 먹게 되어 수명이 길고 용모가 아름답고 힘이 있고 병이 적다.”

 

“만약 우두머리 소가 잘못된 길을 가고, 인도자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그를 따라 강을 건너는 소들도 모두 잘못 가게 된다.

그와 같이 인간들에 있어서도 최상이라고 알려진 사람이

비법을 행한다면 나머지 백성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만일 왕이 법답지 못하면 왕국 전체가 괴로워하게 된다.

 

만약 우두머리 소가 바른 길을 가고, 인도자가 바른 길을 갈 때

그를 따라 강을 건너는 소들도 모두 바르게 간다.

그와 같이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최상이라고 알려진 자가

정법을 행한다면 나머지 백성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일 왕이 법다우면 왕국 전체가 행복하게 된다.”

 

 

제7장 합리적인 행위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