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 9. 동요하지 않음 품(Macala-vagga. AN4.81-90)

실론섬 2014. 6. 22. 17:36

제9장 동요하지 않음 품 Macala-vagga(AN4.81-90)

 

pāṇātipātasuttam (AN 4.81-불살생 경)

8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하고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musāvādasuttam (AN 4.82-거짓말 경) 

82.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하고, 이간하는 말(중상모략)을 하는 행위를 하고,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거친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avaṇṇarahasuttam (AN 4.83-비난 경) 

8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잘 알지도 못하고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고서 비난받을만한 자를 칭송한다. 

잘 알지도 못하고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고서 칭송할만한 자를 비난한다. 

잘 알지도 못하고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고서 청정한 믿음을 내지 않아야 할 경우에 청정한 믿음을 드러낸다. 

잘 알지도 못하고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고서 청정한 믿음을 내어야 할 경우에 청정한 믿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잘 알고 충분히 관찰한 뒤 비난받을만한 자를 비난한다. 

잘 알고 충분히 관찰한 뒤 칭송할만한 자를 칭송한다. 

잘 알고 충분히 관찰한 뒤 청정한 믿음을 내지 않아야 할 경우에 청정한 믿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잘 알고 충분히 관찰한 뒤 청정한 믿음을 내어야 할 경우에 청정한 믿음을 드러낸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kodhagarusuttam (AN 4.84-분노 경) 

84.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정법은 중시하지 않고 분노를 중시하는 것, 정법을 중시하지 않고 경멸을 중시하는 것, 정법을 중시하지 않고 이득을(이득을 얻는 것) 중시하는 것, 

정법을 중시하지 않고 존경을(존경을 받는 것) 중시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무엇이 넷인가?

정법은 중시하지만 분노를 중시하지 않는 것, 정법을 중시하지만 경멸을 중시하지 않는 것, 정법을 중시하지만 이득을 중시하지 않는 것, 정법은 중시하지만 존경을 중시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운반되듯 천상에 놓인다.”

 

tamotamasuttaṃ (AN 4.85-어둠에서 어둠을 경)

85.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어둠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 어둠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 빛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 빛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어둠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난 자이다. 가난하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없고 생계가 힘든 천민, 죽세공, 사냥꾼, 수레공, 청소부의 집안이다. 그곳에는 음식과 의복이 어렵게 얻어진다. 그리고 그는 안색이 나쁘고, 용모가 추하고, 키가 작고, 병약하고, 눈멀고, 기형이거나, 절름발이이거나, 반신불수이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탈 것과 꽃과 향과 바를 것 그리고 침상과 거처와 발힐 것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둠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어둠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난 자이다. 가난하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없고 생계가 힘든 천민, 죽세공, 사냥꾼, 수레공, 청소부의 집안이다. 그곳에는 음식과 의복이 어렵게 얻어진다. 그리고 그는 안색이 나쁘고, 용모가 추하고, 키가 작고, 병약하고, 눈멀고, 기형이거나, 절름발이이거나, 반신불수이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탈 것과 꽃과 향과 바를 것 그리고 침상과 거처와 발힐 것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둠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해서 빛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집안에 태어난 자이다. 부유하고 아주 부자고 많은 재물을 가졌고 금과 은이 풍부하고 많은 재화와 수입과 많은 가산과 곡식을 가진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부유한 바라문 가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집안이다. 그리고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사랑스럽고, 준수한 용모를 갖추었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탈 것과 꽃과 향과 바를 것 그리고 침상과 거처와 밝힐 것을 충분히 얻는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다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한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빛에서 어둠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빛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집안에 태어난 자이다. 부유하고 아주 부자고 많은 재물을 가졌고 금과 은이 풍부하고 많은 재화와 수입과 많은 가산과 곡식을 가진 부유한 끄샤뜨리야 가문이나 부유한 바라문 가문이나 부유한 장자의 집안이다. 그리고 그는 멋있고, 수려하고, 사랑스럽고, 준수한 용모를 갖추었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탈 것과 꽃과 향과 바를 것 그리고 침상과 거처와 밝힐 것을 충분히 얻는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말로 좋은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한 것을 원인으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에 나아가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빛에서 빛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oṇatonatasuttam (AN 4.86-낮음 경) 
86.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넷인가?
지금도 낮고 미래에도 낮은 자, 지금은 낮으나 미래에는 높은 자, 지금은 높으나 미래에는 낮은 자, 지금도 높고 미래에도 높은 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puttasuttaṃ (AN 4.87-아들 경)

87.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 같은 사문, 홍련(紅蓮) 같은 사문, 사문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뛰어난) 사문이다.

 

*'동요하지 않는 사문(samanamacalo)'은 예류자(sotapanna)라고 알아야 한다. 예류자는 성문 앞의 기둥이 네 방향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남들의 비난에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요하지 않는 믿음을 구족했다고 해서 동요하지 않는 사문이라고 한다.
탐욕과 성냄이 엷어졌기 때문에 일래자를 '백련과 같은 사문'이라 한다.
탐욕과 성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에 꽃이 필 것이라고 해서 [불환자]를 '홍련같은 사문(samana-pudarika)'이라 한다.
아라한은 매듭(gantha)을 만드는 모든 오염원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samana-sukhumala)'이라고 한다. (DA.iii.1025-1026)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동요하지(확고한) 않는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유학의 법을 닦는 자여서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열반)을 기대하면서 머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 아직 신성한 의식을 치르지 않은 그러나 확정된 첫째 왕자가 있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백련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나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은 몸으로 체득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백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홍련(紅蓮)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여덟 가지 해탈을 몸으로 체득하여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홍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의복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여기 비구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탁발음식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여기 비구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거처를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여기 비구는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그리고 그가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와 함께 머물 때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음에 드는 몸의 행위로 그를 대하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몸의 행위로 그를 대한다. 마음에 드는 말의 행위로 그를 대하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의 행위로 그를 대한다. 마음에 드는 마음의 행위로 그를 대한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의 행위로 그를 대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담즙(膽汁) 때문에 생기거나 점액(粘液) 때문에 생기거나 바람[風] 때문에 생기거나 이 세 가지가 겹쳐서 생기거나 계절의 변화에 의해서 생기거나 부자연스럽게 몸을 유지함에 의해서 생기거나 다른 이로부터 받은 상해(傷害)에 의해서 생기거나 업의 과보에 의해서 생기는 고통스런 느낌이 많지 않고 병이 적다. 그는 보다 높은 마음이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는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문은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이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사문 가운데 가장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한다면, 비구들이여, 그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나를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나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의복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탁발음식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거처를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수용한다. 그리고 내가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과 함께 머물 때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음에 드는 몸의 행위로 나를 대하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몸의 행위로 나를 대한다. 마음에 드는 말의 행위로 나를 대하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의 행위로 나를 대한다. 마음에 드는 마음의 행위로 나를 대한고 드물게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의 행위로 나를 대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담즙(膽汁) 때문에 생기거나 점액(粘液) 때문에 생기거나 바람[風] 때문에 생기거나[이 세 가지가 겹쳐서 생기거나 계절의 변화에 의해서 생기거나 부자연스럽게 몸을 유지함에 의해서 생기거나 다른 이로부터 받은 상해(傷害)에 의해서 생기거나 업의 과보에 의해서 생기는 고통스런 느낌이 많지 않고 병이 적다. 나는 보다 높은 마음이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네 가지 선정을 바르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는다. 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한다면, 비구들이여, 그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나를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가지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saṁyojanasuttam (AN 4.88- 족쇄 경)

88.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 같은 사문, 홍련(紅蓮) 같은 사문, 사문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뛰어난)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동요하지(확고한) 않는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얻었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백련(白蓮)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백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홍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sammadiṭṭhisuttam (AN 4.89-견해 경)  

89.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 같은 사문, 홍련(紅蓮) 같은 사문, 사문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뛰어난)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동요하지 않는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바른 견해[正見]을 가졌고, 바른 사유를 하고, 바른 말를 하고, 바른 행위을 하고, 바른 생계를 가졌고, 바른 정진을 하고, 바른 마음 챙김을 가졌고, 바른 삼매를 가졌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른 견해를 가졌고, 바른 사유를 하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위를 하고, 바른 생계를 가졌고, 바른 정진을 하고, 바른 마음 챙김을 가졌고, 바른 삼매를 가졌으며, 바른 지혜를 가졌고, 바른 해탈을 가졌지만 여덟 가지 해탈은 몸으로 체득하여 머물지 못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백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른 견해를 가졌고, 바른 사유를 하고, 바른 말를 하고, 바른 행위를 하고, 바른 생계를 가졌고, 바른 정진을 하고, 바른 마음 챙김을 가졌고, 바른 삼매를 가졌으며, 바른 지혜를 가졌고 바른 해탈을 하였으며, 여덟 가지 해탈을 몸으로 체득하여 머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사람은 홍련 같은 사문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사문들 가운데서 가장 세련된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의복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의복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탁발음식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거처를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한다면, 비구들이여, 그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나를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가지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khandhasuttaṃ (AN 4.90-온(蘊) 경)

90.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넷인가?

동요하지 않는 사문, 백련(白蓮)과 같은 사문, 홍련(紅蓮)과 같은 사문, 사문들 가운데서 세련된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달성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유학(有學)이다. 위없는 유가안온을 바라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동요하지 않는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백련(白蓮) 같은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이것이 물질(물질적 요소)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감수작용)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지각작용)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형성작용)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소멸이다. 이것이 의식(인식작용)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그러나 여덟 가지 해탈은 몸으로 체득하여 머물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백련 같은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홍련[紅蓮] 같은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집착에 의한 온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소멸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소멸이다. 이것이 형성[行]이다. 이것이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의 소멸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그리고 여덟 가지 해탈을 몸으로 체득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홍련 같은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문들 가운데서 세련된 사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 의복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탁발음식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거처를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공양을 받아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고 드물게 공양을 받지 않아도 감내한다.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한다면, 비구들이여, 그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나를 사문 가운데 세련된 사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가지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제9장 동요하지 않음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