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아수라 품 Asura-vagga(AN4.91-100)
asurasuttam (AN 4.91-아수라 경)
9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무엇이 넷인가?
아수라에 에워싸인 아수라, 신에 에워싸인 아수라, 아수라에 에워싸인 신, 신에 에워싸인 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아수라에 에워싸인 아수라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으며 그의 회중도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아수라에 에워싸인 아수라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신에 에워싸인 아수라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지만 그의 회중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신에 에워싸인 아수라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아수라에 에워싸인 신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지만 그의 회중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아수라에 에워싸인 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신에 에워싸인 신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고 그의 회중도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신에 에워싸인 신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paṭhamasamādhisuttaṃ (AN 4.92-삼매 경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는 얻었지만 위빳사나[觀]의 높은 지혜는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높은 지혜의 법'의 원문은 adhipanna-dhamma-vipassana 이다. 즉 형성된 것들을 파악하는 위빳사나의 지혜(sankhara-pariggahaka-vipassana-nana)를 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높은 지혜라고도 불리고 또한 오온이라 불리는 법들에 대한 위빳사나이기 때문에 위빳사나의 높은 지혜라 한다.(Ibid)
*본 경과 다음의 두 개의 경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훌륭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세 경에서 보듯이 사마타는 삼매와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지혜와 동의어이다. 그리고 사마타 즉 삼매를 먼저 얻은 사람도 있고 위빳사나 즉 지혜를 먼저 얻은 사람도 있으며 이 둘을 다 얻은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사마타를 먼저 닦으냐 위빳사나를 먼저 닦으냐 하는 것은 개인의 기질의 문제이지 반드시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다를 구족할 것을 본경은 강조하고 있다.
dutiyasamādhisuttaṃ (AN 4.93-삼매 경2)
93.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는 얻었지만 위빳사나[觀]의 높은 지혜는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었지만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지 못한 사람은, 비구들이여, 안으로 자신의 마음의 사마타에 확고히 선 후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를 닦아야 한다. 그는 나중에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는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한 사람은, 비구들이여,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를 확고히 한 후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 그는 나중에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은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지 못한 사람은 오직 그 유익한 법들을 얻기 위해 특별한한 열의와 정진과 노력과 애씀과 열정과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옷이 불타거나 머리가 불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오직 그 옷과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서 특별한 열의와 정진과 노력과 애씀과 열정과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할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오직 그 유익한 법들을 얻기 위해 특별한 열의와 정진과 노력과 애씀과 열정과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그는 나중에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은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사람은, 비구들이여, 그 유익한 법들에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tatiyasamādhisuttaṃ (AN 4.94-삼매 경3)
94.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었지만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의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지 못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었지만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지 못한 사람은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를 얻은 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참으로 형성된 것[行, saṅkhāra]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철저히 알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통찰해야 합니까?’라고.
그에게 그는 보는 대로 아는 대로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보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철저히 알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나중에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는 얻지 못한 사람은 마음의 사마타를 얻은 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참으로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집중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그에게 그는 보는 대로 아는 대로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렇게 마음을 진정해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집중해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나중에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었고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은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지 못하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지 못한 사람은 마음의 사마타도 얻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도반이여, 참으로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집중해야 합니까? 마음을 어떻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철저히 알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통찰해야야 합니까?’라고.
그에게 그는 보는 대로 아는 대로 말할 것이다.
‘도반이여, 이렇게 마음을 진정해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집중해야 하고, 이렇게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다.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보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철저히 알아야 하고,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통찰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나중에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자가 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사람은, 비구들이여, 그 유익한 법들에서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chavālātasuttaṃ (AN 4.95-화장터 나무 토막 경)
95.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런 네 가지 사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자신의 이익에도 남의 이익에도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 남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만 자신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 자신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만 남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 자신의 이익에도 남의 이익에도 도움 되는 실천을 하는 사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양쪽에 불탄 흔적이 있고 가운데는 오물이 묻은 시체를 태운 나무토막은 마을에서도 땔감 나무로 사용하지 않고, 숲에서도 땔감 나무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자신의 이익에도 남의 이익에도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남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만 자신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 이 두 사람 가운데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나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자신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만 남의 이익에는 도움 되지 않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 이 세 사람 가운데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나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자신의 이익에도 남의 이익에도 도움 되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 이 네 사람 가운데 으뜸이고 뛰어나고 벗어났고 최상이고 귀하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소로부터 우유가 있고, 우유로부터 응유가 되고, 응유로부터 생 버터가 되고 생 버터로부터 정제된 버터가 되고, 정제된 버터로부터 최상의 버터(제호, 醍醐)가 있다. 거기서 최상의 버터가 으뜸이라고 불린다."
rāgavinayasuttaṃ (AN 4.96-탐욕(貪)의 제어 경)
96.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남의 이익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은 탐욕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만 남을 탐욕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은 성냄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만 남을 성냄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은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만 남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은 탐욕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지만 남의 탐욕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자신은 성냄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지만 남을 성냄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자신은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지만 남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도 탐욕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고 남도 탐욕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도 성냄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고 남도 성냄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지 않고 남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부추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남의 이익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도 탐욕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고 남도 탐욕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자신도 성냄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고 남도 성냄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자신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실천하고 남도 어리석음의 제어를 위해 부추긴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남의 이익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네 가지 사람들이 있다."
khippanisantisuttam (AN 4.97-재빠르게 앎 경)
97.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남의 이익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실천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선한 법들을 재빠르게 안다. 그는 들을 법들을 바르게 호지하고,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한다.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다. 그러나 그는 선한 말을 하거나 선한 말씨를 가졌거나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언변을 구족하지는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닦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닦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남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유익한 법들을 재빠르게 알지 못한다. 그는 들은 법들을 바르게 호지하지 않고,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는다.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선한 말을 하고 선한 말씨를 가졌고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언변을 구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남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천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유익한 법들을 재빠르게 알지 못한다. 그는 들은 법들을 바르게 호지하지 않고,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는다.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는 선한 말을 하거나 선한 말씨를 가졌거나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언변을 구족하지도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 둘 다를 위해 실천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유익한 법들을 재빠르게 안다. 그는 법들을 바르게 호지하고, 호지한 법들의 뜻을 면밀히 관찰한다.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원인)을 완전하게 안 뒤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다. 그리고 그는 선한 말을 하고 선한 말씨를 가졌고 예의바르고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언변을 구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비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 둘 다를 위해서 실천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98. attahitasuttam (AN 4.98-자신의 이익 경)
98.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이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남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남의 이익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자이다.
sikkhāpadasuttaṃ (AN 4.99-학습계율 경)
99.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은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만 남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만 남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은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만 남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은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지만 남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떠나지 않지만 남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지만 남을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은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지만 남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은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지만 남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남을 위하여는 실천하고 자신을 위하여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고 남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고 남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고 남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자신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고 남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남도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남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고 남도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자신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남도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자신을 위하여도 실천하고 남을 위하여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네 가지 사람이다."
potaliyasuttam (AN 4.100-뽀딸리야 경)
그 무렵 유행승 뽀딸리야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 이야기로 두 분이 안부 인사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유행승 뽀딸리야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뽀딸리야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뽀딸리야여,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도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한다.
뽀딸리야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뽀딸리야여,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그대는 어떤 사람이 더 경이롭고 더 수승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도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여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저는,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도 않는 사람이 더 경이롭고 더 수승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고따마 존자시여 평정(upekhā)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뽀딸리야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뽀딸리야여,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도 않는다.
뽀딸리야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한다.
뽀딸리야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뽀딸리야여,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는 사람이 더 경이롭고 더 수승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뽀딸리야여, 모든 곳에서 진실을 얘기할 적당한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지도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여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할 때에 비난받을 사람을 비난하고 사실과 진실을 얘기해야 할 때에 칭송해야 할 사람을 칭송하는 더 경이롭고 더 수승한 사람이 저는 좋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고따마 존자시여, 모든 곳에서 진실을 얘기할 적당한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시듯,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읽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법)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제10장 아수라 품이 끝났다.
두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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