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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의 모음 - 11. 비구름 품(Valāhaka-vagga. AN4.101-110)

실론섬 2014. 6. 28. 18:13

제11장 비구름 품 Valāhaka-vagga(AN 4.101-110)

 

paṭhamavalāhakasuttaṃ (AN 4.101-비구름 경1)

10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비구름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비구름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비구름에 비유되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말은 하지만 행동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행동은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말도 하지 않고 행동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오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말도 하고 행동도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비구름에 비유되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dutiyavalāhakasuttaṃ (AN 4.102-비구름 경2)

102.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비구름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비구름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비구름에 비유되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수기,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익힌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은 치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히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히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미증유법, 문답을 익힌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비구름에 비유되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kumbhasutta (AN 4.103-항아리 경) 

103. “비구들이여, 네 가지 항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텅 비었지만 잘 닫힌 것, 
가득 찼지만 열린 것, 텅 비고 열린 것, 가득 차고 잘 닫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항아리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항아리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텅 비었지만 잘 닫힌 사람, 
가득 찼지만 열린 사람, 텅 비고 열린 사람, 가득 차고 잘 닫힌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텅 비었지만 잘 닫힌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고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텅 비었지만 잘 닫힌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텅 비었지만 잘 닫힌 항아리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가득 찼지만 열린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가득 찼지만 열린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이 사람을  가득 찼지만 열린 항아리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텅 비고 열린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텅 비고 열린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을 텅 비고 열린 항아리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가득 차고 잘 닫힌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가득 차고 잘 닫힌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가득 차고 잘 닫힌 항아리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항아리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udakarahadasuttam (AN 4.104-호수 경 1) 

104. “비구들이여, 네 가지 호수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얕지만 깊어 보이는 것, 
깊지만 얕아 보이는 것, 얕고 얕아 보이는 것, 깊고 깊어 보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호수가 있다.”


dutiyaudakarahadasuttam (AN 4.105-호수 경 2) 

105. “비구들이여, 네 가지 호수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얕지만 깊어 보이는 것, 
깊지만 얕아 보이는 것, 실제로도 얕고 또한 얕아 보이는 것, 실제로도 깊고 또한 깊어 보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호수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호수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얕지만 깊어 보이는 사람, 
깊지만 얕아 보이는 사람, 실제로도 얕고 또한 얕아 보이는 사람, 실제로도 깊고 또한 깊어 보이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얕지만 깊어 보이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러난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얕지만 깊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얕지만 깊어 보이는 호수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깊지만 얕아 보이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깊지만 얕아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깊지만 얕아 보이는 호수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실제로도 얕고 또한 얕아 보이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실제로도 얕고 또한 얕아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실제로도 얕고 얕아 보이는 호수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실제로도 깊고 또한 깊어 보이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실제로도 깊고 또한 깊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실제로도 깊고 또한 깊어 보이는 호수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호수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ambasuttam (AN 4.106-망고 경)  

106.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망고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덕 익은 것이지만 익어 보이는 것, 
익었지만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것, 덕 익은 것이면서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것, 익었으면서 익어 보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망고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망고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덜 익은 것이지만 익어 보이는 사람, 익었지만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 덜 익은 것이면서 덜 익은것으로 보이는 사람, 익었으면서 익어 보이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덜 익은 것이지만 익어 보이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덜 익은 것이지만 익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덜 익은 것이지만 익어 보이는 망고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익었지만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익었지만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익었지만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망고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덜 익은 것이면서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덜 익은 것이면서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덜 익은 것이면서 덜 익은 것으로 보이는 망고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익었으면서 익어 보이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익었으면서 익어 보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익었으면서 익어 보이는 망고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망고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mūsikasuttaṃ (AN 4.107-생쥐 경)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생쥐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생쥐,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생쥐,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생쥐,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생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생쥐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생쥐에 비유되는 네 가지 사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사람,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사람,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사람,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누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문답을 익힌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생쥐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문답을 익히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생쥐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문답을 익히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생쥐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누가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경, 응송, 상세한 설명, 게송, 감흥어, 여시어, 본생담, 문답을 익힌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생쥐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생쥐에 비유되는 이런 네 가지 사람이 있다.”


balībaddasuttam (AN 4.108-황소 경)  

108. “비구들이여, 네 가지 황소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자기의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것,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것,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나운 것,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황소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황소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나운 사람,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은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기 회중에게는 두렵게 하지만 다른 회중에게는 그렇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는 황소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남의 회중에게는 두렵게 하지만 자기 회중에게는 그렇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사람이다.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다른 소떼에게는 사납지만 자기 소떼에게는 사납지 않은 황소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나운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기 회중에게도 두렵게 하고 남의 회중에게도 두렵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나운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나운 황소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기 회중에게도 두렵게 하지 않고 남의 회중에게도 두렵게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자기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고 다른 소떼에게도 사납지 않은 황소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황소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rukkhasuttam (AN 4.109-나무 경) 

109. “비구들이여, 네 가지 나무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백목질(白木質)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 
심재(心材)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 백목질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의 나무,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의 나무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나무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나무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의 사람,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의 사람,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 나무의 사람,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 나무의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와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으며 그의 회중도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여 있는 백목질의 나무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와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지만 그의 회중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백목질의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여 백목질의 나무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의 나무와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지만 그의 회중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 나무의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백목질의 나무에 에워싸여 있는 심재의 나무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의 나무의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고 그의 회중도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이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인 심재 나무의 사람이다. 이 사람을, 비구들이여, 심재의 나무에 에워싸여 있는 심재의 나무에 비유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나무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āsīvisasuttaṃ (AN 4.110-뱀 경)

110.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뱀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독이 빨리 퍼지지만 독이 강하지 않은 뱀, 강한 독을 가졌지만 독이
빨리 퍼지지 않는 뱀, 독이 빨리 퍼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독을 가진 뱀, 독이 빨리 퍼지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독을 가진 뱀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뱀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뱀이 비유되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독이 빨리 퍼지지만 독이 강하지 않은 뱀, 강한 독을 가졌지만 독이 빨리 퍼지지 않는 뱀, 독이 빨리 퍼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독을 가진 뱀, 독이 빨리 퍼지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독을 가진 뱀에 비유되는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독이 빨리 퍼지지만 독이 강하지 않은 뱀과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러나 그 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독이 빨리 퍼지지만 독이 강하지 않은 뱀과 같은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는 독이 빨리 퍼지지만 독이 강하지 않은 뱀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비유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강한 독을 가졌지만 독이 빨리 퍼지지 않는 뱀과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화는 오래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강한 독을 가졌지만 독이 빨리 퍼지지 않는 뱀과 같은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는 강한 독을 가졌지만 독이 빨리 퍼지지 않는 뱀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비유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독이 빨리 퍼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는 오래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독이 빨리 퍼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는 독이 빨리 퍼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비유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독이 빨리 퍼지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독이 빨리 퍼지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는 독이 빨리 퍼지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독을 가진 뱀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비유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뱀에 비유되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제11장 비구름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