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 12. 께시 품(Kesi-vagga. AN4.111-120)

실론섬 2014. 6. 28. 18:33

제12장 께시 품 Kesi-vagga(AN4.111-120)

 

kesisuttaṃ (AN 4.111-께시 경)

111. 그 무렵 말 조련사 께시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말 조련사 께시에게 세존께서는 

“께시여, 그대는 이렇게 지혜롭게 말을 조련하는 사람이다. 께시여, 그대는 어떻게 말을 조련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저는 말을 부드럽게 조련하기도 하고, 거칠게 조련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하기도 합니다.”

“만약, 께시여, 그대가 말을 부드럽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으면, 그 말을 어떻게 하는가?”

“만약, 세존이시여, 제가 말을 부드럽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으면, 그 말을 죽입니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스승의 가문의 명성을 잃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사람을 잘 길들이는 가장 높으신 분(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길들이십니까?”

“께시여, 나는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이기도 하고, 거칠게 길들이기도 하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이기도 한다.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부드러운 길들임이다. 즉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마음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마음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신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들이 있다.’라고.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거친 길들임이다. 즉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마음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마음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지옥이 있고, 이렇게 축생의 모태가 있고, 이렇게 아귀의 영역이 있다.'라고.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부드럽고 거친 길들임이다. 즉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마음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마음의 좋은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마음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마음의 나쁜 행위의 과보가 있다. 이렇게 신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지옥이 있고, 이렇게 축생의 모태가 있고, 이렇게 아귀의 영역이 있다.’라고.”

 

“만약,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사람을 부드럽게 길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으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십니까?”

“만약, 께시여, 내가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기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죽인다.” 

“세존이시여, 세존에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끼시여, 나는 그들을 죽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이다, 께시여. 여래에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드럽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는 사람에게 어래는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성스러운 율에서, 께시여, 여래가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참으로, 세존이시여, 여래가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지 않은 사람은 법답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탄할만 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javasuttam (AN 4.112-속력 경) 

112. “비구들이여,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은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있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무엇이 넷인가? 

정직함, 속력, 인욕, 온화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은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무엇이 넷인가?

정직함, 속력, 인욕, 온화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patodasuttam (AN 4.113-채찍 경)  

113.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가지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혈통 좋은 멋진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오늘 말 조련사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서 보답할까?’라고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런 종류의 어떤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세상에 존재하는 첫 번째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혈통 좋은 멋진 말은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는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채찍이 털을 파고 들어야 ‘오늘 말 조련사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서 보답할까?’라고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런 종류의 어떤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번째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혈통 좋은 훌륭힌 말은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도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채찍이 털을 파고들어도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자 채찍이 살을 파고들어야 ‘오늘 말 조련사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서 보답할까?’라고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런 종류의 어떤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 번째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도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채찍이 털을 파고 들어도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채찍이 살을 파고들어도 바램을 가지지 않고 바램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채찍이 뼈를 파고들어야 ‘오늘 말 조련사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까? 나는 그에게 무엇을 해서 보답할까?’라고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런 종류의 어떤 혈통 좋은 훌륭힌 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세상에 존재하는 네 번째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가지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다.’라고 듣는다. 그러면 그는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바램을 가진 그는 지혜롭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고 몸으로 구경(究竟)의 진리를 실현하고 지혜로써 철저하게 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그 혈통 좋은 훌륭한 말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이런 모습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첫 번째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다.’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은 것을 직접 본다. 그러면 그는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바램을 가진 그는 지혜롭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고 몸으로 구경의 진리를 실현하고 지혜로써 철저히 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채찍이 털을 파고들 때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그 혈통 좋은 훌륭한 말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이런 모습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번째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다.’라고 듣지도 않고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은 것을 직접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친지나 혈육이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으면 그는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바램을 가진 그는 지혜롭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고 몸으로 구경의 진리를 실현하고 지혜로써 철저히 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채찍이 살점에 파고들 때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그 혈통 좋은 훌륭한 말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출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이런 모습을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 번째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서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다.’라고 듣지도 않고, 어떤 여자나 남자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은 것을 직접 보지도 않고, 그의 친지나 혈육이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거나 그의 친지나 혈육이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가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심하고 좋지 않고 불쾌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 그는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킨다. 바램을 가진 그는 지혜롭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고 몸으로 구경의 진리를 실현하고 지혜로써 철저히 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혈통 좋은 훌륭한 말이 채찍이 뼈를 파고들 때 바램을 가지고 바램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그 혈통 좋은 훌륭한 말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은 이런 모습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번째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훌륭한 가문의 출신인 사람이 있다.”

 

nāgasuttaṃ (AN 4.114-코끼리 경)

114. “비구들이여,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왕의 코끼리는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있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왕의 코끼리는 듣고, 죽이고, 감내하고, 간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왕의 코끼리는 듣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전에 한 것이건 전에 하지 않은 것이건 코끼리 조련사 시키는 것을 알아 차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듣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왕의 코끼리는 죽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전쟁터에 가면 코끼리도 죽이고 코끼리를 탄 자도 죽이고 말도 죽이고 말을 탄 자도 죽인다. 마차도 파괴하고 마부도 죽이고 보병도 죽인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죽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왕의 코끼리는 감내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전쟁터에 가면 창에 찔리고 칼에 찔리고 화살에 찔리고 도끼에 찔리는 것과 큰 북 소리와 작은 북 소리와 고동 소리와 징소리와 고함소리를 감내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감내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왕의 코끼리는 가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가 지시하는 대로 전에 가본 곳이건 전에 가지 않은 곳이건 즉시에 간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왕의 코끼리는 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왕의 코끼리는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있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듣는 자이고, 죽이는 자이고, 감내하는 자이고, 가는 자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듣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래가 선언하신 법과 율이 설해질 때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듣는 자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죽이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끊어 버리고 끝내고 없앤다. 성냄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끊어 버리고 끝내고 없앤다. 무자비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끊어 버리고 끝내고 없앤다. 계속해서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끊어 버리고 끝내고 없앤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죽이는 자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감내하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 모기 바람 뙤약볕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내하는 자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가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긴 삶의 여정에서 이전에 가본 적이 없는 방향 – 즉 모든 형성된 것들이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 갈애의 소진, 탐욕이 사라짐, 소멸[滅], 열반으로 즉시에 간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공양을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전이다.

 

thānasuttam (AN 4.115-경우 경)  

115.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행하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것을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비구들이여, 행하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을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비구들이여, 행하기에는 마음에 들지만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비구들이여, 행하기에도 마음에 들고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첫 번째인 행하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것을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기는 경우는 둘 다 행해서는 안된다. 즉 행하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행해서는 안되고,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기는 것도 행해서는 안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경우는 둘 다 행해서는 안된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두 번째인 행하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을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기는 경우에는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분발에 있어서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를 구분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참으로 이 경우는 행하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긴다.’라고 숙고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 그가 이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하지 않음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현명한 자는 ‘참으로 이 경우는 행하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긴다.’라고 숙고해 본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행한다. 그가 이것을 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함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세 번째인 행하기에는 마음에 들지만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기는 경우에도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분발에 있어서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를 구분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참으로 이 경우는 행하기에는 마음에 든다. 그러나 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긴다.’라고 숙고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행한다. 그가 이것을 행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하지 않음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현명한 자는 ‘참으로 이 경우는 하기에는 마음에 든다. 그러나 행하고 나면 선하지 않음이 생긴다.’라고 숙고해 본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 그가 이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함이 생긴다.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네 번째인 행하기에도 마음에 들고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기는 경우는 둘 다 행해야 한다. 즉 하기에 마음에 드는 것도 행해야 하고, 행하고 나면 선함이 생기는 것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경우는 둘 다 행해야 한다.”

 

appamādasuttaṃ (AN 4.116-불방일 경)

116.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로 행해여쟈 하는 불방일이 있다. 어떤 넷인가?

비구들이여, 몸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거기서 방일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말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거기서 방일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마음의 좋은 행위를 닦아야 한다. 거기서 방일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는 버리고 바른 견해를 닦아야 한다. 거기서 방일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몸의 나쁜 행위가 버려지고 몸의 좋은 행위가 닦아졌기 때문에, 말의 나쁜 행위가 버려지고 말의 좋은 행위가 닦아졌기 때문에, 마음의 나쁜 행위가 버려지고 마음의 좋은 행위가 닦아졌기 때문에, 삿된 견해가 버려지고 바른 견해가 닦아졌기 때문에 다음생과 죽음 두려워하지 않는다.

 

ārakkhasuttaṃ (AN 4.117-보호 경)

117.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에 자신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불방일과 마음챙김과 보호가 있다. 어떤 넷인가?

'나에게 좋아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좋아하지 말기를'이라고 자신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불방일과 마음챙김과 보호가 있다.

'나에게 싫어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싫어하지 말기를'이라고자신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불방일과 마음챙김과 보호가 있다.

'나에게 모르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모르지 말기를'이라고 자신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불방일과 마음 챙김과 보호가 있다.

'나에게 미혹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미혹하지 말기를'이라고 자신을 위하여 행해져야 하는 불방일과 마음 챙김과 보호가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좋아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좋아하지 않고 탐욕(貪)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싫어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싫어하지 않고 성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모르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모르지 않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미혹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마음이 미혹하지 않고 미혹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떨지 않고, 충격 받지 않는다. 사문의 말을 원인으로 가지 않는다."

 

*'사문들의 말에 따라가지 않는다.'는 na ca pana samana-vacana-hetu pi gacchati 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른 종교의 사문들의 말을 듣고 자기의 견해를 버리고 그들의 견해를 따라 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AA.iii.122)

 

saṁvejnīyasuttam (AN 4.118-바램을 일으키는 경)   

118. “비구들이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여기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 비구들이여,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 비구들이여,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 비구들이여,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셨다.’ - 비구들이여,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바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이다.”

 

bhayasuttam (AN 4.119-두려움 경 1)

119. “비구들이여,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두려움, 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dutiyabhayasuttam (AN 4.120-두려움 경 2)

12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불에 대한 두려움, 물에 대한 두려움, 왕에 대한 두려움, 도둑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제12장 께시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