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불교의 윤회와 유일신교의 내세는 같은 것일까?

실론섬 2014. 6. 28. 11:33

강병균 교수님의 글을 비난한 진흙속의연꽃의 황당한 IQ 수준

불교닷컴에 올려져 있는 강 교수님의 '내세에 대한 믿음이 행복을 증진하는가'라는 글 전문을 읽어 보았다. 자세히 읽어보면 전체적인 글의 요지는 천국이라는 내세관을 믿는 유일신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등)의 모습을 날카롭게 비난하고 있다. 불교와 유일신교등이 같은 내세를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내세와 불교의 윤회는 180도 다르다. 그래서 현생에서 죽은 이후를 유일신교들에게는 내세(관)이지만 불교는 윤회(관)이라고 말한다. 


유일신교들은 죽어서 천국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철저한 내세관을 내세운다. 현생에서 개판으로 살더라도 예수믿고 죽으면 천당간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강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종교인들은 '내세가 없다면 지금 제멋대로 살다가 가면 될 것이라며' 내세가 없다는 주장을 공격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적인 주장이다. 그리 주장하는 사람이나 그리 할 일이다. 내세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금 그리하고 사는가? 함부로 살고 있는가?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서로 수천년 동안 끔찍한 정쟁을 벌여온 이유는 무엇인가? 각자 서로 다른 내세를 믿어서 상대방의 내세를 믿지 않기 때문인가?..중략... 유럽기독교인들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남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그들은 이들의 창조는 하느님의 실수라고까지 믿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탐욕 앞에서는 특히 집단적인 탐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중략 ... 내세를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이천년 동안 자기들끼리 수없이 전쟁을 벌여온 이유는 무엇인가?유대교에 뿌리를 둔 같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회교, 유대교가 서로 죽이겠다고 지상을 전쟁으로 어집럽혔다.' 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말하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삶을 개판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내세의 천국행 티켓을 받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교수님은 뒤이어서 현재의 평화나 사회의 안정은 법률 관습 문화 양심(착한 마음)이지 결고 내세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유럽이 근 70년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유럽은 1.2차 세계대전및 온통 전쟁뿐인 대륙) 내세에 대한 믿음이 낳은 평화가 아니라 경제적 결속이 낳은 평화라고 설파하고 있다.


뒤이어 강 교수님은 우리가 지금 약자를 돕고 약탈자를 응징하고 살인자 강도 도둑을 벌 주는 것은 '내세가 있다고 믿어서 하는 일이고 내세가 없다고 믿으면 안 할 일인가?'라고 엄중하게 내세관을 비난한다.


불교의 윤회관은 어떤 것인가?

불교는 내세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직 여기 이자리에서의 내가 행한 업(의도적 행위)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에 내가 현재의 나요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내 모습이다. 라고 못을 박는다. 그 어디에도 내세를 위해서 살라고 하지 않았다. 지난 과거는 잊어 버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망상을 갖지 말고 현재를 열심히 살라고 한다. 멍하니 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행위는 비불교적인 행위이다. 


불교는 몸이 죽어 부서지면 그가 행한 업에 따라서 괴로운 곳 나쁜 곳 악처 지옥등에 태어나거나 하늘나라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즉 자신의 행한 업의 결과에 따라 죽어서 태어나는 곳이 정해진다. 어떤 유일신이 자신을 믿고 안믿고에 의해서 다음생이 정해지는 것과는 180도 다른다. 따라서 불교의 윤회를 믿고 업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강 교수님이 비난한 것처럼 내세(천국 천당)를 믿는 인간들이 이 현세에서 저지르는 그러한 온갖 악행들을 저지를 수 없다. 


불교는 내세 즉 죽어서 다시태어나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불교의 윤회는 늘 현생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십선악과 십선법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그 행위에 따른 결과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행위의 결과란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다. 현재의 내 행위가 일으킨 결과가 바로 미래이며 내세이며 윤회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붓다께서 죽어서 태어날 곳을 강조한것만큼 현생에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을 현생에서 쌓지 않았는데도 선처 하늘나라에 태어난단 말인가? 하늘 나라에 태어나고 싶으면 그 조건을 만들어라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현생 바로 여기 이곳에서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윤회가 없다고 믿더라도 이곳에서 좋은 일을 하면 두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현생에서 칭송을 받고 죽어서 내세가 있다면 선처에 태어난다. 하지만 윤회가 없다고 믿고 여기서 악행을 하면 두 가지를 잃는다. 살아서 비난 받고 죽어서 윤회가 있다면 악처에 태어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즉 불교는 절대로 내일을 의지하고 믿고 바라면서 살지 말라고 한다. 그건 불교적 삶이 아니다. 내 행위가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니 현재 여기 이곳에서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전쟁이니 악행이니 그런 일을 하면서 버젓이 윤회관을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까지 단언할 수 있다. 연기로 본다면 미래는 현재라는 것을 조건으로만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가 없는데 어찌 미래가 있겠는가? 천상에 태어날 조건을 지금 여기서 만들지도 않았는데 내가 자동적으로 천상에 태어나는가?


붓다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열반에 이르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은 일어나게 하기 위해 열의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그 어디에도 미래를 믿고 현재를 생활하는 말은 없다. 경전은 100% 말하길 지금 여기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수행하고 열반을 얻으라고 한다. 현재가 곧 미래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님의 글의 요지에 대한 저의 생각

강 교수님의 글은 얼른 보면 상당히 난해(?)하다. 강 교수님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각자 분들도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 좋겠다.


1) 내세를 믿는 유인신교들이 저지르는 행위를 보라. 그들은 그런 그런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내세를 믿는(천당)가? 그것은 내 행위에 의해서 천국행 티켓이 결정되는게 아니라 내가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악행을 저지르고도 내세행 티켓을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런 내세는 없는게 낫고 믿지 않는게 낫다. 하챦은 동물조차도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행동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도(하나님의 실패작이라는 극단적인 사고까지 하면서) 내세를 믿는다면 이건 어불성설중의 어불성설이다.

3) 사회의 평화와 나라의 평화는 그런 내세를 믿는데서 오는게 아니라 법과 관습 그리고 각 나라별 이익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유일신교들이 말하는 내세를 믿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진흙속의연꽃의 머리를 입곱으로 조각 낼 것이다

강 교수님의 글 마지막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신이나 내세나 종교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우리의 개인 마음(지성)과 의지와 행(行)이다.' 라고 했다. 극히 불교적이고 붓다의 가르침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윤회관이다. 그 어디에도 강 교수님은 윤회를 부정하지 않았다. 강 교수님은 엄연히 유일신교들의 내세관을 비난한 것이다. 불교의 윤회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연꽃은 자신의 글에서 강 교수님이 불교의 내세를 부정하고 윤회를 부정했다고 자신 수준에서 이해한 것을 가지고 단언하고 비난하고 있다. 한마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면 반드시 좋은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역설적으로 현재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말과 같다. 하늘 나라에 태어나는 조건으로 지금여기 현재의 신구의 삼업의 청정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건 바로 지금 여기서의 나의 의지와 행이다. 유일신만 믿으면 내세(천당)에 태어난다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현세의 악행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해가 안가는가?  


여기서 진흙속의연꽃에게 다시 공개적으로 질문을 하고자 한다. 만약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붓다께서 외도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했듯이 그의 머리는 일곱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1) 경전 그 어디에 현세를 무시하고 미래만 믿고 살라고 했는가?

2) 불교의 윤회(관)와 유일신교들의 내세(관)가 어떻게 다른가? 같다는 건가 다르다는 건가?

3) 불교의 열반은 내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