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수메다(sumedha)라는 무슨 뜻일까? - 진흙속의연꽃이 흘린 오물을 처리하는 글

실론섬 2014. 6. 27. 16:24

수메다(sumedha)가 무엇일까?

연꽃이라는 작자가 어제 'sumedha(수메다)는 왜 현자와 동의어일까" 라는 글을 올렸다. 그 글 내용은 너무 쓰레기라서 언급할 가치도 없고 도대체 횡성수설이 심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알아 들을 수 없다. 그는 수메다라는 붓다의 과거부터 현명한자라는 부분까지 망아지까지 동원하여 중얼러기는데 관심있는 분은 한번 가서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글이 진정으로 이해가 된다면 여기 내글에  신날하게 비판으을 해주길 바란다,.

 

수메다(SUMEDHA)라는 두 가지 뜻

1) 첫번째로 수메다는 인명을 가르키는 인칭대명사로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본생경에 등장하는 수메다 보살이다. 즉 붓다의 전생중 보살로써의 삶을 살았을 때 그의 이름이 수메다였던 것이다. 수메다 보살은 당대의 부처님이었던 연등불이 길을 간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연등불이 지나갈 도로가 질펀하게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서 수메다 수행자(보살)은 그 질펀한 길위에 자신의 겉옷을 깔고 몸을 눕히고 머리칼을 풀어서 연등불이 그 위로 밝고 지나가도록 하였다.이러한  공덕으로 최초로 연등불로부터 9겁 후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授記) 받는다. 이러한 본생경의 내용은 우리가 연등을 켜는 연유와 그리고 탄생 성도 열반의 날짜를 계산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수메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결의하고 서원함으로써 보살로써의 마음가짐을 확고하게 한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내 모든 번뇌를 태워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내가 아무도 모르는 모습으로 지니를 깨달은들 무엇하겠는가.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획득 하여 신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사람들 속에서 부처(깨달은 님)가 되리라. 내가 역량을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단지 홀로 저 언덕(열반)으로 간들 무엇하겠는가.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획득하여 신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사람들을 구제하리라. 나는 역량을 보여주는 자로서 이 봉사를 통해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획드가고 많은 사람드을 구제하리라. 휸회의 흐름을 끊고 세 가진 생존을 멸하고(과거 현재 미래)가르침의 배에 올라 신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사람들을 구제하리라."

 

2) 수메다는 뛰어나다 현자(지혜로운 사람) 특히 월등하게 뛰어나다라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수메다는 본생담에 나오는 붓다 이전의 보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자 뛰어난 사람등의 보통명사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연꽃이 스스로 예를 들면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법구경 29번이다. 여기서는 법을 이해하는 사람을 준마(이해력이 빠른 사람)와 둔마(둔한 사람)로 표현하고 있는데 준마라는 의미로 sumedhaso 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본생경의 수메다 보살이 아닌 보통 명사로써 지극히(su) 뛰어나다(medha)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전 곳곳에 훌륭햔 현자를 표현할 때 지극히 뛰어나다를  sumedha 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명' 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 사람 이름에 사용하여 '김 현명'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한가지는 '우리들 모두는 지혜롭고 '현명'해야한다' 라고 문장속에 그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메다란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문장속에서 뛰어난 수승한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불제자의 닉네임은 내 마음가짐 일 것

우리는 일상적으로 불교에서 나오는 수많은 훌륭한 분들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물며 아난다 라는 닉네임까지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그분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한 제자들과 동등하다라기 보다는 그러한 분들의 이름에 걸맞게 열심히 노력하여 언젠가는 동등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과 서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말할려고 하는가?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 보신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할려고 하는가 하고 궁금하고 약간은 혼돈스러운 분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 이글을 올렸나 하면 연꽃의 글을 읽어보면 수메다 보살 = 현명한 보살 = 현명한 단어 라는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붓다의 과거 보살시절이었던 수메다는 단순한 인칭대명사일뿐이다. 그 이름 자체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법구경에 보듯이 준마라는 의미의 수메다는 보통명사이다. 

 

그런데 연꽃은 자기 스스로 밝혔듯이 수메다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간단하게 '현명한' 이라는 말 이외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 해놓고 뒤이어서 사람 이름을 찾아보니 10사람이 나오는데 그중에 수메다 보살과 수메다 붓다가 나온다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연등불 이야기와 과천 경마장과 그리고 준마와 둔마로 완전히 삼천포 빠져 버린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그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고타마 싯달타 사까무니 붓다는 무엇뜻일까?

고타마는 성, 싯달타는 이름, 사까무니(석가)는 종족의 이름, 붓다는 그가 정각을 얻어 진리를 깨달은 후에 붙여진 명칭이다. 붓다란 깨달은 자 혹은 깨어난 자를 의미한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세존(Bhagava)라 불렀으며 스스로는 여래(Tathagata)라 칭했다. 

 

우리가 흔히들 붓다 또는 고따마 붓다라고 호칭하는 붓다(buddha)라는 것은 "깨달은 사람" 이라는 의미이외에 아무런 것이 없다.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붓다인 것이다. 그것이 고따마 싯달타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붙일수 있는 이름이다. 

 

연꽃이라는 작자가 주장하고 싶은 대로 논리를 편다면, 부처님은 그 스스로를 여래라고 하지 말고 수메다 라고 해야 했을 것이다. 또는 과거 보살시절에 가졌던 수많은 보살 이름중의 하나를 택하여 스스로는 여래라고 하지 않고 그 보살이름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현명이라는 단어를 이름에도 문장에도 사용하듯 수메다라는 단어는 이름으로도 문장속에서도 얼마든지 사용되는 것이다. 수메다가 현명자와 동의어라는 개념이 아니다. 현명이 단어이듯 수메다도 그냥  단어일 뿐이다.

 

정말 무서운 무지의 악행

알고 짓는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 나가세나 스님의 말씀을 수십번 되풀이 한다. 무지한 인간이 어떻게 무식한 행동을 하고 말을 하는지 또한번 극명하게 이번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스스로 과천 경망장에 간 것은 알지만 그 무지한 인간에게 준마와 둔마는 여래가 아니라 수메다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메다는 왜 현자와 동의어 일까" 라고 해놓고는 졸지에 깨닫기 전 전생의 보살이름이 수메다라는 것으로 시작하여 과천 경마장으로 빠져서 둔마가 강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듯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 버렸다.

 

다시 말해서 수메다 보살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그냥 수메다 보살 이야기의 전생담만 이야기하면 된다. 그리고 법구경의 29번에 나오는 sumedhso(수메다소. 현명한. 준마)를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것만 이야기하면 된다. 전생의 수메다 보살과 경전 곳곳에 나타나는 현명한 사람을 지칭하는 수메다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 검색에서 수메다를 찍어보니 졸지에 붓다의 전생담 이야기가 나오니 억지로 법구경과 갖다 붙여볼려고 한 것 같지만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붓다는 외도에게 머리를 7조각으로 산산조각 내겠다고 천명했다

경전 곳곳에는 불교를 비방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외들이나 작자들에게 붓다는 엄중하게 ' 머리를 7조각으로 산산조각 내겠다" 고 경고하고 있다. 이 작자의 머리통을 7 조각으로 산산조각 낼것이 아니라 70조각으로 산산조각 내어 까마귀조차도 쪼아 먹지 못하도록 산산조각을 낼 것이다. 

 

많은 선우님들이 제 비판글에 대해서 걱정을 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곳 초기불교 국가에 살고 있는 한 이런 작자가 초기불교를 망치고 교리를 왜곡하고 붓다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붓다의 교설을 다른 사람에게 설해야 할까?

초기경전에는 붓다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붓다의 말씀을 설명할 때 얼마나 어려워했고 조심스러워 했는지 수없이 많은 귀절들이 나오고 있다. 결코 자신의 개인 사견이나 동물들이 아무곳에나 똥을 누듯 그렇ㄱ 말하지 않고 두번세번 숙고하고 또 숙고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더렵히지 않을려고 노력했다. 이 귀절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고 진정으로 불자라고 천명하고 싶다면 그렇게 쉽게 동물들이 배설물 쏟아내듯 아무곳에서 함부로 입에 나오는대로 찌껄이지 않을 것이다. 그 경전 귀절을 읽어 보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어떻게 설명하고 대답해야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여,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될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 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