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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의 모음 - 8. 무사 품(Yodhājīva-vagga. AN5.71-80)

실론섬 2014. 7. 10. 17:33

제8장 무사 품 Yodhājīva-vagga (AN 5.71-80)

 

paṭhamacetovimuttiphalasuttaṃ (AN 5.71-마음의 해탈의 결실 경1)

71.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다섯 가지 법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고,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혜해탈]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몸에 대해 부정(不淨)을 이어보며 머문다.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다. 세상에 즐길 것이 없다는 인식을 가진다.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을 이어본다. 죽음의 인식이 안으로 잘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다섯 가지 법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고,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혜해탈]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의 해탈을 한 자이고 지혜에 의한 해탈을 한 자이면,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라고도, 해자(垓字)를 메운 자라고도, 기둥을 뽑은 자라고도, 방해받지 않는 자라고도,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윤회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갈애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나는 있다’라는 자만이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은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이다.”

 

dutiyacetovimuttiphalasuttaṃ (AN 5.72-마음의 해탈의 결실 경2)
72.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다섯 가지 법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고,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혜해탈]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무상의 인식,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 버림의 인식, 탐욕이 사라짐의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한 다섯 가지 법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의 결실과 마음의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고,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혜해탈]의 결실과 지혜에 의한 해탈의 결실의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의 해탈을 한 자이고 지혜에 의한 해탈을 한 자이면,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라고도, 해자(垓字)를 메운 자라고도, 기둥을 뽑은 자라고도, 방해받지 않는 자라고도,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빗장을 들어 올린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윤회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해자(垓字)를 메운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갈애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둥을 뽑은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는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방해받지 않는 자이다.

어떻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나는 있다’라는 자만이 제거되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깃발을 거두고 짐은 내려놓고 속박에서 풀린 성자이다.”  


paṭhamadhammavihārīsuttaṃ(AN 5.73-법에 머무는 자 경1)

73.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에 머무는 자, 법에 머무는 자’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점에서 비구는 법에 머무는 자입니까?”
“여기, 비구여,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외우는 것에 몰두하고, 홀로 머묾을 멀리하며 안으로 마음의 삼매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이해한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남들을 위해서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이해시키는데 몰두하고, 홀로 머묾을 멀리하며 안으로 마음의 삼매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이해한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상세하게 반복한다(암송한다). 그는 이런 반복적인 암송에 몰두하고, 홀로 머묾을 멀리하며 안으로 마음의 삼매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되풀이 하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는 이런 법에 대한 사유에 몰두하고, 홀로 머묾을 멀리하며 안으로 마음의 삼매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사유는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교리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외우는 것에 몰두하지 않고, 홀로 머묾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안으로 마음의 삼매에 집중한다. 이렇게, 비구여, 비구는 법에 머무는 자가 된다.

이렇게, 비구여, 나는 많이 이해한 자를 설했고, 많이 알리는 자를 설했고, 많이 되풀이 하는 자를 설했고, 많이 사유하는 자를 설했고, 법에  머무는 자를 설했다. 비구여, 항상 제자들이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하였다. 비구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 장소들이 있다. 삼매를 닦아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다.”

dutiyadhammavihārīsuttaṃ (AN 5.74-법에 머무는 자 경2)
74.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에 머무는 자, 법에 머무는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가 법에 머무는 자입니까?”

“여기, 비구여,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철저히 배운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뜻을(의미를) 통찰하여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많이 이해한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통찰하여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알리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통찰하여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되풀이하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통찰하여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사유는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철저히 배운다. 그리고 지혜로써 더 높은 뜻을 지헤로써 통찰하여 안다. 비구여, 이와 같은 비구가 법에 머무는 자이다.  

이렇게, 비구여, 나는 많이 이해한 자를 설했고, 많이 알리는 자를 설했고, 많이 되풀이 하는 자를 설했고, 많이 사유하는 자를 설했고, 법에  머무는 자를 설했다. 비구여, 항상 제자들이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하였다. 비구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 장소들이 있다. 삼매를 닦아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다.”  

paṭhamayodhājīvasuttaṃ (AN 5.75-무사 경1) 

75.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무사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만 보고도 주저앉아버리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첫 번째 무사가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는 견뎌내지만 깃발을 보고는 주저앉아버리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두 번째 무사가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지만 함성을 듣고는 주저앉아버리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번째 무사가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지만 적과 격돌해서는 죽거나 다치고 만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번째 무사가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고 적과의 격돌도 견뎌낸다. 그는 그 전쟁에서 이겨서 전쟁의 승리자가 되고 그 전쟁터를 평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다섯 번째 무사가 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다섯 종류의 무사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만 보고도 주저앉아버리고 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닦음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 자욱한 먼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 아름답고 예쁘고 우아하고 빼어난 외모를 갖춘 여인이나 처녀가 있다고 듣는다. 그는 그 말을 듣고는 주저앉아버리고 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닦음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자욱한 먼지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사가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만 보고도 주저앉아버리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이러한 첫 번째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는 견뎌내지만 깃발을 보고는 주저앉아버리고 청정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청정수행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청정수행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 깃발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무개 마을이나 성읍에 아름답고 예쁘고 우아하고 빼어난 외모를 갖춘 여인이나 처녀가 있다고 들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여인이나 처녀를 직접 본다. 그는 그것을 보고는 주저앉아버리고 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닦음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깃발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사가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는 견뎌내지만 깃발을 보고는 주저앉아버리고 헤매고 자제하지 못하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이러한 두 번째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지만 함성을 듣고는 주저앉아버리고 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닦음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 함성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범행을 닦기 위해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다. 그곳에 여인이 다가와서 웃고 말을 걸고 유혹하고 희롱한다. 그는 여인이 웃고 말을 걸고 유혹하고 희롱하자 주저앉아 버리고 범행을 지키지도 못하고 닦음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함성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사가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지만 함성을 듣고는 주저앉아버리고 전쟁터로 돌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이러한 세 번째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지만 적과 격돌해서는 죽거나 다치고만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 적과 격돌하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범행을 닦기 위해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 집으로 간다. 그곳에 여인이 다가와서 가까이에 앉고 가까이에 눕고 껴안는다. 그는 여인이 가까이에 앉고 가까이에 눕고 껴안으면 닦음을 버리고 나약함을 드러낸 뒤 성행위를 한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적과 격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사가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지만 적과 격돌하여서는 죽거나 다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이러한 네 번째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고 적과의 격돌도 견뎌낸다. 그는 그 전쟁에서 이겨서 전쟁의 승리자가 된고 그 전쟁터를 평정한다. 무엇이 그에게 있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범행을 닦기 위해 숲으로 가거나 빈 집으로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다. 그곳에 여인이 다가와서 가까이에 앉고 가까이에 눕고 껴안는다. 그는 여인이 가까이에 앉고 가까이에 눕고 껴안더라도 그것을 풀어내 버리고 그것에서 자유롭게 되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간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비어 있는 곳을 의지한다. 그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 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와 성냄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만하여 악의와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여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선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져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그는 마음이 오염원이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분리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무사가 코끼리나 말발굽에 차여 땅에서 올라오는 자욱한 먼지도 견뎌내고 깃발도 견뎌내고 함성도 견뎌내고 적과의 격돌로 견뎌내고 그 전쟁에서 이겨서 전쟁의 승리자가 되고 그 전쟁터를 평정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인간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이러한 다섯 번째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다섯 종류의 무사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다.”

dutiyayodhājīvasuttaṃ (AN 5.76-무사 경2)
76.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다섯 가지 무사가 존재한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를 적들이 공격하고 죽인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첫 번째 무사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포로로 잡은 뒤에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에게 인도된 그는 도착하기 전에 친척에게 가는 길의 중간에서 죽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두 번째 무사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 포로로 잡은 뒤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들은 그를 돌보고 보살핀다. 친척들에 의해 돌보과 보살핌을 받지만 그는 병으로 죽는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세 번째 무사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 포로로 잡은 뒤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들은 그를 돌보고 보살핀다. 친척들에 의해 돌봄과 보살핌을 받은 그는 그 병으로부터 회복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번째 무사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상호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로 들어간다. 그는 그 전쟁에서 이겨서 전쟁의 승리자 되고 그 전쟁터를 평정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무사는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다섯 번째 무사가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무사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무사의 비유에 따른 다섯 가지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그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몸을 제대로 감싸지도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제대로 옷을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몸을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 뒤에 탐욕(애욕)이 마음을 더럽힌다. 그는 탐욕이 더럽힌 마음 때문에 닦음을 버리고 나약함을 드러내면서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를 적들이 공격하고 죽인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 비유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존재하는 무사의 비유에 따른 첫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으로 보호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그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몸을 제대로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몸을 감싸지 않은 그런 여인을 본 뒤에 탐욕이 마음을 더럽힌다. 그는 탐욕이 더럽힌 마음 때문에 몸으로 불타고 마음으로 불탄다(몸이 타들어 가고 마음이 타들어 간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나는 승원으로 가서 비구들에게 고백해야겠다. ‘도반들이여,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에 굴복 당한 저는 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지킬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승원으로 돌아가던 그는 승원에 도착하기 전에 도중에 승원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닦음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 포로로 잡은 뒤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에게 인도된 그는 도착하기 전에 친척에게 가는 길의 중간에서 죽는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 비유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존재하는 무사의 비유에 따른 두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으로 보호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그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몸을 제대로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몸을 감싸지 않은 그런 여인을 본 뒤에 탐욕이 마음을 더럽힌다. 그는 탐욕이 더럽힌 마음 때문에 몸으로 불타고 마음으로 불탄다(몸이 타들어 가고 마음이 타들어 간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나는 승원으로 가서 비구들에게 고백해야겠다. ‘도반들이여,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에 굴복 당한 저는 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지킬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는 승원으로 돌아간 뒤 비구들에게 고백한다. ‘도반들이여,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에 굴복 당한 저는 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런 그에게 동료 비구들 훈계하고 가르친다. ‘도반이여, 감각적 쾌락이란 맛(달콤함)은 적지만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해골 무더기(뼈다귀)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고깃덩이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건초횃불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숯불 구덩이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꿈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빌린 물건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나무열매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도살장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쇠살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뱀 머리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존자는 범행에서 기쁨을 발견해야 합니다. 존자는 닦음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닦음을 포기한 뒤에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라고. 동료 비구들로부터 이런 훈계와 이런 가르침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비록 감각적 쾌락이란 맛은 적지만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다 해도 나는 범행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는 닦음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 포로로 잡은 뒤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들은 그를 돌보고 보살핀다. 친척들에 의해 돌봄과 보살핌을 받지만 그는 그 병으로 죽는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 비유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는 존재하는 이러한 무사의 비유에 따른 세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마음으로 보호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그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몸을 제대로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몸을 감싸지 않은 그런 여인을 본 뒤에 탐욕이 마음을 더럽힌다. 그는 탐욕이 더럽힌 마음 때문에 몸으로 불타고 마음으로 불탄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나는 승원으로 가서 비구들에게 고백해야겠다. ‘도반들이여,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에 굴복 당한 저는 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지킬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는 승원으로 돌아간 뒤 비구들에게 고백한다. ‘도반들이여,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에 굴복 당한 저는 범행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닦음에서 나약합니다.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그런 그에게 동료 비구들이 훈계하고 가르친다. ‘도반이여, 감각적 쾌락은 맛은 적지만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해골 무더기의 비유가 ··· 뱀 머리의 비유가 감각적 쾌락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도 많고 위험은 더 많다고 세존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존자는 범행에서 기쁨을 발견해야 합니다. 존자는 닦음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닦음을 포기한 뒤에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라고. 동료 비구들로부터 이런 훈계와 이런 가르침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저는 용감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저는 싸울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저는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이제 저는 닦음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닦음을 포기한 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전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운다. 용감하게 싸우는 그에게 적들이 부상을 입히고 포로로 잡는다. 포로로 잡은 뒤 친척에게 인도한다. 친척들은 그를 돌보고 보살핀다. 친척들에 의해 돌봄과 보살핌을 받은 그는 그 병으로부터 회복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 비유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존재하는 전사의 비유에 따른 네 번째 사람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고 말을 보호하고 마음을 보호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감각의 근을 단속한 채 그 마을이나 성읍에 들어간다. 그는 눈으로 형상을 보면서 그 표상[相]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부분상[受]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가 눈의 근[眼根]이 보호되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간탐과 고뇌) 삿되고 선하지 않은 형상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 혀로 맛을 보며서 ··· 몸으로 감촉을 느끼면서 ··· 마음으로 법(마음현상)을 지각하면서 그 표상을 붙잡지 않으며, 또 뒤따르는 부분상을 붙잡지도 않는다. 만약 그가 마음의 근[意根]이 보호되지 않은채 머무르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삿되고 선하지 않은 법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의 근을 제어하기 위해서 닦으며, 길들이기 위해서 닦으며,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닦는다.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숲 속이나 나무 밑이나 빈 집으로 간 그는 가부좌를 틀고 사에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와 성냄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와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마음이 고요하여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져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그는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분리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문다.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정화되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케 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철저히 알아 차린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을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그 무사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통을 매고 많은 적들이 있는 전장으로 달려든다. 그는 그 전쟁에서 이겨서 전쟁의 승리자가 되고 그 전쟁터를 평정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 비유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하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존재하는 전사의 비유에 따른 다섯 번째 사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존재하는 전사의 비유에 따른 다섯 가지 사람이다.”  

 

paṭhamānāgatabhayasuttaṃ (AN 5.77-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1)
77.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지금 혼자서 숲에 머문다. 숲에서 홀로 머물고 있을 때 뱀이 나를 물 수도 있고, 전갈이 물 수도 있고, 지네가 물 수도 있다. 그것에 의해 나는 죽을 수 있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가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첫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미래의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지금 혼자서 숲에 머문다. 숲에서 홀로 머무는 나는 발이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고, 먹은 음식이 나에게 소화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담즙이 나에게서 균형을 잃을 수도 있고, 점액이 나에게서 균형을 잃을 수도 있고, 칼처럼 매서운 바람이 나에게서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 그것에 의해 나는 죽을 수도 있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가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두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지금 혼자서 숲에 머문다. 숲에서 홀로 머무는 나는 사자거나 호랑이거나 표범이거나 곰이거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이 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그것에 의해 나는 죽을 수 있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가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세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지금 혼자서 숲에 머문다. 숲에서 홀로 머무는 나는 숙련되거나 숙련되지 않은 젊은 바라문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이 나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그것에 의해 나는 죽을 수 있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가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네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원문은 manava(청년, 젊은 바라문)인데 주석서는 도둑(cor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AA.iii.271)

 

다시, 비구들이여, 숲 속에 거주하는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지금 혼자서 숲에 머문다. 숲에는 흉포한 비인간들이 있고, 그들이 나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 그것에 의해 나는 죽을 수 있고, 그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가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다섯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dutiyānāgatabhayasuttaṃ (AN 5.78-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2)

78.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음과 같이 숙고한다. 
‘지금 나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상서러운 젊음을 구족한 초년기의 청년이다. 그러나 이 몸에 늙음이 닿는 때가 있을 것이다. 노쇠하고 늙음에 압도되어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게 되고,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나는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법을 갖춘 나는 늙어도 편히 머물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첫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 나는 장애가 없다. 병이 없고 너무 차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중간의 좋은 소화력을 가졌고, 정진을 감내한다. 그러나 이 몸에 병이 닿는 때가 있을 것이다. 병이 들고 병에 압도되어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게 되고, 길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수용하기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나는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법을 갖춘 나는 병이 들어도 편히 머물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두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은 먹을 것이 많고, 곡식이 많고, 탁발음식을 얻기가 쉽다. 생계를 위해 모으는 노력[떨어진 이삭을 줍는 노력]에 의해 유지하기가 쉽다. 그러나 먹을 것이 적고, 곡식이 적고, 탁발음식을 얻기가 어렵고, 생계를 위해 모으는 노력에 의해 유지하기가 어려운 때가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이 적을 때 사람은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거기서 무리를 이루어 머물고, 혼잡하게 머물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 머물고 혼잡하게 머물 때,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게 되고,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나는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법을 갖춘 나는 식량이 적을 때 편히 머물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세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물과 우유가 섞인 것 같고 서로를 사랑스런 보면서 머문다. 그러나 숲 속에 사는 도둑들의 침범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탈 것에 올라 각지로 돌아다니는 때가 있을 것이다. 두려움이 있을 때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거기서 무리이루어 머물고, 혼잡하게 머물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 머물고 혼잡하게 머물 때,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게 되고,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나는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법을 갖춘 나는 두려울 때도 편히 머물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네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지금은 승가가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같은 가르침을 암송하면서 편하게 지낸다. 그러나 승가가 분열할 때가 있을 것이다. 승가가 분열알 때, 세존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게 되고,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런 현상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나는 먼저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 법을 갖춘 나는 승가가 분열할 때도 편히 머물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다섯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숲에 거주하는 비구가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보면서 머물러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tatiyānāgatabhayasuttaṃ (AN 5.79-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3)

79.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어떤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미래에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들이 남들에게 구족계를 줄 것이다. 그들은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지혜로 인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도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을 것이다.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들이 남들에게 구족계를 줄 것이다. 그들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지혜로 인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도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법의 오염으로부터 율의 오염이 있고, 율의 오염으로부터 법의 오염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첫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들이 남들을 지도할 것이다. 그들은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지혜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도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을 것이다.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들이 남들을 지도할 것이다. 그들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지혜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도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법의 오염으로부터 율의 오염이 있고, 율의 오염으로부터 법의 오염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두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으면서 법에 대한 이야기, 교리문답 이야기를 설하고, 나쁜 법에 빠져 있는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법의 오염으로부터 율의 오염이 있고, 율의 오염으로부터 법의 오염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세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들은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진, 세상을 넘어선(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에 일관된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듣지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궁극의 앎을 가진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지은 것이고 아름다운 문자와 표현을 가진 시이고 외도의 제자들에 의해 말해진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궁극의 앎을 가진 마음을 일으킬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법의 오염으로부터 율의 오염이 있고, 율의 오염으로부터 법의 오염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네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 그 장로 비구들은 풍족하게 살고, 방만하고, 퇴보에 앞장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뒷사람들도 견해를 뒤따를 것이다. 그들도 풍족하게 살고, 방만하고, 퇴보에 앞장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 놓을 것이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법의 오염으로부터 율의 오염이 있고, 율의 오염으로부터 법의 오염이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다섯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catutthānāgatabhayasuttaṃ (AN 5.80-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4)
80.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어떤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미래에 좋은 의복을 바라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좋은 의복을 바라는 그 비구들은 분소의(糞掃衣) 입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포기하고, 마을과 성읍과 도시로 들어가서 머물 것이다. 의복을 원인으로 여러 가지 잘못되고 적절치 않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첫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좋은 탁발음식을 바라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좋은 탁발음식을 바라는 그 비구들은 탁발음식만 수용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포기하고, 혀끝으로 최고의 맛을 추구하면서 마을과 성읍과 도시에 들어가서 머물 것이다. 탁발음식을 원인으로 여러 가지 잘못되고 적절치 않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두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좋은 거처를 바라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좋은 거처를 바라는 그 비구들은 나무 아래 머무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깊은 숲속의 외딴 거처를 포기하고, 마을과 성읍과 도시에 들어가서 머물 것이다. 거처를 원인으로 여러 가지 잘못되고 적절치 않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세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 비구니와 식차마나와 사미와 함께 섞여서 머무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구니와 식차마나와 사미들과 섞여서 머물 때 이런 것이 예상된다. '기뻐하지 않으면서 범행을 실천하거나 다른 오염된 짓을 저지를 것이다. 닦음을 포기하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네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미래에는 종무원과 사미와 함께 섞여서 머무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종무원과 사미와 함께 섞여 머물 때 이런 것이 예상된다.  '여러 가지를 즐길 것을 저장하는 일을 하며 지낼 것이다. 땅과 농작물에 대해 우리 것이라고 큰 표식을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이것이,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다섯 번째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지금은 생기지 않았지만 미래에 생길 이런 다섯 가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다. 그대들은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 알고서 그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제8장 무사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