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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의 모음 - 16. 정법 품(Saddhamma-vagga. A5.151-160)

실론섬 2014. 7. 18. 13:16

16장 정법 품 Saddhamma-vagga (AN5.151-160)

 

paṭhamasammattaniyāmasuttaṃ (AN 5.151-올바름에 확실함 경1)

151. “비구들이여,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말씀을 무시한다. 말씀하는 사람을 무시한다. 자신을 무시한다. 혼란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마음이 집중되지 않은 마음으로 이치에 맞지 않게 주의를
기울인다.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말씀을 무시하지 않는다. 말씀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다. 혼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집중된 마음으로 이치에 맞게 마음을 기울인다.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dutiyasammattaniyāmasuttaṃ (AN 5.152-올바름에 확실함 경2)

152. “비구들이여,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말씀을 무시한다. 말씀하는 사람을 무시한다. 자신을 무시한다. 지혜가 없고 어리석은 바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자만심이 있다.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말씀을 무시하지 않는다. 말씀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다. 지혜롭고 어리석지 않아 바보가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자만심이 없다.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tatiyasammattaniyāmasuttaṃ (AN 5.153-올바름에 확실함 경3)

153. “비구들이여,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저주가 스며든, 저주하는 자로서 법을 듣는다. 결점을 찾는, 질책하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법을 설하는 사람에 대해 냉담하고, 불만을 가진다. 지혜가 없고 어리석은 바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자만심이 있다. 정법을 듣는 자라 해도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다섯인가?
저주가 스며들지 않은, 저주하지 않는 자로서 법을 듣는다. 결점을 찾지 않는, 질책하지 않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법을 설하는 자에 대해 냉담하지 않고,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지혜롭고 어리석지 않아 바보가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자만심이 없다.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정법을 듣는 자는 유익한 법들에 대한 올바름에 확실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paṭhamasaddhammasammosasuttaṃ (AN 5.154-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1)

154.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진지하게 법을 배우지 않고, 진지하게 법을 철저히 배우지 않고, 진지하게 법을 명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명심한 법들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의미를 알고 법을 안 뒤에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진지하게 닦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진지하게 법을 배우고, 진지하게 법을 철저히 배우고, 진지하게 법을 명심하고, 진지하게 명심한 법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알고 법을 안 뒤에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진지하게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dutiyasaddhammasammosasuttaṃ (AN 5.155-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2)

155.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철저히  배우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남들을 위해 법을 상세하게 설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남에게 상세하게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상세하게 법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상세하게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다섯 번째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철저히 배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대로 이해한 대로 남에게 상세하게 법을 가르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상세하게 법을 되풀이한다(암송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상세하게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다섯 번째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않게 한다.”

 

tatiyasaddhammasammosasuttaṃ (AN 5.156-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3)

156.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된 경들을 철저히 배운다.
단어와 문장들이 잘못 구성되면 의미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완고하고, 훈계하기 어렵게 하는 법들을 갖추고, 인내하지 않고, 이어지는 가르침을 바르게 붙잡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많이 배웠고, 가르침을 계승하고, 법을 명심하고, 율을 명심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명심하는 그 비구들은 진지하게 경을 남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이 죽은 뒤에 경들은 뿌리가 잘리어 귀의처가 되지 못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장로 비구들은 풍족하게 살고, 해이하다. 들어갈 때는 앞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는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의 뒷 사람들도 견해를 뒤따른다. 그들도 풍족하게 살고, 해이하다. 들어갈 때는 앞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는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승가가 분열한다. 비구들이여, 승가가 분열할 때, 서로 간에 비난하고, 서로 간에 모욕하고, 서로 간에 벽을 쌓고, 서로 간에 버린다. 그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불신하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변하게 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다섯 번째 법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혼란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다섯 가지 법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단어와 문장들이 잘 배열되고 잘 구성된 경들을 철저히 배운다. 단어와 문장들이 바르게 구성되면 의미도 이해하기 쉽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유연하고(훈계하기 쉬운), 원만하게 하는 법들을 갖추고, 인내하고, 이어지는 가르침을 바르게 붙잡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많이 배웠고, 가르침을 계승하고, 법을 명심하고(호지하고),  율을 명심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명심하는 그 비구들은 진지하게 경을 남에게 가르친다. 그들이 죽은 뒤에도 경들은 뿌리가 잘리지 않아 귀의처가 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장로 비구들은 풍족하게 살지 않고, 해이하지 않다(교법에 방만하지 않다). 들어갈 때는 짐을 내려놓고, 여읨에서는 앞서간다(그들은 향상에 앞장서고 홀로 머묾을 버리지 않고),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들의 뒷사람들도 견해를 뒤따른다. 그들도 풍족하게 살지 않고, 해이하지 않다. 들어갈 때는 짐을 내려놓고, 여읨에서는 앞서간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승가가 화합한다. 뜻이 맞고 다투지 않고 일치된 해석으로 편안하게 머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승가가 화합할 때, 서로 간에 비난하지 않고, 서로 간에 모욕하지 않고, 서로 간에 벽을 쌓지 않고, 서로 간에 버리지 않는다. 그때 믿음이 없는 자들은 믿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들은 믿음이 더욱 증장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다섯 번째 법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정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다섯 가지 법이다.”

 

dukkathāsuttaṃ (AN 5.157-나쁜 이야기 경)

157.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 가운데 사람을 비교할 때 나쁜 이야기다. 어떤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계를 경시하는 사람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배움이 적은 사람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인색한 사람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없는 사람은 믿음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믿음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계를 경시하는 사람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계를 경시하는 사람은 계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계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계를 경시하는 사람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배움이 적은 사람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배움이 적은 사람은 많이 배움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배움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배움이 적은 사람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인색한 사람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인색한 사람은 보시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보시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인색한 사람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고, 동요하고, 짜증내고, 저항한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낸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지혜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 가운데 사람을 비교할 때 나쁜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 가운데 사람을 비교할 때 좋은 이야기다. 어떤 다섯 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있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계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많이 배운 자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보시하는 자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믿음 있는 사람은 믿음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믿음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는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계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계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계를 중시하는 사람은 계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계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는다. 그래서 계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많이 배운 사람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움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배움의 섳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는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에게 많이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보시하는 사람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보시하는 사람은 보시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보시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는다. 그래서 보시하는 사람에게 보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무엇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인가?

비구들이여,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에 관해 말하면 화를 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다. 성급함과 성냄과 의혹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그런 지혜의 성취를 자신 안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희열과 환희를 얻는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에게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 가운데 사람을 비교할 때 좋은 이야기다.”

 

sārajjasuttam (AN 5.158-두려움 경) 

158.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두려워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없고, 계행이 나쁘고, 적게 배웠고, 게으르고, 지혜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두려워한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믿음이 있고, 계를 잘 지키고, 많이 배웠고, 열심히 정진하고, 지혜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udāyīsuttaṃ (AN 5.159-우다이 경)
159.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우다이 존자는 많은 재가자들의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며 앉아 있었다. 아난다 존자가 많은 재가자들의 대중에 둘러싸인 우다이 존자가 앉아서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우다이 존자가 많은 재가자들의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합니다.”라고.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는 자는 안으로 다섯 가지 법을 준비한 뒤에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나는 순차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나는 되어감을 보면서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연민을 연(緣)하여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안으로 욕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자신도 남도 상처받지 않게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는 자는 안으로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준비한 뒤에 남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duppaṭivinodayasuttaṃ (AN 5.160-제거하기 어려운 것 경)

160.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이런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어떤 다섯인가?”

탐욕은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성냄은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리석음은 생겨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떠돌아다니고자(유행) 하는 마음은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일어나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의역한 원어는 patibhana 인데 일반적으로 영감으로 번역되나 여기서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kathetu-kamata)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어서(AA.iii.294) 이렇게 옮겼다.
*이러한 다섯 가지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절한 반조(pacca-vekkhana)와 훈계 등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Ibid)

 



제16장 정법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