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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의 모음 - 17. 원한(노여움) 품(Āghāta-vagga. AN5.161-170)

실론섬 2014. 7. 18. 14:06

제17장 원한(노여움) 품 Āghāta-vagga(AN 5.161-170)

 

paṭhamāaghātapaṭivinayasuttaṃ (AN 5.161-원한(노여움)의 제거 경1)

161.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원한의 제거가 있다. 어떤 경우에든 비구에게 일어난 원한은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어떤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 대해 자애(자.慈)를 닦아야 한다.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 대해 연민 (비.)을 닦아야 한다.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 대해 평정(사.捨)을 닦아야 한다.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 대해 마음 챙기지 않음과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 대해 업이 자신이라고 결정해야 한다.
‘이 존자는 자신의 업이고, 업을 잇고, 업의 근원이고, 업을 다루고, 업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선(善)하거나 악(惡)한 업을 짓고 그것을 이을 것이다(상속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원한의 제거가 있다. 어떤 경우에든 비구에게 일어난 원한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업이 자신임'으로 옮긴 kammassakata 는 'kamma-sakata'로 분석된다, 여기서 'sakata'는 'saka(자기, 자신)의 추상명사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업이 자기 자신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복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이 일어날 때 업이 일어난다. 이러한 연속적인 흐름 가운데서 그것의 결실이 발생하는 것을 '업이 자신의 주인이 됨'이라고 한다.(AAT.i.112) 

 

dutiyāaghātapaṭivinayasuttaṃ (AN 5.162-원한(노여움)의 제거 경2)

162.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 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원한(노여움)의 제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 비구에게 일어난 원한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어떤 사람은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어떤 사람은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고요함) 마음의 깨끗함을 얻습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어떤 사람은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지 못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어떤 사람은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습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사람에 대해서도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기서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하는 이런 사람에 대한 원한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분소의를 입는 비구가 마차가 다니는 길에서 낡은 천을 본 뒤에 왼발로 밟고 오른발로 펼친 뒤에 거기서 선택된 부분(낡지 않은 부분)을 잘라서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하는 이런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몸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야 하고(마음에 두지 말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기서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하는 이런 사람에 대한 원한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이끼와 수초로 덮인 호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위에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는 호수에 들어간 뒤에 양손으로 이끼와 수초의 무더기를 밀어내고 손을 모아 올려서 물을 마신 뒤에 갈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하는 이런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말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야 하고,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을 기울어야 합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기서,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지만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이런 사람에 대한 원한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작은 소 발자국에 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위에 시달리고 더위에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소 발자국에 있는 물이다. 만약 내가 손을 모아 올려서 물을 마시거나 그릇으로 마시려고 하면 이 물은 흔들리게도 혼탁하게도 만들 것이다(혼탁해져서 마실 수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사지를 굽혀서 몸을 낮춘 뒤에 소 발자국의 물을 마신 뒤에 가면 어떨까!'라고.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지만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이런 사람은 청정하지 못한 몸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 기울이지 않아야 하고, 청정하지 못한 말의 행위를 할 때는 마음 기울이지 않아야 하며,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이 깨끗함을 얻는 때는 오직 그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기서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면서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도 얻지 못하는 이런 사람에 대한 원한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병에 걸려 낙담하고 심하게 아픈 사람이 먼 길을 가고 있는데 그의 앞으로도 마을이 멀리 있고 뒤로도 마을이 멀리 있습니다. 그는 적절한 음식을 얻지 못할 것이고, 적절한 약을 얻지 못할 것이고, 적절한 간병인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먼 길을 가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를 볼 것입니다. 그는 그 사람에 대해 연민을 일으킬 것이고, 동정을 일으킬 것이고, 측은함을 일으킬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이 적절한 음식을 얻고, 적절한 약을 얻고, 적절한 간병인을 얻고, 마을로 이끄는 안내인을 얻게 되기를!’이라고.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이제 불행과 고통을 겪지 않기를'입니다.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청정하지 않은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하지 않은 말의 행위를 하면서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도 얻지 못하는 이런 사람에 대해, 도반들이여, 연민을 일으켜야 하고, 동정을 일으켜야 하고, 측은함을 일으켜야 합니다. ‘참으로 이 존자가 몸의 잘못된 행위를 버리고 몸의 좋은 행위를 닦기를, 말의 잘못된 행위를 버리고 말의 좋은 행위를 닦기를!’이라고.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존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나지 말기를!입니다(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거기서 도반들이여,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하고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이런 사람에 대한 원한은 어떻게 제거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맑고 쾌적하고 투명하고 시원한 물이 담긴, 아름다운 둑으로 둘러싸인 매혹적인 호수가 여러 종류의 나무들에 의해 덮여있습니다. 더위에 시달리고 더위에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는 그 호수에 들어가서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 나온 뒤에 거기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울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도반들이여,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하고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이런 사람은 청정한 몸의 행위를 할 때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청정한 말의 행위를 할 때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때때로 마음의 열림과 마음의 깨끗함을 얻을 때 마음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그 사람에 대해 원한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모든 곳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오면 마음은 밝아집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원한의 제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 비구에게 일어난 원한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sākacchasuttaṃ (AN 5.163-대화 경)

163.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대화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스스스로 계를 증득하고, 계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삼매를 증득하고, 삼매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지혜를 증득하고, 지혜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해탈을 증득하고, 해탈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해탈지견을 증득하고, 해탈지견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대화하기에 충분합니다.”

 

sājīvasuttaṃ (AN 5.164-함께 생활함 경)

164.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스스스로 계를 증득하고, 계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삼매를 증득하고, 삼매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지혜를 증득하고, 지혜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해탈을 증득하고, 해탈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스스로 해탈지견을 증득하고, 해탈지견의 증득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질문에 대해 설명합니다. 
도반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충분합니다.”

 

pañhapucchāsuttaṃ (AN 5.165-질문하기 경)

165.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다른 사람에게 질문 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모두 다섯 가지 경우거나 그들 가운데 어떤 경우에 의해서입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어리석음과 당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악한 원함(원.願)을 가진 자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모욕을 주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알기를 바라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만약 나에게서 질문을 받은 자가 적절하게 설명한다면, 이렇게 그것은 유익하다. 만약 나에게서 질문을 받은 자가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내가 적절하게 설명할 것이다.’라고."

 

nirodhasuttaṃ (AN 5.166-소멸 경)

166.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이시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기, 도반들이여, 여기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들 수도 있고 출정할 수도 있다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지 못하면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우다이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 경우는 없고 불가능합니다.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난 그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욕계의 신들'로 번역한 원문은 kabalikarahara-bhakkha deva 이다. 직역하면 '덩어리로 된 음식을 먹고 사는 신들'이라는 뜻으로 욕계의 신들(kamavacara-deva)을 말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을 하였다.(Ibid)
*'여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mamomayakaya)이란 선(禪)의 마음으로 만들어 낸 정거천의 범천의 몸(suddhavasa-brahmakaya)을 뜻한다.(Ibid)

*여기서 우다이는 랄루다이(Laludayi)존자이다. 그는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무색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꾸하고 있다.(Ibid)
랄루다이 존자는 한마디로 '틀린 말을 하는데 교묘한 기술을 가진 자'로 DPPN은 설명하고 있다. [담마빠다 주석서]는 그를 설명하면서 그는 축제를 즐기는 곳에 가서 장송곡을 부르고 장례식에 가서는 축가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다.(DhpA.iii.123)
경들에서도 그는 엉뚱한 질문과 엉뚱한 말을 잘 내뱉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에서 그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세 번이나 공박하고 있는데 대중은 끼어들지 않고 침묵만 하고 있었다. 결국은 세존께서 나서서 랄루다이 존자를 꾸짖고 사리뿟따 존자의 설명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고 있다. 
주석서는 랄루다이 존자를 꼬와리야의 아들(Kovariyaputta)이라 부르고 있다. 주석서는 그를 자신의 이로움을 위해서도 남의 이로움을 위해서도 법을 닦지 않는 사람의 본보기로 들고 있고(MA.ii.138), 율장은 그를 제멋대로 다니는 짐슴을 닮았고 게으름 등에 빠진 탐욕스런 비구(lola-bhikku)라고 혹평하고 있다.(Vin.iii.517)

 

두 번째도 ··· 세번째도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기, 도반들이여, 여기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들 수도 있고 출정할 수도 있다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지 못하면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세 번째도 우다이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 경우는 없고 불가능합니다.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난 그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 번째까지도 우다이 존자는 나를 부인했다. 그리고 어떤 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나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세존께 가야겠다.’라고.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여기, 도반들이여, 여기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들 수도 있고 출정할 수도 있다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지 못하면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우다이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 경우는 없고 불가능합니다.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난 그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두 번째도 ··· 세 번째도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도반들이여, 여기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들 수도 있고 출정할 수도 있다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지 못하면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세 번째도 우다이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 경우는 없고 불가능합니다.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난 그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의 면전에서도 우다이 존자는 나를 세 번까지 부인했다. 그리고 어떤 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침묵해야겠다.’라고.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는 침묵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우다이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다이여, 그대는 누가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인식으로 이루어진 무색계의 신들입니다.”

“우다이여,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그대의 말로써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곤경에 처한(난처해진) 장로 비구를 이토록 무관심하게 대해도 되는가? 아난다여, 곤경에 처한 장로 비구로부터 도반들에 대한 연민이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라고.”

 

*'무관심하게 대한다(ajjhupekkhissatha)'는 것은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왜 아난다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아난다 존자는 법의 창고지기(dhamma-bhandagarika)가 되기 때문이다. 법의 창고지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가 침묵하고 있었던 짐을 덜어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아난다 장로는 사리뿟따 장로의 친한 도반이기 때문에 [아난다 장로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세존께서 아난다 장로를 나무라신 것은 단지 아난다 장로만을 나무라신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면전에 있는 모든 비구들을 나무라신 것이다.(AA.iii.298-299)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들이여, 여기 계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가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 만약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앎을 얻지 못하면 욕계의 신들의 동료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태어나 상수멸을 증득할 것이라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에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세존께서 들어가신지 오래지 않아 아난다 존자는 우빠와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우빠와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여기, 도반 우빠와나여, 다른 장로 비구를 난처하게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나오신 세존께서 그것에 대해 말씀하실 것이고, 그것에 대해 우빠와나 존자께서 대답해야 할 것이 자명합니다. 여기 저희들은 의기소침해졌습니다.”라고.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나오신 세존께서는 집회소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은 뒤 세존께서는 우빠와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우빠와나여, 몇 가지 법을 갖춘 장로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고, 존중되고 존경받는가?”라고.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장로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고, 존중되고, 존경받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세존이시여, 장로 비구는 계를 갖추고, 빠띠목카[戒目.계목]를 갖추어 머뭅니다.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닦습니다. 

많이 배우고[多聞],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합니다.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내는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지지하고, 말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습니다.

선한 말을 하고, 선한 대화를 하고, 점잖은 말을 갖췄고, 발음이 명확하고, 흠이 없고, 뜻을 전달합니다.

높은 마음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선정을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습니다.

번뇌들의 부서짐으로부터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장로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고, 존중되고 존경받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우빠와나여! 우빠와나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장로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사랑받고, 마음에 들고, 존중되고 존경받는다. 우빠와나여, 만약 이런 다섯 가지 법들이 장로 비구에게 보이지 않으면 동료 수행자들이 치아가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얼굴의 주름살이 있다고 해서 그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고, 존중하지 않을 것이고,  공경하지 않을 것이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빠와나여, 이런 다섯 가지 법들이 장로 비구에게서 보이면 동료수행자들이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배한다."

 

codanāsuttaṃ (AN 5.167-책망 경)

167.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책망하고자 하여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비구는 다섯 가지 법들을 안으로 확립한 뒤에 다른 사람을 책망해야 합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나는 적절하지 않은 때 말고 적절한 때에 말할 것이다. 나는 사실 아닌 것 말고 사실을 말할
것이다. 나는 거칠게 말고 부드럽게 말할 것이다. 나는 손해되게 말고 이익 되게 말할 것이다. 안으로 성냄 말고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말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책망하고자 하여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비구는 이런 다섯 가지 법을 안으로 확립한 뒤에 다른 사람을 책망해야 합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적절한 때 말고 적절하지 않은 때에 책망받아 화가 나고, 사실 말고 사실 아닌 것에 의해 책망받아 화가나고, 부드럽게 말고 거칠게 책망받아 화가 나고, 이익되게 말고 손해 되게 책망받아 화가 나고, 자애의 마음 말고 안으로 성냄을 가지고 책망받아 화가 난 어떤 사람을 봅니다.


도반들이여, 법에 어긋나게 책망받은 비구는 뉘우치지 않아도 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존자는 적절한 때 말고 적절하지 않은 때에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존자는 사실 말고 사실 아닌 것에 의해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존자는 부드럽게 말고 거칠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존자는 이익되게 말고 손해되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존자는 자애의 마음 말고 안으로 성냄을 가지고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도반들이여, 법에 어긋나게 책망받은 비구는 뉘우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법에 어긋나게 책망하는 비구는 뉘우쳐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대는 적절한 때 말고 적절하지 않은 때에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그대는 사실 말고 사실 아닌 것으로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그대는 부드럽게 말고 거칠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한다. 그대는 이익되게 말고 손해 되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그대는 자애의 마음 말고 안으로 성냄을 가지고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라고. 
도반들이여, 법에 어긋나게 책망하는 비구는 뉘우쳐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른 비구도 이렇게 사실 아님에 의해 책망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 도반들이여, 나는 적절하지 않은 때 말고 적절한 때에 책망받아 화가나고, 사실 아닌 것 말고 사실에 의해 책망받아 화가나고, 거칠게 말고 부드럽게 책망받아 화가나고, 손해되게 말고 이익되게 책망받아 화가 나고, 안으로 성냄 말고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책망받아 화가 난 어떤 사람을 봅니다.


도반들이여, 법답게 책망받은 비구는 뉘우쳐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존자는 적절하지 않은 때 말고 적절한 때에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존자는 사실 아닌 것 말고 사실에 의해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존자는 거칠게 말고 부드럽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존자는 손해 되게 말고 이익되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 존자는 안으로 성냄말고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쳐야 한다.’라고.
도반들이여, 법답게 책망받은 비구는 뉘우쳐야 하는 이런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법답게 책망하는 비구는 뉘우치지 않아도 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대는 적절하지 않은 때 말고 적절한 때에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사실 아닌 것 말고 사실에 의해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거칠게 말고 부드럽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손해 되게 말고 이익되게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안으로 성냄 말고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책망했다. 그대는 뉘우치지 않아도 된다.’라고.
도반들이여, 법답게 책망하는 비구는 비구는 뉘우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다섯 가지 이유를 얻을 것입니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른 비구도 이렇게 사실에 의해 책망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책망받은 사람은 진실과 흔들리지 않음의 두 가지 법들에 확고히 서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만약 다른 사람들이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때에, 사실이거나 사실 아니게, 부드럽거나 거칠게, 이익되거나 손해 되게, 자애의 마음을 가지거나 안으로 성냄을 가지고서 나를 책망한다면, 나도 진실과 흔들리지 않음의 두 가지 법들에 확고히 설 것입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법이 있다.’라고 알게 되면, ‘있다’라고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법이 존재합니다.’라고. 만약 ‘나에게 이런 법이 없다.’라고 알게 되면, ‘없다’라고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사리뿟따여, 그대가 이렇게 말해도 여기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믿음이 아니라 생계를 목적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교활하고 속이고 사기치고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합니다.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음식의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없고, 닦음의 꿰뚫음을 존중하지 않고, 풍족하게 살고 무기력하고 떨어짐(퇴보)에 앞장서, 홀로 머묾의 멍에를 포기하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잊어 버리고,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매를 닦지 못해서 산란한 마음 때문에 지혜가 없고 멍청이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해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사기 치지 않고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을 실천합니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있고, 닦음의 꿰뚫음을 존중하고, 풍족하게 살지 않고 해이하지 않고, 들어갈 때는 짐을 내려놓고, 여읨에서는 앞서가고,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알아차치이 있고, 삼매를 닦아서 집중된 마음 때문에 지혜가 있고 멍청이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올바르게 받아 들입니다.”

 

“사리뿟따여, 믿음이 아니라 생계를 목적으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교활하고 속이고 사기치고 들뜨고 오만하고 우쭐대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한다.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음식의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있음을 실천하지 않는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없고(사문의 결실에는 관심이 없고), 닦음의 꿰뚫음을 존중하지 않고, 풍족하게 살고 무기력하고, 떨어짐에 앞장서고, 홀로 머묾의 멍에를 포기하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맬르 닦지 못해서 산란한 마음 때문에 지혜가 없고 멍청이다. 그들은 그대로 두어라. 
그러나, 사리뿟따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사기 치지 않고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을 실천합니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있고, 닦음의 꿰뚫음을 존중하고, 풍족하게 살지 않고 해이하지 않고, 들어갈 때는 짐을 내려놓고, 여읨에서는 앞서가고,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알아차치이 있고, 삼매를 닦아서 집중된 마음 때문에 지혜가 있고 멍청이가 아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그들을 위해 말해야 한다. 사리뿟따여, 동료수행자들을 훈계해야 한다. 사리뿟따여, '나는 동료 수행자들이 정법 아닌 것에서 나와서 정법에 확고히 서게 할 것이다.'라고 동료수행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참으로, 사리뿟따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sīlasuttaṃ (AN 5.168-계(戒) 경)

168. 거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를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잃은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염오.厭惡-이탐.離貪)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을 잃은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가지와 잎을 잃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여물지 못하고, 껍질도 잘 여물지 못하고, 연한 목재[백목질.白木質]도 잘 여물지 못하고, 심재(心材)도 잘 여물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계를 경시하고 계를 잃은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바른 삼매가 없을 때 바른 삼매를 잃은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여실지견.如實知見)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없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잃은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염오.厭惡-이탐.離貪)의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없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을 잃은 자에게 해탈지견은 조건은 상실되었습니다.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가지와 잎을 가진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의 새싹도 잘 여물고, 껍질도 잘 여물고, 연한 목재도 잘 여물고, 심재도 잘 여뭅니다.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계를 중시하고 계를 갖춘 자에게 바른 삼매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바른 삼매가 있을 때 바른 삼매를 갖춘 자에게 있는 그대로 봄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봄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봄을 갖춘 자에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이 있을 때 염오와 탐욕의 사라짐을 갖춘 자에게 해탈지견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khippanisantisuttam (AN 5.169-재빠르게 앎 경) 
169.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떻게 비구가 선법들을 재빠르게 알고 잘 이해하고 많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아난다 존자는 많이 배운 분입니다. 아난다 존자가 밝혀주십시오.”

“그렇다면 도반 사리뿟따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뜻에 능숙하고 법에 능숙하고 언어에 능숙하고 표현에 능숙하고 선후의 순서에 능숙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렇게 비구가 선법들을 재빠르게 알고 잘 이해하고 많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아난다 존자는 참으로 이런 훌륭한 말을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난다 존자가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구족하였다고 여기겠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뜻에 능숙하고 법에 능숙하고 언어에 능숙하고 표현에 능숙하고 선후의 순서에 능숙하다.’라고.”

 

*'뜻에 능숙하다(attha-kusala)'는 것은 주석서에 유능하다는 말이고, '법에 능숙하다(dhamma-kusala)'는 것은 빠알리 삼장(Pali)에 유능하다는 말이다.(AA.iii.300)
*'선후의 순서에 능숙함(pubbapara-kusala)'이란 뜻의 선후, 법의 선후, 자구의 선후, 언어의 선후, 결론의 선후라는 이러한 다섯 가지 선후의 순서에 유능하다는 말이다.(Ibid)

 

bhaddajisuttaṃ (AN 5.170-밧다지 경)

170.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밧다지 존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밧다지 존자에게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테라가타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밧디야(Bhaddiya) 도시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주 호화스럽게 양육되었다고 한다. 후에 세존께서 밧디야에 오셔서 설법을 하시는 것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고 세존을 계사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주석서는 그의 뛰어난 선정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ThagA.39-40)

 

“도반 밧다지여, 무엇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으뜸이고, 무엇이 듣는 것들 가운데 으뜸이고, 무엇이 행복 가운데 으뜸이고, 무엇이 인식들 가운데 으뜸이고, 무엇이 존재들 가운데 으뜸입니까?”라고.

“도반 아난다여, 지배자, 지배되지 않는 자, 전지자, 전능자인 범천이 있습니다. 그 범천을 보는 것이 보는 것들 가운데서 으뜸입니다. 도반이여, 행복으로 가득하고 충만한 광음천(光音天)이라 부르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오, 행복하다!, 오, 행복하다!.’라고 감흥을 읊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듣는 것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도반이여, 변정천(遍淨天)이라 부르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평화롭고 만족한 행복을 선언합니다. 이것이 행복 가운데서 으뜸입니다. 도반이여, 공무변처에 태어난 신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식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도반이여,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난 신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 가운데 으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는 이것을 밧다지 존자는 동의하는 것입니까?"

“아난다 존자는 많이 배운 분입니다. 아난다 존자가 밝혀주십시오.”

“그렇다면 도반 밧다지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밧다지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도반이여, 보는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숨이 있다면 이것이 보는 것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듣는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숨이 있다면 이것이 듣는 것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행복한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숨이 있다면 이것이 행복 가운데 으뜸입니다.

인식을 가진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숨이 있다면 이것이 인식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존재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숨이 있다면 이것이 존재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제17장 노여움(원한)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