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천신 품 Devatā-vagga(AN 6.31-42)
sekhasuttaṃ (AN 6.31-유학(有學) 경)
31.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有學)인 비구를 퇴보로 이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일하기를 좋아하고(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고, 잠자기를 좋아하고, 함께 머물기를 좋아하고(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음식의 적당량을 모른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퇴보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퇴보하지 않음으로 이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함께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량을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퇴보하지 않음으로 이끈다.”
pathamaparihānasuttam (AN 6.32-쇠퇴하지 않음 경1)
32. 그 무렵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 숲의 거의 전부를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쇠퇴하지 않게 합니다. 어떤 여섯입니까?
스승을 중히 여기고(존중함), 법을 중히 여기고, 승가를 중히 여기고, 공부를 중히 여기고, 불방일을 중히 여기고, 친절한 환영을 중히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쇠퇴하지 않게 합니다.”
천신은 이렇게 말하였고 세존께서는 그것에 동의를 하셨다. 천신은 ‘스승께서 나의 말에 동의를 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세존의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서 사라졌다.
세존께서는 그 밤이 지나자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밤에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 숲의 거의 전부를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왔다. 와서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쇠퇴하지 않음으로 이끕니다. 어떤 여섯입니까? 스승으로 중히 여기고, 법을 중히 여기고, 승가를 중히 여기고, 공부를(닦음과 익힘) 중히 여기고, 불방일을 중히 여기고, 친절한 환영을 중히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유학인 비구를 쇠퇴하지 않음으로 이끕니다.'라고.
천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서 사라졌다.”
스승을 중히 여기고, 법을 중히 여기고, 승가를 중히 여기고
불방일을 중히 여기고, 친절한 환영을 중히 여기는 비구는
쇠퇴할 수 없고, 오직 열반이 가깝다.
dutiyāparihānasuttaṃ (AN 6.33-쇠퇴하지 않음 경2)
33. “비구들이여, 이 밤에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 숲의 거의 전부를 환하게 밝히면서 나에게 왔다. 와서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섰다. 비구들이여,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하지 않음으로 이끕니다. 어떤 여섯입니까? 스승으로 중히 여기고(존중함), 법을 중히 여기고, 승가를 중히 여기고, 공부를 중히 여기고, 뉘우칠 줄 아는 힘을 중히 여기고,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을 중히 여깁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은 비구를 쇠퇴하지 않음으로 이끕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 천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공경의 의미로 오른쪽으로 돌아 거기서 사라졌다.”
스승을 중히 여기고, 법을 중히 여기고, 승가를 중히 여기고
뉘우칠 줄 아는 힘과 부끄러운 줄 아는 힘을 갖추고, 완고하지 않음을 중히 여기는 자는
쇠퇴할 수 없고, 오직 열반이 가깝다.
mahamoggallānasuttam (AN 6.34-마하목갈라나 경)
34.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마하 목갈라나 존자가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을까? ‘나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때 띳사라는 비구가 얼마 전에 임종하여 어떤 범천의 세계에 태어났다. 거기서도 동료 범천들은 그를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을 가진 띳사 범천이라고 알았다.
*주석서에 의하면 띳사(Tissa) 비구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상좌(saddhi-viharika)였다고 한다.(AA.iii.362) 본 경에서 보듯이 그는 신통이 자재한 비구였다고 한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른 시간에 제따 숲에서 사라져서 범천의 세계에 나타났다. 띳사 범천은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목갈라나 존자여. 환영합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목갈라나 존자여, 오랜만에 기회를 내셔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이것이 마련된 자리입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띳사 범천도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고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띳사 범천에게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띳사여, 어떤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이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사대왕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면, 띳사여, 모든 사대왕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사대왕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사대왕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사대왕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띳사여, 사대왕천의 신들에게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아니면 삼십삼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삼십삼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면, 띳사여, 모든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삽십삼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삼십삼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띳사여, 삼십삼천천의 신들에게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아니면 야마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야마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면, 띳사여, 모든 야마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야마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야마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야마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띳사여, 야마천의 신들에게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아니면 도솔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도솔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면, 띳사여, 모든 도솔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도솔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도솔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도솔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띳사여, 도솔천의 신들에게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아니면 화락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화락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면, 띳사여, 모든 화락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화락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화락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화락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띳사여, 화락천의 신들에게만 이런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아니면 타화자재천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타화자재천 의 신들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ㄱ러면, 띳사여, 모든 타화자재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까?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모든 타화자재천의 신들에게 이러한 지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목갈라나 존자여, 타화자재천의 신들 가운데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승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나, 목갈라나 존자여, 타화자재천의 신들 가운데서 세존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법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추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를 갖춘 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흐름에 든 자다.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다.’라고.”
그러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띳사 범천이 한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재빠른 시간에 범천의 세계에서 사라져 제따 숲에 나타났다.
vijjābhāgiyasuttaṃ (AN 6.35-명지(明知)와 연결된 경)
35.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명지와 연결된 법들이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무상의 인식(오온에 대해 무상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무상에 대한 괴로움의 인식(무상한 오온에 대해서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괴로움에 대한 무아의 인식(괴로움인 오온에 대해서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버림의 인식, 탐욕이 사라짐의 인식, 소멸의 인식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명지와 연결된 법들이다.”
vivādamulasuttam (AN 6.36-분쟁의 뿌리 경)
36.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분쟁의 뿌리가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분노하고 앙심을 품는다.
비구들이여, 분노하고 앙심을 품는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를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교만하고 거만하다.
비구들이여, 교만하고 거만한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를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질투하고 인색하다.
비구들이여, 질투하고 인색한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를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속이고 간교하다.
비구들이여, 속이고 간교한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선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선하지 않은 생각과 삿된 견래를 가진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자기 견해를 고수(固守)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서 놓아버리기가 어렵다.
비구들이여,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서 놓아버리기가 어려운 비구는 스승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법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승가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그는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물고, 올바른 지혜도 성취하지 못하는 비구는 승가에 분쟁을 일으킨다.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손실과 손해와 괴로움을 주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삿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닦고 익혀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삿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분쟁의 뿌리가 있다.”
chaḷaṅgadānasuttaṃ (AN 6.37-여섯 요소를 갖춘 보시 경)
37.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젯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에 웰루깐다끼 난다마따 청신녀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보시를 올렸다. 세존께서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天眼]으로 웰루깐다끼 난다마따 청신녀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보시를 올리는 것을 보셨다. 그것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웰루깐다끼 난다마따 청신녀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보시를 올린다.
*주석서에 의하면 웰루깐다끼의 난다마따(Velukantaki Nandamata)는 아완띠(Avanti)의 웰루깐다까 도시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TagA.105) 그녀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에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서 [난다마따 경(AN7.50)]에서도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가 언급되고 있다. 본서 [난다마따 경(AN7.50)]에 의하면 그녀의 아들 난다가 왕의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어도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고 하며 네가 禪을 증득했고 불환과를 얻었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보시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보시하는 자의 세 가지 요소가 있고, 보시 받는 자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무엇이 보시하는 자의 세 가지 요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보시하는 자는 보시로 인해서 먼저 기뻐한다. 보시하는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보시한 뒤에 즐거워 한다. 이것에 보시하는 자의 세 가지 요소이다.
무엇이 보시 받는 자의 세 가지 요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보시받는 자들은 탐욕을 떠났거나 탐욕을 길들이는 법을 닦는다. 성냄을 떠났거나 성냄을 길들이는 법을 닦는다. 어리석음을 떠났거나 어리석음을 길들이는 법을 닦는다. 이것이 보시받는 자의 세 가지 요소이다.
이렇게 보시하는 자의 세 가지 요소가 있고, 보시받는 자들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여섯 요소를 갖춘 보시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요소를 갖춘 보시를 ‘이만큼의 공덕을 쌓고(공덕이 넘쳐 흐르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토대가 되고, 천상의 세계로 연결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한다.’라고 공덕의 크기를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커다란 공덕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이만한 용량의 백 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만한 용량의 천 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만한 용량의 십만 배의 물이 있다.'라고 큰 바다에 대해서 물의 양을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다만,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크나큰 물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보시를 ‘이만큼의 공덕을 쌓고, 유익을 쌓고, 행복의 토대가 되고, 천상의 세계로 연결이 되고, 과보가 행복이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고,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한다.’라고 공덕의 크기를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커다란 공덕의 무더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보시로 인해서 먼저 기뻐하고, 보시하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보시한 뒤 즐거워한다. 이것이 보시의 성취이다.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 번뇌 없는
범행을 닦는 자들은 보시의 성취를 위한 복밭이라고 알려졌다.
자신을 씻은 뒤에, 자신의 손에 의해 베푸는
그 보시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큰 결실이 있다.
지혜롭고 믿음이 있는 현명한 자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이렇게 보시한 뒤에 악의 없는 행복한 세상에 태어난다.
attakārīsuttam (AN 6.38-자신의 행위 경)
38. 그 무렵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작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시작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한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시작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한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벗어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벗어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벗어나는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벗어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벗어나는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분발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분발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에 분발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분발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에 분발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힘을 내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힘을 내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에 힘을 내는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힘을 내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에 힘을 내는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확고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확고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확고하게 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확고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확고하게 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착수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착수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착수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착수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일을 착수하는 중생들이라고 불린다.’라는 이것이 바로 중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남의 행위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위도 없고 남의 행위도 없다.’라고 한단 말입니까?”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탄할만한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nidānasuttaṃ (AN 6.39-인연(因緣) 경)
39.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들이 있다. 어떤 셋인가?
탐욕은 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업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성냄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탐욕 없음은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탐욕으로부터 오직 탐욕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성냄으로부터 성냄 없음은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성냄으로부터 오직 성냄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으로부터 어리석음 없음이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으로부터 오직 어리석음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탐욕에서 생긴 업, 성냄에서 생긴 업, 어리석음에서 생긴 업에 의해 신들은 선언되지 않고(태어나지 않고), 인간들은 선언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다른 무엇이든 좋은 곳[善處]들은 선언되지 않는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탐욕에서 생긴 업, 성냄에서 생긴 업, 어리석음에서 생긴 업에 의해 지옥이 선언되고, 축생의 모태가 선언되고, 아귀의 영역이 선언된다. 또한, 어떤 다른 무엇이든 나쁜 곳[惡處]들이 선언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이런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들이 있다. 어떤 셋인가?
탐욕 없음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성냄 없음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어리석음 없음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이다.
비구들이여, 탐욕 없음으로부터 탐욕은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탐욕 없음으로부터는 오직 탐욕 없음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성냄 없음으로부터 성냄은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성냄 없음으로부터는 오직 성냄 없음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으로부터 어리석음은 자라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 없음으로부터는 오직 어리석음 없음이 자라난다.
비구들이여, 탐욕 없음에서 생긴 업, 성냄 없음에서 생긴 업, 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긴 업에 의해 지옥은 선언되지 않고, 축생의 모태는 선언되지 않고, 아귀의 영역은 선언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다른 무엇이든 나쁜 곳들은 선언되지 않는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탐욕 없음에서 생긴 업, 성냄 없음에서 생긴 업, 어리석음 없음에서 생긴 업에 의해 신들이 선언되고, 인간들이 선언된다. 또한, 어떤 다른 무엇이든 좋은 곳들이 선언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업들의 자라남을 위한 인연들이 있다.”
Kimilasuttam (AN 6.40-끼밀라 경)
40. 한 때에 세존께서는 끼밀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끼밀라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끼밀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 정법이 오래 머물지 못합니까?"
"끼밀라여,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 여기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스승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닦음과 익힘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방일하지 않음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친절한 환영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끼밀라여,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들었을 때 정법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도 정법이 오래 머뭅니까?"
"끼밀라여,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 여기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스승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법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승가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닦음과 익힘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방일하지 않음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친절한 환영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끼밀라여,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도 정법이 오래 머문다.”
dārukkhandhasuttaṃ (AN 6.41-나무더미 경)
4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그 무렵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비구들과 함께 독수리봉 산으로부터 내려오던 사리뿟따 존자는 어떤 지역에 큰 나무더미를 보았다. 본 뒤에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이 큰 나무더미를 봅니까?"라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들이여,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힘을 성취한 비구는 원하기만 하면 이런 나무더미를 단지 땅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도반들이여, 이런 나무더미에는 땅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힘을 성취한 비구는 이런 나무더미를 땅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힘을 성취한 비구는 원하기만 하면 이런 나무더미를 단지 물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단지 불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단지 바람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단지 깨끗한 것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단지 더러운 것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도반들이여, 이런 나무더미에는 더러움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서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힘을 성취한 비구는 이런 나무더미를 단지 더러운 것이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nāgitasuttaṃ (AN 6.42-나기따 경)
4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하시다가 잇차낭갈라라는 꼬살라들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그곳 잇차낭갈라에서 잇차낭갈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고 계셨다.
잇차낭갈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꺄의 후예이고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잇차낭갈라에 도착해서 잇차낭갈라에서 잇차낭갈라의 깊은 숲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께서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죽 마라둘,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며, 의미와 표현이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잇차낭갈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그 밤이 지나자 많은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가지고 잇차낭갈라의 깊은 숲 속으로 갔다. 가가서는 문밖에 서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때 나기따 존자가 세존의 시자로 있었다. 세존께서는 나기따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나기따여, 누가 큰 소리로 떠드는가? 마치 어부가 물고기들을 끌어올릴 때 내는 소리 같구나.”라고.
“세존이시여, 잇차낭갈라의 바라문 장자들이 세존과 비구 승가를 위해 많은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가지고 문밖에 서있습니다.”
“나기따여, 명성을 쫓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나에 의한 명성이 있게 하지 말라. 나기따여, 내가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는 출리의 즐거움, 버림(여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는 사람은 저 방일의 즐거움(똥의 즐거움), 잠의 즐거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의 즐거움을 즐긴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저들의 공양을 허락하십시오. 선서께서는 허락하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허락하실 때입니다. 이제 세존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성읍과 지방의 바라문 장자들은 그곳을 향해 모여들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의 비가 올 때 물이 경사진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이처럼 세존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성읍과 지방의 바라문 장자들은 그곳을 향해 모여들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께서는의 계와 지혜를 가진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기따여, 명성을 쫓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나에 의한 명성이 있게 하지 말라. 나기따여, 내가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는 출리의 즐거움, 버림(여읨)의 즐거움, 고요함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을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는 사람은 저 방일의 즐거움(똥의 즐거움), 잠의 즐거움, 얻음과 존경과 명성의 즐거움을 즐긴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마을 주변에 머무는 비구가 삼매를 닦으며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나기따여, 그런 나에게 ‘이제 그 존자를 사찰관리자가 기다리거나 신참 비구가 그를 성가시게 하거나 그 삼매를 깨뜨려버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 주변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 비구를 기뻐하지 않는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숲에 머무는 비구가 숲에서 졸면서 앉아있는 것을 본다. 나기따여, 그런 나에게 ‘이제 이 존자는 이 졸음과 피로를 제거한 뒤에 온전히 숲의 표상에 마음을 기울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숲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든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숲에 머무는 비구가 숲에서 삼매에 들지 못한 채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나기따여, 그런 나에게 ‘이제 이 존자는 삼매에 들지 못한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할 것이고, 삼매를 닦는 마음을 보호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숲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든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숲에 머무는 비구가 숲에서 삼매를 닦으면서 앉아있는 것을 본다. 나기따여, 그런 나에게 ‘이제 이 존자는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게 할 것이고, 해탈한 마음을 보호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숲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든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마을 주변에 머무는 비구가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는 것을 본다.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갈망하는 그는 홀로 머묾을 버리고, 깊은 숲속, 외딴 거처를 버리고, 마을이나 성읍이나 수도에 나와서 안거를 보낸다. 마을 주변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 나기따여, 나는 숲에 머무는 비구가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필요한 약품을 얻는 것을 본다.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멀리한 채 그는 홀로 머묾을 버리지 않고, 깊은 숲속, 외딴 거처를 버리지 않는다. 숲에 머무는 것 때문에, 나기따여, 나는 그 비구가 마음에 든다.
먼 길을 걸으면서, 나기따여, 내가 앞이나 뒤 어디도 보지 않을 때, 나기따여, 심지어 대소변을 볼 때도 나는 편안하다.”
제4장 천신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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