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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주제 - 제2장 미가라마뚜 강당을 흔듦 품(SN51:11-SN51:20. Pāsādakampana-vagga)

실론섬 2014. 8. 26. 15:45

제2장 미가라마뚜 강당을 흔듦 품
Pāsādakampana-vagga
 

pubbasuttaṃ (SN 51.11-이전 경) 
823.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신통의 요소를 닦기 위한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나의 바램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이렇게 나의 정진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이렇게 나의 마음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은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이렇게 나의 관찰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한다. 그는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 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天耳界)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정)을 얻은 마음으로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숨낳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mahapphalasuttam (SN 51.12-큰 결실 경)
824. “비구들이여,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처럼 나의 바램은 ··· 정진은 ··· 마음은 ··· 관찰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한다. 그는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 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귀의 계를(天耳界) 통해 멀거나 가까운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다른 중생,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써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 차린다. 탐냄을 지닌 마음을 탐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탐냄을 떠난 마음을 탐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지닌 마음을 성냄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성냄을 떠난 마음을 성냄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을 어리석음을 지닌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어리석음을 떠난마음을 어리석음을 떠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산란한 마음(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산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광대하지 못한 마음을 광대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으로알아차린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정)을 얻은 마음으로 삼매를 얻은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을 삼매를 얻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숨낳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chandasamādhisuttam (SN 51.13-바램을 위주로 한 삼매 경)
825.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바램을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마음을 하나로 통일.心一境性]을 얻으면, 이것을 바램에 바탕을 둔 삼매라 한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것을 노력의 의도적 행위[행]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바램과 이러한 바램에 의한 삼매와 이러한 노력의 의도적 행위라고 해서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신통의 요소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정진에 의한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정진에 의한 삼매라 한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것을 노력의 의도적 행위[행]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이러한 정진과 이러한 정진에 의한 삼매와 이러한 노력의 의도적 행위라고 해서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신통의 요소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마음의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마음의 삼매라 한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것을 노력의 의도적 행위[행]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이러한 마음과 마음의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라고 해서 마음의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신통의 요소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관찰에 의한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관찰에 의한 삼매라 한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는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을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삿되고 선하지 않는 법을 끊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 법[善法]을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그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바로 세우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며, 증장하고, 풍성케 하며, 닦고,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바램을 일으키고 노력하며 정진을 행한다. 마음을 잡아 힘쓴다. 이것을 노력의 의도적 행위[행]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이러한 관찰과 이러한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라고 해서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신통의 요소라 한다."

 

moggallānasuttaṃ (SN 51.14-목갈라나 경)

82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뚜(녹자모)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들뜨고 오만하고 경솔하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삼매를 닦지 않고 산란한 마음으로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못한 채 미라가마뚜 강당의 아래층에 머물렀다.   

 

세존께서는 목갈라나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목갈라나여, 이 동료 수행자들은 들뜨고 오만하고 경솔하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이 없고 삼매를 닦지 않고 산란한 마음으로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못한 채 미가라마뚜 강당의 아래층에 머물고 있다. 가라,
목갈라나여, 그대가 비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도록 하여라.”라고.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목갈라나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미가라마뚜 강당을 발가락으로 흔들리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진동하게 하는 그러한 신통을 행했다. 그러자 놀라고 몸에 털이 곤두선 그 비구들은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이 미가라마뚜 강당에는 바람도 없고 기초가 잘 되어 있고 튼튼하게 지었고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흔들리고 움직이고 진동을 합니다.”라면서 한 곁에 섰다.  

 

그때 세존께서 그 비구들에게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왜 놀라고 몸에 털이 곤두선 채 한 곁에 서 있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이 미가라마따 강당에는 바람도 없고 기초가 잘 되어 있고 튼튼하게 지었고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흔들리고 움직이고 진동을 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절박감을 생기게 하려고 목갈라나 비구가 발가락으로 미가라마따 강당을 흔들리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진동하게 하였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목갈라나 비구는 어떤 법들을 닦고 많이 행하여서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력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은 세존을 뿌리로 하는 것이고 세존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이며 세존을 의지처로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잘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잘 호지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목갈라나 비구는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해서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목갈라나 비구는  '이렇게 나의 바램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았다. ··· 정진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 '이렇게 나의 바램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한 목갈라나 비구에게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 또한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한 목갈라나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행한다. ···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또한,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한 목갈라나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uṇṇābhabrāhmaṇasuttaṃ (SN 51.15-운나바 바라문 경)
82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운나바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운나바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무슨 목적 때문에 사문 고따마 아래서 범행의 삶을 삽니까?”

“바라문이여, 바램의 버림을 목적으로 세존 아래서 범행의 삶을 삽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 바램의 버림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그 바램의 버림을 위한 길이 있고 닦음이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 바램의 버림을 위한 길이 무엇이고 닦음은 무엇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습니다.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습니다.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습니다.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램의 버림을 위한 길이고 이것이 닦음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런 경우에서는 '끝이 있다.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바램으로 바램을 버릴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여기서 그것에 대해 되묻겠습니다. 그대에게 괜챦다면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전에 ‘나는 숲에 갈 것이다.’라는 바램이 있었습니까? 숲에 도착한 그대에게 그것에서 생긴 바램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전에 ‘나는 숲에 갈 것이다.’라는 정진이 있었습니까? 숲에 도착한 그대에게 그것에서 생긴 정진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바라분이여, 그대에게 이전에 ‘나는 숲에 갈 것이다.’라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숲에 도착한 그대에게 그것에서 생긴 마음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이전에 ‘나는 숲에 갈 것이다.’라는 관찰이 있었습니까? 숲에 도착한 그대에게 그것에서 생긴 관찰은 가라앉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이처럼, 바라문이여, 번뇌를 부수었고, 청정한 삶을 성취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고, 윤회의 결박을 끊어 버렸고, 올바른 궁극의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에게 이전에는 아라한의 성취를 위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아라한을 성취하였을 때 그것에서 생긴 바램은 가라앉습니다. 이전에는 아라한의 성취를 위한 정진이 있었습니다. 아라한을 성취하였을 때 그것에서 생긴 정진은 가라앉습니다. 이전에는 아라한의 성취를 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라한을 성취하였을 때 그것에서 생긴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이전에는 아라한의 성취를 우한 관찰이 있었습니다. 아라한을 성취하였을 때 그것에서 생긴 관찰은 가라앉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바라문이여, 이렇게 이런 경우에 끝이 있습니까? 아니면 끝이 없습니까?”
“아난다 존자여, 그러하다면 그것은 끝이 있습니다.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아난다 존자여, 이런 경우에는 끝이 있습니다.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경탄할만 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불가사의 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아난다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고따마 존자에게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저를 청신사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 날까지 귀의합니다.”

 

pathamasamaṇabrāhmaṇasuttam (SN 51.16-사문·바라문 경1)
828. "비구들이여, 과거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었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했던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게 될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현재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한 이들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크나큰 신통력(신통의 지혜)과 크나큰 위력이 있었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익혔던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었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했던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게 될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현재에 큰 신통력과 큰 위력이 있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한 이들이다. "

 

dutiyasamaṇabrāhmaṇasuttam (SN 51.17-사문·바라문 경2)
829. “비구들이여, 과거에 다양한 신통을 체험하여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되었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되었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았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았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았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았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 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쳤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했던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미래에 다양한 신통을 체험할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이 할 것이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이 할 것이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이 할 것이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이 할 것이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을 것이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익힐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현재에 다양한 신통을 체험하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힌 이들이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익혀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 미래에 ··· 현재에 다양한 신통을 체험하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익힌 이들이다.”   

 

bhikkhusuttam (SN 51.18-비구 경)
830. “비구들이여,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하기(익히기) 때문에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하기 때문에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desanāsuttam (SN 51.19-가르침 경)
831.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신통과 신통의 요소와 신통의 요소의 닦음과 신통의 요소의 닦음으로 인도하는 길에 대해 설할 것이다. 그것을 잘 들어라. 잘 듣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신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양한 신통을 체험한다. 그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신통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신통의 요소인가?”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가 있다.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가 있다.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가 있다.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가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신통의 요소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신통의 요소의 닦음인가?
여기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정진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마음의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는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신통의 요소의 닦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신통의 요소의 닦음으로 인도하는 길인가?

그것은 바로 이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신통의 요소의 닦음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불린다.”

 

vibhaṅgasuttaṃ (SN 51.20-분석 경)
841. “비구들이여,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행할 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는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처럼 나의 바램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이라며 앞과 뒤의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라며 머물고,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라며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정진에 의한 삼매와 ··· 마음의 삼매와 ··· 관찰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처럼 나의 관찰은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이라며 앞과 뒤의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라며 머물고,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라며 머문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느슨한 바램인가? 비구들이여, 게으름과 함께하고 게으름과 결합된 바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느슨한 바램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나치게 긴장한 바램인가? 
비구들이여, 들뜸(산만함)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 바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긴장된 바램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으로 수축된 바램인가?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바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안으로 수축된 바램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밖으로 흩어진 바램인가? 
비구들이여, 밖으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에 대해 계속해서 흩어지고 계속해서 확산한 바램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밖으로 흩어진 바램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이라며 앞과 뒤의 인식을 가진 자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지혜로써 잘 붙잡고(파악하고), 잘 주의를 기울이고, 잘 이해하고, 잘 꿰뚫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이라며 앞과 뒤의 인식을 가진 자로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무는 것이다.

 

*“‘앞에처럼 뒤에도, 앞에처럼 뒤에도’라고 했다. 여기서 ①명상주제를 통해서와 ②가르침을 통해서 앞이 되고 뒤가 됨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①명상주제를 통해서 : 명상주제를 천착하는 것은 앞이라 하고 아라한됨은 후라고 한다. 비구는 근본 명상주제를 천착하여 마음이 지나치게 느슨함 등의 네 가지 경우로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여 아라함됨을 증득한다. 이것을 두고 그는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라고 하면서 머문다고 한다. ②가르침을 통해서 : 머리털은 앞이라 하고 뇌는 뒤라 한다.(몸의 32가지 부분의 맨 앞과 뒤임) 비구는 머리털에 대해서 천착한 뒤에 색깔과 모양 등을 통해서 머리털 등을 파악하면서 네 가지 경우에 빠지지 않고 뇌의 수행까지 도달한다. 이것을 두고도 그는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로 머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석서의 설명은 너무 경직된 해석처럼 보인다. 이 말은 단순히 수행의 모든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둣하다. 그리고 이것은 「앙굿따라 니까야」 「졸고 있음 경」에 “목갈라나여,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머물러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대는 감각기능들을 안으로 돌이켜 마음이 밖으로 향하지 않도록 한 채 앞과 뒤를 똑바로 인식하면서 경행에 마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대가 그렇게 머물 때 혼침이 제거될 수도 있다.”라고 나타나듯이 공간적인 앞과 뒤를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라고 하면서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에 대해 피부의 경계를 채우는 여러 가지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들을 관찰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늑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라고 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머무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낮에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을 통해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았던 그대로 그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밤에도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으로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그는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밤에 바램에 의한 삼매와 삼매와 노력으로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았던 그대로 그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낮에도 바램에 의한 삼매와 노력으로 형성되는 신통의 요소를 닦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라고 하면서 머문다.

​비
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광명의 인식[光明想]을 잘 붙잡고, 낮의 인식을 확고하게 한다(잘 확립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광명의 인식[光明想]을 잘 파악하고‘라고 했다. 비구는 마당에 앉아서 때로는 눈을 뜨거나 때로는 눈을 감고 광명의 인식을 마음에 새긴다. 눈을 떴거나 감았거나 간에 직접 쳐다보는 것처럼 하나인 듯이 확립되면 그때 광명의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 ’낮이라는 인식‘이라는 것도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밤에도 생겨나면 잘 파악했다고 한다.” “’광명의 인식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낮이나 밤에 태양이나 달이나 등불이나 보석 등의 광명을 광명이라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낮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낮처럼 밤에도’라는 것은 낮에 광명을 보았던 것과 같이 밤에도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밤처럼 낮에도’라는 것은 마치 밤에 광명을 보았던 것과 같이 낮에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인가? 
비구들이여, 게으름과 함께하고 게으름과 결합된 정진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긴장한 정진인가? 
비구들이여, 들뜸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 정진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긴장한 정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으로 수축된 정진인가?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정진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안으로 수축된 정진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밖으로 흩어진 정진인가? 비구들이여, 밖으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에 대해 계속해서 흩어지고 계속해서 확산한 정진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밖으로 흩어진 정진이라고 불린다. ···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나는 마음을 닦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광명의 인식을 잘 붙잡고, 낮의 인식을 잘 확립한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느슨한 마음인가? 비구들이여, 게으름과 함께하고 게으름과 결합된 마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느슨한 마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긴장한 마음인가? 
비구들이여, 들뜸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연결된) 마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긴장한 마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으로 수축된 마음인가?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마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안으로 수축된 마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밖으로 흩어진 마음인가?
비구들이여, 밖으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에 대해 계속해서 흩어지고 계속해서 확산한 마음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밖으로 흩어진 마음이라고 불린다. ···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느슨한 관찰인가? 비구들이여, 게으름과 함께하고 게으름과 결합된 관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느슨한 관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지나치게 긴장한 관찰인가? 
비구들이여, 들뜸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 관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지나치게 긴장한 관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안으로 수축된 관찰인가?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관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안으로 수축된 관찰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밖으로 흩어진 관찰인가? 
비구들이여, 밖으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묶인 것에 대해 계속해서 흩어지고 계속해서 확산한 관찰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밖으로 흩어진 관찰이라고 불린다. ···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열려 있고 덮여있지 않은 마음으로 빛을 가진 마음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한 네 가지 신통의 요소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한다. 그는 하나가 된 후 여럿이 된다. 여럿이 된 후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 듬는다. 브라흐마(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써 위력을 미친다. ··· 네 가지 신통의 요소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제2장 미가라마뚜 강당을 흔듦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