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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상윳따 - 들숨날숨 상윳따(Ānāpāna-saṁyutta) - 제1장 하나의 법 품(SN54:1-SN54:10. Ekadhamma-vagga)

실론섬 2014. 9. 2. 17:24

                       

제54상윳따(S54) 들숨날숨(호흡.입출식념) 상윳따

Ānāpāna-saṁyutta

제1장 하나의 법 품

Ekadhamma-vagga

 

ekadhammasuttaṃ (SN 54.1-하나의 법 경)

977. 사왓티에서 설해짐. 거기서 ···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하나의 법을 닦고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어떤 하나의 법인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입출식념.入出息念)이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②짧게 들이 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 차리고, 짧게 내 쉴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③'온 몸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온 몸을 느끼면서는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④‘육체적 현상을[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⑤'희열(기쁨)을 느끼면서 나는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희열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⑥'행복(즐거움)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행복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리고 익힌다. 

⑦'정신적 현상(마음의 작용.心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⑧'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⑨‘마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⑩‘마음을 행복하게(즐겁게)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행복하게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⑪'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⑫'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⑭'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탐냄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⑮'소멸(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들이 쉬겠다'라고 익히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⑯'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라고.


*PsA 는 16가지 항목과 들숨과 날숨에 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입출식염)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6가지항목이란 다음과 같다.
1.①긴 숨 ②짧은 숨 ③온몸을 느끼게 하는 숨 ④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게 하는 숨등이 있는 바, 이 들 네 가지는 몸을 관찰하는 법에 속한다.
2.⑤기쁨을 느끼게 하는 숨 ⑥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숨⑦정신적 현상을 느끼게 하는 숨 ⑧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는 숨등이 있는 바, 이들 네가지는 느낌을 관찰하는 법에 속한다.
3.⑨마음을 느끼게 하는 숨 ⑩마음을 즐겁게 하는 숨 ⑪마음을 집중케 하는 숨 ⑫마음을 해탈케 하는 숨등이 있는 바, 이들 네 가지는 마음에 대해 마음을 관찰하는 법에 속한다.
4.⑬무상을 관찰하는 숨 ⑭탐냄을 관찰하는 숨 ⑮소멸을 관찰하는 숨 ⑯버림을 관찰하는 숨등이 있는 바, 이들 네 가지는 법을 관찰하는 법에 속한다.
이들 16항목중에서 처음의 넷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속한다. 두 번째 넷은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속한다. 세 번째 넷은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속한다. 마지막 넷은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에 속한다. 또한 16항목의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 그 자체로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의 수행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나무아래 : 비구를 위한 규정된 좌구.침대.의자.깔개.돗자리.짐승가죽.풀로 된 깔개. 나뭇잎으로 된 깔개. 짚으로 된 깔개등이 있는 바로 그곳으로, 거기에서 비구는 경행을 하거나, 서 있거나, 앉거나, 눕는다.
②비어 있는 곳 : 재가자나 출가자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산만하지 않은 곳이다. 사원. 반칸짜리 집. 큰 저택. 큰 건물. 동굴이다.
③면전(parimukham)에 마음지킴을 확립한다 : 빠리(pari)란 받아들임(섭수)의 의미이며, 무캄(mukham)이란 나아감의 의미이다. 마음지킴이란 확립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고.  

 

bojjhaṅgasuttaṃ (SN 54.2-깨달음의 구성 요소 경)
978.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정진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고요함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삼매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과 함께 하고, 분리됨에 의지하고, 탐냄의 떠남에 의지하고, 소멸에 의지하고, 내놓음으로 

기우는 평정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suddhikasuttam (SN 54.3-간단한 설명 경)
979.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pathamaphalasuttam (SN 54.4-결실 경1)
980.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익히면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하나의 결실이 예상된다. 지금∙여기(금생)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집착의 자취가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가 예상된다.”

 

dutiyaphalasuttam (SN 54.5-결실 경2)
981.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일곱 가지 결실과 일곱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
결실과 이익인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한다. 만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면, 죽을 때에 구경의 지혜를 성취한다. 만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도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노력 없이 쉽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노력하여 어렵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된다.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가 된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익힐 때 이러한 일곱 가지 결실과 일곱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ariṭṭhasuttam (SN 54.6-아릿타 경)
982. 사왓티에서 설해짐.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릿타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아릿타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의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를 버렸고, 미래의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욕망을버렸고, 안과 밖으로 법들에 저항하는 인식을 몰아 내었습니다. 그런 저는 마음 챙기면서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내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아릿타여, 그것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릿타여, 그러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상세하게 완성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릿타여 그러면 어떻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상세하게 완성하는가?
아릿타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아릿타여, 이렇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상세하게 완성한다."

 

mahākappinasuttaṃ (SN 54.7-마하깝삐나 경)
983.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마하깝삐나 존자가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는 마하깝삐나 존자가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비구에게서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를 보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저 존자가 승가 가운데 앉아 있거나 혼자 한적한 곳에 앉아 있을 때에도 저 존자의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를 보지 못합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힐 때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고, 마음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그런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히는 그 비구는 삼매를 바라는 대로 얻고, 원하는 대로 얻고, 원하는 만큼 얻는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힐 때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고, 마음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는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익힐 때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고, 마음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고, 마음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몸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고, 마음의 흔들림이나 동요가 없다
.”라고.

 

padīpopamasuttaṃ (SN 54.8-등불 비유 경)
984.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닦고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히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도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러한 닦음과 익힘으로 많이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러한 닦음과 익힘으로 많이 머물 때 몸도 피로하지 않았고. 눈도 피로하지 않았다. 집착하지 않음으로 인해 번뇌들로부터 나의 마음은 해탈하였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나에게 몸도 피로하지 않고 눈도 피로하지 않기를! 집착하지 않음으로 인해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잘 사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나에게 세간의 삶과 연결된 기억과 사유들이 버려지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혐오하지 않음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상.想)으로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혐오함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으로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혐오함과 혐오하지 않음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으로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혐오함과 혐오하지 않음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상(想)으로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혐오하지 않음과 혐오함의 둘 모두를 버린 뒤에 평정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가지고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해로운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으로부터 생겨난 기쁨[희열.喜]과 즐거움[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제2선(二禪)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성자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일체의 물질적 현상에 대한 지각을 넘어서고, 장애에 대한 지각을 소멸하고, 갖가지 지각에 마음을 내지 않아 '끝이 없는 허공(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일체의 공간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공무변처를 넘어선 ‘끝이 없는 의식(무한한 의식)’이라고 하는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일체의 의식에 걸림이 없는 경지인 식무변처를 넘어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일체의 아무것도 없는 경지인 무소유처를 넘어선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일체의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를 넘어선 '지각과 느낌의 소멸'의 경지인 상수멸(想受滅)에 들어 머물기를!’이라고 원한다면, 오직 이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에 마음을 잘 기울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만약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경험하면) 그것은 무상하다고 철저히 알고,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알고,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안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그것은 무상하다고 철저히 알고,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알고,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안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것은 무상하다고 철저히 알고,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알고,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고 철저히 안다.

 

만약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묶이지 않는 자(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 묶이지 않는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묶이지 않는 자로서 그것을 느낀다.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생명이 끝나면, 즐길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은 오직 여기에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기름을 연(緣)하고 심지를 연하여 기름 등불이 탈 것이다. 기름과 심지가 모두 탄 그것에게 연료가 없으면 꺼질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끼는 비구는 ‘나는 몸이 무너지는 느낌을 느낀다(경험한다).’라고 철저히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끼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느낀다.’라고 철저히 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즐길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모든 느낌들은 오직 여기에서 싸늘하게 식고 말 것이다.’라고 철저히 안다.”

 

vesālīsuttaṃ (SN 54.9-웨살리 경)
98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쪽지붕 강당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정(不淨)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부정을 칭송하고, 부정을 닦는 것을 칭찬하셨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반 달 동안 홀로 머물고자 한다. 하루 한 끼 탁발음식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한 뒤 하루 한 끼 탁발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세존께 가지 않았다.

 

그때 그 비구들은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정(不淨)에 관한 말씀을 하셨고, 부정함을 칭송하셨고, 부정을 닦는 것을 칭찬하셨다.’라고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을 닦고 익힘에 몰두하면서 머물렀다. 그들은 이 몸에 대해서 전율을 느끼고 혐오스러워하고 싫어하면서 칼로 자살을 하였다. 하루에 열 명의 비구가 칼로 자살을 하고 ··· 스무 명의 ··· 서른 명이 칼로  자살을 하기도 하였다.

 

그 반 달이 지난 뒤 홀로 머묾로부터 일어나신 세존께서는 아난자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왜 비구 승가가 줄어들었는가?”라고.
“참으로 세존이시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不淨)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부정을 칭송하시고, 부정을 닦고 익힘을 칭찬하셨다.'라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부정을 닦고 익힘에 몰두하면서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이 몸에 대해서 전율을 느끼고 혐오스러워하고 싫어하면서 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하루에 열 명의 비구가 칼로 자살을 하고 ··· 스무 명의 ··· 서른 명이 칼로  자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가 구경의 지혜를 위해 지속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는 모든 비구들을 집회소로 모이게 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는 모든 비구들을 집회소로 모이게 하였다.그런 뒤 세존께 다가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모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익힌 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는 평화롭고 수승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머묾이어서 거듭 일어나는 악한 불선법들을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여름의 마지막 달에 뜨거운 먼지 덩이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것을 때아닌 먹구름이 몰려들어 큰비가 내려서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익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는 평화롭고 수승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머묾이어서 거듭 일어난 악한 불선법들을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는 평화롭고 수승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머묾이어서  거듭 일어나는 악한 불선법들이 그 자리에서 사지게 하고 가라앉게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 ⑯ '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는 평화롭고 수승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머묾이어서 거듭 일어나는 악한 불선법들을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고 가라앉게 한다.”

 

kimilasuttaṃ (SN 54.10-끼밀라 경)
98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끼밀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끼밀라
존자에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끼밀라 존자는 침묵했다. 두 번째도 세존께서는 ··· 세 번째도 세존께서는 끼밀라 존자에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세 번째도 끼밀라 존자는 침묵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말씀해 주시면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호지할 것입니다.”라고. 

 

“그렇다면 아난다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 여기아난다여, 비구는 숲 속에 머물거나 나무 아래에 머물거나 빈 곳에 머물면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 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②짧게 들이 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 차리고, 짧게 내 쉴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③'온 몸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온 몸을 느끼면서는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④‘육체적 현상을[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고' 익힌다.    

 

⑤희열(기쁨)을 느끼면서 나는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희열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⑥'행복(즐거움)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행복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리고 익힌다. ⑦'정신적 현상(마음의 작용.心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⑧'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⑨‘마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⑩‘마음을 행복하게(즐겁게)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행복하게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⑪'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⑫'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⑭'탐냄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⑮'소멸(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들이 쉬겠다'라고 익히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⑯'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힌다.

 

아난다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익힐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아난다여, 비구가 ①길게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라고 철저히 알고, 길게 내 쉴때는 '나는 길게 내쉰다.'라고 철저히 알고, ②짧게 들이 쉴 때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라고 철저히 알고, 짧게 내 쉴때는 '나는 짧게 내쉰다.'라고 철저히 알고, ③'온 몸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고 익히고, '온 몸을 느끼면서는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④‘육체적 현상을[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육체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고'라고 익힐 때, 아난다여,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이어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들숨날숨을 어떤 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때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아난다여, 비구가 ⑤'희열(기쁨)을 느끼면서 나는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희열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⑥'행복(즐거움)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행복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리고 익히고, ⑦'정신적 현상(마음의 작용.心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⑧'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정신적 현상을 가라앉히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힐 때, 아난다여,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들숨날숨에 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어떤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때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아난다여, 비구가 ⑨‘마음을 느끼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느끼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⑩‘마음을 행복하게(즐겁게)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행복하게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⑪'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⑫'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힐 때, 아난다여,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자에게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삼매를 닦음을 말하지 않는다(삼매를 닦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때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아난다여, 비구가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⑭'탐냄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탐냄을 떠나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⑮'소멸(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들이 쉬겠다'라고 익히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히고 ⑯'놓아버림(버림)을 관찰하며 들이쉬겠다'라고 익히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겠다'라고 익힐 때, 아난다여, 비구는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그는 탐욕과 근심의 버림을 지혜로써 보면서 잘 제어한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그때 비구는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지니고서,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제거한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사거리에 큰 흙더미가 있다. 만약 동쪽으로부터 수레나 마차가 오면 그 흙더미를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만약 서쪽으로부터 ··· 만약 남쪽으로부터 ··· 만약 북쪽으로부터 수레나 마차가 오면 그 흙더미를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이처럼, 아난다여, 몸에서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비구는 악한 불선법들을 눌러서 평평하게 하고,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무는 비구는 악한 불선법들을 눌러서 평평하게 한다.”

 

*여기서 사거리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뜻하고 거기에 있는 흙더미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에 있는 오염원들이다. 사방에서 오는 수레나 마차는 네 가지 대상들에 대해서 일어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 수레나 마차로 흙더미를 누르는 것은 몸을 관찰하는 것 등을 통해서 악한 불선법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SA.iii.273)
 

 

제1장 하나의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