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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상윳따 - 예류 상윳따(Sotāpatti-saṁyutta) - 제1장 웰루드와라 품(SN55:1-SN55:10. Veḷudvāra-vagga)

실론섬 2014. 9. 3. 13:54

                          

제55상윳따(S55) 예류 상윳따  

Sotāpatti-saṁyutta

제1장 웰루드와라 품

Veḷudvāra-vagga (SN 55.1-10)

 

cakkavattirājasuttam (SN 55.1-전륜성왕 경)
997. 사왓티에서 설해짐.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전륜성왕은 네 대륙에 대한 통치권을 가져 지배력을 행사한 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서 삼십삼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거기 난다나 정원에서 압사라 무리들에 둘러싸여 천상의 다섯 가지의 감각적 쾌락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긴다. 그러나 그는 네 가지 법들을 구족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축생의 모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아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고통스러운 곳[苦界], 비참한 곳[惡處], 험난한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탁발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낡은 옷을 입고 다니지만 네 가지 법을 구족하였다. 그래서는 그는 지옥에서 벗어나며, 축생의 모태에서 벗어나며, 아귀계에서 벗어나며,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벗어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 여덟 단계(八輩)에 계신 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구속하지 않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러한 네 가지 법들을 구족한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네 대륙을 얻은 자와 이러한 네 가지 법을 얻은 자 가운데서 네 대륙을 얻은 자는 이러한 네 가지 법을 얻은 자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brahmacariyogadhasuttam (SN 55.2-범행에 깊이 들어 감 경)
998.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넷인가?

 

*예류자는 삼악도(혹은 아수라를 포함한 4악도)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진 자(avinipata-dhamma)'라 하고, 일곱 번만을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해탈이] 확실하다(niyata)'고 하며, 더 높은 세 가지 도(uttarimagga-ttaya, 즉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라 불리는 바른 깨달음을 향하여 가는 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sambodhi-parayana)'라고 한다.(SA.ii.73,DA.i.313 등)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이 좋아하,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닌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설하셨다.


'믿음과 계와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법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진 자들은   

청정범행에 깊이 들어간 행복에  

때가 되면 도달하게 된다.'

 

*'범행에 깊이 들어간 행복(brahmaariy-ogadha sukha)'이란 높은 세 가지 도와 관계된(upari-magga-ttaya-sampayutta,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의 세 가지와 관계된) 행복을 말한다.(SA.iii.27)  

 

dīghāvūpāsakasuttaṃ (SN 55.3-디가부 청신자 경)  

999. 한 때에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디가부 청신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디가부 청신사는 아버지 조띠까 장자에게 말했다.
“오십시오, 장자시여, 아버지는 세존께 가주십시오. 가셔서 저의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여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디가부 청신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드려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가지시어 디가부 청신사의 집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알겠다, 아들아.”라고 조띠까 장자는 디가부 청신사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조띠까 장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디가부 청신사가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세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가지시어 디가부 청신사의 집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시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시고 디가부 청신사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뒤 세존께서는 디가유 청신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디가부여, 어떻게 견딜만한가? 그대는 회복될 것 같은가?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는가? 더 심해지지 않고 낫고 있다고 알겠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회복될 것 같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낫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을 알아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디가부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四雙], 여덟 단계[八輩]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닐 것이다.'라고. 디가부여, 그대는 이렇게 닦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세존으로부터 설해진 예류자의 요소인 이 네 가지 법들이 저에게 있는 동안 저는 그 법들 위에서 일치된 삶을 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세존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저는 법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자 누구나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저는 승가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들어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저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가부여, 그대는 이러한 네 가지 예류자의 요소 위에 확고히 선 뒤에 여섯 가지 명지에 연결된 법들을 더 닦아야 한다. 디가부여, 여기 그대는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에 대해 무상(無常)을 관찰하는 자, 무상한 것들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자, 괴로움인 것들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자, 버림의 인식을 가진 자, 탐욕이 사라짐의 인식을 가진 자, 소멸의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디가부여, 그대는 참으로 이렇게 닦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명지에 연결된 이 여섯 가지 법들이 저에게 있는 동안 저는 그 법들 위에서 일치된 삶을 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에 대해 무상(無常)을 이어 보는이라는 관찰하는 자, 무상한 것들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자, 괴로움인 것들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가진 자, 버림의 인식, 탐욕이 사라짐의 인식을 가진 자, 소멸의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저의 부친인 조띠카 장자가 크게 상심하지 않기를' 이라고."
“아들아, 디가부야,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아들아, 디가부야, 세존께서 너에게 말씀해 주신대로 잘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디가부 청신사에게 이런 가르침을 설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셨다. 그리고 디가부 청신사는 세존께서 돌아간 뒤 오래지 않아서 임종을 하였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후 한 쪽에 앉았다. 한 쪽에 앉은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간략한 가르침을 받은 디가부라는 그 청신사가 임종하였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디가부 청신사는 현자였다. 그는 법답게 길을 닦고 익혔다. 그는 열반에 이르는 법을 이유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디가부 청신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불환자.不還者]”

 

pathamasāriputtasuttam (SN 55.4-사리뿟따 경1)  
100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는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해거름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 한 쪽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법을 구족한 것을 원인으로 해서 세존께서는 ‘이 사람은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도반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것을 원인으로 해서 세존께서는 ‘이 사람은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도반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구족한 것을 원인으로 해서 세존께서는 ‘이 사람은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utiyasāriputtasuttam (SN 55.5-사리뿟따 경2)  
1001. “사리뿟따여,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가 설해졌다.
사리뿟따여, 어떤 것이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인가?”

“세존이시여, 참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입니다. 정법을 배우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입니다. 지혜롭게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입니다.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입니다.”

“장하구나, 사리뿟따여. 장하구나, 사리뿟따여, 참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이다. 정법을 배우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이다. 지혜롭게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이다.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것은 예류도를 얻기 위한 구성요소이다.”


“사리뿟따여, ‘흐름, 흐름’이라고들 한다. 
사리뿟따여, 어떤 것이 흐름인가?”

“세존이시여,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팔정도]가 바로 흐름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가 바로 흐름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바른 삼매이다.

사리뿟따여, ‘흐름에 든 자[預流者], 흐름에 든 자’라고들 한다.
사리뿟따여, 어떤 것이 흐름에 든 자인가?”

“세존이시여, 이러한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를 갖춘 자를 일러 흐름에 든 자라고 하니 이러한 이름을 가지고 이러한 족성을 가진 그런 존자를 뜻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이러한 여덟 가지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팔정도를 갖춘 자를 일러 흐름에 든 자라고 하니 이러한 이름을 가지고 이러한 족성를 가진 그런 존자를 뜻한다.”

 

thapatisuttam (SN 55.6-시종 경)
1002.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 당시 시종인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어떤 일 때문에 사두까에 머물고 있었다.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본경에 나타나는 궁중관리인(혹은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Isidatta-Purana thapatayo)는 「맛지마 니까야」 「법탑 경」(M89)에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궁중관리인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왕은 세존께 그들의 세존에 대한 지극한 신심을 칭찬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미가살라 경」(A6.44)과 「미가살라 경」(A10.75)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은 형제였으며 이 두 사람은 일래자가 되어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났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미가살라 경」의 제목으로 쓰인 미가살라(Migasala)는 뿌라나의 딸이었다.  

 

그러자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여보게, 만일 세존∙아라한∙정득각께서 이리로 오시면 우리에게 알리시오.”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을 길에 세워두었다. 이삼일이 지나서 그 사람은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종들이시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오십니다. 이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세존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길을 벗어나 어떤 나무 아래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도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시종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사왓티를 떠나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고 정신적 고통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세존께서 사왓티를 떠나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고 정신적 고통이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저희들은 세존께서 꼬살라를 떠나 말라에서 ··· 말라를 떠나 왓지에서 ··· 왓지를 떠나 까시에서 ··· 까시를 떠나 마가다에서 유행을 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고 정신적 고통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까시를 떠나 마가다에서 유행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고 정신적 고통이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마가다를 떠나 까시에서 유행을 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가까이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정신적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세존께서 마가다를 떠나 까시에서 유행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 우리로부터 가까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정신적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저희들은 세존께서 까시를 떠나 왓지에서 ···
왓지를 떠나 말라에서 ··· 말라를 떠나 꼬살라에서 ··· 꼬살라를 떠나 사왓티에서 ···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카 원림에 머무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가까이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정신적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세존께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희들은 ‘세존께서는 우리로부터 가까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하고 정신적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시종들이여, 그러므로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시종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불방일하는 수 밖에 없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는 이러한 번잡하고 염오의 길보다 더한 다른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 있고,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 큰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 있습니다.”
“시종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그대들에게는 이러한 번잡하고 염오의 길보다 더한 다른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 있고,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 큰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여기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공원으로 행차를 하고자 하면 저희들은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의 코끼리들을 준비하여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사랑하는 왕비들을 어떤 여인은 앞에 어떤 여인은 뒤에 오르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여인들에게서는 이러한 향내가 납니다. 그것은 마치 살짝 열린 향 상자와도 같습니다. 향으로 치장을 한 왕의 여인들은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그 여인들의 몸에 닿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목화나 케이폭의 씨를 싸고 있는 솜털에 닿는 것과 같습니다. 교양 있는 왕의 여인들은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저희는 코끼리를 보호해야 하고 그 여인들을 보호해야 하고 저의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여인들에 대해서 삿된 마음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들에게는 이러한 번잡하고 염오의 길보다 더한 다른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고,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 큰 번잡하고 염오의 길입니다."
“시종들이여, 그러므로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염오의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시종들이여, 그대들은 불방일하는 수 밖에 없다.

 

시종들이여,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넷인가? 
시종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법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승가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서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재가에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시종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시종들이여, 그대들은 세존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대들은 법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승가에 대한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그리고 그대들 집안에 있는 보시할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모두 혼자 두고 사용하지 않고 계행을 구족하고 선한 성품을 가진 분들과 함께 나누어 가진다. 시종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꼬살라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에 있어서 그대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저희들을 이렇게 인정해 주시니, 이것은 참으로 저희들에게 이득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참으로 저희들에게 큰 이득입니다.”

 

veḷudvāreyyasuttaṃ (SN 55.7-웰루드와라에 사는 자 경)
100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시다가 웰루드와라라는 꼬살라의 바라문들의 마을에 도착하셨다. 그 웰루드와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큰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꺄의 자손이고 사꺄의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웰루드와라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그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및 인간들에게,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추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그는 법을 설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이 일치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완전히 원만하고 청정한 거룩한 삶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란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그러자 웰루드와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함께 안부 인사를 나누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드리고서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씀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이렇게 한 곁에 앉은 웰루드와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들은 이러한 바램과 이러한 관심과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이 많은 집에서 살고, 까시에서 산출된 전단향을 사용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즐겨 사용하고, 금과 은을 향유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나기를.’이라고. 이러한 바램과 이러한 관심과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저희들에게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들이 자식들이 많은 집에서 살고, 까시에서 산출된 전단향을 사용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즐겨 사용하고, 금과 은을 향유하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善處],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법을 설해주십시오.”라고.

 

“장자들이여, 나는 그대들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웰루드와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어떤 것이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법문입니까? 여기, 장자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나는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한다. 어떤 사람이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헹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몸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주지 않은 것을 훔치려 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에게 주지 않은 것을 훔치려 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몸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아내에게 부정한 짓을 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남의 아내에게 부정한 짓을 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삿된 음행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삿된 음행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삿된 음행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몸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거짓으로 뜻을 말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남에게 거짓으로 뜻을 말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거짓말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거짓말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말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중상모략하여 친구들과 이간을 시키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남을 중상모략하여 친구들과 이간을 시키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이간하는 말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이간하는 말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이간하는 말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말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거친 말(욕설)을 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남에게 거친 말을 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거친 말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거친 말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거친 말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다. 이렇게 그는 말의 행위를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다시 장자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꾸며대는 말(잡담)을 하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남에게 꾸며대는 말을 하면 그것은 그에게도 사랑스럽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은 남에게도 역시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자기 스스로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나고, 남으로 하여금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나도록 하고, 꾸며대는 말을 멀리 떠나는 것을 칭송합니. 이렇게 그는 말의 행위을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합니다.

 

그는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닙니다.

그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닙니다.

그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닙니다.
그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고, (성취한 것을) 집착하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닙니다.

 

장자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러한 일곱 가지 바른 법과 이러한 네 가지 원해야 하는 조건들을 갖추면, 그가 원할 때 오직 자신에 의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지옥는 다했고, 축생의 모태는 다했고, 아귀계는 다했고,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다했다. 나는 흐름에 든 자여서(예류자.預流者)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시자 웰루드와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혹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듯이,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에게 길을 가르켜 주시듯, 또는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가져오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진리)을 밝혀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니다. 또한 법에 귀의 하옵니다. 또한 그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에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paṭhamagiñjakāvasathasuttaṃ (SN 55.8-벽돌집 경1)
100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살하라는 비구가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난다라는 비구니가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수닷따라는 청신사가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수자따라는 청신녀가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아난다여, 임종한 살하 비구는 모든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아라한.阿羅漢] 아난다여, 임종한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불환자.不還者] 아난다여, 임종한 수닷따 청신사는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일래자.一來者]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아난다여, 임종한 수자따 청신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예류자.預流者]이니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해탈이 확실하며), 깨달음이 결정되었다.

 

아난다여,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죽을 때마다 그대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이러한 뜻을 묻고자 한다면, 아난다여, 여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법의 거울[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을 설할 것이니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이다.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그 법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이다. 악취에 떨어지지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닌다.

 

아난다여, 이것이 법의 거울[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이다.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해탈이 확실하며),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dutiyagiñjakāvasathasuttaṃ (SN 55.9-벽돌집 경2)
1005.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소까라는 비구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아소까라는 비구니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아소까라는 청신사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아소까라는 청신녀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아난다여, 임종한 아소까 비구는 모든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체득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

 

아난다여, 이것이 법의 거울[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이다.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tatiyagiñjakāvasathasuttaṃ (SN 55.10-벽돌집 경3)
1006.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깍까따라는 청신사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세존이시여, 깔리보라는 청신사가 냐띠까에서 ··· 세존이시여, 니까따라는 청신사가 ··· 세존이시여, 까띳사하라는 청신사가 ··· 세존이시여, 뚯타라는 청신사가 ··· 세존이시여, 산뚯타라는 청신사가 ··· 세존이시여, 밧다라는 청신사가 ··· 세존이시여, 수밧다라는 청신사가 냐띠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갈 곳[行處]은 어디이고, 내세의 태어남은 어디입니까?"

 

"아난다여, 임종한 깍까따 청신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아난다여, 깔리보 청신사는 ··· 아난다여, 니까따 청신사는 ··· 아난다여, 까띳사하 청신사는 ··· 아난다여, 뚯타 청신사는 ··· 아난다여, 산뚯타 청신사는 ··· 아난다여, 밧다 청신사는 ··· 아난다여, 수밧다 청신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아난다여, 냐띠까에서 임종한 50명이 넘는 청신사들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정거천에] 화생했다.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아난다여, 냐띠까에서 임종한 90명이 넘는 청신사들은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졌기 때문에 한 번만 더 돌아올 자이니,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온 뒤에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아난다여, 냐띠까에서 임종한 500명이 넘는 청신사들은 세 가지 족쇄가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흐름에 든 자이니, [악취에] 떨어지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해탈이 확실하며), 깨달음이 결정되었다.

 

아난다여,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죽을 때마다 그대들이 여래에게 다가와서 이러한 뜻을 묻고자 한다면, 아난다여, 여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법의 거울[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을 설할 것이니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이다. 악취에 떨어지지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법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법문이기에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이다. 악취에 떨어지지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께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araham]이시며, 모든 법을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분(samma sambuddho)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vijjacaranasampanna)이시며, 열반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중생들의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lokavidu)이시며, 위 없으신 분(anuttaro)이시며, 어리석은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purisadhammasarathi)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satthadevamanusam)이시며, 깨달은 분(buddho)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세존)(bahgava)이시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법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지혜있는 사람이 각기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승가에 분명하고 완전한 믿음을 지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분들이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올려 마땅하고, 시중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합장드려 마땅하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복밭이시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칭찬하고, (성취한 것을)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를 지닌다.

아난다여, 이것이 법의 거울[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지옥은 없다. 축생의 모태도 없다. 아귀계도 없다.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을 극복하였다. 나는 흐름에 든 자이다. 악취에 떨어지지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제1장 웰루드와라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