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상윳따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를 다시 정리하며

실론섬 2014. 9. 23. 14:23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불자 입장에서는 빠알리어 경전이 한글로 번역된 것 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해외에 살다보니 한글판 니까야를 직접 접해볼 기회가 없었고 다만 단편적으로 인터넷등에서 자료를 접했을 뿐이다. 어느날 지인의 도움으로 한글판 경전을 사경한 자료를 받아서 블로그에 올렸다. 다시한번 각묵스님과 전재성 박사님의 크나큰 공덕에 합장 올린다. 그리고 자료를 보내주신 선우의 정성스러운 마음에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초기경전을 접하는 대부분의 불자들은 경전을 읽어가다 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문구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어떤 부분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이 되풀이 되어 지겨울(?)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반복구문을 과연 전부다 경전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영국 빠알리 성전협회에서는 싱할라 문자로 음사된 빠알리어 경전을 로마자와 특수문자를 이용하여 지금처럼 알파펫으로 된 빠알리어 경전으로 편집하고 번역시에 반복구문에 대해서 축약을 검토하였으나 스리랑카 불교계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글자 한줄 바꿀 수 없다는 반대로 인하여 전문을 그대로 옮겼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5부 니까야의 분량이 상당한 량에 이르는데 이것을 축약한다면 아마도 1/3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일반 재가자들 입장에서는 그 방대한 분량의 경전을 모두다 구입하거나 또는 손에 들고 다니거나 쉽게 펼쳐들 장소에 두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아스님처럼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어 경전'처럼 축약된 경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많은 불자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계속하여 종단차원에서 빠알리어 경전을 축약하고 간추려서 한권 정도로 만들어 손쉽게 접하고 언제든지 펼쳐보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구하는 쪽으로 힘을 쏟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왜 빠알리어 경전에는 반복구문이 끊임없이 반복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구전으로 전승하여 오다 보니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또한 외우기 싶게 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전의 분량을 의도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시 불교의 경쟁관계였던 브라만이나 자이나교등은 상당한 분량의 경전이 전승되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입장에서도 그들 못지 않게 많은 가르침이 있다고 대응하는 차원에서 경전의 분량을 반복하여 늘렸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상윳따 니까야를 전부다 올리고 난 후에 다시금 수정보완을 하고 있다. 가능하면 생략 부분을 줄이고 원문대로 올릴려고 하고 있으며 올바른 용어를 사용할려고 한다. 더불어 주해를 가능하면 많이 달아서 경전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