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싸나의 지혜
1. [인식의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무너짐을 따라가며 보는 데서의 혜(慧)로서 위빠싸나의 지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물질적 요소(色)를 의지처로 하여 마음이 발생한 후, 무너진다. 그러한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그 마음의 무너짐을 따라가며 본다.
'따라가며 본다'고 할 때 어떻게 따라가며 보는가?
항상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무상한 것으로 따라가며 본다. 즐거움이 아닌 까닭에 괴로움으로 따라가며 본다. 내(我)가 아닌 까닭에 무아로 따라가며 본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탐냄을 떠나 탐내지 않는다. 소멸하여 일으키지 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무상으로 따라가며 보아 항상함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괴로움으로 다라가며 보아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무아로 따라가며 보아 나라는 지각을 끊는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 함을 끊는다. 탐냄을 떠나 끊는다. 소멸하여 일어남을 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2. 감수작용(受)을 의지처로 하여 마음이 발생한 후, 무너진다. 그러한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그 마음의 무너짐을 따라가며 본다.
'따라가며 본다'고 할 때 어떻게 따라가며 보는가?
항상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무상한 것으로 따라가며 본다. 즐거움이 아닌 까닭에 괴로움으로 따라가며 본다. 내(我)가 아닌 까닭에 무아로 따라가며 본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탐냄을 떠나 탐내지 않는다. 소멸하여 일으키지 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무상으로 따라가며 보아 항상함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괴로움으로 다라가며 보아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무아로 따라가며 보아 나라는 지각을 끊는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 함을 끊는다. 탐냄을 떠나 끊는다. 소멸하여 일어남을 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지각작용(想)을 의지처로 하여 마음이 발생한 후, 무너진다. 그러한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그 마음의 무너짐을 따라가며 본다.
'따라가며 본다'고 할 때 어떻게 따라가며 보는가?
항상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무상한 것으로 따라가며 본다. 즐거움이 아닌 까닭에 괴로움으로 따라가며 본다. 내(我)가 아닌 까닭에 무아로 따라가며 본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탐냄을 떠나 탐내지 않는다. 소멸하여 일으키지 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무상으로 따라가며 보아 항상함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괴로움으로 다라가며 보아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무아로 따라가며 보아 나라는 지각을 끊는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 함을 끊는다. 탐냄을 떠나 끊는다. 소멸하여 일어남을 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형성작용(行)을 의지처로 하여 마음이 발생한 후, 무너진다. 그러한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그 마음의 무너짐을 따라가며 본다.
'따라가며 본다'고 할 때 어떻게 따라가며 보는가?
항상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무상한 것으로 따라가며 본다. 즐거움이 아닌 까닭에 괴로움으로 따라가며 본다. 내(我)가 아닌 까닭에 무아로 따라가며 본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탐냄을 떠나 탐내지 않는다. 소멸하여 일으키지 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무상으로 따라가며 보아 항상함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괴로움으로 다라가며 보아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무아로 따라가며 보아 나라는 지각을 끊는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 함을 끊는다. 탐냄을 떠나 끊는다. 소멸하여 일어남을 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식별작용(識)을 의지처로 하여 마음이 발생한 후, 무너진다.
그러한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그 마음의 무너짐을 따라가며 본다.
'따라가며 본다'고 할 때 어떻게 따라가며 보는가?
항상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무상한 것으로 따라가며 본다. 즐거움이 아닌 까닭에 괴로움으로 따라가며 본다. 내(我)가 아닌 까닭에 무아로 따라가며 본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탐냄을 떠나 탐내지 않는다. 소멸하여 일으키지 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무상으로 따라가며 보아 항상함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괴로움으로 다라가며 보아 즐거움에 대한 지각을 끊는다. 무아로 따라가며 보아 나라는 지각을 끊는다. 싫어하여 떠나 즐거워 함을 끊는다. 탐냄을 떠나 끊는다. 소멸하여 일어남을 끊는다. 버리어 취하지 않는다.
3. 대상(事)의 진행은 혜(慧)에 의해서이고
물러남은 마음기울임의 힘이며
돌이켜 관찰함은 위빠싸나라네.
인식의 의지처로부터의 유추에 의해
과거와 미래의 양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결정하니
소멸에 대한 확신을 통해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네.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하여 무너짐을 따라가며 보니
이는 곧 공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탁월한 혜로써 보는 것이라네.
세 가지 법을 따라가며 보는 것과
네 가지 위빠싸나와
세 가지의 것의 확립에 능한 자는
잡다한 견해에 동요하지 않네
그와 같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智)이며, 알아차린다는 의미에서 혜(慧)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인식의 의지처를 돌이켜 관찰한 후, 무너짐을 따라가며 보느느 데서의 혜로서 위빠싸나의 지혜가 있다]고.
주) 1) '대상의 진행(vatthusankamana)'를 사(事)로 번역한다. 여기에서 사(事)란 '물질적 대상'등을 위빠싸나의 대상으로 하여 수행을 할 때, 그러한 '물질적 대상'이 소멸하면 다른 대상이 마음에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라 한다. '대상(vatthu)'이라는 용어는 산스끄리뜨어의 'vvas(살다. 거주하다. 유지하다)'와 동일한 원형에서 유래한 것인데, 여기에는 'vastu'와 'vastu'의 의미가 있다. 'vastu'는 보통 자연적으로 사물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말로 '사물, 사상, 실체. 항목. 대상'드응로 번역되며, 'vastu'는 '기초, 소의, 부지, 토지'의 이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둘은 pali 어에서 혼용되고 있다고 한다.I.마하박가 1.제53장 1-8절에 나오는 '세간에 머무는 것은 열 가지 항목의 극단에 치우친 견해에 묶인 것이다(dasavatthukaya antaggahikayaditthiya samannagato loksannivaso)"고 할 때의 'vatthu'는 '항목'이라고 하는 의미에 가까운 표현으로 판단되고, I.마하박가 1.제2장 2-3절에 나오는 "...삼매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후호ㅚ하지 않음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환희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기쁨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na samadhisamvattanikan na avippatisaravatthukani na pamojjavatthukani na pitivatthukani...)"라는 구절에서의 'vatthu'는 '기초'. '소의'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라 여겨진다.
2) '세 가지를 따라가며 보는 법(tisu anupassanasu)'이란 '무상함을 따라가며 보는 법(aniccanupassana)',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dukkhanupassana)' 그리고 '무아를 따라가며 보는 법(anattanupassana)'를 말한다.
3) '네 가지 위싸싸나(catusu vipassanasu)'란 '싫어하여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nibbidanupassana)', 탐냄을 떠나 따라가며 보는 법(viraganupassana)', '괴로움을 따라가며 보는 법(dukkhanupassana)', '버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patinissagganupassana)'를 말한다.4) '세 가지 것의 확립(tayo upatthane)'란 '다해 없어짐(khaya)', '사라짐(vaya.소멸)', '공(sunna)'을 가르키며, 이들을 마음 깊숙히 확립하여 관찰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빠띠삼비다막가(Patisambhidamagg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하박가(mahabhagga) - 제9장 형성력의 평정에 관련한 지혜 (0) | 2014.09.09 |
---|---|
마하박가(mahabhagga) - 제8장 잘못됨에 관련한 지혜 (0) | 2014.09.09 |
마하박가(mahabhagga) - 제6장 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가며 보는 지혜 (0) | 2014.09.09 |
마하박가(mahabhagga) - 제5장. 분명하게 이해하는 지혜 (0) | 2014.09.09 |
마하박가(mahabhagga) - 제4장 법에 머무는 지혜 (0) | 201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