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근본불교) 이야기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실론섬 2015. 2. 5. 17:35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의리(義利), 문구(文句)가 구족(具足)된 법을 설하라."


붓다의 전도선언문에도 이 말과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나온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반야계통의 대승경전에서는 이와 같거나 유사한 내용들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한역에서는 이를 "초중후선(初中後善)"으로 번역하였다.


붓다의 설법은 그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그 끝도 좋다는 것이니 결국 시종일관(始終一貫)해 있어서 그 사이에 단 하나의 모순이 있다거나 앞뒤 말이 맞지 않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의리(義利), 문구(文句)가 구족(具足)된 법이라는 것은 뜻이 심오하고 표현에 과부족(過不足)이 없는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의리(義利)라는 것은 의리(義理)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이는 여래의 설법이 그러하니 듣는 중생들은 그 뜻과 표현을 빠뜨림 없이 잘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경계의 말씀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불교에 있어서 종교의 세계란 진실.청정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로써 이는 내면적인 믿음의 힘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세속적 시류나 풍류등의 외적인 소문이나 말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는 말에는 세속적인 거짓이나 감언이설등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결코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염불"은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불교의 진리에 대한 표현은 이처럼 무엇으로도 파괴되거나 뒤바뀌지 않는 진실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염불하고 귀의하는 삼귀의와 같은 단순한 문구라 해도 그것이 불교의 진리를 담고 있기에 세속적.일상적인 말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진리의 상징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스스로의 언어생활을 되돌아 볼 때 "초중종선"에 해당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처음이나 중간이 좋다고 끝이 나쁜게 아니라 아예 대부분은 처음부터 좋지 않은 것으로 충만해 있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명성을 위해 처음부터 가면과 거짓으로 가득 찬 언어들을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들의 일상에서 "초중종선"의 언어로 돌아가는 것은 그만큼 불교의 진리에 가깝게 다가갔으며 올바른 불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