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교리 및 수행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에 관한 일고찰/임 승택

실론섬 2015. 3. 26. 02:30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에 관한 일고찰

- 5가지 장애(pañcanīvaraṇāni)의 문제를 중심으로 -

임 승택/동국대학교 연구교수.

 

1. 시작하는 말

2. 5가지 장애와 사념처

3. 5가지 장애와 선정

4.사념처의 심리적 지평

5. 마치는 말

 

1. 시작하는 말

 

초기불교 수행체계의 전형으로서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가 있다. 남방불교의 위빠사나(vipassanā)란 바로 이 사념처를 두고 하는 말이다.본 고는 5 장애(五蓋, pañcanīvaraṇāni)의 문제를 중심으로, 그러한 사념처의 위빠사나가 행해질 때의 심리적 지평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1)

1) 남방불교의 수행전통에 따르면, ‘위빠사나(觀, vipassanā)’란 곧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를 가리킨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위빠사나에 관련한 주요 술어
   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적이 있다. 즉 “마음지킴(念) ⇔ 사념처(四念處) ⇔ 몸․
   느낌․마음․법을 따라가며 보는 법(四隨觀) ⇔ 몸․느낌․마음․법에 대한 마음지킴
   (念)과 알아차림(知) ⇔몸․느낌․마음․법을 매개로 한 법에 대한 관찰(法隨觀) ⇔ 
   따라가며 보는 법의 18가지 양태(十八隨觀) ⇔ 위빠사나(觀)”가 그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이해에 따르면, ‘마음지킴(sati)’과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 
   그리고 ‘따라가며 보는 법(anupassanā)’ 등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동일한 내
   용을 지닌다. 따라서 ‘사념처의 수행’을 일컬어 ‘마음지킴의 수행’이라 할 수 있
   으며, 이들 모두를 일컬어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것 또한 가능하다. 졸고, 마음
   지킴의 위상과 용례에 대한 재검토 ,『보조사상』 제19집, 2002. pp. 326-332 
   참조.)

 

선행 연구물에서 필자는 위빠사나의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이미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선정(初禪)이야말로 위빠사나의 온당한 심리적 여건이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생각에 대해, 김재성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초선의 중요성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고 반론하였고, 조준호는 “第四禪 이후에라야 진정한 의미의 Vipassanā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더불어 각묵스님은 “본삼매(appanāsamādhi)에 들었을 때는 위빳사나란 불가능하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그러한 이견들은 나름의 문헌적 근거에 입각해 있는 까닭에 얼마간의 설득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견해에 대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 견해는 필자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에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견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논의의 여지는 아직 많다고 생각된다.

 

본 고는 이러한 배경에서 의도된 것으로, 5가지 장애(五蓋)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재차 접근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이 분야를 다룸에 있어서,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사마타의 영역에 해당하는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 행해지는 위빠사나야말로 육체적․정신적 관찰대상의 폭이 가장 넓다는 점에 논의의 초점을 모았다.

 

또한 필자는 그러한 관점에서 止觀均行이라든가 定慧雙修와 같은 전통적 해설에 대해 나름의 지지를 보냈다. 즉 사마타(止/定)와 위빠사나(觀/慧)의 이상적인 접점으로서 ‘첫 번째 선정(初禪)’을 주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필자의 견해를 최종적으로 발표하고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반론들 이외에 아직 이렇다 할 새로운 반응이 없다. 따라서 본 고를 통해 스스로의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고, 그간의 논의에 대해 나름의 갈무리를 시도하고자 한다.

 

참고적으로 이 시점에서, 이 분야에 관련한 국외의 연구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초기불교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문제에 관련한 성과물로는 다음의 글들을 꼽을 수 있다. 즉 Cousins의 “Th

Origins of Insight Meditation”, Griffiths의 “Concentration or insight: The Problematic of 

Therevāda Buddhist Meditation The ory”, Schmithausen의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in Early Bddhism”, Vetter의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s of Early, L. S. Cousins, “The Origins of Insight Meditation”, The 

Buddhist Forum IV, ed. by Tadeusz Skorupski, New Delhi: Heritage Publishers,1996. Paul 

Griffiths, “Concentration or insight: The Problematic of Therevāda Buddhist Meditation 

Theory”, The Journal of the American of Religion 49/4, 1981, pp. 606-624. Lamber 

Schmithausen,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in Early Bddhism”, Studien Zum J ainismus und Buddhismus, Wiesbaden: 

Steiner-VerlagWiesbaden-Gmbh, 1981, pp. 199-250. Buddhism 등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초기불교의 경전을 중심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일부 상이한 관점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입장들 자체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흩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마타 와 위빠사나의 접점으로서 ‘첫 번째 선정’에 대해 주목한 논문은 이제껏 없었고,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5가지 장애에 대해 언급한 연구자도 없었다. 이러한 그간의 사정은 본 고를 집필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2)

2) 예컨대 Cousins은 출세간(lokuttaramagga)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심리적 조건
   으로서 ‘찰라삼매(刹那定,khaṇika-samādhi)’․‘근접삼매(近接定,upacāra-samādhi)’․
   ‘안지삼매(安止定, appanā-samadhi)’ 등을 분석한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마하시
   (Mahasi Sayadaw) 방식의 위빠사나에서 요구되는 ‘찰라삼매’가 경전적 근거가 빈
   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몇몇 권위 있는 아비달마 문헌에 근거하여, 출세간
   의 도(magga)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첫 번째 선정’ 이상의 사마타(止)가 요
   구된다는 견해를 소개․검토한다. 이러한 내용은 진리의 통찰 과정에서 사마타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필자의 일관된 입장과 일부 상통한다. 
   반면에 Griffiths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에 논의의 초점
   을 모은다. 그는 한편으로는 ‘색계의 4가지 선정(色界四禪,rūpajhānas)’․‘무색계
   의 4가지 선정(無色界四禪, arūpajhānas)’․‘느낌과 지각의 소멸(想受滅, saññā-
   vedayita-nirodha)’ 등 일련의 삼매(samādhi)로써 사마타를 갈래 지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빠사나와 지혜(paññā)의 개발 방법으로서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의 수행체계를 내세운다. 그에 따르면 양자의 길은 결국 열반
   (nibbāna)의 성취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나아가지만, 각각의 진행 과정은 근본적
   으로 다르다. 위빠사나란 무상․고․무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의미하는데, 그것
   은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정점으로 하는 사마타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이다. 
   한편 Schmithausen과 Vetter는 재생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3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논의한다. 즉 ①4가지 선
   정(四禪)을 성취하여 3가지 지혜(三明) 혹은 사성제를 깨닫고, 그러한 연후에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재생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유형, ②‘색계의 4가
   지 선정’과 ‘무색계의 4가지 선정’을 걸쳐 ‘지각과 느낌의 소멸(滅盡定)’을 성
   취함으로써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 재생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유형, 
   ③선정을 배제한 지혜의 성취에 의해 모든 갈애로부터 벗어나 재생과 고통으
   로부터 해탈하는 유형 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견해들 모두는 방대한 문헌적 전거와 함께 초기불교의 사마타와 위빠
   사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논지 자체에 대해서는 
   나름의 일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지만, 서로간에 상이한 관점들을 내포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불일치는 이 분야에 대한 논의의 여지가 아직은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L. S. Cousins,“The Origins of Insight Meditation”, 
   pp. 47-48; Paul Griffiths, “Concentration or insight: The Problematic of 
   Therevāda Buddhist Meditation Theory”, pp. 614-615; Vetter,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s of Early Buddhism, pp. XXI-XXII)

 

2. 5가지 장애와 사념처

(본 소절은 제17회 ‘인도철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논평자로 참석한 정준영 선생의 논평문 중에서 일부의 내용을 발췌하여 보완한 것이다.)

 

5가지 장애(五蓋, pañcanīvaraṇā)란 무엇인가. 수행자의 지혜를 약화시키는 것으로,3) ‘방해물(āvaraṇā)’․‘장애(nīvaraṇa)’․‘장막(onāhā)’․‘덮개(pariyonāha)’ 등으로 부르는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감각적 욕망(欲欲)의 장애’․‘성냄(瞋)의 장애’․‘혼침(昏沈)과 졸음(睡眠)의 장애’․‘들뜸(棹擧)과 회한(惡作)의 장애’․‘의심(疑)의 장애’ 등을 가리킨다.

3) “비구들이여, 이들 5가지 방해물로서의 장애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며 혜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Pañcime bhikkhave, āvaraṇā nīvaraṇā cetaso ajjhāruhā 
   paññāya dubbalīkaraṇā.... ” SN. vol.5. p. 96.)

 

Bojjhaṅgasaṁyutta에서는 이들 5가지 장애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ṁ)’ 알거나(jāneyya) 보지(passeyya) 못하게 되며, 그것들이 사라질 때 비로소 ‘지혜의 해탈(vijjā-vimutti)’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16) 그런데 이러한 5가지 장애는 사념처의 경문 내에서 법념처(dhamma-satipaṭṭhāna)의 세부 내용으로 거론된다. Mahāsatipaṭṭhāna-Suttanta(大念處經)에 나타나는 관련 문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5가지 장애의 법에 관련하여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法隨觀) 머문다는 것은 어떠한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①안으로 감각적 욕망(欲欲)이 있을 때, ‘나에게 안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알아차린다. 혹은 ②안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나에게 안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알아차린다. 또한 ③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생겨날 때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또한 ④이미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질 때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또한 ⑤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게 되었을 때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성냄(瞋)이 있을 때,.... 혹은 안으로 혼침과 졸음(昏沈睡眠)이 있을 때,..... 혹은 들뜸과 회한(掉擧惡作)이 있을 때,..... 혹은 안으로 의심(疑)이 있을 때, ‘나에게 안으로 의심이 있다’고 알아차린다. 혹은 안으로 의심이 없을 때,....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한 비구가 있어, 5가지 장애의 법에 관련하여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문다." ( DN. vol.2. pp. 300-301)
4) “바셋타여, 고귀한 이의 율에 관련하여, 이들 5가지 장애를 방해물이라 부르고 
   장애라 부르고 장막이라 부르고 덮개라 부른다(Ime kho vāseṭṭha pañcanīvaraṇā 
   ariyassa vinaye āvaraṇā'ti'pi vuccanti, nīvaraṇā'ti'pi vuccanti, onāhā'ti'pi 
   vuccanti, pariyonāhā'ti'pi vuccanti)”. DN. vol.1. p. 246.)
   (“5가지 장애가 있다. 감각적 욕망의 장애․성냄의 장애․혼침과 졸음의 장애․들뜸과 
   회한의 장애․의심의 장애이다(Pañca nīvaraṇāni: kāmacchandanīvaraṇaṃ, 
   byāpādanīvaranaṃ, thīnamiddhanīvaraṇaṃ, uddhaccakukkuccanīvaraṇaṃ, 
   vicikicchānīvaraṇaṃ).” DN. vol.3. pp. 234, 278; AN. vol.4. pp. 457-458; MN. 
   vol.2. p. 203 등.)
   (Bojjhaṅgasaṁyutta 에따르면, 5가지 장애는 맑은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려는 
   자에게 염료가 섞인(=kāmarāga), 불에 끊는(=byāpāda), 수초로 덮힌(=thīna-middha), 
   바람에 물결치는(=uddhacca-kukkucca), 진흙으로 탁한(=vicikicchā) 물과 같아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yathābhūtaṁ)’ 알거나(jāneyya) 보지(passeyya) 못하게 
   한다.SN. vol.5. pp. 121-126 참조)

 

인용문에 나타나는 장애(五蓋)는 다름 아닌 사념처의 도상에서 발생하는 방해물이다. 이들 장애는 그 자체로서는 번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알아차림(pajānāti)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수행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매개로 활용된다. 즉 수행자는 5가지 장애가 ①있을 때, ②없을 때, ③생겨날 때, ④사라질 때, ⑤생겨나지 않게 되었을 때의 상황을 분명하게 인지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이와 같이 5가지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전체 과정은 법념처의 영역에 해당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사념처 자체의 심리적 지평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제공된다. 예컨대 “성냄이 있을때 그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성냄 자체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존속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은 그러한 5가지 장애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Nyanaponika의 해설에 의하면, 이들 5가지 장애 중에서 회한과 의심은 ‘예류로 나아감(預流道)’에서 완전히 종식된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과 성냄은 ‘불환으로 나아감(不還道)’에서, 혼침․졸음과 들뜸은 ‘아라한에 나아감(阿羅漢道)’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이러한 Nyanaponika의 설명은 Paṭisambhidāmagga에 나타나는 것으로, “‘아라한에 나아감(阿羅漢道)’에 의해... 교만(慢)․들뜸(掉擧)․무명(無明)... 등이 완전히 단절된다”는 경문을 통해 설득력을 확보한다.

 

또한 Saṅgītisuttanta에서는 5가지 장애를 포함하는 2가지 부류의 속박(saṁyojana)5)을 열거한다. 예컨대 ‘욕망의 영역(欲界)’에 해당하는 ‘낮은 단계의 속박(orambhāgiya-samyojana)’으로서 ‘감각적 욕망’․‘성냄’․‘의심’ 등을 열거하고, 욕망의 영역을 벗어난 ‘높은 단계의 속박(uddhambhāgiya-samyojana)으로서 ‘들뜸’을 거론 한다.20) 그리고 Ākankheyyasutta와 Mahālisutta에서는 이들 속박을 극복하고 소멸함으로써 성인(ariya)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5) Saṅgītisuttanta에 정리된 2가지 부류의 속박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5가지 낮은 단계의 속박들이 있다. 몸이 있다는 견해(有身見)․의심(疑)․계나 의식에 
   대한 고집(戒禁取)․감각적 욕망(欲欲)․성냄(瞋)이다. 5가지 높은 단계의 속박이 있다. 
   물질현상에 대한 욕망(色慾)․물질현상의 없음에 대한 욕망(無色欲)․아만(慢)․들뜸(掉
   擧)․어리석음(無明)이다(Pañcorambhāgi yāni saṃyojanānā: sakkāyadiṭṭhi, vicikicchā, 
   sīlabbataparāmāso, kāmacchando, byāpādo. Pañcuddhamabhāgiyāni 
   saṃyojanāni: rūparāgo,arūparāgo, māno, uddhaccaṃ, avijjā)”. DN. vol.3. p. 234.)
   (“비구들이여, 비구가 속박을 극복하고 소멸하여 ‘흐름에 든(預流)’이가 되고자 한다
   면.... 속박을 극복하고 소멸하여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약화된 ‘한번 돌아오는 이
   (一來)’가 되고자 한다면.... 5가지 낮은 단계의 속박(五下分結)을 소멸하여 ‘홀연한 존
   재(不還)’가 되고자 한다면,.....계를 원만히 하고, 빈 장소에 이르러, 내부적으로 사마
   타에 마음을 열중하고 소홀히 하지 않아 위빠사나를 갖추고 증장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Ākaṅkheyya ce bhikkhave bhikkhu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o 
   assaṃ....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assaṃ,.....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assaṃ,.... sīlesvevassa paripūrakārī ajjhattaṃ cetosamathamanuyutto anirākatajjhāno 
   vipassanāya samannāgato brūhetā suññāgārānaṃ)”. MN. vol.1. p. 34 참조; DN. vol.1. 
   p. 156 참조; DN. vol.2. p. 252(비고); AN. vol.1. p. 232(비고).

 

결국 5가지 장애는 초기불교의 이상향인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연후라야 비로소 완전히 제거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고려할 때, 사념처를 행해 나가면서 겪게 되는 5가지 장애는 완전한 제거․근절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수행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부단한 마음지킴(sati)과 알아차림(sampajañña)으로써 주시․관찰하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성질의 것이다.

 

한편 Dantabhūmisutta에 따르면, 이들 5가지 장애는 본격적인 사념처 수행의 이전에도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그들 사념처 이전의 장애는 각각의 대치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나가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한 연후에 비로소 사념처의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관련 경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한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난 후, 발우를 물리고서, 가부좌를 꼬고 앉는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지킴을 확립한 후에 [앉는다]. 그러한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을 버리고서 ①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성냄과 분노를 버리고서 성냄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② 모든 생명들에게 이익이 되는 자비로움을 지녀 성냄과 분노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혼침과 졸음을 버리고서 혼침과 졸음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③ 밝음에 대한 지각(光明想)을 지니고 마음지킴(念)과 알아차림(知)을 지녀, 혼침과 졸음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들뜸(棹擧)과 회한(惡作)을 버리고서 차분하게 머문다. ④ 내부적으로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회한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⑤ 의심을 버리고서 의심을 극복하여 머문다. 선한 법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그러한 [비구는] 이들 5가지 장애(五蓋)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혜로써 약화된 상태에서, 몸에 대해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身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知)과 마음지킴(念)을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 느낌에 대해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受隨觀)... 마음에 대해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心隨觀)... 법에 대해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法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지킴을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MN. vol.3. pp. 135-136 등.)

 

인용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① 탐욕이 없는 마음, ② 생명에 대한 자비로움, ③ 밝음에 대한 지각, ④ 가라앉은 마음, ⑤ 의심의 극복 등을 통해 5가지 장애를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cetaso upakkilese dubbalīkaraṇe)” 본격적인 사념처의 수행으로 전향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Mahāparinibbānasutta에 나타나는 것으로, 부처님 자신의 수행 체험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즉 “세존께서는 그들 5가지 장애 모두를 버리고서 혜로써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에 대해 마음을 확고히 하셨다. [그리하여] 7각지에 대해 여법하게 닦으신 연후에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으셨다”(DN. vol.2. p. 83.23)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이러한 내용들은 Sampasādanīyasuttanta 등 니까야(Nikāya)의 도처에서 발견된다.(DN. vol.3. pp. 101; AN. vol.3. pp. 386, 387(비고); AN. vol.5. p.95(비고).

 

따라서 5가지 장애는 사념처 수행의 와중에도 존속하는 것이지만, 본격적인 사념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사념처와 상관적인 관계를 이루는 5가지 장애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본격적인 사념처 수행의 이전에 드러나는 장애가 있고, 사념처의 진행 속에서 드러나는 장애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념처 이전에 다스려야 할 거친 장애이고, 후자는 약화된(dubbalīkaraṇe) 그것으로서 사념처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알아차려 나가야 할 장애이다. 그리고 이러한 후자의 장애는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제거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5가지 장애는 법념처에 속한 알아차림의 대상이다. ②따라서 사념처가 진행될 때 5가지 장애는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며 알아차림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③5가지 장애는 사념처의 와중에 드러나는 약화된 것과 사념처 이전부터 존속하는 거친 것의 2가지로 구분된다. ④사념처 이전에 나타나는 거친 장애는 각각의 대치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⑤그러한 거친 장애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비로소 온전한 사념처를 행한다.

 

3. 5가지 장애와 선정

 

이상과 같이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pañca nīvaraṇe pahāya)”6)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를 행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6)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pañca nīvaraṇe pahāya)”의 ‘버리고서(pahāya)’라는 용어에 
   대해 얼마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 용어는 3인칭 현재형 ‘pajahati(버리다)’
   의 절대분사로서 ‘내버려 두다(to let go)’, ‘포기하다(to give up)’, ‘떠나다(to leave)’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pajahati’는 한역에서 보통 ‘斷’으로 번역되어 ‘끊다’ 혹은 ‘단절
   하다’의 뜻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할 경우, 원래의 의미에 주관
   적인 의지가 지나치게 부각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역에서는 이 용어에 대해 
   ‘捨斷’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거기에서 ‘捨’는 그러한 원어적 의미에 잘 부합한다
   고 할 수 있다. 한편 Paṭisambhidāmagga에는 이 용어와 관련하여, “무릇 버려진 제법
   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포기된 제법이 있다는 것이다(ye ye dhammā pahīnā honti te 
   te dhammā pariccattā honti; Ps. vol.1. p.27)”는 용례와 함께, “비구들이여, 눈(眼)을 
   버려 두어야 한다. 시각대상(色)을 버려 두어야 한다. 눈에 의한 의식(眼識)을 버려 두
   어야 한다.... (cakkhuṁ bhikkhave pahātabbaṁ, rūpā pahātabbā, cakkhuviññāṇaṁ 
   pahātabbaṁ; Ps. vol.1. p. 27)” 등의 구절이 나타난다. 만약 이 용어를 ‘끊음’이나 ‘단
   절’로 이해한다면 감각의 기능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pajahati(=pahāya, pahīnā, pahātabba)’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를 버려 두고서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사념처가 행해지는 심리적 지평이란 다름 아닌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이다. 그런데 초기불교의 Nikāya 상에서 그러한 5가지 장애는 ‘첫 번째 선정(初禪)’과 관련하여 더욱 빈번한 용례를 보인다. 예컨대 Cūḷahatthipadopamasutta에 나타나는 관련 문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그러한 [비구는] 이들 5가지 장애(五蓋)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혜로써 약화된 상태에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벗어나, 거친사유(尋)와 미세사유(伺)를 지닌, 기쁨과 즐거움을지닌, 첫 번째 선정(初禪)에 도달하여 머문다.... (MN. vol.1. pp. 181)

 

인용된 내용에 따르면,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dubbalikaraṇe)” 첫 번째 선정(初禪)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Kandarakasutta를 비롯한 Nikāya의 도처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27) 각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 용례는 앞 소절에서 살펴보았던 사념처 관련 경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빈도를 보인다.

 

따라서 5가지 장애란 첫 번째 선정과 더욱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7)

7) 한편 본문에서 인용한 경문 외에도, 5가지 장애와 선정에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다음의 경우가 있다. “...... 그러한 [비구가] 이들 5가지 장애가 버려진 
   자신을 돌이켜 관찰할 때, 만족이 생겨나고, 만족에서 기쁨이 생겨나고, 기쁨에서 
   몸이 경쾌해지고, 몸의 경쾌함에서 즐거움이 느껴지고, 즐거움에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간다. 그러한 [비구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벗어
   나, 거친사유와 미세사유를 지닌, 기쁨과 즐거움을 지닌,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Tassime pañca nīvaraṇe pahīṇe attani samanupass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e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DN. vol.1. pp. 73, 124, 157, 160, 182, 232 등.
   본 각주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장애의 제거 → 만족 → 기쁨 → 경쾌함→ 즐거움 → 
   삼매”라는 형식으로 시간적인 선후의 수순으로 오해될 여지가 많다. 그러나 여기에
   서 사용되는 동사는 모두 현재형이라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 즉 현재분사 형식
   으로 기술된 ‘돌이켜 관찰할 때(samanupassato)’와 상관적인 것으로서 ‘만족이 생
   겨난다(pāmojjaṃjāyati)’와 ‘기쁨이 생겨난다(pīti jāyati)’ 따위는 모두 현재형이다.
    이러한 까닭에 ‘돌이켜 관찰할 때’와 맨 마지막의 ‘삼매에 들어간다(samādhiyati)’
   까지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형으로 묘사된 이들 모든 동사는 
   ‘돌이켜 관찰하는 행위’와 동시 동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차후 살펴보
   게 되겠지만, 이러한 내용은 본 고의 논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까닭에 미리 주목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인용문의 일부 내용이 앞 소절에서 살펴보았던 사념처 관련 인용문과 중복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혜로써 약화된 상태에서(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는 대목이다.

 

바로 이 구절은 앞 소절에서 인용했던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혜로써 약화된 상태에서 몸에 대해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身隨觀) 머문다”는 경문과 동일한 문장 형식을 지닌다. 또한 이것은 Mahāparinibbānasutta에 나타나는 것으로, “세존께서는 그들 5가지 장애 모두를 버리고서 혜로써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에 대해 마음을 확고히 하셨다”는 것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따라서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은 공히 “5가지 장애를 버리고 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행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의 심리적 지평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일단 확인하였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위빠사나의 온당한 심리적 여건이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런데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 양자를 공히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거기에서 완전히 중첩된다고 보기에는 아직 설득력이 약하다. 다시 말해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가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 모두의 충분 조건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이 명확하게 규명될 때,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이 첫 번째 선정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5가지 장애’와 ‘첫 번째 선정’이 대립 관계를 이룬다는 점에 주목한다. 각묵스님에 따르면 “5가지 장애란 선정을 증득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장애요소로서 사마타(止)를 닦아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주장은 Paṭisambhidāmagga의 “첫 번째 선정에 의해 [5가지] 장애와 관련하여 동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마타의 힘이다”는 문구에 의해 경전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첫 번째 선정에 의해 5가지 장애에 대해 동요하지 않게됨을 알 수 있다. 즉 첫 번째 선정은 5가지 장애와 맞닿은 대치법으로서, 양자 중에서 어느 한쪽이 분명하면 다른 한쪽은 이미 약화된 상태이거나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장애가 버려지고 번뇌가 약화된 상태’란 다름 아닌 ‘첫 번째 선정의 상태’라고 바꾸어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 점은 Visuddhimagga에 기술된 것으로, “그러저러한 세간의 삼매에 의해 [5가지] 장애 따위의 대치되는 법들의 [일시적인] 누그러짐(vikkhambhana, withdrawal of support)이 있다. 이것을 ‘누구러짐에 의한 [일시적인] 버림(鎭伏捨斷, vikkhambhanappahāna)’이라고 부른다”33)는 문구를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이와같이 삼매라든가 선정에 의해 5가지 장애를 비롯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다는 것이 초기불교 이래의 일반적인 인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5가지 장애란 첫 번째 선정에 의해 ‘누그러지는 것(vikkhambhana)’이며, ‘번뇌가 약화된 상태(upakkilese dubbalikaraṇe)’란 첫 번째 선정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행하는 사념처 또한 첫 번째 선정의 와중에 진행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위빠사나의 온당한 심리적 여건이다”는 필자의 종전 주장은 보다 확실한 경전적 근거와 함께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5가지 장애는 첫 번째 선정에 의해 대치되는 성격을 지닌다. ②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간다. ③ 마찬가지로 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를 행한다. ④ 번뇌가 약화된 상태는 첫 번째 선정과 사념처 수행의 충분조건이다. ⑤ 이러한 사실은 사념처 수행이 첫 번째 선정의 와중에 행해지는 것임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4.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

 

이상과 같이 5가지 장애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살펴본 내용은 지난 몇년에 걸쳐 진행되어온 국내 학계의 논의로서, “사념처의 위빠사나는 과연 어떠한 심리상태에서 진행되는가”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그간 주목을 받지 못했던 5가지 장애의 문제에 대해 논의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도출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다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이상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Dantabhūmisutta의 해당 경문을 소개한다.

 

① 그러한 [비구는] 공양을 마치고 난 후, 발우를 물리고서, 가부좌를 꼬고 앉는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지킴을 확립한 후에 [앉는다]. 그러한 [비구는] 세간에 관련한 탐욕을 버리고서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탐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② 그러한 [비구는] 이들 5가지 장애(五蓋)를 버리고서 마음의 번뇌가 혜로써 약화된 상태에서, 몸에 대해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身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知)과 마음지킴(念)을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 느낌에 대해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受隨觀)...마음에 대해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心隨觀)... 법에 대해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法隨觀) 머문다. 열렬함과 알아차림과 마음지킴을 지녀, 세간에 관련한 탐욕과 근심을 벗어나 [머문다].... ③ 그러한 그 [비구에 대해] 세존께서는 위의 [가르침으로] 인도하신다. 그대 비구여, 몸에 대해 몸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되 욕망을 수반한 거친사유(尋)를 일켜서는 안된다. 느낌에 대해 느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되 욕망을 수반한 거친사유를 일켜서는 안된다. 마음에 대해 마음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되 욕망을 수반한 거친사유를 일켜서는 안된다. 법에 대해 법을 따라가며 보면서 머물되 욕망을 수반한 거친사유를 일켜서는 안된다. ④ [그러자] 그 [비구는] 거친사유(尋)와 미세사유(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거친사유와 미세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두 번째 선정(第二禪)을 도달하여 머문다.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지킴과 알아차림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것으로,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第三禪)을 얻어 머문다. 즐거움을 버리고 고통을 버린, 이전의 즐거움과 근심이 사라진, 고통스럽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지킴의 청정을 지닌, 네 번째 선정(第四禪)을 얻어 머문다.(MN. vol.3. pp. 135-136.4)

 

인용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①수행에 임하여 5가지 장애를 버림, ②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에 들어감, ③사념처를 닦으면서 거친사유(尋)를 일으키지 않음, ④두 번째 선정(第二禪)과 세 번째 선정(第三禪) 등으로 옮겨감으로 요약․정리할 수 있다.

 

본 인용문에서 첫 번째 선정(初禪, paṭhamajjhāna)이라는 용어 자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정의 위계상 ‘첫 번째 선정’만을 거른 상태로, ‘두 번째 선정’과 ‘세 번째 선정’ 등으로 옮겨갈 수는 없는 문제이다. 더욱이 항목③에서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으로 묘사되는 거친사유(尋, vitakka)는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만 기능하는 고유의 마음요소(心所)이다.35) 따라서 항목②의 사념처 수행은 곧 첫 번째 선정에 상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상의 내용은 사념처 수행의 심리적 지평이 첫 번째 선정과 중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필자의 논지에 맞추어, 위의 인용문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형식이 될 수 있다. ①수행에 임하여 5가지 장애를 버린다. ②이는 곧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 사념처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③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 사념처를 닦으면서 거친사유를 일으키지 않는다. ④그리하여 두 번째 선정과 세 번째 선정 등으로 옮겨 간다.

 

‘시작하는 말’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기존의 연구물을 통해 첫 번째 선정과 위빠사나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미 충분한 언급을 하였다. 본 고의 접근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번 비교․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사리불 존자의 위빠사나 체험담을 묘사하는 Anupadasutta를 재차 인용해 본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다는 보름 동안에 걸쳐 ‘순서에 따른 법에 대한 위빠사나anupadadhammavipassanā)를 수행하였다. 비구들이여, 이 [가르침 안에서], 사리뿟따의 ‘순서에 따른 법에 대한 위빠사나’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가르침 안에서], 사리뿟따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벗어나, 거친사유(尋)와 미세사유(伺)를 지닌, 떠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을 지닌 ‘첫 번째 선정(初禪)’에 도달하여 머물렀다. 그러한 ‘첫 번째 선정’에는 거친사유(尋)․미세사유(伺)․기쁨(喜)․즐거움(樂)․하나된 마음(心一境性)․접촉(觸)․느낌(受)․지각(想)․의도(捨)․마음(心)․의욕(欲)․확신(勝解)․정진(精進)․마음지킴(念)․평정(捨)․마음냄(作意) 등의 현상이 있었다. 그들 현상이 순서에 따라 분명해 졌는데, 그에게 ‘감지된 것(viditā)’으로서 그들 현상이 일어났고, ‘감지된 것’으로서 드러났고, ‘감지된 것’으로서 사라졌다. 그는 이와 같이 알아차렸다. ‘실로 이들 법은 나에게 있지 않다가 발생한 것으로, 있고 난 후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라고. (MN. vol.3. p. 256)

 

본 인용문 또한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 위빠사나가 행해짐을 드러내는 것이다. 필자는 위빠사나 수행의 원리와 관련하여, 인용문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감지된 것(viditā)’이라는 용어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언급하였다. 위빠사나를 행해 나갈 때, 수행자는 비단 ‘코끝’이나 ‘면상’ 따위의 직접적인 관찰대상 뿐만이 아니라, 여타의 육체적․정신적 현상들에 대해서도 ‘깨어있는 상태(=vidita)’를 유지한다.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점은 사리불 존자의 위빠사나 체험에서도 발견된다. 거기에서 거친사유(尋)와 미세사유(伺)는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만 기능하는 것으로, 그 이상의 선정 상태에서는 감지되지(viditā) 않는다. 즉 첫 번째 선정의 심리적 내용물로는 거친 사유․미세사유․기쁨․즐거움 따위가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선정에서는 그들 중에서 거친사유와 미세사유가 가라앉고, 세 번째 선정에서는 다시 거기에서 기쁨이 사라지며, 네 번째 선정에서는 즐거움이 멎는다.

 

따라서 선정의 경지가 깊어질수록 감지되는 심리적 내용 또한 감소함을 알 수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두 번째 선정에서 소멸되는 거친사유와 미세사유는 언어적 현상(vacīsaṅkhārā)을 이루는 마음요소이다. 따라서 두 번째 선정 이상의 단계에서는 언어적 분별(vitakkana)이라든가 논리적 추론(ūhana)과 같은 내면의 심리현상에 대한 통찰의 근거가 망실된다.

 

이러한 까닭에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이러한 마음요소 전체를 담아 낼 수 있는 유일한 사마타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위빠사나의 온당한 실천적 여건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념처의 위빠사나가 첫 번째 선정과 중첩된다는 본 고의 일관된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본 소절에서는 이상과 같이 2가지 경문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였다. 이들 양 경전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시설된 것이다. 하나는 5가지 장애의 문제를 중심으로 수행의 과정을 밝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리불 존자의 개인적인 위빠사나 체험담을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는 ‘첫 번째 선정’과 ‘위빠사나(=사념처)’의 상관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필자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 경문은 공히 사념처 혹은 위빠사나의 심리적 지평이첫 번째 선정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하는 것이다.

 

5. 마치는 말

 

이상과 같이 ‘5가지 장애(pañcanīvaraṇāni)’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념처 수행의 심리적 지평에 대해 알아 보았다. 본 고는 “사념처의 위빠사나가 진행되는 심리상태는 과연 어떠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접근해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5가지 장애의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모았고, 그 결과로서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위빠사나가 진행되는 온당한 심리적 상태이다”는 입장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5가지 장애와 사념처’를 다룬 소절에서 필자는 사념처 이전에 나타나는 거친 장애와 본격적인 사념처 수행의 와중에 드러나는 약화된 번뇌로서의 장애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사념처 수행이 시작되기 이전의 장애는 각각의 대치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사념처가 행해질 수 있다.

 

‘5가지 장애와 선정’을 다룬 소절에서는 장애가 ‘누구러진(vikkhambhana)’ 상태를 중심으로 사념처와 첫 번째 선정이 중첩된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초기불교의 사마타 체계 내에서 첫 번째 선정은 5가지 장애와 바로 맞닿은 대치법이다. 따라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cetaso upakkilese dubbalikaraṇe)는 이미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마음의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행한다는 사념처 또한 첫 번째 선정의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념처의 심리적 지평’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두 소절의 내용에 대한 경전적 전거로서 Dantabhūmisutta를 인용․소개하였다. 거기에 묘사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①수행에 임하여 5가지 장애를 버림, ②5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번뇌가 약화된 상태에서 사념처에 들어감, ③사념처를 닦으면서 거친사유(尋)을 일으키지 않음, ④두 번째 선정(第二禪)과 세 번째 선정(第三禪) 등으로 나아감이 그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사리불 존자의 위빠사나 체험담을 묘사하는 Anupadasutta에 재차 주목하였다. 거기에 따르면 언어적 현상(語行)을 구성하는 마음요소(心所)로서 거친사유(尋)와 미세사유(伺)가 포착되는 유일한 상태는 첫 번째 선정이다. 그리고 두 번째 선정 이상의 경지에서는 거친사유와 미세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은 사념처를 닦으면서 거친사유를 일으키지 않을 때, 두 번째 선정과 세 번째 선정 등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은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논의로서, “사념처의 위빠사나는 과연 어떠한 심리상태에서 진행되는가”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다시금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본 고를 통해 보다 확실한 경전적 근거와 함께, “첫 번째 선정이야말로 사념처의 위빠사나를 위한 온당한 심리적 여건이다”는 기존의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