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이 꽃 피운 곳 - 우전국(화전현. 코탄)

실론섬 2015. 5. 4. 12:19


비로자나불


화엄경의 구성

현재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화엄경]은 처음부터 하나로 묶어진 것이 아니라, 각 章(장)들이 독립된 경전으로 성립되었다가 4세기경에 중앙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집대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집대성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에는 3종류가 있다. 첫째는 중국 동진시대에 佛陀跋陀羅(불타발타라.

Buddhabhadara)가 번역(418-420)한 60권 [화엄경]이고, 둘째는 당나라 시대에 實叉難陀(실차난타. Sikatananda)
에 의해 번역(695-699)된 80권 [화엄경], 셋째는 같은 당나라 시대에 반야삼장에 의해 번역(795-798)된 40권 [화엄경]이다.


여기서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중의 [입법계품]만 따로 독립시켜 만든 것이므로, 완전한 [화엄경]은 60권및 80권 [화엄경]뿐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의 정확한 제목은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며, 범어로는 [아하 바이푸르야 붓다 아바탐사카 수트라
. Maha-vaipulya-buddha-avatamasaka-sutra] 라고 한다.

 

"대방광불" 에서 大方廣(대방광)이란 뜻은 부처님에게 붙인 형용사로 '광대하다''크다'는 뜻이다. 즉 대방광불이란 '광대한 부처님'이란 뜻이다. 이 부처님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느 지성이라든가 시간 또는 공간을 뛰어 넘어 존재하고 있는 무한한 부처님, 무한대의 부처님이다. 한편으로는 대승의 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다. '화엄' 이란 아름다운 여러가지 꽃으로 부처님의 세계(연화장 세계)를 장식한다는 뜻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부처님은 "비로자나부처님(비로자나불)" 으로써,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소리나는대로 옮긴 것이다. 그 의미는 光明邊照(광명변조) 즉 무한한 광명을 말한다. 이것은 광명의 부처님을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은 광명 그 자체이다. 마치 태양이 일체 세간의 어둠을 없애고, 일체의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과 같이, 우주에 두루 가득하고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무한한 빛을 비추는 것일고 이해할 수 있다.

 

[화엄경]은 부처님 자신이 직접 설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주위에 모인 수많은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감득한 후,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아 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주요 내용은 부처님의 세계와,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닦아야 할 보살의 수행 과정(보현행)을 나타내는 데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7처 8회 (60권 화엄경. 일곱군데 장소에서 여덟번의 법회를 열었음을 의미함)로 나누어 화엄경의 무한한 내용들을 지상과 천상으로 다시 지상으로 장소를 옮겨 가면서 구상의 웅대함을 초우주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화엄경]의 구성은 60권 화엄경에 의하면 7처 8회 34품이고, 80권 화엄경에 의하면 7처 9회 39품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60권 화엄경의 7처 8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적멸도량회 - 마가다국적멸량장 (1. 세간정안품 2.노사나불품)
2)보광법당회 - 보광법당 (3.여래명호품 - 8.현수보살품)
  (이상의 2품은 지상에서의 설법이다)

 

3)수미산정회 - 수미산정의 제석천 (9.불승수미정품 - 14.명법품)
4)야마천궁회 - 야마천의 보장엄전 (15.불승야마천궁자재품 - 18.보살십무진장품)
5)도솔천궁회 - 도솔천궁의 일체보장엄전 (19.여래도솔천궁일체보전품 - 21.금강당보살십회향품
6)타화천궁회 - 타화자재천궁의 마니보전 (22.십지품 - 32.보왕여래성기품)
  (이상은 모두 천상에서의 설법으로서, 불교의 세계관에서 보면 낮은 천계에서 높은 천계로 옮겨가게 구성되어 있다)

 

7)보광법당중회 - 보광명전 (33.이세간품)
8)중각강당회(서다원림회) - 기수급고독원의 중각강당 (34.입법계품)
  (마지막 2회의 설법은 재차 지상에서 열린다. 제7의 보광법당중회는 제2회와 같은 장소이므로 법회가 열린 것은 8회

   이지만 법회장소로는 7회가 되는 것이다)

 

화엄경이 꽃 피운 곳

신강(新彊) 위구르 자치구의 타림분지 서남쪽에 있는 화전현(和田縣)은 곤륜산맥의 북쪽과 접해 있는 마을이다. 일찍이 우전현(于전縣)이라 불렸지만 1959년에 화전현으로 개칭된 이 사막의 오아시스는 옛날 우전국의 땅이다.

 

화전현은 곤륜산맥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백옥강과 흑옥강 유역에 있는 큰 오아시스의 땅이다. 백옥강에는 백옥이, 흑옥강에는 흑옥이 채집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옥들은 옛부터 우전국의 특산물로서 서쪽으로는 이란 이라크 지역으로,동쪽으로는 중국에 무역품으로 보네졌으며, 이 무역으로 인해 우전을 부를 축적 할 수 있었다.그 외에 비단이나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깔개등도 주요 무역품이었다.

 

우전은 실크로드 동서무역의 중개시장으로 번영했기 때문에 동서 양쪽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 하였으며,불교 뿐만 아니라 이란 계통의 조로아스트교도 수입되어 있었다.

 

[북사(北史)] 제 97의 [서역전(西域傳)]에 보면, 우전에서는 모든 백성이 불법(佛法)을 소중히 여겼으며, 사찰과 탑과 승려들이 대단히 많았다. 특히 왕은 불교를 신봉하여 육재일(六齋日)을 지키고 불단에 올리는 곡물이나 과일을 손수 씼었다고 한다.

 

400년경에 법현(法賢)이 율장의 빠진 부분을 구하기 위하여 서역으로 가던 중 우전국에 머물면서 그곳 불교의 모습을기록으로 남겨놓은 [법현전(法賢傳)]은 당시 우전국의 불교의 모습을 소상하게 전해주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우전국은부유한 나라로서 국민들은 불법을 신봉하고 수만명의 승려들이 있으며, 사람들의 집 앞에는 높이가 6미터 정도 되는 작은 탑이 세워져 있었으며, 여행하는 승려들을 위해 승방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우전에는 14개의 대사찰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인 왕신사(王新寺)에는 높이가 75미터나 되는 탑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니 사찰의 규모와 웅대함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은 금.은으로 칠해져 있고 여러가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법당의 기둥과 창문은 모두다 금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우전국의 사찰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장관이었냐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불교가 번창했던 옛날 우전국의 흔적은 혀재 화전현의 곳곳에 유적으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일본 nhk 방송에서 5년간에 걸쳐서 제작한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kbs 에서 수입하여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타큐멘터리의 배경 음악이 굉장한 선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옛날 서역지방 즉 중앙 아시아 일대가 모두다 불교국이었다는 것과 국가마다 불교가 얼마나 융성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비록 거의 모든 유적들이 모래에 묻혀 그 옛날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불교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인도에서 시작된 대승불교가 꽃피운 중앙 아시아의 모습을 마음속으로나마 그려 볼 수 있다.

 

밑에서 설명하는 60화엄경이나 80화엄경 모두가 사막의 오아시스 국가였던 우전에서 발견되어 중국으로 왔다는 것은이 화엄경들이 우전에서 편찬 또는 집대성 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와 화엄경

우전국의 불교가 전성기였을 무렵, 중국인 구도자 지법령(支法領)이 대승경전을 구하기 위해 우전으로 왔다. 그리고 우전국왕에게 간청을 하여 [화엄경]의 3만 6천 게송 범어본을 입수하여 중국으로 돌아 왔다.

 

한편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던 지엄(智嚴)이라는 승려는 계빈국이라는 곳에 머물면서 그곳 승려들이 계율을 지키며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중국에서의 생활을 반성하며 "중국 승려들이 도(道)를 구하고자 하는 뜻은 있지만진정한 스승이 없기 때문에 깨달음을 열수가 없다" 고 하며, 계빈국의 승려들 가운데 중국 사람들을 교화해 줄 승려를찾았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불타발타라를 추천 하였다.

 

그는 인도의 야가리성(耶呵利城)에서 태어 났으며, 석씨(釋氏)의 성을 이어 대대로 불교를 존중한 사람이다. 8세에 출가를 하여 불대선선사(佛大先禪師)로 부터 선법(禪法)을 전수 받았으며, 마침 이 계빈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엄의 간청을 받은 각현(覺賢.중국에서는 불타발타라를 각현이라고 불렀으며 이하 각현이라고 한다)은 중국으로 갈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실크로드를 통하지 않고 해상으로 중국으로 향했다. 이윽고 오랜 항해끝에 산동반도의 등주항(登州港)에 도착을 하였다. 한편으로는 우전국을 거쳐서 구법여행을 했던 법현도 바닷길로 청도(靑島) 부근의 뇌산(牢山)이라는 곳에 상륙을 하였다. 중국땅을 밝은 각현은 구마라집이 장안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장안으로 떠났다. 각현이 장안에 도착한 것은 406년
혹은 408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각현이 장안에 도착하자 이미 401년에 장안에 와 있었떤 구마라집은 매우 기뻐 하였다. 서역을 출발하여 오랜 여행을하며 중국에 와 있었던 구마라집은 아마도 인도의 계빈국에서 온 각현에게 여러가지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구마라집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교단과 각현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각현은 원래 계율을 지키고 선관(禪觀)을 닦는 선자(禪者)였다. 이에 비해 구마집은 이미 여자를 가까이 하는등 파계승이었고 그를 따르는 승려들 또한 세속의 권력에 아부하는등 타락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각현은 이러한 세속적인 권력과 타락을 떠나서 고고한 생활을 강조 했기 때문에 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결국은 4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장안을 떠났다. 여러곳을 여행한 각현은 마침내 동진(東晋)의 수도였던 건강의 도장사(道場寺)에 도착을 하였다. 그곳의 승려들도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각현의 인품을 좋아하며 그를 존경 하였다.

 

우전국에서 [화엄경]의 범어본을 구해 장안으로 돌아 온 지법령도 장안을 떠나 동진의 건강으로 갔다. 그리고 각현이도장사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지법령은 각현에게 범본 [화엄경]을 중국말로 번역해 줄것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각현은 [화엄경]을 번역하기로 결심 했다. 이리하여 동진(東晋) 의희 14년(418) 3월 10일 시작된 60 화엄경(동진시대에 번역 했기 때문 晋譯(진역) 화엄경이라고도 함)의 번역은 원희 2년 (420) 6월 10일날 완성 되었다.

 

장장 2년 3개월에 걸친 힘든 번역 사업이었다. 다시 범본과의 대조하며 교정작업을 시작하여 영초 2년(421) 12월 28일에
모두 끝났다. 그리고 범본은 도장사의 다른곳에 화엄당(華嚴堂)을 만들어 보관했다.

 

실차난타(實叉難陀. 學喜(학희. 중국이름)와 화엄경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불교를 신봉 하였는데, [화엄경]의 완전한 범본을 구하고 있었다. 무후는 우전에 이 경의 범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우전국에 보네어 [화엄경]의 범본과 번역자를 구해 오게 하였다. 그 때 범본을 가지고 장안으로 온 사람이 실차난타(Sikstananda)였다.

 

695년 동도(東都)의 대편공사(大遍空寺)에서 번역이 시작 되었다. 무후는 몸소 번역 장소에 나가 서문을 지었다. 보리유지(菩리流志)와 의정(義淨)이 범본을 읽고 복례(複禮)와 법장(法藏)이 번역을 도왔다. 완성된 것은 699년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였다. 이것이 새로이 번역된 80 화엄경(당나라 시대에 번역 되었기 때문에 唐譯 화엄경이라고 함) 이다. 80화엄경을 60화엄경과 비교하면 문장이 거침이 없고, 내용도 60화엄경이 8회 34품인데 반해, 9회 39품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