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화엄경

화엄경 - 3. 여래명호품. 4. 사제품. 5. 여래광명각품

실론섬 2015. 5. 4. 14:27


비로자나불



3. 여래명호품. 4.사제품. 5.여래광명각품 - 한없는 광명

 

3.여래명호품

세계에는 사바세계를 위시하여 무수한 세계가 있으며, 그 무수한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의 이름도 무수히 많다. 그것은 부처임이 갖가지 신업(身業. 신체로 나타내는 모든 행위). 구업(口業. 말로써 표현하는 모든 행위). 의업(意業. 생각으로 일으키는 모든 행위)으로써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은 여래의 신업이 온 천지에 가득하여 중생의 부름에 두루 그 모습을 나타내시는 것을 밝힌 것이다. 명호 즉 이름은 신체에 따라 붙여지는 것이므로 이 품에서는 부처님의 갖가지 이름을 설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적멸도량에서 처음으로 정각을 얻으시고, 보광법당의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것이 [여래명호품]이다. 부처님이 보광법당에서 가르침을 설하므로 여기서 부터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가 시작한다.

 

보광법당회는 1.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2.사제품(四제品) 3. 여래광명각품(如來光明覺品) 4.보살명란품(普薩明란品) 5.정행품(淨行品) 6.현수보살품(賢首普薩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종의 大聖子(대성자)였던 법장은 이 6품을 나누어서 앞의 3품을 믿음이 대상인 부처님의 신체(身(명호품).말씀(語(사제품).생각(意(광명각품) 이라 하고, 나중의 3품을 믿음 그 자체의 해석(解(명란품). 행동(行(정행품).깨달음(현수품)이라 하였다.

 

보광법당의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주위에는 여러 세계에서 수많은 보살들이 모여 들었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문수보살을 위시하여 각수(覺首).재수(財首).보수(寶首).목수(目首).진수(進首).법수(法首).지수(智首).현수(賢首)라고 하였다. 이들 보살은 셀 수 없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각각 먼 나라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 결가부좌하고 앉았다. 그것은 우주의 끝에서 찾아 온 보살들의 대집단이었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 대중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면서 "얼마나 멋진 일이냐. 지금까지 이와 같은 보살의 대집회가 열린 적이 한번도 없었느니라"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능력, 성질, 사고방식이 각각 다르므로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신체와 이름으로써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이름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이름에는 실달(悉達).만월(滿月).사자후(師子吼). 석가모니(釋迦牟尼).신선(神仙).노사나(盧舍那).구담(瞿曇).대사문(大沙門).최승(最勝).능도(能度)등이 있으며, 그 수는 이 세계에만 해도 만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에는 선호국(善護國).난양국(難養國).불혜국(佛慧國)등 무수한 나라가 있고, 이들 나라의 동서남북에도 각각 무수한 세계가 있으며, 그 각각의 세계의 부처님 이름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면 어째서 나라와 장소가 다르면 부처님의 이름도 다른 것일까? [여래명호품]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은 모두 부처님이 보살로 계실 때, 인연이 있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온갖 방편과 구업의     음성과, 행업의 과보와 법문의 권도(權道)와, 여러 근(根)이 원하는 바로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4. 사제품

[명호품]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설명 했지만 다음의 [사제품(四諦品)]에서는 사제의 이름이 세계마다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말하자면 앞 품(品)에서는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설한 반면에 이 품에서는 설하는 진리가 다르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사제란 4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의미로서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하며 故.集.滅.道.(고집멸도)를 말한다. 여기서 "제(諦)"란 진리 혹은 진실이라는 뜻이다. 사성제는 팔정도와 함께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한 진리중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사제품]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는 것으로 품을 마감하고 그리고 사성제에 대한 기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사제"에 수많은 이름이 있다는 것을 설한 것이 [사제품]이며 그 설법자는 문수보살이다. 먼저 이 사바세계에서는 "고제"를 가리켜 해(害).변이(變異).경계(境界).취(聚).자(刺).의근(依根).불실(不實).옹(癰).동몽행(童蒙行) 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서 먼저 '변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애착을 가지거나 집착하고 있는 것이 변화되고 파멸되어 가는 것을 말하며, 또한 '취'란 생.노.병.사 등의 사고(四苦), 팔고(八苦)가 모여 있기 때문에 '취'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음의 '의근'이란 고통으로 인해 모든 악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근'이란 고통이란 의미이다. '옹'이란 악성 종양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이것이 생기면 괴로워하므로 고제를 나타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동몽행'이란 어린아이처럼 무지한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도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사바(娑바)란 범어의 '사하(Saha)'의 음을 따서 읽은 것으로서, '참고 견딘다'는 뜻인데, 번역말로는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등으로 표기한다. 이것은 현실세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온갖 고통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므로 사바라고 부르는 것이다.

 

고제를 나타내는 10가지 말은 '인토(忍土)'의 괴로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집제는, 화(火).능괴(能壞).수의(受義).각(覺).방편(方便).결정(決定).망(網).염(念).순중생(順衆生).전도근(顚倒根)이라 부른다. 어느 것이나 고통의 원인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음 멸제는, 무장애(無障碍).이구정(離垢淨).적정(寂靜).무상(無相).불사(不死).무소유(無所有).인연단(因緣斷).멸(滅).진실(眞實).자연주(自然住)라 부른다. 모든 깨달음의 경지와 번뇌의 소멸을 나타내는 말이 열거되어 있다.

 

도제의 다름 이름은, 일승(一乘).취적정(趣寂靜).인도(引導).구극희망(究極希望).상불리(商不離).능사담(能捨담).지비취(至非趣).성인수행(聖人隨行).선인행(仙人行).십장(十藏)등이다. 이들 10가지 이름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가운데 '능사담'이란 짊어진(담) 짐을 버린다는 의미이다.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언제 내릴지 모르는 짐을 지고 죽을 때 까지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마지막의 '십장'이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의 "보살십무진장품(普薩十無盡藏品)"에서 설하는 10종류의 장(藏)을 말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해당하는 품에서 나중에 설명 하기로 한다.

 

이 사바세계에는 사제의 이름이 40억 백천 나유타(인도의 수량단위. 천만 혹은 천억)가 있다고 하므로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 이름도 무수히 많고, 진리도 무수히 많다고 보는 [화엄경]의 가르침은 너무나 광대하고 깊이를 알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 [화엄경]에서는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무수한 진리를 설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는 무수한 진실이 있음을 말해 주기 위해서이다. 괴로운 것도 진실, 마음이 평안한 것도 진실,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진실, 살아가는 것도 진실, 모두가 진실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무수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괴로울 때는 괴로움 또한 진실로 받아 들일 수가 있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이나 말을 조화시키고 우리들 자신의 수행력으로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고 불도(佛道)의 길로 걸어 갈 수 있게 된다.

[사제품]에서 설하는 온갖 진실한 말들은 인생 행로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 이 무수하게 설한 진실한 말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안락하고 풍부하게 될 수 있으며, 이 사바세계에서 괴로움에 견딜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바세계에는 많은 사제의 명칭이 있는 것처럼 동방에 있는 밀훈(密訓)세계, 남방의 최용(最勇)세계, 서방의 이고(離苦)세계, 북방의 진실경(眞實境)세계 등 무수한 세계에도 무량한 사제의 명칭이 있다.

  

5. 여래광명각품

부처님의 명호와 사제의 명칭이 무량하다는 것을 설한 경전은 이어 부처님의 광명이 무량함을 설한다. 그것이 여래광명각품(如來光明覺品)이다.

 

그때 부처님은 두 발바닥의 바퀴무늬에서 무량한 광명을 발하여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것들을 나타내 보였다. 부처님은 사자좌에 앉아 계셨으며 무수한 보살들에게 둘려싸여 있었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세계에는 각각 한 사람의 큰 보살이 있었으며, 그 보살들은 각각 무수한 권속,보살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들은 이른바 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 각수(覺首)보살. 재수(財首)보살. 보수(寶首)보살. 덕수(德首)보살. 목수(目首)보살. 정진수(精進首)보살. 법수(法首)보살. 지수(智首)보살. 현수(賢首)보살 등이었으며, 그들이 떠나온 세계는 금색,보색(寶色)등 여러가지 세계였다.

 

그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여 게송을 읊었다. 문수보살의 게송이 끝나자 부처님의 광명은 다시 시방의 국토를 두루 비추어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나타내 보였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다시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덕을 찬탄했다. 이것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풀이 하면서 부처님의 광명은 무한한 세계를 끝없이 비추었다. 그 게송 가운데

 

  애욕과 온갖 번뇌 떠나서

  언제나 계속하는 윤회를 끊고

  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법을 알아

  한량없는 중생을 모두 건지네

 

라고 하는 것이 있다. 부처님은 애착과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사에 윤회함이 없이 진실을 깨달아 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은 상호(相好)로써 된 것이 아니라

  아무런 형상도 없는 적멸(寂滅)한 법으로서

  모든 묘한 경계를 두루 갖추어

  교화할 상대에 따라 나타 나시네

 

라는 게송도 있다. 얼굴이나 형상으로써 부처님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부처님은 적멸한 법이다. 더구나 형상이 없는 부처님이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것을 갖출 수가 있으며, 중생의 모든 소원하는 바에 응하여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 몸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중생의 부름에 응하여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 것은 중생이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저 괴로워하는 중생들이 외롭고 슬퍼하며 보호받지 못하고

  언제나 온갖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 삼독이 불꽃처럼 맹렬히 타며

  구원할 이도 없는 무간(無間)속에서 밤낮으로 언제나 불에 탈 때

  맹세코 그들의 고통을 들어 주나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경계네

  지혜로운 부처님은 이 고통을 보고

  그들을 위해 법의 다리를 마련하고

  대비로써 법을 설하시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경계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 좋을까?

 

  처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한 이후 인욕하는 법을 즐겨 행하고

  깊은 선정에 들어 진실한 법의 이치를 관찰 하였네

  모든 일체의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가지고 부처님게로 향하게 하나니

  보살들은 이런 법을 잘 행 함으로써 위없는 도(道)를 빨리 이루네

 

이 게송과 같이 실천하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 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부처님을 항상 공양하고, 인욕행을 즐겨 행하고, 깊은 선정에 들어 진실한 법의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광명을 찬탄하는 것으로 이 [여래광명각품]은 끝난다. [여래명호품],[사제품],[여래광명각품]에 의해 부처님의 명호, 부처님이 설한 진실, 부처님의 광명이 무변.부량하다는 것을 알았다.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의 신업.의업.구업이 참으로 무량 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부처님도 무량하고 진실도 무량하고 광명도 무량한 법계야 말로 [화엄경]에서 설하는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