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논문및 평론/교리 및 수행

남방 상좌불교 전통에서의 자애관 수행

실론섬 2015. 7. 1. 19:50

남방 상좌불교 전통에서의 자애관 수행

일중(一中)

 

목  차

Ⅰ. 머리말 

Ⅱ. 자애관(mettā-bhāvanā)의 역할과 의의

Ⅲ. Pāli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

Ⅳ. Pāli 주석문헌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의 실제

Ⅴ. 맺는 말

 

Ⅰ. 머리말 

 

오늘날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자들에게 자관(慈觀), 자애관(慈愛觀, mettā bhāvanā)1), 혹은 자비관(慈悲觀) 이란 용어는 매우 익숙하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자들이 이 자애관을 위빠사나의 보조수행법 혹은 보호수행법2)으로 실천하거나, 위빠사나 수행공덕을 회향하는 차원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자도 수년간 위빠사나 코스에서 자애관을 해왔으나, 빨리(Pāli) 경전이나 주석문헌에 근거한 분명한 이론과 실제적인 수행법에 대해서는 매우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참선이나 위빠사나가 그 고유한 수행법이 있는 것처럼, 자애관도 자애라는 특정한 마음상태를 외부세계로 방사하는 독특한 수행법을 가지고 있다. 이 자애관은 위빠사나와 더불어 상좌 불교 권에서 많이 실천되는 수행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주석서에 나타난 자애관의 수행방법론을 자세하게 다룬 논문도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1) 멧따 바와나(mettā-bhāvanā)를 보통 자관(慈觀), 자애관(慈愛觀), 자비관(慈悲觀)이라고 
   번역한다. 자관이나 자애관이란 번역은 무리가 없으나, 자비관이라고 번역하려면 원문이 
   mettā(자)-karunā(비) bhāvanā(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자애관’으로 
   표기한다.    
2) 보호수행법(caturakkha-bhāvanā)이란 1) 붓다의 특질을 명상하는 불수념(佛隨念, 
   Buddhānussati) 2)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자애관(mettā-bhāvanā) 
   3) 몸의 부정함을 관하는 부정상(不淨想, asubhasaññā) 4) 죽음은 확실하고 피할 수 
   없다고 명상하는 사념(死念, maranāsati)이다. 이 네 수행법들은 여러 위험들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보호수행법이라 하며, 이런 이유로 수행자가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배우고 익힐 가치가 있는 수행법이다. Pa-Auk Sayadaw, 
   Knowing and Seeing, Buddha Dhamma Education Association Inc. http://www.
   buddhanet.net/pdf_file/know-see.pdf), pp.89-96. 좀더 자세한 내용은 Pa-Auk 
   Sayadaw, Light of Wisdom, Kuala Lumpur, WAVE, 1996, pp.50-63 참조.)  

 

그래서 논자는 본 논문에서 남방 상좌불교 전통에서의 자애관(mettā bhāvanā) 수행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먼저 초기경전에 제시된 자애관의 수행결실들을 통해서 이 자애관이 가지는 수행상의 역할과 그 의의를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본론으로는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 그리고 주석문헌에 나타난 자애관은 초기경전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며, 어떻게 체계적으로 발전 정립되었는지를 고찰해볼 것이다. 동시에 자애관의 순차적인 수행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하여, 상좌불교 전통에 나타난 자애관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제시해보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그러면 본 논문이 자애관에 대한 이론적인 확실한 근거를 제공함은 물론, 수행자들의 실제 수행을 위해서도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사용하게 될 주요 참고문헌은 빨리성전협회(PTS)본의 5부 니까야(Nikāya)와 주석 문헌들이다. 이 1차 원전 자료에 대한 번역서와 근. 현대 학자들 수행지도자들의 저술을 2차 참고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Ⅱ. 자애관(mettā-bhāvanā)의 역할과 의의 

 

1. 자애관은 4범주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법 

자애관이라고 알려진 ‘멧따 바와나(mettā-bhāvanā)’는 자애(mettā)를 개발하는 명상수행(bhāvanā)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애관은 ‘다른 이들을 향해 자애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개발하는 수행법’이라고 마하시 스님은 밝히고 있다. 이것은 자비희사(慈悲喜捨)로 이루어진 4 범주(梵住, Brahma-vihāra)3), 혹은 4 무량심(無量心, appamaññā) 수행에서 그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수행법이다. 경전이나 주석문헌들은 자비희사 4범주를 다 함께 다룬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본 논문에서는 오직 자(慈), 자애(慈愛), 자애관(慈愛觀) 만을 독립적으로 다룰 것이다.

3) 4범주에서 범주(梵住)는 Pāli로 ‘Brahma-vihāra'이다. Brahma는 범천의 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의 거룩함(sublime)이나 신성함(divine)을 의미하고, vihāra는 거주
   처를 의미한다. 그래서 4범주는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이나 ’범천의 거주처‘라고 번역
   하여 수행의 대상이나 수행법을 말한다. 이 네 가지 마음을 수행을 통해 완전하게 개발시
   키면, 이것은 한정과 제한이 없이 무량하게 시방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이것을 
   또한 4 무량심(appamaññā)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자애라고 번역되는 빨리어 ‘멧따(metta)’는 무슨 의미인가? 리즈 데이빗의 『Pāli-English Dictionary』에 의하면, ‘사랑, 우호, 연민, 호감(호의), 타인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love, amity, sympathy, friendliness, active interest in others)’이라고 했다. 이 ‘멧따’라는 용어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은 비슷한 역어들을 여러개 제시했다. 그러나 요즈음 학자나 수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영역은 바로 ‘Loving -kindness’이다. 이 단어는 ‘친애, 정, (신의)자애, 인자’라고 한영사전은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빨리어 멧따(mettā)가 지닌 고유한 의미에 가장 가깝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애(慈愛)’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자애는 신(神)의 은총과 같은 자애가 아니라,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닦고 개발한 것으로서,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sukhino vā khemino hontu)’ 그런 거룩하고 고결한 마음이다.

 

2. 자애관 수행의 이익과 수행결실

그럼 이런 자애를 개발하는 자애관(mettā-bhāvanā)을 닦을 경우, 어떤 이익과 수행결실이 있는가? 수행의 전 과정 속에서 이 자애관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그 의의는 무엇인가? 수행법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먼저 초기경전에서 붓다는 이 자애관의 수행결실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래서 그 역할과 의의를 정확하게 파악해내야만 오늘날 우리가 이 수행법을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시켜야 될지에 대한 근거와 타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小部의 經集(Suttanipāta)과 小誦經(Khuddaka-pātha)에 있는 유명한『자애경(Metta sutta)』은 맨 마지막 게송에서 자애관의 수행결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견을 멀리 여의고, 계와 지견을 갖추었으며, 감각적인 욕망을 제어했기에, 그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으리라.” 그리고 小部의 如是語經(Itivuttaka)에 나오는 『자애관경(Mettābhāvanā sutt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한량없는 자애를 마음 챙겨 개발하는 사람은

집착의 무너짐을 보며 족쇄[의 번뇌]가 엷어진다.4)

4) Iti, 21; AN Ⅳ, 150 : Yo ca mettaṃ bhāvayati appamānaṃ patissato, tanū saṃyojanā 
   honti passato upadhikkhayaṃ. 이 게송에서 붓다는 ‘자애를 수행하면 족쇄들이 완전히 
   끊어진다.’ 라는 표현 대신, ‘족쇄들이 엷어진다(tanū saṃyojanā honti)’고 했다. 족쇄
   (saṃyojana)란 존재들을 삼계에 붙들어 매는 10가지 번뇌들을 말한다. 10가지는 유신
   견(sakkāyaditthi), 회의적 의심(vicikicchā), 계금취견(sīlabbataparāmāsa), 감각적인 
   욕망(kāmacchanda), 악의(vyāpāda), 색계에 대한 욕망(rūparāga), 무색계에 대한 
   욕망(arūparāga), 자만, 아만(māna) 산란심(uddaca) 무명(avijjā)이다.)

 

中部의『앗사뿌라 작은 경(Cūḷassapura sutta)』은 ‘자애를 개발하여 내적인 평화를 얻는다.’고 하며,『라훌라교계 대경(Mahārahulovāda sutta)』에서는 “자애관를 닦으면 악의(byāpāda)가 제거될 것이다”라고 한다. 악의 혹은 성냄(avyāpāda, dosa)은 자애와 완전하게 상반된 개념이며, 대치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악의나 성냄, 분노, 증오, 화 같은 부정적인 성향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애의 개발을 권한다. 그래서 ‘악의의 제거를 위해 자애를 닦아야만 한다.’고 붓다는 경전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증지부의 한 경전과 후기경전에 속하는『無碍解道(Paṭisambhidāmagga.무애해도』5)에서는 자심해탈(慈心解脫), 즉 자애(慈, metta)를 통한 마음의 해탈(心解脫, cetovimutti)을 닦고 자주 익히면 11가지 수행결실을 얻는다고 한다. 여기서 자심해탈(慈心解脫, mettā cetovimutti)이란 자애관을 통해 도달한 선정(jhāna), 혹은 몰입삼매(appanā-samādhi)를 말한다. 좀더 부연 설명하자면, 자애의 지속적인 수행으로 탐욕, 악의 등 5개가 다 제거되고 색계 선정에 도달하여 욕계 번뇌로부터 마음이 자유롭고(心解脫) 청정(心淸淨)해졌으며, 자애로 충만한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럼 경전에서 제시하는 11가지 결실이란 무엇인가? 

5)『무애해도』는 이 자심해탈을 설명하기를, ‘성냄에 의한 모든 매임으로부터 해탈한다는 
   [의미에서] 해탈이다. ‘자비(mettā)와 마음(citta)과 해탈(vimutti)이다’는 [의미에서] 자
   비에 의한 해탈이다’ 라고 한다(임승택, 『빠띠삼비다막가 역주』,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1, p.742).

 

편안하게 잠든다. 편안하게 깨어난다. 악몽을 꾸지 않는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사람 아닌 존재들의 사랑을 받는다. 천신들로부터 보호받는다. 불이나 독과 칼 등이 해치지 못한다. 빨리 마음이 삼매에 든다. 안색이 맑다. 혼돈되지 않은 채 죽는다. 최상의 [단계를] 통찰하지 못한다면, [죽어서] 범천에 태어난다.

 

위 인용문들에서 살펴본 자애관의 수행결과들, 즉 ‘모태에 들지 않으리라, 족쇄의 번뇌가 엷어진다, 내적인 평화, 악의의 제거’ 등은 번뇌가 완전히 뿌리 뽑힌 최종의 단계를 말했다기보다는, 아직도 얼마간의 번뇌들이 더 남아있음이 내포된 표현들이다. 여기서 ‘모태(gabbhaseyyaṃ)에 들지 않는다.’는 구절은 아라한(arahant)이나 아나함(anāgāmī)의 단계에 도달한 경우이다. 초기경전에는 자애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으로 아라한과에 도달한다는 언급은 보이지 않고, 아나함의 단계에 도달한다는 내용은 수차례 언급되고 있다. 그러면서 죽으면 [더 이상 모태에 들지 않고] 화생으로 정거천에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든다는 구절로 볼 때, 『자애경』에서 언급되는 ‘모태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은 아나함의 단계를 지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11가지 자애관의 수행결실들도 삼계 해탈이라는 출세간적인 목적과 관련되었다기보다는, 대부분 삼계에서 누릴 수 있는 세간적인 이익과 공덕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수행자의 실 수행과 가장 관련되는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빨리 마음이 삼매에 든다(tuvataṃ cittaṃ samādhiyati)’는 구절이다. 

 

경전에는 마음이 삼매에 들기 위한 직전의 원인과 조건이 행복감(sukha)이라고 말한다. 즉 계행의 구족이라는 기반 아래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 희열이 일어나고 ⇒ 몸이 고요해지고 ⇒ 행복감을 느끼고 ⇒ 행복한 마음은 ⇒ 삼매에 든다6). 이런 순서가 삼매에 드는 의식의 경로인데, 다른 수행주제들과는 달리 자애관은 평안과 안온, 행복감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자애관을 닦으면 상대적으로 빨리 삼매에 든다는 구절은 이런 근거를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수지와 스님(Ven. Sujiva)도 자애관을 닦으면 마음이 빨리 고요해지는 결과가 있음으로, 초심자들에게 적절한 방법이며, 매우 안전한 수행법이라고 한다.

6) SN Ⅳ, 351-358; MN Ⅰ, 283; DN Ⅰ, 73, (250) : 경전에 나타난 정확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그에게 기쁨이 일어난다. 기쁨이 있을 때, 희열이 일어난다. 마음에 
   희열이 있을 때, 몸이 고요해진다. 몸이 고요해지면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한 마음
   은 삼매에 든다(tassa pāmujjam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m vediyati. sukhino cittam samādhiyati.)” 
  『청정도론』도 경전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행복(감)이 삼매의 가장 가까운 원인이
   라고 한다.(대림스님 역,『청정도론1.2.3』초기불전연구원, 2004, p.269.)  

 

3. 자애관의 역할과 의의

지금까지 자애관의 수행결실들을 살펴본 결과,『대념처경』이나『입출식념경』등이 밝힌 것처럼 ‘아라한과의 성취나 완전한 해탈’을 성취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자애관이 수행자를 열반과 해탈로 이끄는 위빠사나(통찰) 수행이라기보다는 세간적인 이익과 공덕이 많은 중간 단계의 선정수행, 즉『청정도론』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마타 수행법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점을 분명하게 인식한 바탕에서, 이 자애관 수행법이 가지는 그 역할과 의의가 무엇인지 간략히 몇 가지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자애관을 닦으면, 해탈이나 아라한과 같은 초세간적인 수행결실은 얻지 못하더라도, 세간적인 이익과 공덕이 많다. 신체적 정신적 안정은 물론 부정적인 심리 성향들을 제거하는 심리치료, 심리치유의 성격을 지닌다. 이것은 또한 사회를 평화와 조화로 이끄는 원리이기도 하다.

 

둘째, 자애관을 닦으면 빨리 삼매에 들어 자심해탈을 얻는다. 또한 범천에 태어나는 길도 된다. 

 

셋째, 자애관으로 얻은 자심해탈은 통찰 수행, 즉 위빠사나의 기반과 바탕이 된다. 뒷장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자애관은 위빠사나 수행으로의 전환도 가능하며, 지관겸수가 가능한 수행법이다. 그러므로 자애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불교수행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도 도출된다. 

 

바로 이와 같이 요약되는 몇 가지 점들이 논자가 보는 자애관 수행의 역할과 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Ⅲ. Pāli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

 

1. 자애를 개발하는 두 가지 방법

빨리(Pāli) 문헌에 나타난 자애(mettā)의 가르침을 보면 대략 두 가지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일상의 실제행위와 사고를 그런 방향으로 돌리도록 애쓰는 방법이고7), 둘째는 선정을 목표로 체계적인 수행을 하는 방법이다. 본 논문에서는 두 번째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초기 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을 논의하기로 하겠다. ‘이 비구 승가에는 자애관 수행에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고 한 초기경전의 언급으로 볼 때, 이 수행법이 붓다 당시부터 수행되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8)

7) 일상 속에서 자애를 실천하라는 가르침은 중부의 33경(MNⅠ, 224)에서 몸과 입으로 
   행동을 함에 자애를 가지고 대한다면, 이것이 승가의 모든 어른과 선배들에 대한 최상의 
   공경이 된다고 했고, 중부의 104경(MN Ⅱ,250)에서는 승가의 도반들 사이에서 몸과 입
   으로 행동을 함에 자애를 유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랑과 존경, 협조, 평화, 조화, 일치로 
   이끄는 원리라고 했다.)
8) 냐나뽀니까 스님 (강대자행 역),『거룩한 마음가짐 -사무량심-』, 고요한 소리, 2000, 
   p.16. 마하시 스님과 우 빤다따 스님은 자애를 개발하는 두 가지 목적을 첫째는 바라밀
   (완성)이나 선업(공덕)을 얻기 위함이고, 둘째는 자심해탈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Mahasi Sayadaw, Brahmavihara Dhamma, pp.33-34, 78. U Pandita Sayadaw, On 
   the Path to Freedom, p.267.) 마하시 전통은 첫째 목적을 위해서 이 자애관을 지도한다.)

 

그럼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은 어떤 수행법인가? 붓다는 직계 제자들에게 이 수행법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5부 경전에는 자애관에 관련된 내용들이 산발적으로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그 자애관 수행과 관련된 경전의 핵심 구절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정형구가 있다. 다만 그 전후 문맥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먼저 그 정형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붓다의 자애관과 자애관의 정형구 

증지부의 『대품(mahāvagga)』을 보면, 어떤 브라만이 질문하기를 ‘붓다께서 지금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높고 큰 의자(침대)는 무엇입니까?’ 라는 은유적인 질문에 붓다는 붓다 자신의 자애관 수행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브라만이여, 여기에서 나는 한 마을이나 읍내를 의지하여 지낸다. 오전이 되면 가사를 수하고, 발우와 (겉)가사를 걸치고 마을이나 읍내로 탁발하러 간다. 탁발에서 얻은 음식을 먹은 뒤, 그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풀과 나무 잎사귀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가부좌를 틀고 윗몸을 반듯하게 세운 뒤,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앉는다.

   

나는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한 방향(東)을 가득 채우며 지낸다. 그와 같이 두 번째(西), 그와 같이 세 번째(南), 그와 같이 네 번째 방향(北)을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가득 채우며 지낸다.] 또한 그렇게 위로(上) 아래로(下) 옆으로(間方), 그리고 모든 곳에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포함한 이 세상을 자애를 지닌 방대하고 크며 무량한 마음으로,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AN Ⅰ, 183

 

위 인용문의 두 번째 문단이 바로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의 전형적인 정형구이다. 자애의 마음을 방향별로 방사하기 시작하여 전 세계를,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무량한 자애로 한꺼번에 다 감싼다는 내용이다. 

 

보통 대부분의 수행법들이 자신의 의식을 내면으로 향하는데 비해서, 이 자애관은 의식을 밖으로, 외부 세계로 그리고 외부 존재들에게 투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는 선정(자심해탈)을 얻은 뒤 자애를 방사했다는 언급은 없지만, 정형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온 세계를 다 자애로 감싸는 일은 이 자심해탈을 얻지 않은 상태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자애의 마음이 충분히 개발되고 확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 현대의 수행지도자들은 체계적인 선정 수행으로 그런 무량한 자애를 개발할 것을 권하고 있다. 

 

3. 자심해탈의 전제조건과 그 수행결과

그럼 자심해탈이라는 선정을 얻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나 준비수행 같은 것은 있는 것일까? 상응부의 『소라고동나팔 경(Saṅkha sutta)』은 자애를 방사하기 전에 먼저 10가지 불선법(不善法)들을 다 끊어 그런 부정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마음상태와 자심해탈의 수행결과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살생을 끊고 살생에서 떠나있고, 도둑질을 끊고 도둑질에서 떠나 있으며, 사음을 끊고 사음에서 떠나있으며, 거짓말을 끊고, 거짓말에서 떠나있으며, 속이는 말에서 떠나있고, 거친 말에서 떠나있고, 쓸데없는 말에서 떠나있다. 탐욕을 끊어 탐욕 없고, 악의와 성냄을 끊어 악의 없는 마음이 되고, 사견을 버려 정견자가 된다. 

 

탐욕 없고 악의 없는 거룩한 제자는 혼돈됨이 없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지속적으로 마음 챙기면서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방향을 … …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이렇게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닦고 자주 익히면, 한정된 업(pamāṇakatam kammam)은 거기에 남아있거나 거기에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위 인용문은 자심해탈을 얻기 전의 전제조건으로서 먼저 계의 청정, 즉 10가지 불선법을 다 여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탐욕 없고 악의 없는 거룩한 제자는’이란 구절은 이미 선정의 마음상태에서 자애를 방사하는 것이다. 이런 자심해탈을 계속 수행할 경우, 한정된 업(pamāṇakatam kammam)9), 즉 욕계(欲界)의 업은 더 이상 색계(色界) 선정의 마음에 남거나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욕계 업이 색계 업을 제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심해탈은 색계 선정의 마음이므로 보다 수승한 색계 마음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욕계의 업은 작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9) Bhikkhu Bodhi, The Connected Discourses of the Buddha, pp.14549-50. 보디스님은 
   'pamāṇakataṃ kammaṃ'을 ‘limitted kamma(제한된, 한정된 업)’라고 번역하며, 그것을 
   ‘욕계의 업’이라고 해석했다. 그에 비해서 색계의 업은 ‘한정 없고 제한 없는 무량한
   (limitless, measureless) 업(appamāaṇakatam kamma)’이라고 한다. ‘한정 없고 무량한 
   업’이라는 것은 [수행을 통해 도달한 색계 선정의 의식상태가] 한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색계의 업은 한정이 없고 무량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개발된 무량한(appamañña) 자애를 방사하려면, 계행의 청정과 선정(jhāna)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애를 방사하며 지낸다는 정형구의 내용 자체를 경전은 이미 ‘자심해탈’이라고 명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4. 자애관과 위빠사나 혹은 지관겸수

중부의 『앗타까나가라 경(Aṭṭhakanāgara sutta)』은 자애관과 관련지어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닦는 ‘지관겸수(止觀兼修)의 방법을 보여주는 흥미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 경전은 아난다 장로의 설법인데, 재가인 다사마(Dasama)가 '부처님이 가르치신 해탈에 이르는 일법(一法)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초선에서 4선에 오른 뒤 자애를 방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방향을 … …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수행자는 다음과 같이 숙고해야만 한다. : ‘이 자심해탈은 조건된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건된 것이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나 다 무상한 것이며, 사라지게 되어있는 법이다’라고 알아야만 한다(pajānāti). 그 기반에서 그는 번뇌의 소멸을 얻는다. 그러나 만약 법에 대한 욕망과 법에 대한 즐거움 때문에 번뇌의 소멸을 얻지 못했다면, 그는 5하 분결을 끊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거기서 다시 돌아옴이 없이 마지막 열반에 들 것이다. MN Ⅰ, 351

 

인용문의 자애관 부분은 선정 수행이고, 자심해탈을 無常(anicca)한 것으로 보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이다. 경전의 전반부 내용을 살펴보면, 수행자가 초선에 오른 뒤 초선도 ‘조건된 것이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것도 ‘무상하고 변하는 현상’이라고 알아야한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그리고 2선, 3선, 4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선정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그것들이 다 무상하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그러니까 사마타(초선) ⇒위빠사나 ⇒사마타(2선) ⇒위빠사나 ⇒ 사마타(3선) ⇒ 위빠사나 ... 등과 같이 어느 선정에서든지 출정한 후에 바로 위빠사나를 닦을 수 있다는 근거를 보여준다. 자애관 수행도 한 가지 수행주제로 두 가지 수행방법,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위 경전을 보면 확인된다. 

 

그리고 인용문에서 말하는 ‘법에 대한 욕망(dhammarāga)이나 법에 대한 즐거움(dhammanandiyā)’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과 관련된 욕망과 집착’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사마타 위빠사나와 관련된 모든 욕망과 집착을 버릴 수 있다면, 아라한이 되나, 그렇지 못하면 그는 아나함(anāgāmī)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마하시 스님이 『제 2의 자애경』이라고 하는 증지부의 한 경전도 자애관을 닦은 뒤 바로 이어서 위빠사나를 닦는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어떤 사람이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방향을 … … 자애를 지닌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지낸다.

 

그는 거기에서 물질로 일어난 것, 느낌으로 일어난 것, 인식으로 일어난 것, 형성작용으로 일어난 것, 의식으로 일어난 것들은 무엇이든지간에 그 법(현상)들을 다 무상한 것이며, 괴로움이고, 질병이며, 부스럼이고, 화살이며, 불행이고, 병이며, 저쪽의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며, 빈 것이며, 무아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몸이 무너져 죽으면 그는 정거천의 천신으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재생은 범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AN Ⅱ, 130    

 

위 두 개의 인용문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앞의 인용문은 자애를 방사하고 난 뒤, 그 ‘자심해탈 자체가 조건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무상하다는 통찰을 하지만, 바로 위의 인용문은 자애를 방사하고 난 뒤, ’나‘라고 부르는 이 오온이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라고 인식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그러니까 자심해탈의 사마타 수행에 이어서 오온을 무상으로 보는 위빠사나 수행을 차제로 닦는 것이다. 위의 두 경전에 나타난 수행방법을 살펴볼 때, 이런 방식의 수행법을 주석서는 ‘지관겸수(止觀兼修, samathavipassanā-yuganandha)10)라고 한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내용들은 초기경전에 나타난 지관겸수, 혹은 정혜쌍수의 방법이다. 

10) AN-a Ⅲ, 143. 증지부 주석서는 초선에서 8정까지 차례대로 오르면서 입정(入定) 
    상태에서는 사마타를, 출정(出定)해서는 위빠사나를 닦는 방법을 지관겸수라고 설
    명한다. 입정 상태에서는 명색의 현상을 관찰할 수 없으므로 선정에서 나온 직후에 
    명색의 현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를 닦는다. 중부의 Anupada sutta에서 사리뿟다
    의 수행과정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Pa Auk Sayadaw, Knowing and Seeing, 
    pp.212-213).  

 

지금까지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았다. 선정 수행인 자애관이 선정 수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행의 구족과 선정의 바탕 아래 통찰, 즉 위빠사나 수행으로의 전환도 가능하고, 더불어서 이 하나의 수행주제로 지관겸수가 가능하다는 문헌적 근거들을 경전 내에서 확보한 것이 본 논문의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의 내용은 너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 내용만으로는 오늘의 수행자들이 실제적인 수행지침서로 삼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좀더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립된 자애관 수행법이 필요한데, 그것은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살펴보고 제시하기로 하겠다. 

 

Ⅳ. 주석문헌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의 실제

 

1. 주석문헌이 지니는 수행 측면에서의 가치 

빨리(Pāli) 문헌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살펴볼 때, 초기경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이 논서의 성격을 지닌 후기경전 『무애해도(Paṭisambhidāmagga)』에는 등장한다. 그리고 초기경전이나 『무애해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부분이 주석서 『청정도론』에는 보다 더 체계적으로 정립된 형태로 등장한다. 이런 측면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것을 두고 수행법의 발전과정이라고 해야 하는가? 경전과 주석서 사이에서 ‘붓다의 직설과 후대의 첨가’라는 문제는 아직도 논쟁의 씨앗을 안고 있는 미해결의 과제이긴 하지만, 주석서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상좌 불교 전통의 크나큰 유산이며,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참고서로서 중대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일 것이다.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은 수행과정이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 반면에 주석서는 경전을 바탕으로 구체적이며 수행법의 순차적인 수행과정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서는 이 수행법에 대한 이론적인 측면은 물론 실 수행에 적용시키는데 훌륭한 지침서와 근거 자료가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주석서가 없었다면, 과연 상좌 불교의 수행전통이 지금까지 제대로 전승되었을까는 의문이다. 이런 점에서 논자는 상좌불교 승가가 2550여 년 동안 주석서를 잃어버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잘 보존시켜온 점에 대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본 논문은 이런 이해의 기반 아래 주석서 『청정도론』에 나타난 자애관 수행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자애관을 닦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준비사항 

『청정도론(Visuddhimagga)』에서는 자애 수행이 두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한 가지는 보편적인 수행법(一切處業處, sabbatthaka-kammaṭṭāna, Vism 97)이고, 또 한 가지는 [특별한 수행법으로서] 4범주(4무량심)의 한가지로 제시될 때이다(Vism 295-325). 보편적인 수행법이란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미리 예비적으로 동반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제시되는 자애관은 나중에 간략히 살펴볼 것이지만, 본 논문은 4범주의 하나로 제시되는 자애관(mettā bhāvan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정도론(Visuddhimagga)』은 이 자애관 수행을 논하는 부분에서 자애관을 닦기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준비자세와 마음 자세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자애를 닦고자 하는 수행자는 그가 초심자라면 장애11)를 끊고 명상주제를 배워 공양을 마친 뒤, 식곤증을 떨쳐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잘 마련된 자리에 편안히 앉아 먼저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이 수행으로 성냄을 버려야하고 인욕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허물을 버릴 수 없고 알지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성냄의 허물을 살펴보고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격리시켜, [많은] 이익을 가진 인욕에다 묶어두기 위해서 자애의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11) 여기서 ‘장애’라는 것은 감각적인 욕망, 악의 등의 5장애(pañcanivaranā)가 아니라, 
    수행을 하는데 걱정이나 근심을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외적인 10가지 장
    애(dasa-paḷibodhā)를 말한다. 그것들은 거처, 가족, 이득, 대중, 공사, 여행, 친척, 
    질병, 서적, 신통 등이다. 자세한 것은 대림스님, 『청정도론 1』. 초기불전연구원, 
    2004, pp.278-291 참조.)

 

그럼 자애관 수행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을 보면, 자애의 대상을 다만 모든 중생, 모든 생명, 모든 존재들이라고 통칭한다. 그러나 『무애해도』를 보면, 여성, 남성, 범인, 성인, 등 대상을 좀더 세분화시키고 수행방법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체계화시킨 점이 드러난다. 그런데 『청정도론』은 자애의 대상을 보다 더 세분화시켰다. 수행 방법과 자애의 대상을 매우 실제적이면서 정확하게 그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자애관 수행의 일차적 대상은 사람이다. 그것도 개별적인 사람(individual person)이다. 그러나 『청정도론』은 자애관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자애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될 사람의 부류와 그 이유를 지적하고 있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싫어하는 사람(appiyapuggala),

둘째는 아주 좋아하는 친구(atippiyasahāyaka), 

셋째는 무관한 사람(majjhatta),

넷째는 원한 맺힌 사람(verīpuggala)이다.  

그리고 다섯째는 이성(lingavisabhāga),

여섯째는 죽은 자(kālakata puggala)이다. 

 

그럼 왜 맨 처음 이 여섯 부류의 사람들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가? 주석서는 설명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자의 위치에 두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친구를 무관한 자의 위치에 두는 것도, 무관한 자를 존경하는 분의 위치나 좋아하는 자의 위치에 두는 것이 수행자를 어렵고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한 맺힌 사람을 생각할 때는 노여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싫은 사람 등은 제일 먼저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좋아하는 이성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을 때는 애욕이 일어나기 때문에, 특정한 이성을 정해놓고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되며

12), 죽은 사람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을 때에는 근접삼매(upacāra-samādhi)13)나 본 삼매(appanā-samādhi)를 다 얻지 못하기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해서도 절대로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12) '특정한 이성을 정해놓고 자애를 닦아서는 안되며'라는 것은 여기서 동성에게만 
    자애관을 닦고, 이성에게는 자애관을 닦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이성을 맨 처음 자애의 대상으로 삼을 때 나타나는 허물과 위험이 있으므로, 먼저 
    선정에 도달한 다음, 여성 전체나 남성 전체를 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예를 들면, 
    ‘모든 여자들이 (혹은 모든 남자들이) 다 행복하기를’이라고. 그리고 위에서 언급
    했던 네 부류의 사람들도 나중에 선정(자심해탈)에 도달하고 나서 닦으면 된다고 
    한다. (Pa-Auk Sayadaw, Knowing and Seeing, pp.75-76.) 
13) 근접삼매(근행정)란 마음이 대상에 몰입되어 5개가 다 제거된 상태이나, 아직 선정
    (초선)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가까이 근접해 있는 상태이다. 몰입삼매(본 삼매, 안지
    정)는 이미 선정에 도달한 상태로서 보통 초선에서 4선을 말한다. 죽은 자는 이미 
    몸을 바꿨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행 대상이 없는 상태이다. 수행대상이 없으면 그에 
    따른 심상(nimitta)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근접삼매와 본 삼매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럼 가장 먼저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야할 사람은 누구인가? 『청정도론』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atta)이다.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할 때 자신에게 물질이 있어야만 가능하듯, 남에게 정신적인 자애를 주려고 할 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청정도론』은 자애관을 시작할 때 먼저 자신을 향해 자애를 거듭 거듭 닦아야 하고,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난 뒤 다음 사람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3. 자애관의 순차적인 수행 방법-(1) 

『청정도론』은 자애를 닦아나가야 할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자기 자신(atta)

둘째는 아주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atipiya) 

셋째는 무관한 사람(majjhatta)

넷째는 원한 맺힌 사람(veri) 

 

타인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기 전에, 맨 먼저 자기 자신을 자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은 초기경전이나 『무애해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청정도론』에서만 등장할 뿐이다. 이것이 만약 붓다의 실제 가르침이었다면, 초기경전의 어딘가에는 한번쯤 등장할 만도 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럼 이 가르침은 어디서 왔을까? 율장과 경전만을 붓다의 직설이라고 보는 학자나 수행자들은 아마 이런 내용을 후대의 첨가물로 간주할 것이고, 그래서 이런 것은 붓다의 수행법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청정도론』도 경전과 이 주석서의 말씀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자신에 대해 자애를 닦으라는 것은 다만 본보기로 설했기 때문이다. 비록 수행자가 백년이나 천년동안 ‘부디 내가 행복하기를‘이라는 방식으로 자애관을  닦는다고 해도 본 삼매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기를!’ 하고 닦을 때 ‘마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고,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중생들도 참으로 그와 같다’라고 자기를 본보기로 삼을 때, 다른 중생들의 이익(hita)과 행복(sukha)에 대한 원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자기를 자애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니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그런 마음상태를 개발하고, 마음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들기 위함이 먼저 자기를 자애의 대상으로 삼는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는 어떻게 닦는 것일까? 그 수행방법은 무엇인가? 자애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수행자가 사용하는 자애관의 정형화된 문구가 있는데 살펴보기로 하겠다.

 

부디 내가 행복하기를, 고통이 없기를(aham sukhito homi, nidukkho!)

(혹은),

1. 부디 내가 원한이 없기를(aham avero homi), 

2. 부디 내가 악의가 없기를(aham avyāpajjo homi) 

3. 부디 내가 근심이 없기를(aham anīgho homi) 

4. 부디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aham sukhī attānam pariharāmi)  

 

위와 같은 네 가지 문구를 사용하여 먼저 자기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나면, 그 다음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자애를 닦으라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를 닦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4가지 문구를 사용한다. 다만 사람만 바꾸어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자애를 쉽게 일으키기 위해서 존경하고 공경하는 스승이나 스승에 필적할 만한분에 대하여, 그분에게서 발견되는 좋은 말씀 등과 존중과 공경을 생기게 하는 계행과 학식 등을 계속해서 생각하여 “이런 참된 분께서 행복하시길, 고통이 없으시길! 이라는 방식으로 자애를 닦아야 한다. 수행자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본 삼매에 든다고 한다. 그럼 4가지 문구를 사용하여 자애를 닦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부디 이런 참된 분께서 행복하기를, 고통이 없기를(ayam sappuriso sukhī hotu, nidukkho!)

(혹은),

1. 부디 이런 참된 분께서 원한이 없기를(ayam sappuriso avero hotu) 

2. 부디 이런 참된 분께서 악의가 없기를(ayam sappuriso avyāpajjo hotu) 

3. 부디 이런 참된 분께서 근심이 없기를(ayam sappuriso anīgho hotu) 

4. 부디 이런 참된 분께서 행복하게 살기를(ayam sappuriso sukhī attānam pariharātu)

   

위와 같은 방법으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자애를 닦아나간다. 그러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자애를 닦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런 한계를 부수고자 할 때는 그 다음으로 아주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무관한 사람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원한 맺힌 사람에 대해서 자애를 닦아야 한다. 그러나 원한 맺힌 사람이 없거나 대장부 기질을 타고나서 해를 입더라도 남들에 대해 원수라는 인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 항목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원한 맺힌 사람이 있을 경우를 말한다. 

 

만약 수행자가 원한 맺힌 사람, 즉 원수에게 마음을 가져갈 때, 그가 지은 해악이 기억나서 적개심이 일어난다면 처음에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 거듭거듭 자애의 증득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거듭거듭 그 사람에 대해 자애를 닦음으로서 적개심을 제거해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노력해도 적개심이 제거되지 않으면, 붓다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자기 자신을 훈계하거나 붓다의 전생담(Jātaka)을 반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기의 적개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원수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거듭거듭 자애를 닦으면서 자기 자신, 좋아하는 사람, 무관한 사람, 그리고 원한 맺힌 사람이라는 이 네 부류의 사람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성취하면서 한계를 부수어야(sīmāsambheda) 한다. 

 

이렇게 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구별과 차별의 한계를 부술 때, 비구는 표상(nimitta)14)과 근접삼매를 얻는다. 한계를 부순 뒤 그 표상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지을 때 어려움 없이 본 삼매에 든다. 그러면 자애와 함께한 초선을 얻는다. 이것을 얻은 뒤 차례대로 그 표상을 반복하여 닦고 많이 공부 지을 때, 제3선을 얻는다. 여기서 수행자는 초선이나 2선, 3선 등의 어느 한 선정을 통해서 경전이나 논서에서 설한 것과 같이 온 세계를 자애로 가득 채우는 그런 자애관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초선 등으로 마음이 본 삼매에 든 자 만이 이 변환(vikubbana)을 이루기 때문이다. 

14) 표상이라고 번역한 ‘니밋따 nimitta’는 여러 의미가 있다. 수행의 문맥상에서 볼 때는 
    수행 대상이나 수행을 통해 생긴 영상, 심상(mental image)을 의미한다. 이 nimitta는 
    1) 준비 대상(parikamma-nimitta) 2) 익힌 심상(uggaha-nimitta) 3) 대체 심상
    (paṭibhāga-nimitta) 등 세 가지가 있다. 자애관에서의 준비 대상은 수행자가 자애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이 해당된다. 익힌 심상은 준비대상인 사람이 마음속에 영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대체 심상은 두 번째 익힌 심상으로부터 생겨난 영상으로 보다 
    더 정제되고 확대되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세 번째 심상을 통해서 5장애는 제거되
    며, 근접삼매와 본 삼매가 일어나 선정에 도달한다.)

 

이런 변환은 오직 본 삼매에 든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무애해도』에서 “제한 없이 포괄적으로 방사하는 자심해탈을 다섯 가지 방법으로, 한정적인 자심해탈을 일곱 가지 방법으로, 방향별 자심해탈을 열 가지 방법으로 닦는다.” 는 것도 본 삼매에 든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그럼『무애해도』와『청정도론』에 나타난 이 세 가지 자애관 수행법을 살펴보기 전에, 또 다른 방법의 자애관 수행을 하나 더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4. 자애관의 순차적인 수행 방법-(2) 

여기서 소개할 자애관은『무애해도』나『청정도론』의 4범주 수행 편에는 언급되지 않고,『청정도론』의 명상주제의 습득(kammaṭṭhānagahana)이란 부분에서 단 네 줄로 언급된다. 자애관을 수행하는데 또 다른 순차적인 방법이 있음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에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청정도론』에는 “자애와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D.ⅰ.250)”등으로 설한 것은 취하는 것에 따라 설한 것이다. 한 집, 두 집 등을 통해 점점 한 방향의 중생을 취하여 닦으면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라고 설한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떻게 닦는 것인가? 『청정도론』에는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예문이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아차리야 붓다락키따 스님의 『자비관』을 참고로 한다. 그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부류의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자애를 닦아 그 한계를 부수고 나면, 이제는 자기 주변인물에서 벗어나 다중을 향해 자비를 방사해 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속한 작은 범위부터 시작하여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 가면서,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며 온 세계를 자애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디 이 집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집을 영상화하고 다음에는 옆집과 그 식구들을 영상화한다. 이렇게 한 집 한 집을 대상으로 삼아 마침내 그 거리의 모든 집들이 자애로 감싸일 때까지 계속한다. 다음에는 그 옆 거리, 그 다음 거리의 순서로 온 이웃과 동네를 덮어나간다. 그런 다음에는 방향을 따라 점점 넓혀가면서 분명하게 영상화시키고는 자애의 광선을 풍성하게 펼친다. 이렇게 마을 전체 혹은, 도시 전체를 감싼 다음 그 지방과 주(나라) 전체를 감싸면서 자애념을 방사한다. 

 

부디 이 거대한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다 평화롭고 안녕하기를! 전쟁도 분규도 불행도 병고도 없기를! 우애와 행복, 자비와 지혜로 빛나는 가운데 이 거대한 국토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풍요를 누리기를!  

 

이와 같이 수행자는 각 대륙에서 지구로 그리고 온 우주로 자애의 빛을 투사하고 방사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동서남북과 그 간방 그리고 상하, 이렇게 시방 세계에 자애를 방사해나가는 방법이다. 그럼 『무애해도』에 나타난 세 가지 자애관 수행법과 『청정도론』의 설명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5. 세 가지 방식의 자애관 수행법  

『무애해도(Patisambhidamagga)』에서는 세 가지 방식의 자심해탈, 혹은 세 가지 방법의 자애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1) 포괄적 방사의 자심해탈-5 가지, 2) 한정적 방사의 자심해탈-7 가지, 3) 방향별 방사의 자심해탈-10 가지이다.  청정도론은 위의 세 가지 방법은 본 삼매에 든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방법들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포괄적 방사(anodhiso-pharaṇā) 의 자애관

이 방법은 자애의 대상을 특정하게 제한하거나 한정시키지 않고 일체 중생들을 다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포괄적 방사(anodhiso-pharaṇā)라고 한다. 여기서 Pāli 원문을 각주로 처리하지 않고, 좀더 선명한 이해를 위해 본문에 포함시킨다. 

 

1. 부디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sabbe sattā averā hontu) 

   부디 모든 중생들이 악의가 없기를(sabbe sattā abyāpajja hontu) 

   부디 모든 중생들이 근심이 없기를(sabbe sattā anīghā hontu) 

   부디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게 살기를(sabbe sattā sukhī attānam pariharantu)

2. 부디 모든 생명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sabbe pānā averā hontu abyāpajja hontu anīghā hontu sukhī attānam pariharantu)

3. 부디 모든 존재들이(sabbe bhūtā) … 

4. 부디 모든 사람들이(sabbe puggalā) …

5. 부디 몸을 가진 모든 자들이(sabbe attabhāva -pariyāpanna) … 

     

여기서 모든 존재들을 5가지로 구분하지만, 실제로 그 다섯 가지는 다 동의어라고 한다. 

 

2) 한정적 방사(odhiso-pharaṇā)의 자애관 

이 방법은 수행자가 자애의 대상을 특정한 그룹별로 한정시키고 제한 시켜서 자애를 방사하기 때문에 한정적 방사(odhiso-pharaṇā)라고 한다. 『무애해도』는 7가지로 나누어 제시하는데 다음과 같다. 

 

1. 부디 모든 여성들이 원한이 없기를(sabbe itthiyo averā hontu)          

   부디 모든 여성들이 악의가 없기를(sabbe itthiyo abyāpajja hontu)  

   부디 모든 여성들이 근심이 없기를(sabbe itthiyo anīghā hontu)  

   부디 모든 여성들이 행복하게 살기를!(sabbe itthiyo sukhī attānam pariharantu)

2. 부디 모든 남성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sabbe purisā averā hontu abyāpajja hontu anīghā hontu sukhī attānam pariharantu)

3. 부디 모든 성인들이(sabbe ariyā ) …

4. 부디 모든 범인들이(sabbe anariyā) …

5. 부디 모든 천신들이 (sabbe devā) …

6. 부디 모든 인간들이(sabbe maanussā) … 

7. 부디 모든 악도 중생들이(sabbe vinipātikā) …

 

여기서 자애의 대상은 존재들을 성별로, 성자와 범부들로 그리고 재생에 따른 육도(六道)를 셋으로 나누어 설한 것이다. 

 

3) 방향별 방사(disā-pharaṇā)의 자애관

이 방법은 수행자가 특정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 안의 중생들에게 자애를 방사하기 때문에 방향별 방사(disā-pharaṇā)라고 한다. 동서남북과 그 간방 그리고 상하를 다 합쳐 시방(十方) 세계를 자애로 가득 채우는 방법이다. 그럼 먼저 이 방향별 방사의 자애관을 살펴보고, 다음에는 이 방법에 포괄적 방사 5가지와 한정적 방사 7가지를 함께 적용시켜서 그 전체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Ⅰ) 방향별 방사-10 

1. 부디 동방의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sabbe puratthimāya disāya sattā averā hontu). 

   부디 동방의 모든 중생들이 악의가 없기를

   (sabbe puratthimāya disāya sattā abyāpajjā hontu).  

   부디 동방의 모든 중생들이 근심이 없기를 

   (sabbe puratthimāya disāya sattā anīghā hontu).  

   부디 동방의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sabbe puratthimāya disāya sattā sukhī attānam pariharantu)

2. 부디 서방의(pacchimāya disāya)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3. 부디 북방의(uttarāya disāya) …

4. 부디 남방의(dakkhināya disāya) …

5. 부디 동북방의(puratthimāya anudisāya) … 

6. 부디 서남방의(pacchimāya anudisāya) …

7. 부디 서북방의(uttarāya anudisāya) …

8. 부디 동남방의(dakkhināya anudisāya) …

9. 부디 하방(下方)의(hetthimāya disāya) …

10. 부디 상방(上方)의(uparimāya disāya) … 

 

(Ⅱ) 방향별 방사에 포괄적 방사를 적용한 방법-50 

1. 부디 동방의 모든 생명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부디 상방의 모든 생명들이 … 

(Ⅲ)

1. 부디 동방의 모든 존재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Ⅳ) 

1. 부디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Ⅴ)

1. 부디 동방의 모든 몸을 가진 자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Ⅵ) 방향별 방사에 한정적 방사를 적용한 방법-70

1. 부디 동방의 모든 여성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Ⅶ)

1. 부디 동방의 모든 남성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Ⅷ)

1. 부디 동방의 모든 성자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Ⅸ)

1. 부디 동방의 모든 범부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Ⅹ)

1. 부디 동방의 모든 천신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XI)

1. 부디 동방의 모든 인간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동북방의 … 6. … 7. … 8. …  9. … 10. …

(XII)

1. 부디 동방의 모든 악처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2. 부디 서방의 … 3. 북방의 … 4. 남방의 … 5. … 6. … 7. … 8. …  9. … 10. … 

 

위와 같은 방법이『무애해도』와『청정도론』에 나타난 방향별 방사의 자애관 수행법이다. 10 가지 방향별 방사에 포괄적 방사 5 가지를 적용시키면 50이 된다. 그리고 10 방향별 방사에 한정적 방사 7 가지를 적용시키면 70이 된다. 그래서 모두 120 가지가 된다.(50+70=120). 이 120가지 대상 혹은 범주에 자애관 수행의 4언구를 각각 적용시키면 모두 480이 된다. 그러니까 방향별 방사에서만 480여 가지 범주가 있고, 포괄적 방사에서 20 가지(5x4), 한정적 방사에서 28가지(7x4) 범주가 있다. 그래서 자애관에는 모두 528가지(480+20+28) 자애 대상의 범주가 있다. 이들 중 어떤 것을 통해서든지 자심해탈이라는 선정(jhāna)에 도달할 수 있다. 

 

6. 보편적인 수행주제로서의 자애관 수행법 

위에서 살펴보았던 자애관은 4범주의 하나로 제시된 자애관 수행법이었고, 지금 여기서 살펴볼 것은 보편적인 수행주제(sabbatthaka-kammaṭṭhāna)로서의 자애관 수행법이다. 이 방법은 선정의 도달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 수행을 닦기 전에 수행자의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고, 여러 위험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게 해주는 보호수행법, 혹은 호주 역할의 자애관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애의 대상은 사원 내에서 함께 수행하는 비구 대중과 천신, 근처 마을의 지도자, 그리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한 일체 중생들이 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사원이나 수행센터를 중심으로 한 일정지역을 자애 수행의 범위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디 이 사원에 있는 모든 비구들이 다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Imasmiṃ ārāme sabbe bhikkhū sukhitā hontu, niddukkha!)

혹은, 

부디 이 사원에 있는 모든 비구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Imasmiṃ ārāme sabbe bhikkhū averā hontu abyāpajjhā hontu anīghā hontu sukhī-    attānam pariharantu)

 

부디 이 사원에 있는 모든 천신들이 다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Imasmiṃ ārāme sabbe devatā sukhīto hontu, nidukkho!) 

3. 부디 이 사원 근처 마을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이 … 

4. 부디 이 사원 근처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중생들이 …

 

이와 같은 방법으로 차례차례 자애의 대상을 바꿔가면서 수행을 하다보면, 사원 내에 있는 호법 천신들이 그 수행자를 보호하고, 탁발 가는 마을의 지도자들이 그를 보호한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에 대한 자애로 모든 곳에 장애 없이 다닌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방법은 수행자의 특정한 근기나 기질에 상관없이 누구나 닦아야할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주석서는 대략 6가지 방법으로 자애관을 설명하고 있다.  

 

Ⅴ. 맺는 말

 

지금까지 초기경전과 주석문헌에 나타난 남방 상좌불교 전통에서의 자애관 수행법을 자세히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은 시방 세계로 무량한 자애를 방사한다는 수행결과로서의 자애관이 제시되어 있는 반면, 주석서에 나타난 자애관은 그런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방법론이 제시되어 있었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자애관은 선정 수행일 뿐만 아니라, 자심해탈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으로의 전환과 지관겸수가 가능한 수행주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주석서에 나타난 자애관은 초심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초반부의 체계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 수행법을 실 수행에 적용하고 활용하는데 큰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자애관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이라는 자애의 언구(mettā-vacīkam)를 언어화(verbalization) 하고, 자애의 대상을 영상화, 혹은 관상(visualization)하는 방법을 쓰며, 빛(light)과 의지(will)의 힘을 외부 세계의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고 방사하는 특수한 테크닉들이 어우러진 독특한 수행법이다. 

 

이런 자애관을 수행하는 방법으로는 개인 상대 방식과 다중 상대 방식이 있으며, 선정을 개발하는 특별한 수행주제로서의 자애관과 선업 공덕이나 바라밀을 쌓는 보편적인 수행주제로서의 자애관이 있다. 더불어서 일상생활에서 신구의 3업을 통해 늘 자애를 개발해야하며, 자애관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호(신)주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경전과 주석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으나 논자가 그동안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결과, 현재 남방 상좌불교의 여러 전통들은 이 수행법을 위빠사나의 보조수행법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마하시 전통은 바라밀과 선업공덕을 얻기 위한 보편적인 수행법으로서 이 자애관을 실천하고 있고, 레디 사야도 전통을 따르는 고엔카지는 이 자애관을 위빠사나 수행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차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반면 파옥(Pa-Auk) 사야도는 『청정도론』에서 제시한대로 이 자애관을 본격적인 선정 수행법으로 지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이 수행법은 현대인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훌륭한 대안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