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야단법석

나도 불자님에게 - 윤회의 가르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실론섬 2015. 9. 28. 18:39

윤회의 가르침은 불교에서는 도덕교과서와 같은 것 입니다. 인간이 왜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윤회의 가르침에서 배우게 됩니다. 또한 윤회는 숙명론도 아니고 더더욱 비관론은 아닙니다. 여기서 복잡한 윤회에 대한 설명은 지면상 생략 합니다.

 

우리는 시작조차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인과에 얽혀 있습니다. 그 과거의 행위들이 지금의 우리 삶을 결정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행위들이 미래를 결정하게 됩니다. 좋든 싫든 간에 현재의 인간은 과거에 자신이 지은 행위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미래에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에서 윤리적 가치쪽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이에 의지해서 살아나가도록 대중들에게 훈계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의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라고 인과법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에 대한 교설은, 다른 생명체의 안녕에 미치는 자신의 행위의 효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만드는 도덕적 책임감은 우리를 윤리적으로도 향상시키지만 현재나 미래에 우리 각자의 성향이 더 나아지도록 도와줍니다.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는 윤회 속에서의 이 한 생에는, 인과관계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는, 세상을 멀리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자비심을 기르는 계기가 됩니다. 재생(윤회)의 진리는 중생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은 열망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소중하고 가까운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할 때, 이 같은 열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지적인 추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충동입니다. 삶과 죽음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는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자연스런 요구입니다.

 

삶이 이 생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슬픔과 기쁨, 걱정과 희망, 상실과 이득으로 가득찬 지금의 생은, 작용과 반작용의 위대한 원칙에 따라 논리정연하게 전개되는 재생의 결과임을 충분히 알게 될 때 인생은 더이상 불가사의도 수수께끼도 아닙니다. 그렇게되면 삶이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삶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심장한 중요성을 띠게 됩니다. 인생은 이제 사건과 상황들의 지루한 반복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느껴집니다. 새로운 시야가 활짝 열립니다.

 

자기 운명의 배를 조정하는 것이 자신이고, 자신의 미래의 생을 짓는 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눈뜨기 시작할 때, 인생을 보는 견해는 완전히 새로 자리잡습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 말, 행위가 스스로의 미래를 건설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과 행위 면에서 점점 더 조심하여 선택하게 됩니다.

 

자신이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고 자신있게 다음 생에서의 행복한 경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설혹 우리가 좋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업이란 아주 마감된 사항이 아니고 끊임없이 만들어져가는 것이기에 현재의 좋은 행위로 나쁜 행위의 과보가 수정되고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역시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누구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과, 참된 마음으로 시작한 그러한 일은 설혹 죽음이 끼여들어 미완으로 남게 되는 경우에도 내생에 다시 착수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윤회에 대한 이해는 우리 자신의 삶을 정화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까지도 예외없이 순화시켜 줍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삶이라는 위대한 여행의 도반(道伴)들임을, 우리들이 따르고 있는 보편적 법칙과 기본적 원칙을 똑같이 따르고 있는 동반자, 같은 배를 타고 여행하는 동승객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항상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 준비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언제나 적대자를 용서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게 되기를 항상 기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윤회 한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순간순간 삶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이며, 삶은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즉 윤회재생은 인간의 영적 진화를 위하여 마련된 자연법칙의 일환으로서, 우리가 무지하여 잘못된 삶을 선택할 시에는 고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세상엔 탐욕스럽고, 야심에 찬 사람들로 득실거리고, 또 한쪽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윤회의 사실은 일견 모순에 가득찬 이 세계에 엄연한 법칙이 있음을 말하고, 우리의 삶이 아주 조심성 있게 선(善)을 향하여 선택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일생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삶과 시간이 헛되이 소모되고 있는지요?

 

붓다께서는 인간이 계속 재생하여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탐·진·치 미망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다음 생에 어떤 삶이 주어질는지가 현재의 업지음에 달려있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면, 과연 잘못된 자아의 허상에 속아 헛된 삶이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될 삶을 무모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윤회는 우리가 이 생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는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그리고 내생에도 몇십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해탈에 도달하지 못하는 범부 중생들일 뿐 입니다.

 

하지만 시작도 알수 없는 윤회의 시작으로부터 현생에 인간의 몸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행복한 것이든 불행한 것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시 죽어서 윤회를 거듭할 것이며 그러기에 다음생에 어떤 삶을 받느냐는 현생의 지금의 내 삶의 모습이 결정해 줄 것이기 때문 입니다.

 

지면상 글을 줄 입니다. 다만 그릇된 사견은 그릇된 행동을 낳게 됩니다. 윤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향상되고 성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면, 당장 현생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또는 가까운 장래 언제인가는 다시 붓다의 법을 만나서 불사의 문을 열게 될 것 입니다. 그림자가 내몸을 따르듯, 수레바퀴가 소의 뒤를 따라가듯, 한발짝씩 산밑에서 부터 산정상을 향해 걸어 가다보면 문뜩 내 눈앞에 정상이 보일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어난 악한 마음이 소멸하게 하고

일어나지 않은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일어난 선한 마음을 더욱 증장하게 하고

일어나지 않은 선한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