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의 수행
그러면 삼학 가운데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은 계이기 때문에 계율에 대해 알아보자. 이 계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듯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수행의 기초가 튼튼해져 선정과 지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계율이 무너지면 선정이 생길 수 없고, 지혜가 떠오를 리 없기 때문에 이 계율을 지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견책하는 의미도 있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훈계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보면 6근의 감각기관이 6경의 대상에 접할 때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고 주의하여야 한다’는 것이 계를 지키는 근본 자세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 조심, 불조심, 낙석 조심, 물 조심, 괴한 조심’ 등 경계하라는 많은 문구를 볼 수 있다. 사나운 개가 있으니 개를 조심하면 물리지 않을 것이고, 전기불이나 가스 불을 조심하면 화재로 인한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횡단보도와 차선 등 다른 것을 조심하여 운전하면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렇듯이 인간이 인식하는 6근의 감각기관이 인식의 대상인 6경을 대할 때 경계하고 조심하면 6식의 작용이 혼란하고 번민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안정을 줄 것이다. 그러기에 계를 지키는 것은 다가 올 재앙을 미리 막는 길이며, 앞으로 순조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고,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이다.
남방에서 주로 하는 수행은 위빠사나인데 이 수행을 초기불교의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 수행에서도 戒 · 定 · 慧 등 三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즉 선정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지계가 그 전제 조건이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내용을 남전 파리어 장경에서 보면,
[한때 우띠야(Uttiya)는 세존이 계신 곳에 가서 예배하고 한 쪽에 앉아 세존께 사뢰기를,
“세존이시여! 원컨대 나를 위해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십시오. 나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듣고 홀로 조용히 앉아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우띠야여, 너는 선법의 처음을 청정히 해라. 무엇을 선법의 처음이라고 하는가. 청정한 계를 잘 지키는 것과 정직하게 보는 것이다. 우띠야여, 너는 계를 청정히 하고, 정견을 수행하여 얻으면 너는 계를 의지하여 사념처를 닦아라.”]
라고 하여 淸淨戒와 正見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선법의 처음은 계와 정견으로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그 어느 하나도 얻을 수 없기에 수행자는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남방의 수행법 가운데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身念處, 受念處, 心念處, 法念處 등 四念處인데 이 사념처를 수행하기 전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은 계와 정견으로 청정계를 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남전대장경과 북전에서 보면 먼저 남전대장경에서는
[波羅提木叉란 모든 善法의 처음이고, 얼굴이며, 上首이다. 이것에 의해서 波羅提木叉라 한다.]
라고 하였고, 『五分律』에서는
[이 가운데 波羅提木叉는 계로서 모든 根을 防護하고 善法을 증장시키는 것으로 모든 善法에 의해서 가장 初門이 되기 때문에 이름하여 波羅提木叉라 한다.]
라고 하였다. 또 『四分律』에서는
[波羅提木叉는 계이다. 스스로 위의를 攝持하고, 住處・行根・面首로서 여러 가지 善法을 모아 삼매를 성취하기에 나는 마땅히 설하며, 마땅히 결집하고, 마땅히 發起하고 연설하여 베풀며, 開現하고 반복하여 分別할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대덕이여 나는 이제 마땅히 계를 설하리라.]
라고 하였다. 이 모든 율장에서 말하는 계의 역할이라는 선법을 얻는데 기초가 되는 초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때는 출발점이 있을 것이다. 이 출발점 없이 목적을 향할 수 없듯이 마음의 평온을 얻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持戒淸淨이 출발점이다.
계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말하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이것이 배제되면 상하의 질서가 파괴되고 사회가 혼탁하게 되어 인간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길은 멀기만 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불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인 행위를 어긴다면 그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석존께서는 ‘선법의 처음을 청정히 하라’고 하였고, 이 선법의 처음을 청정히 하는 것은 ‘계를 잘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즉 계를 잘 지키는 것이 불자의 근본 도리이며 이것이 불자의 도덕적인 행위다.
불교의 계를 청정계라고 한 것은 어떤 세속적인 욕망을 이루는데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떤 한 집단을 유지하고, 어떤 이념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마음을 비우는데 역할을 하고 지혜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청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선정이 있을 수 없고 여기에 지혜는 생기지 않기에 출세간의 계를 청정계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유교경』에서, “부처님의 계율은 작은 계율이라도 참으로 귀중하게 잘 지켜야 한다. 어두움 속에서 만난 빛처럼, 가난 속에서 얻은 보물처럼 참으로 귀중하게 잘 지켜야 한다. 계율이야말로 참으로 큰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세상에 더 머물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였다. 즉 계율 하나만 잘 지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며, 계율 하나만 잘 수지하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안 계셔도 정법이 바르게 실천하게 되어 부처님이 우리 앞에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만큼 계를 수지하는 것은 그 어떤 수행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계를 지킴으로 인해 身口意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남방의 수행인 위빠사나뿐만 아니라 북방의 수행인 염불, 참선, 주력 등 여러 가지 수행에서 마음을 집중하여 더 향상된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 계를 수지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행위가 청정해질 때 마음은 고요하고 맑아지며 행복해진다. 다시 말해서 도덕적인 행위의 청정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마음의 청정, 즉 心淸淨(citta-visuddhi)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도덕적 행위의 청정은 수행자가 향상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선결 조건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열반경』에서는 “계는 온갖 선법을 짓기 위해 올라가는 계단이 되는 것이며, 선법이 생겨나도록 하는 근본이 된다. 마치 땅이 온갖 수목을 생기게 하고 장육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셨듯이, 계율은 단지 선정에 들어갈 수 있는 토양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바탕이 된다.
계를 실천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선정과 지혜인데 『대애경』에서는 계의 수행에 의한 열 가지 장엄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그 몸을 장엄한 것으로 모든 모습을 구족하게 갖추고, 둘째는 입을 장엄한 것으로 언행이 서로 도우며, 셋째는 그 마음을 장엄한 것으로 그릇됨이 없다. 넷째는 국토를 장엄한 것으로 원한 바를 구족하고, 다섯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장엄으로 뜻이 청정하며, 여섯째는 태어난 곳이 장엄되어 있어 모든 여러 가지 악을 범할 것이 없다. 일곱째는 보살행의 장엄으로 如來行을 배우고, 여덟째는 聖慧莊嚴으로 스스로 큰 것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아홉째는 道場莊嚴으로 여러 가지 덕을 갖추기를 권하고, 열째는 힘인 無所畏, 不共法으로 장엄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계를 수지함으로 인해 몸과 마음, 그리고 국토와 수행하는 도량이 청정하게 장엄이 될 뿐만 아니라 여래행으로 무소외와 불공법을 증득하는 장엄까지 강조한 것은 계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하며, 수행자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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